걷다
peripatevw
돌아다니다 go about, 걷다, 행하다 wal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리파테오는 아리스토파네스 이래로 나타나며, 페리($4012: 대하여, 주위에, 두루)와 파테오($3961:밟다, 걷다)에서 유래했으며, '두루 다니다, 머물다(stay)'를 의미한다. 예를 들면 시장에서 여기 저기 걸어다닐 때, 이리저리 거니는 것과 멈추어 서는 것 등과 같은 문자적 의미로 발견된다(Dem., Orationes 54, 7). 행위와 관련된 걷는 것에 관한 비유적 의미는 나타나지 않는다. 오직 필로데무스(Philodemus, 주전 I세기)에게서만 '살다(Iive)' 라는 의미로 발견된다(De Libertate 23,3).||#2. 70인역본의 용법.||70인역본에서 페리파테오는 33개 구절에 나타나며, 그 중 반수 이상이 지혜 문헌에 있다. 이 단어는 히브리어 할락(대부분이 힛파엘)의 역어로 사용되며, 주로 단순히 '돌아다니다'라는 의미를 가진다(삼상17:39). 일반적으로 장소의 지적과 함께(예: 출21:l1), 또는 다른 어떤 것보다 엄밀한 사실과 함께(예:수산나13, 습관에 따라) 사용되었다. 삿21:24에서만은 '떠나가다'를 의미한다.|페리파테오는 신인동형론적으로 하나님의 돌아다니심에 대해서도 몇 군데 사용되었다(창 3:8; 창3:10; 시104:3). 사탄에 대해서도 그렇게 사용되었다(욥 1:7; 욥 2:2). 드물지만 종종 페리파테오는 비유적으로 생활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왕하 20:3; 전 11:9).|||#3. 신약성경의 용법.||(a) 페리파테오는 신약성경에서 95회 나타나며, '가다, 돌아다니다, 걷다, 행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그 중 약 반수는 문자적 의미로, 반수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벧전 5:8에서는 마귀가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계 2:1; 계 3:4; 계2l:24에서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의 완전과 빛 가운데서 걸어 다니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막 7:5; 행 21:2l; 히 13:9에서는 이 단어가 유대 전통과 관습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b) 페리파테오(걷다, 행하다)는 삶의 행위를 지칭하는 경우, 비유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생활 방식을 뜻하는 용어로서 깊은 의의를 가지고 있다. 무엇이 인간의 존재와 행위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생활 방식과 특성과 형태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 동사 자체로서는 중성적 의미를 지닌다.|바울의 저술에서, 근본적으로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 생활 방식이 나타난다. 즉 과거의 이방인 생활(엡 2:2; "육신을 좇아" 행함, 롬 8:4; "범인처럼", 고전 3:3)과 현재의 그리스도 안에서 삶(골 2:6; "영을 좇아" 행함, 롬 8:4; "성령을 좇아", 갈 5:16; "사랑으로 행함", 롬 14:l5; "사랑 가운데서", 엡 5:2; "빚의 자녀들처럼", 엡 5:8)을 사는 것이다.|그리스도의 선포는 하나님을 떠난 자기 본위의 '나'(갈 5:l6)에 의해 지배받는 삶에서 인간을 이끌어 내어, 하나님과 그 뜻에 의해 지배받고 또 그러한 특성을 지닌 새로운 생명(롬 6:4)에로 인도하고자 하기 때문에,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살전 4:1)인가가 역시 이 말씀 전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바울의 권면 중에 다양하게 반영되어 있다,|바울은 법 아래 있는 인간은 속박 아래 있게 되어 하나님의 뜻을 성취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출발한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로서 율법의 억압과 자신에 대한 속박에서 자유를 약속받는다(엡2:1 이하). 이제 인간은 하나님과 자기의 이웃을 섬길 수 있게 된다(롬7:6; 참조: 롬l4:7 이하; 갈5:13). 그러나 인간은 거듭하여 이러한 새로운 사실 속에서 살도록 권면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자라 할지라도 아직 "육체 안에서"(고후10:3) 살며, 따라서 "육신에 속하여"(고전3:3) 행하는, 즉 자기본위로 살아가는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기독교인이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는" 한, 주를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애쓰게 된다(고후 5:7 이하). 기독교인은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항상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엡 5:8 이하, 엡 5:15). 그리하여 부름받은 소명에 합당한 길로 자기의 삶을 인도해야 한다(엡 4:1; 살전 2:12; 골 1:10).|이것은 또한 다음과 같은 태도를 의미한다. 즉 신도의 회중에 들지 아니한 자들과 그들의 판단에 주의하여(살전4:l2; 골4:5)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않고(고후4:2)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태도이다(롬13:13). 그리할 때 낮의 빛과 외부 세계를 피할 필요가 없게 된다. 살후3:6에서는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고 데살로니가인들에게 촉구하고 있다.|요한의 기록에서 페리파테오는 문자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 나타난다. 요 11:9 이하에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낮이나 밤에 돌아다닌다는 문자적 의미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이 동사의 비유적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요한은 인간 존재의 두 가지 가능성, 즉 신앙의 삶과 불신앙의 삶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한다. "빛 가운데로 걸어간다", "진리 가운데 행한다", "어두움 가운데로 걸어간다" 등과 같은 표현들은 도덕적 또는 비도덕적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존재와 세상의 지배를 받는 존재를 의미한다.|빛 가운데로 걸어간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사는 것을 의미하며(요 12:35 이하), 어두움 가운데로 걸어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의 삶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은 참된 생명을 얻지 못한다(요 12:35; 요일 2:11). 한편 예수께서는 세상의 빛으로 오셨으며, 따라서 자신을 통하여 인간은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요 8:12). 예수의 부름을 듣고 그분을 따를 때 이 생명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빚 가운데서 걸어감은 윤리적 측면을 지닌다(요이 1:4에서는 "진리에 행하다"로 표현됨: 요이 1:6, 요삼 1:3 이하). 요한 서신이 이를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단순한 말들이 아닌 전체 생활 방식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입증한다(요일 1:6 이하).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1:6; 참조: 요이 1:6). 이것은 무엇보다도 예수 안에서 명백히 나타났다(요 13:14, 요일 4:11요일 4:19). 이것은 또한 서로 간의 사귐을 의미한다(요일 3:16 이하).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그리고 형제에 대한 완전한 헌신의 문제이다.|마찬가지로, 어둠 가운데 걸어간다는 것은 하나님과 사귐이 없는 생활 방식의 특성을 나타내며(요일 1:6), 따라서 사랑이 아닌 미움의 성격을 띠고 있다(요일2:11).|(참조: G. Ebel; H.Seese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