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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날아가다
pevtomai
날다 fly.||#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페토마이(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 '날다 fl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토마이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계 4:7에서 '날아가는' 독수리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계 8:13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b) 계 12:14에서 '종말론적인 여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c) 계 14:6에서 천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d) 계 19:17에서 새에 대해 사용되었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바위
pevtra
바위, 반석 ro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트라(Homer 이래)는 크고 견고한 '바위, 바윗 덩어리, 절벽', 재료로서의 '돌'을 의미하며, 심지어 '바위가 많은 산악지대'를 의미하기도 한다.|페트라는 또한 비유적 의미로, 확고함, 부동성 및 견고함, 마음이 '완고함'에 대해 사용되었다. 페트로스는 페트라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보다 작은 바위, 돌들 또는 조각돌들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O.Cullmann; C.Brown).||#2. 70인역본의 용법||(a) 페트라는 70인역본에서 약 9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셀라(바위, 반석, 울퉁불퉁 바위, 절벽)와 추르(바위, 큰 바위 조각)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케프(2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이 단어는 일반적 의미로 여러 가지 문맥에서 발견된다(출 33:21; 욥 39:28등). 특별히 바위는 동물들(시 104[403]:18; 잠 30:26) 뿐만 아니라 사람들(삼상 13:6)에게도 피난처가 된다. 바위는 보호를 제공해주며, 따라서 힘까지도 주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도 바위로 표현된다(삼하 22:2). 반석은 제사의 장소이며(삿 6:20; 삿 6:21; 삿 13:19), 바위에서 물이 나온 기적(느 9:15; 시 78[77]:15이하; 신 32:13)을 본다.|이 단어는 비유적 의미로 '견고함'과 결단(사 50:7; 겔 3:9), 완강한 저항(렘 5:3)을 나타낸다.||(b) 후에 랍비들은 사 51:1; 사 51:2을 근거로 하여 아브라함을 바위로 묘사하였다(S B Ⅰ731). 쿰란 본문에서는 종말론적 공동체가 반석 위에 주초를 쌓은 건물에 비교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모퉁이 돌'의 표상도 마찬가지로 이 문서들 속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안전한 벽, 아주 귀중한 모퉁이 돌이 될 것이며, 그 기초는 그 자리에서 흔들리거나 기울지 않을 것이다".|(1QS 8:7이하; 참조: 1QH 6:26; 7:8; 참조:A.R.C.Leaney).||#3. 신약성경의 용법||페트라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문자적 의미, 막 15:46에서 예수님의 시신은 바위로 만든 무덤에 안치되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병행구, 마 27:60)|계 6:15, 계 6:16에 보면 사람들은 바위의 갈라진 틈에서 피난처를 찾는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요한계시록에 기록된 마지막 사건들 때에 인간들은 산 위의 동굴들과 바위 틈 사이에 숨을 것이다. 본문의 사건 묘사 배후에는 사 2장 뿐만 아니라 호 10:8에 대한 회상이 있다.|마 27:51에서 지진은 바위를 쪼갠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예수님이 죽을 때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는 일이 있었다.|눅 8:6에서 바위 위에 떨어진 씨의 운명을 묘사한다: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눅 8:13에서 이 비유를 설명한다: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에 배반하는 자요".|마 7:24, 마 7:25에서 반석은 견고하고 안전한 기초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산상수훈을 마무리하는 비유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반석, 곧 견고하고 안전한 기초 위에 집을 짓는 자와 같다고 한다.||(b) 고전 10:4에서 '따르는 반석'을 묘사한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이러한 진술은 물이 반석에서 쏟아져 나온 출애굽 기적과 관련되어 있다(출 17장과 민 20장).|출애굽기 17장과 민수기 20장을 비교함으로써, 랍비들은 물을 공급해 준 바위가 이스라엘의 여정 중에 실제로 있었다는(SB Ⅲ 406) 결론에 벌써 도달하였다. 그러나 유대교는 이 구절의 메시야적 해석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바울이 구약성경의 기적을 주의 만찬에 비추어 해석한 첫 번째 사람인데,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 기원을 갖고 있는 신령한 음식이며 신령한 음료이다. 이 구약성경의 기적은 사도 바울의 견해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사건을 예시해주는 모형이다. 이 구절을 명확히 이해하려면 요 7:37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실제적 반석이 아니라 영적인 실재이시다. 그러나 동일한 그리스도는 그의 백성들을 유지시키시기 위해 옛 계약과 새 계약을 통해 역사 속에서 활동하신다. 이 그리스도의 그의 백성에 대한 성실성을 바울이 "따르는"(아콜루 두세스)이란 말로 표현하였다.||(c) 롬 9:33에서 "거치는 반석"을 묘사한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이 믿음에 의한 구원을 거절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에게 거치는 반석이 되셨다. 사 8:13이하에는 여호와께서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성소가 되고, 그를 경멸하는 자들은 그로 인하여 부러질 것이라는 약속이 있다.|롬 9:33에서, 바울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배척한 사실에서, 특히 이스라엘이 믿음이 아니라 율법과 공적에 기초한 의를 추구하였다(참조:롬 9:31이하)는 점에서 사 8:14이 성취되었다고 본다. 반면에 의를 구하지 않았던 이방인들은 믿음을 통해 의를 발견하였다(롬 9:30). 그러나 거치는 반석은(사 8:14) 기초와 기준, 곧 시험한, 귀중한, 견고한, 기초인 모퉁이 돌이 되었다(사 28:16). 이러한 모퉁이 돌은 불신에 직면해서 무적의 무서운 것이었다. 하지만 반석은 여전히 이스라엘에 대한 소망과 더불어 사 28:16에 나타난 은혜로운 초청과 약속을 지니고 있다.|벧전 2:7, 벧전 2:8에서도 "거치는 반석"을 묘사한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 베드로 역시 사 8:14을 인용하고 있으나 시 118:22과 결합시킨다. 시 118:22의 머리돌을 올려 놓을 때의 기쁨에 대한 말씀은 여기서 사 8:14과는 대조적으로 사 8:14의 영향 아래서의 무서운 측면을 나타낸다. 사 28:16은 특히 신자들에게 언급된 것이다.||(d) 마 16:18에서 교회의 기초로서 페트라와 페트로스의 관계를 언급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참조: J.H.Thayer; Walter Bauer; C.Brown; O.Cullmann).
베드로(반석)
Pevtro"
돌, 바위, 반석, 베드로.||#1. 페트로스의 의미.||페트로스는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 '(깨어진) 바윗 조각, 돌, 바위'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페트로스는 2회 나오며, 마카베오이서 1:16과 4:41에서 '돌'(stone)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 페트로스는 154회 나오며, 요 1:42을 제외하고는 모두 베드로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2.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a) 베드로가 가진 이름. 베드로는 이 이름 외에도 시몬, 시므온, 게바, 시몬 베드로로 나타난다.||(b) 베드로의 아버지는 요나 혹은 요한이며(마 16:17; 요 1:42; 요 21:15-17), 어머니는 알 수 없다. 베드로는 갈릴리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의 어촌 벧세다 사람이었다(요 1:44). 그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어부였으며(마 4:18; 막 1:16), 세베대와 그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동업자였다(눅 5:11; 마 4:21).|베드로는 결혼을 했다(고전 9:5). 전설에 의하면 그의 아내는 바나바의 형제 아리스도브로스의 딸로서 일남일녀가 있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그가 아내가 있었고, 장모와 안드레와 함께 살았다.|베드로는 부자는 아니었으나 그의 형제와 함께 고기잡이 배를 가진 사람으로서 전설이 전하는 것처럼 극빈자는 아니었다. 베드로의 교육 정도에 대하여 행 4:13에서 '학문 없는 범인'이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갈릴리에는 희랍 문화가 적지 않게 보급되어 사람들이 희랍어와 아람어를 같이 썼다. 베드로도 그리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시몬도 어렸을 때 히브리 성경을 공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랍비적 입장에서 볼 때 학자라 할 수는 없었다(행 4:13).||(c) 베드로는 세례(침례) 요한이 전도하고 있었던 요단 건너편 베다니로 나갔을 때(요 1:28), 그의 동생 안드레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났다.|주님은 베드로를 보시고 즉시 그의 능력을 인정하시고 그의 장래를 예언하는 '반석'(게바, 베드로)이란 이름을 주었다(요 1:40 이하). 이것은 앞날을 생각하사 미리 주신 이름이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약점을 보일 때마다 주께서는 그의 새 이름 베드로를 쓰지 않으시고 예 이름 시몬을 쓰사 반성과 격려를 주셨다(눅 23:22; 막 14:37; 요 21:15-17).|그러나 베드로가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것은 그로부터 얼마후 그와 안드레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잡이하던 때였다. 이 때 주님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부르셨다. 베드로는 안드레와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제자로 부름을 받았으며,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따랐다(막 1:17; 마 4:28; 눅 5:1). 최초기의 열 두 제자의 명부에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두쌍의 형제이며, 이렇게 쓰여진 것은 그들의 우의와 협조가 각별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안드레는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으로 유명하나 초대 교회는 안드레를 더욱 저명한 사도의 형제로 기억했다(요 1:40; 요 6:8). 베드로의 이름은 항상 열 두 제자 중 제일 먼저 언급되었다(행 1:13).||(d) 베드로의 지도적 위치는 주님의 제자로 부름받은 이후 그의 생애동안 계속 유지되었다.|① 베드로는 의심과 혼란의 때에 예수님의 메시야직을 선언했다(마 16:13-16; 막 8:27-29; 눅 9:18-20).|②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껄끄러운 말씀을 하여 듣던 제자들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였을 때 예수님께 충성을 다짐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28; 요 6:22 이하).|③ 베드로는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변모를 목격했다. 그 때는 베드로는 요한과 야고보와 함께 했다. 영광 중에 놀란 베드로는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내가 여기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지으리이다"고 했다(마 17:4; 참조: 막 9:6; 눅 9:33)|④ 여러 경우에 베드로는 제자들의 수석 대변자였다. 예수님의 수난 예고를 듣고 예수님을 말리다가 책망을 받았으며(마 16:21-22; 막 8:31-33),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마 18:21), 더럽히는 것에 대해(마 15:15-18), 종의 비유에 대하여(눅 12:41),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예수님의 예언에 대해 물었으며(막 13:3; 막 13:4), 저주하신 무화가 나무가 말랐다고 예수님께 말했다(막 11:21).|⑤ 베드로는 경솔하게 예수님의 물음을 가로채서 답변했으며(눅 8:43-45),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는데 참석했으며(막 5:37; 눅 8:51), 유월절 예비를 위하여 요한과 함께 보냄을 받았으며(눅 22:8 이하; 눅 22:13).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 주심을 거절했다(요 13:6-10).||(e)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하여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예수님께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이라 예언하셨다(마 26:33-35; 막 14:29-31; 눅 22:31-34; 요 13:36-38). 그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잡으러 온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칼로 쳐 떨어뜨렸다(마 26:51; 막 14:47; 눅 22:50; 요 18:10 이하).|그는 예수님을 쫓아 대제사장의 집안 뜰에 들어갔으며(막 26:58; 막 14:54; 눅 22:54; 요 18:15), 예수님을 세번 부인하고 회개했다(요 18:17 이하; 요 18:25 이하; 마 26:69-75; 막 14:66-72; 눅 22:55-62).||(f)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하여 나타난다.|①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고 그의 부활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온 여자들의 말을 듣고 예수님의 무덤으로 달려 갔다(눅 24:12; 요 20:2-6).|② 그는 여자들로부터 천사가 전한 부활한 예수님을 갈릴리에서 보리라는 메세지를 받았다(막 16:7).|③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다(눅 24:32-34; 고전 15:4 이하).|④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가(요 21:3; 요 21:1-14), 디베랴 호수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요 21:4-6). 여기서 베드로는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받았다(요 21:15-17; 요 21:15-19).||(g) 베드로는 예수님의 승천에 관련하여 나타난다. 그는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하고(마 28:16-20),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행 1:12-13). 그는 예루살렘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합심 기도 했다(행 1:14; 행 1:12-14). 그는 유다의 죽음에 대해 증언하고 새로운 사도의 선택을 제안했다(행 1:15-22).||(h) 베드로는 오순절 이후 사도 시대에 계속 주도적 위치를 유지한다. 그는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에 대해 설명했으며(행 2:14 이하), 설교를 하여 많은 사람을 얻었으며(행 2:37 이하; 행 2:27-41), 전도하다가 요한과 함께 잡혔다가 풀려 났다(행 4:1-15; 행 4:13-22).|그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판결을 내렸으며(행 5:4-10), 성전문에서 앉은뱅이를 고치고(행 3:2-7),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었다(행 5:12-16).|그는 두 번째 투옥되었다가 주의 사자의 도움으로 풀려났다(행 5:17-20). 그는 공회 앞에서 그의 사명에 대해 답변했다(행 5:27 이하).|그는 사도의 대표로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했으며(행 8:14-25), 성령의 권능을 돈으로 사려고 하는 마술사 시몬을 꾸짖었다(행 8:18-20). 그는 바울과 만났다(갈 1:17 이하).|그는 룻다에서 애니아를 고치었으며(행 9:32-34) 욥바에서 다비다를 살렸다(행 9:36 이하).|그는 욥바에서 기도 중에 부정한 동물의 환상을 보고(행 10:11-16), 가이사랴에 있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가서(행 10:21-22; 행 10:24 이하),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했다(행 10:34 이하; 행 10:44 이하).|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게 전도한 베드로를 책망했으나(행 11:1-3), 베드로의 말을 듣고 수긍했다(행 11:4-18). 그는 예루살렘 총회에서 이방인에 대한 전도를 지지했다(행 15:7-14).|그는 헤롯의 명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 났다(행 12:3-19). 그는 일관성 없는 태도 때문에 바울의 책망을 받았다(갈 2:14).|그는 바울 서신에 대해 언급했으며(벧후 3:15 이하), 두 개의 서신 베드로전후서를 기록했다(벧전 1:1; 벧후 1:1).||(i) 베드로의 오순절 이전과 이후의 생애의 대조.|① 전에는 겁쟁이었으나 후에는 담대하였다(마 26:58; 마 26:69-74; 마 14:28-31; 행 4:18 이하).|② 전에는 충동적이었으나 후에는 겸허하였다(요 18:10; 벧후 1:1).|③ 전에는 무지했으나 후에는 말씀을 잘 이해했다(마 16:21 이하; 행 2:14-40).|④ 전에는 자기를 자랑했으나 후에는 그리스도를 자랑했다(마 26:33 이하; 행 3:6).|⑤ 전에는 묻기를 좋아했으나 후에는 복종을 잘했다(요 21:21 이하; 행 5:29).|⑥ 전에는 잠자는 상태였으나 후에는 깨어 있는 상태였다(마 26:40; 벧전 4:7; 벧후 3:8-13).|(참조: HBD; ZTB).
페트로데스
petrwvdh"
바위 같은, 돌이 많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페트로데스(Soph. 이래)는 페트라($4073: 바위)와 에이도스($1491: 보이는 것, 형상, 모양)에서 유래했으며, 본래 의미는, '바위 같은', '바위의 모양을 가진'을 의미하며, 여기서 '바위가 많은' rocky, '돌이 많은' stony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페트로데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씨 뿌리는 비유에 대해 사용되었다.||(a) 마 13: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병행구 막 4:5).|(b) 마 13:20,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병행구 막 4:16).|(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운향
phvganon
운향 ru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가논(Aristoph. 이래)은 아마 페그뉘미($4078: 튼튼하게 하다, 붙들어 매다)에서 유래했으며, 학명 Ruta graveolens로서 요리와 약에 쓰이는 풀, 운향(rue)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가논은 신약성경에서 눅 11:42에 한번 나온다: "화 있을찐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아니하여야 할찌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더 중대한 사항을 무시하고 율법의 요구들(신 14:22-24) 보다 초과하여 박하와 운향(페가논)과 회향과 근채와 같은 사소한 채소들의 십일조를 드리는 그들의 염려를 개탄하셨다.|(참조: N. Hillyer; Walter Bauer; J. H. Thayer).

phghv
샘 spring, 원천 sour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게(Homer 이래)는 '솟아나는 샘물, 물의 원천'을 의미하며, 포타모이(강들)는 페카이(샘들, Eur., Hercules Fureas 1297)에서부터 생겨난다. 따라서 페게는 일반적으로 근원이란 비유적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다. 옛부터 희랍의 일반 신념에서는 강과 샘은 열등한 신으로 의인화한 것이다.||#2. 70인역본의 용법||페게는 70인역본에서 약 10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아인(샘, 샘물, 눈물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본다)과 그 파생어 마얀(샘물, 50회), 그 다음으로 마콜(샘, 14회), 역시 '샘'을 뜻하는 맙부아(30회), 아피크 (강바닥, 수로, 2회)를 번역한다. 이 단어는 '샘'은 물론, 근원에 대해 사용되었다(시 36:10; 잠 10:11; 잠 13:14 등).||#3. 신약성경의 용법||페게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a) 막 5:29에서 페게는 혈류의 '근원'이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b) 요 4:6에서 페게는 '우물'을 의미한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 시쯤 되었더라".||(c) 그러나 요 4:14에서 페게는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여기서 예수님은 자기가 주는 물은 야곱의 우물에서 나오는 물과 다르다고 하신다. 이 물은 영원히 갈증을 풀어줄 뿐 아니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하고자 하시는 것은 사람 자신이 무진장 솟아나는 이 물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 물의 소유는 그리스도와 산 교제와 관련된다는 것이다.||(d) 물과 성령을 동일시하는 사상을 이교도들을 물 없는 샘이나 물에 비교한데서 찾아볼 수 있다.|벧후 2:17에서 그들을 물 없는 샘에 비유한다: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가는 안개니 저희를 위하여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나니".|약 3:11이하에서 그들을 쓴물로 비유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 이교도들은 거짓된(소금기있는) 귀신의 영에 사로잡혀 있으므로 하나님의 성령이 깃들지 않는다(참조: 요 14:1; 계 16:13).||(e)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뿐 아니라 물의 근원(pegai hydaton, 계 14:7)도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종말 때에 마실 물의 축복과 은사의 일부 혹은 전체를 취소할 수 있는(계8:10; 계 16:4; 참조: 계 11:6과 출 7:14-25), 강과 물의 근원의 처분에 대한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다.||(f) 예언적인 약속과 연결되는 종말론적인 고찰은(겔 47:1-12; 욜 4:18[EVV3:18]; 슥 13:1이하; 슥 14:8) 자연히 강의 치유하는 성질에 더욱 관심을 나타내는데, 그것은 창 2:10-14의 낙원의 강보다 훌륭하며 또한 말세에 해갈을 시키고 중생과 정화를 펼치게 될 것이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7:17; 계 21:6).|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는(계 22:1) 겔 47:1에 나오는 물의 근원으로서의 성전의 자리를 대신한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이제부터는 그리스도 안에 생명수를 쏟으신다("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1:6).|(참조: Walter Bauer; J.H.Thayer; O.Bocher).
페그뉘미
phvgnumi
세우다, (장막을) 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페그뉘미(Homer 이래)는 기본 동사이며,||(a) '튼튼하게 하다, 고정시키다',|(b) '세우다, 함께 묶어 짓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페그뉘미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히브리어 나타(5186: 내밀다, 뻗다, '천막을' 치다; 창 26:25; 삿 4:11; 대상 16:1 등), 타카(8628: 치다, 찌르다, 불다; 창 31:25; 삿 4:21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주로 천막을 '치는 것'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페그뉘미는 신약성경에서 히 8:2에 한번 나오며, 장막을 '친다'를 의미한다: "성소와 참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페달리온
phdavlion
(배의) 키 rudd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달리온(Homer 이래)은 페돈(%633: 노깃 the blade of an oar, 노 an oar)에서 유래했으며, 배의 '키' rudde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달리온은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배의 '키' rudder에 대해 사용되었다.||(a) 행 27:40, "닻을 끊어 바다에 버리는 동시에 킷줄을 늦추고 돛을 달고 바람을 맞추어 해안을 향하여 들어가다가".|(b) 약 3:4,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어떻게 높은
phlivko"
얼마나 큰, 얼마나 위대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펠리코스(Pla. 이래)는 헬릭스(%455: 같은 나이의, 성숙한)에서 유래했으며, '얼마나 큰, 얼마나 위대한(출중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펠리코스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마/메(4100: 무엇?, 어떻게?, 어떤 것?)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슥 2:6에서 '얼마인가'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펠리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갈라디아서와 히브리서에만 사용되었다.||(a) 갈 6:11에서 '얼마나 큰'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b) 히 7:4에서 '얼마나 위대한'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이 사람의 어떻게 높은 것을 생각하라 조상 아브라함이 노략물 중 좋은 것으로 십분의 일을 저에게 주었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진흙
phlov"
진흙, 진창||#1. 고전 헬라어의 용법||명사 펠로스(아에쉴루스와 헤로도투스 이래로)는 본래 먼지나 흙이 약간의 액체, 특히 물과 섞여서 그 결과로 그 물질이 부드럽고 유연해지는 것을 뜻하며, 그래서 '진흙, 진창, 오물, 늪, 점토'라는 의미를 지닌다.|펠로스는 보통 벽돌공과 토기장이들에 의하여 사용된 진흙이나 흙을 의미한다(Herodotus). 진흙을 반죽하는 데 있어서 토기장이의 기술은 사람들을 "작은 진흙 입상"으로 묘사하는 인상을 준다(Aristophanes).|헬라 문명기에는 헤로다스(Herodas)에서 사람을 진흙 조각으로 생각했다: '인간은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며,어떤 진흙으로 섞은 것인지를 알아야 하며, 또 내가 그러하듯이 시민 중에서 가장 비천한 자까지도 존경하면서 살아야 한다'. 에픽테투스(Epictetus)는 "육신은 본래 흙"이라고 관찰했다.|로마 제국 시대에는 흙탕물이나 진흙을 사용하는 몇 가지 예가 있었는데, 의사의 처방(Galen, De Theriaca 19)에서와 버가모(Pergamon)에 있는 애스쿨라피우스(Aesculapius)의 유적에서 나온 치료법(Adius Aristides, orations 48, 74f)과 관련되어서 나오고, 에피다우로스(Epidauros)에서 그 실례들이 있다.(참조: W.L.Lane)||#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펠로스는 70인역본에서 35여회 나오며, 히브리어 호멜(점토, 진흙), 티트(진흙, 진창, 점토), 아팔(먼지, 흙, 회반죽, 쓰레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따라서 펠로스는 70인역본에서 '진흙, 수렁, 벽돌 반죽'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펠로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성질이 다른 두 가지 면으로 사용되었다.|요 9:6; 요 9:11; 요 9:14; 요 9:15에서 펠로스는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는데 사용된 "진흙"을 의미한다. 유대인 의사들의 진료 가운데는 눈에 침을 바르는 것과 치료하기 위해 손을 얹는 것이 있다. 예수님께서 침을 뱉아 이긴 진흙을 눈에 마르고 못에 가서 씻게한 것은 눈에 적합하게 빛을 조절하여 완전히 보게하는 한 방법일 것이다.|예수님은 그의 만짐과 행위를 통해서 그 사람의 사고 세계에 들어가서 그와 중요한 만남을 갖는다. 그러나 진흙을 이겼다는 반복되는 언급은 더 깊은 뜻을 암시한다. 소경의 눈에 대한 처방으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빛을 주시는 창조적인 역사를 하시며 또 그가 세상의 빛이라는 것을 입증하신다(참조: 요 1:4-요 1:9; 요 8:12; 요 9:5). 자기가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선언(요 9:5)과 소경의 눈을 뜨게한 기사(요 9:6-요 9:15)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요한은 보이지 않는 눈에 진흙을 바른 것에 촛점을 두는 사건에 대한 그의 신학적인 이해를 증거한다.||롬 9:21에서 펠로스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인간 조형의 재료로 진흙을 묘사한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바울은 하나님을 그의 피조물을 마음대로 다스리는 토기장이로 보는 구약성경의 일반적인 개념에 접근한다. 이 문맥에서 인간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하나님은 그의 목적대로 진흙을 조형하는 분으로 묘사한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는 수사적인 질문은 사 29:16과 사 45:9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비유는 피조물인 인간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자유와 절대권을 강조하고 인간은 인간의 요구와 하나님의 절대권을 혼동하지 말라는 이사야의 경고를 되풀이한다.|(참조: J.H.Thayer; W.L.Lane)
주머니
phvra
배낭 knapsack, 여행가방 traveller's ba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라(Homer 이래로)는 일용품이나 작은 동물들을 운반하는 배낭, 거지의 가방, 견유학파의 순회 전도자가 가졌던 가방, 그리고 목자의 가방 등을 가리켰다(Josephus, Ant., 6, 185).||#2. 70인역본의 용법||페라는 70인역본에서 3회, 외경 유딧(10:5; 13:10,15)에서만 곡식 등을 넣는 '부대와 자루'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페라는 신약성경에서 공관복음서에서만 6회 나온다.|페라는 마 10:10; 막 6:8; 눅 9:3; 눅 10:4; 눅 22:25; 눅 22:26에서 나타난다. 다이스만(A. Deissmann)은 이것을 거지의 구걸하는 가방으로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는 마 10:10을 제자들에게 구걸을 금지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미첼리스(W. Michaelis)는 페라가 일반적으로 거지의 가방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구걸과 연관을 부인한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여행가방과 동일시하여, 이 구절이 제자들로 하여금 많은 비축물로 인한 부담이 없이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주시는 것만을 의지하라는 소명으로 여겼다. 쉬니빈트(J. Schniewind)는, 기도하고 금식한 자들이 지팡이도 없고 맨발이었기 때문에 제자들도 사람들 앞에 하나님 앞에서와 같은 복장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시사하였다.|위에 언급한 구절들과 눅 22:25; 눅 22:26을 연결해 보면 페라에 관한 언급은, 발란티온($905)과 글롯소코몬($1101)에 대한 언급과 마찬가지로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돈(Money)이나→재물(소유)을 구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일을 생활의 우선적인 것으로 여겨서 물질적인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고 말한다.|(참조: Walter Bauer; G.T.D.Angel).
규빗
ph'cu"
규빗 cubi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페퀴스(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앞 팔' The fore-arm, 즉 팔의, 손과 팔꿈치 사이의 부분(Hom. Od), 따라서 '규빗', '완척(腕尺)', 팔꿈치로부터 가운데 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와 동등한 길이의 도량 단위(즉 대략 일보반의 길이, 그러나 그 정확한 길이는 다양하며 지금도 논란되고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페퀴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00회 이상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암마(520: 척량 단위로 '규빗')의 역어로 사용되어 '규빗'을 나타낸다(창 6:16; 출 26:2; 왕상 7:15; 에 7:9; 겔 40:5).||#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페퀴스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a) 마 6:27에서 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병행구 눅 12:25).|(b) 요 21:8에서 거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상거가 불과 한 오십 간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고기든 그물을 끌고 와서".|(c) 계 21:17에서 거룩한 성곽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잡게 하다
piavzw
붙잡다, 체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아조(Theocr.)는 피에조($4085: 누르다)의 후기형이며,||(a) '붙들다, 붙잡다',|(b) '잡다, 포획하다, 사로잡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피아조는 70인역본에서 3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하즈(270: 잡다, 소유하다, [자물쇠를] 채우다; 아 2:15), 다라크(1869: 걷다, 행진하다, 밟다; 미 6:15)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피아조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행 3:7에서 사람을 '잡아' 일으키는 것을 묘사한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b) 요 21:3; 요 21:10에서 물고기를 '잡는 것'을 나타낸다: "3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신대".||(c) 계 19:20에서 짐승을 '사로 잡는 것'을 나타낸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d) 피아조는 사람을 '체포하는 것'을 나타낸다.|① 요 7:30; 요 7:32; 요 7:44, "30 저희가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44 그 중에는 그를 잡고자 하는 자들도 있으나 손을 대는 자가 없었더라".|② 요 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연보 궤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③ 요 10:39, "저희가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④ 요 11:57, "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누구든지 예수 있는 곳을 알거든 고하여 잡게 하라 명령하였음이러라".|⑤ 행 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⑥ 고후 11:32, "다메섹에서 아레다왕의 방백이 나를 잡으려고 다메섹 성을 지킬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피에조
pievzw
누르다 pr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에조(Homer 이래)의 어원은 불확실하며, '누르다' press, 함께 누르다' press togethe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피에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6:38에 한번 나온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공교한 말
piqanologiva
설득력 있는 말, 설득하는 기술.||#1. 일반 헬라어의 용법||형용사 피다놀로기아(Plat.)는 '설득력 있는 말, 설득하는 기술'을 의미하며, 외적인 것으로 설득하는 것을 나타낸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피다놀로기아는 신약성경에서 골 2:4에 한번 나온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공교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여기서 이 단어는 나쁜 의미에서 '설득력 있는 말', 즉 '다른 사람들을 잘못으로 이끄는 허울좋은 말'을 가리킨다.|(참조: J.H.Thayer; O.Beck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