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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쓰게 되다
pikraivnw
쓰게하다, 괴롭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크라이노(Hippocr. 이래)는 피크로스($4089: 쓴, 쓰라린)에서 유래했으며,||(a) '쓴 맛이 나게 하다',|(b) 전이된 의미로는 '쓰라리게 하다, 나쁘게 영향하다',|(c) '격분시키다, 화나게 하다', 수동태로 '격분하다, 화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피크라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 12회 나오며, 욥 27:2; 룻 1:13; 출 16:20 등에서 '화나다, 격노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전혀 사용되지 않는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피크라이노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골로새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골 3:19에서 남편들은 아내에 대해 무정하거나, 악의를 품거나 가혹하게 해서는 안된다: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b) 계 8:11에서 피크라이노는 '쑥으로 물을 쓰게 하다'를 의미한다: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참조: 신 29:18; 렘 9:15; 렘 23:15; 애 3:15; 애 3:19; 암 5:7; 암 6:12; 잠 5:4). 이 단어는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에 관한 환상 중에서 인류의 재난들 중의 한 가지를 묘사한다.||(c) 계 10:9 이하에서 피크라이노는 천사가 요한에게 어떤 두루마리를 먹으라고 명하여 먹은 결과 이 두루마리는 입에서는 달지만 배에서는 쓰게 되었다는 것에 사용되었다. 이 내용은 그 천사의 메시지 때문에 그가 괴로워하게 된 것을 시사한다. 이 입에 맞지 않는 메시지는 쓴 쑥의 쓴맛 때문에 인간이 고통을 당하는 것과 대조되는 것으로 이 쓴 쑥은 앞에서, 인간의 악으로 인하여 쓴 맛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뜻으로 묘사되었다.|(참조: G. T. D. Angel; Walter Bauer; J. H. Thayer).

pikriva
씀(맛) bitternes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피크리아(Demosth., Aristot. 이래)는 피크로스($4090)에서 유래했으며, '씀, 쓴맛'이나 '성질이 잔혹함', 그리고 '어려운 시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피크리아는 70인역본에서 약 30회 나오며, 지명 마라에 대해 사용되었으며(민 33:8이하; 출 15;23), 신 23:32; 애 3:15, 애 3:19; 잠 5:4에서는 은유적으로, 그리고 사 28:21, 사 28:28에서는 하나님께 쓰인다. 이 단어는 보통 비탄, 실망, 미움, 그리고 분노와 관련된 '쓰라림'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피크리아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히 12:15에서 쓴 것은(참조: 신 29:18) 구약성경에서와 같이(참조: 히 32:32) 분노와 관련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b) 롬 3:14(참조: 시 10:7; 시 9:28)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다 "죄 아래 있다"는 것을(참조: 롬 3:9) 입증하는 논증 과정에서 이것을 저주와 관련시킨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행 8:23에서 베드로는 마술사 시몬이 성령을 돈을 주고 사고자 했을 때 그를 "[악독]이 가득하고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라고 책망하였다.||(c) 롬 3:14은 사 58:6을 반영하는 것이고 히 12:15은 구약성경의 쓴 것, 쓸개, 쓴 쑥과 독과 연관성이 있음을 반영한다(신 29:18; 애 3:15, 애 3:19; 잠 5:4; 참조: 암 6:12). 불의한 행동들과 정욕들은 쓴 맛을 생기게 한다.||(d) 엡 4:31에서 피크리아(bitterness, 이 의미에는 아마 악의, 분노, 원망, 난폭함 등이 포함되어 있는 듯하다)는 기독교인에게 버리라고 요구하는 악덕들의 항목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것이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참조: Walter Bauer; G.T.D.Angel).
독한
pikrov"
쓴, 쓰라린 bitter.||#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피크로스(Homer 이래)는 본래 '뾰족한, 날카로운'(예, 화살)을 의미하며, 그 후에 더욱 보편적으로 '예리한'(감정), '날카로운'(소리), '아픈'(감정), 특별히 '쓴'(맛)을 의미한다.|그리고 전이된 의미로 이 단어는 '불유쾌한, 예기치 않는, 탐탁지 않은' 것의 경험이 지배적인 영역에 사용되었고, '엄격한, 가혹한, 적대적인, 잔인한'이란 의미도 지닌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피크로스는 70인역본에서 40회 나오며, 문자적으로는 '쓴'(출 15:23), 비유적으로는 '괴로운'(룻 1;20), '사나운'(합 1:6), '날카로운'(창 27:34)을 나타낸다. 삼상 15:32에서 죽음은 괴롭고, 마카베오이서 6:7에서 '운명은 가혹하다'고 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피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야고보서에만 2회 나온다.||(a) 약 3:11에서 피크로스는 문자적 의미로 '쓰거나 맛이 없는' 샘물을 나타낸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뇨".||(b) 약 3:14에서 피크로스는 전이된 의미로 '적대적이거나 잔인한' 시기를 나타낸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참조: Walter Bauer; G.Delling).
피크로스
pikrw'"
쓰게, 통렬히 bitterly.||#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피크로스(Aeschyl. 이래)는 피크로스($4089)에서 유래했으며, '쓰게, 통렬히'를 의미한다. 통렬한 반대나 엄격하게 벌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부사 피크로스는 70인역본에서 9회 나오며, 고전 헬라어의 의미로 나타낸다(사 22:4; 사 33:7; 겔 27:30 등).||#3.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피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 26:75(와 병행구, 눅 22:61)에만 나온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 구절은 베드로가 자신의 부인을 깨닫고 "심히(통렬히) 통곡"했다는 내용이다. 이 통곡은 격렬하게 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이것은 부인에 대한 완전한 절망을 표현하는 것이었다.|(참조: J.H.Thayer; W.Michaelis; G.T.D.Angel).
빌라도
Pilavto"
빌라도 Pilate(인)||빌라도(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를 통치한 다섯번째 로마 총독(주후 26-36년 혹은 27-37년)이다. 빌라도는 아마도 유럽 태생인 것 같으며, 로마를 위해 본도(흑해 지역)에서 싸웠기 때문에 '본디오'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빌라도'는 필라투스(pilatus, '던지는 창' Javelin) 혹은 필레우스(Pileus, 자유민이나 그 자손들이 쓴 펠트모자)에서 유래한 것 같다. 그의 본부는 가이사랴에 있었으나, 유월절과 같은 주요 절기 동안에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있었다. 왜냐하면 방문객의 쇄도로 무질서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빌라도의 통치는 분별 없는 대실책으로 특징 지워졌다. 그는 우상의 사용을 반대하는(출 20:4) 유대인의 사상에 거슬리게 제국의 기준을 예루살렘에 그대로 적용시켰다. 그는 신민들 사이의 무질서를 제압하기 위해 병사를 고용했다. 그는 또 베들레헴 근처에 있는 솔로몬의 연못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수도관을 건설하는데 성전 기금을 전용하였다.|빌라도는, 모세가 그곳에 숨겨두었다고 전해진 성전 황금 기물을 찾으러 그리심 산으로 모여든 무장하지 않는 사마리아인들을 살해하였다. 이 마지막 대실책 때문에 그는 로마로 소환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누가가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이라고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다(눅 13:1 이하).|빌라도가 저지른 최고의 실책은 우리가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마다 상기된다("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그것은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비겁한 책임이었다(막 15:14). 간밤에 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회의하고 예수님을 결박하여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마 27:2). 왜냐하면 로마 대표부만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리"가 빌라도의 재판석에서 고소한 내용은 "이 사람이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하는 것이다(눅 23:2). 빌라도가 자신의 집정소 혹은 관저에서 예수님에게 이 고소 사실을 부인할 기회를 주었을 때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으며" 이에 빌라도가 이상하게 여겼다(막 15:5). 혹은 누가의 기사대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공적으로 인정하셨다(마 23:3). 빌라도가 예수님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했음을 군중에게 말하자 그들은 다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을 가르침으로써 선동하였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웠다. 빌라도는 갈릴리라는 말에서 핑계를 잡아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냈다. 갈릴리는 헤롯의 통치 관할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헤롯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되돌려 보냈다(눅 23:7).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에게 선동받은 무리를 두려워하여(막 15:9-막 15:11) 사형을 언도한 다음에 유월절 전례대로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거반 조롱이 섞인 제안을 하였으나 허사였다(마 17:1). 그는 손을 씻음으로 이 사건 전체에 대해 자신의 책임이 면제됨을 나타내고자 하였다(마 27:24). "빌라도가 ... 예수는 ...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니라"(막 15:15).|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리하고 자기 아내로부터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말라"(마 27:19)는 경고를 받은 집정소는 오늘날의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근처의 안토니아 타워의 일부였던 것으로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었다. 빌라도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보여주었던 곳과 비슷한 아치 가운데 하나가 시온(Zion)의 돔 교회 아래서 발견되었다. 집정소의 뜰 안에서 병사들이 막 15:16-20에 기록한 바와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는 짓거리를 행하였다.|빌라도의 말로에 대해서는 로마에서 재판을 받고 투옥되었으며, 갈리굴라에게 처형당하지 않기 위해 자살했거나 네로에게 참수 당했을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루센(Lucerne) 호수 위의 필라투스(Pilatus)산과 연관이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그의 머리가 이 산에 매장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클라우디아 프로쿨라("문에서 따르는 자")라는 이름을 지닌 그의 아내는 예수님의 추종자가 되었다고 하여 그리스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추앙받았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ISBE).
핌프레미
pivmprhmi
부어 오르다 become swolle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핌프레미(Homer 이래)는 기본 어근 프라(%715)에서 유래했으며,||(a) '열로 태우다' burn with fever, 타듯이 열이 있는 것을 나타낸다.||(b) '부풀게 하다', 수동태로 '부풀다, 부어오르다'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서 민 5:21, 27에서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핌프레미는 신약성경에서 행 28:6에 한번 나온다: "그가 붓든지 혹 갑자기 엎드러져 죽을 줄로 저희가 기다렸더니 오래 기다려도 그에게 아무 이상이 없음을 보고 돌려 생각하여 말하되 신이라 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서판
pinakivdion
서판 writing-table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피나키디온(Hippocr., Aristot)은 피낙스($4094: 널판, 접시)의 지소사이며,||(a) '작은 평판(平板)' small tablet.|(b) 특히 '서판' writing-table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피나키디온은 신약성경에서 눅 1:63에 한번 나온다: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소반
pivnax
(큰) 접시, 쟁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피낙스(Homer 이래)는 피노스(%634: 소나무 a pine)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반적으로 하며, 본래의 의미는 '소나무 널판' a pine-board(Buttmann, Ausf. Spr.)이며,||(a) '널판' a board, '평판(平板)' a tablet.|(b) '(큰) 접시' dish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피낙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눅 11:39에서 '큰 접시나 쟁반'을 의미한다.|(b) 마 14:8; 마 14:11(병행구, 막 6:25; 막 6:28)에서도 '큰 쟁반'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마시다
pivnw
마시다 drin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노(Homer 이래로)는 '마시다'를 의미한다.|마시는 것은 목마름을 충족시켜주며 원기를 회복시켜준다. 보통 사람들은 마시는 것을 즐거운 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그것이 나쁠 수도 있다.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욕망을 억제할 줄 알아야 한다. 먹고 마시는 일에 대한 욕망에 자기를 맡겨버린 사람은 아마도 당나귀나 그 비슷한 짐승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육체적인 갈증을 충족시켜주거나 혹은 육체적인 만족을 얻는 수단으로서 마시는 일을 즐겼던 것만은 아니다. 그외에 마시는 것은 신비종교에서, 그것도 특히 제의적 식사에 있어서 특수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참조: TDNT Ⅵ 137f.). 마시는 것, 특히 무엇보다도 물을 마시는 것은 참된, 초자연적 힘과 생명을 주는 지식을 제공한다고 생각되었다(Eth. Enoch. 22:9; Od. Sol 6:18). 그들은 모두 주 안에서 서로를 알아보며, 영원한 불멸의 물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Corp. Herm. 1, 29). 그리고 그들은 불멸의 물을 마시고 살았다. 카이 도이에 소이 호 오시리스 토 프쉬크론 휘도르(그리고 오시리스가 그대에게 시원한 물을 주시기를)는 죽은 사람의 비문에 자주 기록된 하던 기원문이다(참조: E.Rohde, Psyche).(참조: R.Bultmann, The Gospel of John).||#2. 70인역본의 용법||피노는 70인역본에서 약 27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샤탸(마시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구약 세계에서는 물의 부족 현상이 자주 발생했기 때문에, 문자적인 의미에서 목마름(출 17:1)과 마시는 일(왕상 17:3이하)은 특별한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b) 비유적인 의미에서 마시는 것은 사람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은총과 심판의 방식을 의미한다. 그 음료가 하나님의 진노의 잔에 담기느냐(참조: 렘 25:15이하; 사 51:17; 시 60:3; 시 75:8) 혹은 자비로운 은총의 잔에 담기느냐(시 116:13; 참조: 또 사 55:1)에 따라, 그것은 멸망에 인도하기도 하고 구원에 인도하기도 한다.|이와 같은 '마신다'는 개념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① 하나님의 심판의 잔을 마시는 것, 여기서 마시는 것은 심판을 받는 사람들이 잘못된 행위들로 인하여 그들 자신에게 심판을 초래한다는 것을 나타낸다.|②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지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낸다.||(c) 유대교에서 피노는 생명을 약속해 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잠 9:5). 랍비들은 물을 마시는 것을 알레고리화하여 성령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율법을 연구하는 것을 가리킨다.||#3. 신약성경의 용법||피노는 신약성경에서 74회 나타난다.||(a) 세상의 종속에 대한 표현으로서 먹고 마시는 것. 굶주림과 갈증을 푸는 먹고 마시는 것은 인간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그것은 역시 죄가 될 수도 있다. 홍수 이전 사람들과 소돔의 사람들과 같이 먹고 마시는 것에 만족하는 자들은 생의 참된 의미와 토대를 계시하는 종말의 표적을 보지 못한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마 24:38; 병행구 눅 17:27; 눅 17:28; 참조: 눅 14:18-눅 14:20; 눅 16:19-눅 16:31).|먹고 마시는 것은 이 세대의 대부분의 인간이 추구하는 목표이며(마 6:32이하, 병행구 눅 12:30이하) 걱정의 대상이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마 6:31; 병행구 눅 12:29). 먹고 마시는 것을 통해 안전과 만족이 추구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마 6:25). 죽음의 접근은 이러한 태도를 확증해 줄 뿐이다: "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뇨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전 15:32). 이원론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이러한 태도를 갖게 한다. 이러한 태도는 이교의 기본적인 표현이다(고전 10:7). 그러나 이것은 또한 신자들에 대한 유혹이기도 하다(마 24:49). 갈증을 풀어 주는 것과 술취함간의 경계선은 공동체 식사에 의해서만 분명하게 구분된다(고전 11:21).||(b) 말씀과 관련된 자유의 표현으로서 예수님과 제자들의 먹고 마시는 것. 예수님과의 제자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먹고 마심으로써 세상의 종속으로부터 해방과 그것에 대한 거짓 항의들로부터 해방을 보여준다. 세례(침례) 요한은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다(마 11:18, 병행구, 눅 7:34). 바울은 잠시동안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하였다(행 9:9). 그러나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은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다(마 11:19; 눅 5:33). 왜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가져온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금식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으며, 하나님의 자녀들은 만물의 자유로운 주인들이기 때문이다(참조: 마 2:28; 고전 3:21ff.; 딤전 4:4; 딛 1:15).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면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더 하실 것이다(마 6:31이하).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고전 10:31이하). 기독교인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먹고 마실 완전한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고전 9:4), 그는 자기 이웃의 사정을 고려해야 한다(롬 14:21). 따라서 믿음이 강한 자들은 믿음이 연약한 형제들을 범죄케 할 경우(롬 14:21)에, 특히 이교의 헌주가 문제될 때(고전 10:21-고전 10:22)는 먹고 마시는 것을 금해야 한다.||(c) 구원사적 의미에서 예수님과 먹고 마시는 것.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과 먹고 마시는 것은 구원사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먹고 마시는 즐거운 교제는 구원 시대의 도래에 대한 표적이다(병행구, 마 11:19; 눅 7:34; 막 2:16; 참조: 막 2:18). 예수님과 식탁 교제는 그의 안에서 현재 나타난 하나님 나라에의 참여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에서 잔치의 한 자리를 보증한다(막 14:25; 병행구, 눅 22:29이하; 참조: 마 8:11이하). 한편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잔을 건네준다. 이 잔을 마시는 것은 그들을 위한 예수님의 대속적인 죽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이 마심은 구속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승화된다. 이 마심은 이 제도에 대한 기사가 묘사하는 것과 같이 성례전적인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떡과 포도주를 나눠줌으로써 그의 구원 사역에 근거하여 지상 사역의 식탁 교제가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베풀어질 때가지 계속될 것임을 약속한다.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먹고 마시는 것은 모세 시대의 만나와 물(고전 10:3-고전 10:4), 또는 제의에서의 제물(고전 10:18-고전 10:22)에 비유될 수 있다. 하지만 성례전이 자동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는 사상은 없다(고전 10:4-고전 10:5이하). 성례전은 우리를 위해 그 자신을 주신 주님과의 만남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참여하기만 한다면 성례전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의미를 갖는다(고전 11:27이하). 요 6:51-요 5:56에서 먹고 마시는 것는 성체에 참여함을 통해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먹고 마시는 것이 믿음 안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 사역에 대한 완전한 개방을 표현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구원을 가져다 준다(참조: L.Goppelt).||(d) 생명수를 마시는 것. 요 4:10이하는 생명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보통의 물은 일시적으로만 목마름을 풀어줄 뿐이다(요 4:13). 그러나 예수님께서 주는 물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해준다(요 4:14). 그러므로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야 한다(요 7:37; 참조: 사 55:1). 즉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이 주는 물을 마신다는 것은 믿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선물은 예수님 자신을 가르치며(요 6:51이하), 요 7:37-요 7:39에서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으로 언급되고 있다.||(e) 고난의 잔을 마시는 것. 내세에 예수님의 곁에 앉게 해 달라는 세베대의 아들들의 요청은 묵시적 - 종말론적 성격을 띠고 있다(마 20:20; 막 10:35-막 10:37; 눅 22:24이하).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이 전혀 묵시적이거나 종말론적이 아니라는 사실은 놀랍다. 오히려 그 대답은 자신의 죽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 병행구, 마 20;22). 여기에서 잔은 고난의 잔으로, 세례는 죽음의 세례로 이해되고 있다. 고난의 "잔"은 마 26:39; 막 14:36; 눅 22:42; 요 18:11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의 잔이 자기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아버지께 요구하셨다. 구약성경에서 잔은 심판과 응보의 상징이다(참조: 시 75:9; 사 51:17이하; 렘 25:15이하).||(f)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사람들은 진노의 잔이나 포도주를 마신다. 이것은 세상의 세력에 의해 길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계 18:3)이나 영원한 고통을 겪는 것(계 14:10)을 의미할 수 있다.|(g) 죄인들이 피를 마시는 것. 계 16:6에서 피노는 '그 죄악에 합당한 처벌'에 대해 사용되었다: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그들이 피흘렸기에 그들이 지금 피를 마시게 되는 것이 지극히 합당한 일이다. 이 의미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이 지금 또 다른 싸움에 잡혀있는 바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의 피를 부르게 된 것이다. 본 장 후반부와 계 17:16에서 보면 악의 세력도 그들 사이에 연합만 있는 것이 아니고, 증오와 분열과 투쟁이 존재한다. 우리는 공동체들은 악한 원인으로 인해 그 악한 영향 속으로 몰입되는 냉혹하고 명백한 경향은 실례를 목격한다.|(참조: Leon morris; Revelation; G. Braumann).
진액
piovth"
살찜, 기름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피오테스(Hippocr.)는 피온(%635: 살찐)에서 유래했으며, '살찜, 기름짐' fatness(Aristot., Theophr.)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피오테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미쉬만(494a: 살찜, 기름짐; 창 27:29, 39), 데쉔(1880: 살찜, 비옥, 풍부; 삿 9:9; 욥 36:16; 시 63:6)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기름짐'이나 '살찜'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피오테스는 신약성경에서 롬 11:17에 한번 나온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피프라스코
pipravskw
팔다 sel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프라스코(Aeschyl., Hdt. 이래)는 `팔다, 뇌물을 위해 팔다, 임대하다'를 의미하며, 비유적으로 `배반하다, 팔다, 길을 잃게 했다, 파멸시켰다'를 의미한다. 피프라스코는 보통 포로들이나 노예들을 파는 것을 나타내는데 사용하고 있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피프라스코는 70인역본에서 30회 이상 나오며, 히브리어 마칼의 역어로 사용되어, `팔다'를 의미하며 죄의 결과를 표현하기 위해(사 48:10; 사 50;1), 그리고 개인이 악한 짓을 하기 위해 `자신을 파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왕상 20:20; 왕하 17:17)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피프라스코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피프라스코는 문자적으로 `팔다'를 의미한다. 사물에 대해(마 13:46; 행 2:45; 행 4:34; 행 5:4), 사람에 대해(마 18:25), 값의 속격과 함께(마 26:9; 막 14:5; 요 12:5).||(b) 피프라스코는 비유적으로 인간을 `판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롬 7:14에서 자기의 여주인으로 죄아래 팔린 사람을 묘사한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사르크스로서 인간은 그의 독립성을 잃는다. 그는 노예와 같이 죄에 복종하게 되며 이제 단순한 물건이다. 그는 그 값이 사망인 가장 무서운 주인에게 넘겨진다. 따라서 죄아래 팔린 자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그를 구해낼 수 있는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다.|(참조: J. H. Thayer; D. H. Field; H. Preisker).
넘어지다
pivptw
떨어지다, 넘어지다, 잃다, 멸망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핍토(Homer 이래)는 페트(%814: 떨어지다, 날아가다)의 중복형에서 유래했으며,||(a) '떨어지다, 높은 곳 또는 수직의 위치에서 떨어지다, 떨어져 내리다',|(b) '삶 속으로 들어가다'(즉 태어나다),|(c) '스스로 떨어지다, 자신을 내던지다, 넘어지다',|(d) '쓰러지다(전쟁에서), 멸망하다, 상실하다, 붕괴하다, 사라져 버리다',|(e) 비유적 의미로 '격노하다, 불행이나 치욕 등에 빠지다',|(f) 파피루스에서 '~에 해당하다, ~에 적용하다'라는 법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핍토는 70인역본에서 약 400회 이상 나오며, 법률적 의미를 제외하고는 일반 헬라어의 용법과 같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핍토는 신약성경에서 10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핍토는 문자적인 의미로 가장 자주 발견된다. 즉 건물의 붕괴(히 11:30=수 6:5; 수 6:20; 눅 13:4; 참조: 사 30:25); 실패로 끝나거나 무너져내린 것(마 15:27; 마 13:4-8 병행구 요 12:24); 동물의 죽음(마 10:29; 참조: 암 3:5; 마 12:11; 참조: 출 21:33), 사람들의 무의도적인 빠짐(마 15:14; 참조: 사 24:18; 렘 48:44; 행 20:9; 막 9:20)을 나타낸다.||(b) 핍토는 계 11:11에서 큰 두려움이 '임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c) 핍토는 행 27:34에서 '잃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머리터럭 하나라도 잃을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은 '어떤 불행도 네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를 의미한다(참조: 삼상 14:45; 삼하 14:11).||(d) 눅 16:17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타당성과 효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쉬우리라".||(e) '어떤 사람 앞에(보통 의식적으로) 자기 얼굴을 엎드리다'(구약성경에서 예를 들면 창 17:3; 창 17:17; 창 44:14; 룻 2:10; 삼하 1:2; 시 95:6; 겔 11:13)는 경의를 표하는 인사의 한 표현이다. 따라서 노예들은 이런 식으로 그들의 주인에게 종속됨을 나타낸다(마 18:26). 이는 요청(마 18:29; 막 5:22; 눅 5:12)이나 감사(눅 17:16)를 강조한다. 이는 기도를 하는데 있어서 가장 겸손한 자세이며(마 26:39), 자기를 낮추어 존경을 표하는 태도이다(왕 앞에서, 마 2:11; 초자연적 존재 앞에서 행 10:25; 계 ;19:10; 계 22:8; 하나님과 그리스도 앞에서, 고전 14:25; 계 4:10). 이는 하나님의 계시의 영향이라 할 수도 있다(마 17:6; 행 9:4; 요 18:6; 계 1:17; 참조: 왕상 18:39; 겔 1:28; 단 8:17; 단 10:9).||(f) 핍토는 역시 '죽다, 죽임을 당하다'를 의미한다(눅 21:24; 행 5:5; 행 5:10; 고전 10:8; 히 3:17; 계 17:10).||(g) 핍토는 마지막 때의 묵시적 공포를 묘사하는데 여러가지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임시 변통적인 모든 것은 홍수와 같은 대격변으로 붕괴될 것이다(마 7:25; 마 7:27). 대부분의 도시들은(계 11:13), 실로 모든 도시들(계 16:19)은 폐허 더미가 될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큰 세상 권세는 무너질 것이다(계 14:8; 계 18:2; 참조: 사 21:9; 렘 51:8). 마지막 날의 폐허 가운데에서 겁에 질린 사람들은 바위 산들로 그들을 덮게 만들 대지진으로 인해 죽기를 갈망하면서 울부짖을 것이다(눅 23:30; 계 6:16; 참조: 호 10:8; 겔 38:20). 우주의 격변 속에서 별들이 별똥처럼 하늘에서 떨어질 것이다(마 24:29; 막 13:23; 계 6:13; 참조: 사 34:4). 이 별들은 정치 권력을 나타내기도 한다. 사 14:12에서 이 표현은 권세있는 통치자의 몰락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하늘로부터 큰 별들이 떨어짐으로서, 생명이 의존하는 물이 이상해지고 흑암의 세력들이 풀린다(계 8:10; 계 9:1). 눅 10:18이 사탄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묘사한 것은 마귀의 지배의 종말이 도래했음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지금까지 세상을 탄압해온 강한 통치자는 번개빛처럼 빨리 땅에 떨어짐으로서, 하나님 앞에서의 참소자로서의 권력과 지위를 상실해 버렸다.||(h) 핍토는 특유한 비유적 용법으로 '구원을 잃다, 그래서 영벌에 이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① 마 7:25; 마 7:27에서 전 인간의 멸망, 마 15:14; 눅 6:39에서 눈먼 자와 눈먼 인도자들 그리스도를 돌로 묘사하는 상징적 표현의 배경에 비유적 의미가 있다.|눅 20:18은 예수님의 주장과 인격을 거부하는 모든이에게 미치는 이 돌의 전멸적 효과를 기술하고 있다. 그들은 그 돌 위에 떨어지든지(즉 그 돌이 부딪히는 것은 결국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눅 20:18; 참조: 사 8:15) 또는 그 돌이 그들 위에 떨어질 것이다(즉, 그리스도가 그의 적들을 으깨어 산산조각을 낼 것이다. 눅 20:18; 참조: 단 2:34; 단 2:44).|② 롬 14:4에서 바울은 섬과 넘어짐의 은유를 사용한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참조: 잠 24;16; 렘 8:4; 암 5:2; 암 8:14). 바울은 고대 법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법에 따라 종은 행한 일의 성과가 주인에게 만족스러운지 일을 잘못하여 비난받아야 하는지를 유일하게 결정짓는 주인의 재판권에 종속된다.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도 그가 잘했는지 못했는지를 유일하게 판단하시는 그의 주님 외에는 아무에게도 책임이 없다. 이와 같은 실상은 거짓된 안전에 대해 경계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고전 10:12에도 나타나 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마귀의 권세를 지닌 종말론적 시련이 완전히 다 끝나지 않은 한, 넘어질 가능성을 잊어서는 안된다(핍토는 여기서 고전 10:8을 반영하고 있다).|③ 롬 11:11; 롬 11:22에서 핍토는 파멸에 빠지는 것에 대해 사용되고 있다: "1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이스라엘의 멸망-자기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바람에도 불구하고-은 하나님의 심판의 준엄하심을 나타낸다.|히 4:11에서 쓰러짐은 불순종의 결과이며 배교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히 3:17에서 핍토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죽어가는'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참조: W. Bauder; W. Michaelis).
비시디아
Pisidiva
비시디아 Pisidia(지)||비시디아는 밤빌리아 평원의 북쪽 소아시아(오늘날의 아나톨리아 터키) 남쪽의 산간 지역. 여기서 타우루스 산맥으로 내리닫는 비시디아의 거친 능선 지대에는 혈기 왕성하고 난폭한 사람들이 살았다.|바울 시대에 비시디아는 로마의 갈라디아 속주에 속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제 1차 전도여행 시에 2회에 걸쳐 비시디아를 통과했다(행 13:14-51; 행 14:24). 안디옥에서 한 바울의 설교(행 13:15-42)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성공적인 전도는 역사가 지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 할만하다.|시기하는 유대인 반대자들에 의해 안디옥에서 쫓겨난 바울과 바나바는 이고니온으로 떠났다. 그들은 버가를 경유하여 비시디아 지역을 통과했는데, 이 여행에 대해 간략히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콘스탄틴 시대에 비시디아에서 큰 진전을 이루었다(주후 323-37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믿게 하다
pisteuvw
믿다 belie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피스튜오(Aeschyl., Soph.,이래)는 피스토스($4103)에서 유래했으며, '신뢰하다, 의지하다, 순종하다, 믿다, 위탁하다, 신임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피스튜오는 70인역본에서 약 90회 나오며, 주로 아만(진실하다, 의지할만하다, 신실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피스튜오는 신약성경에서 약 250회 나오며, 신약성경에서 피스튜오는 일반 헬라어 용법에서와 거의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a) 피스튜오는 '의지하다, 신뢰하다'를 의미한다. 말씀(요 4:50), 하나님(행 27:25)에 대해 사용되었다.||(b) 피스튜오는 '믿다'를 의미한다. 말이나 말하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막 13:21; 요 4:21).||(c) 피스튜오는 인격이나 사물의 여격(요 4:21; 행 27:25; 계 4:17), 사물의 여격(요 4:50; 행 24:14), 사물의 대격(요 11:26; 고전 13:7)으로 구성되어 있다.||(d) 피스튜오는 수동태로(믿게되다) 나타난다(살후 1:10; 딤전 3:16).||(e) 피스튜오는 대격이나 여격과 더불어 에피($1909)와 함께(롬 4:5; 롬 4:24; 마 27:42; 행 9:42; 행 11:17; 행 16:31; 행 22:19), 엔($1722)과 함께(막 1:15) 사용되었으며, '~을 믿다'를 의미한다.||(f) 피스튜오 에이스는 '~을 믿다' believe in는 의미로서(예: 갈 2:16; 요 1:12; 요 3:18)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에서는 없는 독특한 것이며, 교회 선교의 문맥에 나타난다.||(g) 예수님의 역사에 있어서 특별한 사건들(살전 4:14; 롬 10:9), 기독론적인 문장(요 20:31)과 믿음을 연관시키는 호티 문장들(피스튜오 호티: …을 믿다 believe that…)은 헬라 교회의 언어 용법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이 문장들은 특별한 역사적 내용을 기독론적 고백에 결합시킨다.||(h) 피스튜오는 '자신을 위탁하다'를 의미하며(눅 16:11; 요 2:24), 수동태도 이와 같이 사용되었다(롬 3:2; 고전 9:17; 갈 2:7; 살전 2:4; 딤전 1:11; 딛 1:3).|(참조: J.H.Thayer; R.Bultmann; O.Michel).
피스티코스
pistikov"
순수한 genuin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피스티코스(Pla. 이래)는 피스티스($4012: 믿음, 신실성)에서 유래했으며, '믿음의'라는 의미에서||(a) '신실한, 믿을만한'(Artem.), '순수한, 진짜의, 섞인 것이 없는'(Euseb., Dem.),|(b) '마실 수 있는, 액체로 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피스티코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a) 막 14:3에서 '순수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b) 요 12:3에서도 '순수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