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하게 하려하다
plhrovw
채우다, 충만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플레로오(Aeschyl, Hdt. 이래)는 플레레스($4134: 충분한)에서 유래했으며,||(a)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사람을 태우다(배에), 넘치게 하다, 충만한다',|(b) 비유적 의미로, '채우다'(감정, 지식), '충족시키다, 진정시키다'(욕구 등),|(c) 비유적 의미로 '완성하다, 완전하게 하다, 이행하다(지시, 약속), 성취하다'(수동태, 예언 등),|(d) 비유적 의미로 '완전히 지불하다, 그 길을 달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플레로오는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말레(채우다, 충만하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왕하 4:4)과 땅을 채우는 것(창1:28; 창 9:1),||(b) 기간이나 때가 차거나 만기가 되는 것(창 25:24, 자연; 민 6:5, 서원; 레 8:33, 율법; 대하 36:21의 70년, 하나님의 말씀), 나라의 통치가 끝나는 것(단 8:23).||(c)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것(왕상 2:27; 대하 36:21 이하),||(d) 여호와의 영이 세상을 채우는 것(지혜서 1:7), 천지에 충만한 것(렘 23:24) 등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플레로오는 신약성경에서 9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구약성경의 성취.|이 성취는 종종 접속사, 호포스와 히나(~하여, ~하여서, ~하므로, ~이기만 하면)로 도입된다(특히 마태와 요한에서). 이것은 특별히 교회가 자신의 기원을 믿음에 대한 이해에 두고 있는 성취-인용문들(예를 들어 약 2:23)과 또는 구약성경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성취로 나타나는 예수님의 생애에서의 대화 장면에 적용된다. 이런 의미로 기자들은 성경들(막 14:49)의 성취와 기록된 모든 것들의 성취(눅 21:22)에 대해 말한다. 이 사상은 아마도 구약 전체의 사상일 것이지만(눅 24:44; 모세, 예언자, 시편들), 그러나 특히 예언서들의 사상이다(마 26:56). 가장 자주 나오는 특별한 구절들 즉 "일렀으되"(마태복음에 10회, 예를 들어 마 4:14), "말씀"(요 12:38; 요 15:25), "성경"(막 15:28; 요 13:18; 요 17:12; 요 19:24; 요 19:28; 요 19:36; 행 1:16; 약 2:23)과 같은 표현들에 의해서 도입되는 구절들을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이 인용문의 출처는 종종 예언서들이다. 따라서 성경 기자들은 예언자의 말씀들의(행 13:27) 성취를 말한다.|때때로 예언자들의 말이 성경에 인용되어 그들의 이름이(이사야, 마 3:3; 마 4:14; 마 8:17; 마 12:17; 마 13:14; 마 13:35; 요 12:38 이하; 예레미야, 마 2:17; 마 16:14; 마 27:9; 대하 36:21) 언급된다.||(b) 때(Time)가 참.|① 일반적 의미에서 플레로오는 '때가 찼다'는 것, 곧 '끝나다, 만기가 되다'를 의미한다(행 7:23; 행 7:30; 행 9:23; 행 24:27; 참조: 행 19:21).|② 눅 21:24에 나오는 참(fulfilment)에 대한 개념은 더욱 중요하다.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의 집행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께서 시기를 결정하신다는 사상이 위의 (a)보다 더 크게 강조된다. 이러한 수동태 구문들에서 하나님이 주어로 내포되어 있다. 시간은 구원의 계획에서 하나의 역할을 담당한다.|③ 막 1:15에 의하면 예수님의 첫번째 공적 전도는 "때가 찼고"라는 말씀으로 시작되었다. 곧 하나님에 의해 정해지고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사 61:1 이하를 읽으신 후에(참조: 눅 4:18 이하) 선포하신 말씀과 비교될 수 있다: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눅 4:21).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요 7:8에서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라고 선언하신다. 예수님의 지상 생활의 사건들은 아직도 완전히 하나님의 손 안에 있었던 것이다. 어떠한 사람도, 그리고 예수님 자신일찌라도 그 사건들을 좌우할 수 없는 것이다(참조: 요 2:4; 요 7:30; 요 8:20).||(c) 하나님의 뜻의 성취.|① 롬 13:8에서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고 한다. 갈 5:14에서 바울은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라고 말한다(레 19:18의 인용; 참조: 마 22:39; 요 13:34).|② 마 5:17에서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기본적인 동기는 역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모든 의"(마 3:15)를 이룸으로 이 사랑을 나타내셨다.||(d) 성령의 충만.|① 행 13:52에서 성령의 '충만'을 언급한다: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베드로는 행 5:3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사탄에 대해 말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② 빌 1:11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짐으로 신령하여지기를 빌립보인들에게 권면한다.||(e) 그리스도의 충만.|골 2:10에서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충만을 소유한다: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신다"(골 2:9). 그러나 구원이라는 사실은 이 충만에 대한 신자들 자신의 노력을 배제하지 않는다. 엡 3:19에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시기를 구하노라"(RSV) 하는 기원이 나온다. 이 지식은 자동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지식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것에 달려 있다. 기독인의 봉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데 기여하며 이리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데까지" 이르게 한다(참조: 엡 4:13). 이제 신자들은 더 이상 모든 교훈의 풍조에 요동치 않게 된다(엡 4:14). 이 믿음과 지식은 그리스도에 의해 보장되며 교회에 주어지는데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하시는 자의 충만"이다(엡 1:23).||(f) 죄의 관영.|마 23:32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의 지도자들에게 명백하게 말씀하신다: "너희 조상들의 양을 채우라". 이 말씀은 그들이 조상들과 똑같이 많은 죄를 짓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거나 또는 그들이 죄에 있어서 아직 부족한 바를 채운다는 것을 암시한다.||(g) 기쁨의 충만.|요한복음과 요한 서신들에는 주어로서의 기쁨과 동사 플레로오의 수동태(채워지다, 충만되다)의 연결이 자주 나온다. 이 기쁨은 예수님의 기쁨인데(요 15:11; 요 17:13), 자신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 기쁨을 전하신다. 그리스도의 기쁨은 그들의 기쁨이 된다(요 15:11; 요 16:24; 요일 1:4). 이 기쁨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제자들의 생활을 특징짓는 것이니 이것은 충만된 기쁨이다(요 3:29; 요 15:11; 요 16:24; 요 17:13; 요일 1:4; 요이 1:12). 이 동사의 수동태는 이 기쁨을 충만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참조: R. Schippers;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