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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행하는 일
poihsi"
행함 doing, 만듦 making.||#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이에시스(Hdt. 이래)는 포이에오($4160: 만들다, 하다,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행함, 실행, 수행' a doing, performing,|(b) '만듦, 만들기, 제조' making(Hdt., Thuc.)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포이에시스는 신약성경에서 약 1:25에 한번 나온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여기서 포이에시스는 '행함, 수행'을 의미한다. 그가 율법에 바치는 순종을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시인
poihthv"
행하는 자 doer, 시인 poe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이에테스(Aristoph., Pla.)는 포이에오($4160: 만들다, 하다,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행하는 자, 수행자, 실행자' a doer, performer.|(b) '만드는 자, 제조자' a maker, '생산자' producer, '창시자, 장본인' author(Xen., Plat.),|(c) '시인' a poet(Hdt.)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포이에테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사도행전, 로마서, 야고보서에만 사용되었다.||(a) 포이에테스는 '행하는 자, 수행자'를 뜻하며, 이 경우 율법에 순종하는 또는 율법을 행하는 자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② 약 4:11,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③ 약 1:25,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④ 약 1:22; 약 1:23, "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말라 23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b) 행 17:28에서 '시인'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포이킬로스
poikivlo"
여러가지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포이킬로스(Homer 이래)는 '여러가지의, 다양한'을 의미하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여러가지 색깔의, 잡색의, 다채로운'(70인역본),|(b) '여러가지 종류의'.||#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포이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10회 나오며,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질병에 대하여, 마 4:24; 막 1:34; 눅 4:40.|(b) 욕심과 정욕에 대하여, 딤후 3:6; 딛 3:3.|(c) 시험에 대하여, 약 1:2; 벧전 1:6.|(d) 은혜에 대하여, 벧전 4:10.|(e) 능력에 대하여, 히 2:4.|(f) 다른 교훈에 대하여, 히 13: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기르는 목자이다
poimaivnw
양을 치다, 돌보다, 지키다 to herd, te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포이마이노(Homer. 이래)는 포이멘($4166: 목자)에서 유래했으며,||(a) '목자가 되다, 가축을 지키다(돌보다), 가축을 먹이다',|(b) 비유적으로 '돌보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이마이노는 70인역본에서 약 55회 나오며, 거의 모두 히브리어 라아(떼, 양떼)의 역어로, 1회 시 48:14에서만 나학(인도하다, 몰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실제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이마이노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포이마이노는 본래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눅 17:7; 고전 9:7.||(b) 포이마이노는 비유적 의미로|① '다스리다, 통치하다'를 의미한다. 통치자들에 대하여, 마 2:6; 계 2:27; 계 12:5; 계 19:15; 교회의 감독자들(목회자들)에 대해, 요 21:16; 행20:28; 벧전 5:2.|② '목초 또는 음식을 제공하다, 기르다'를 의미한다. 유 1:12에서 자기 몸을 기르는 것, 계 7:17에서 영혼의 필요를 공급하거나 먹이시는 것을 나타낸다.|(참조: J.H.Thayer; E.Beyreuther).
목사
poimhvn
목자 shepher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a) 명사 포이멘은 인도- 유럽어(참조, 리투아니아어, 피에무오[piemuo])로, '목자'를 의미하며, '통치자, 지휘자' 등 비유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된 것이다(Homer, Plato). 이 단어는 또한 '율법 수여자'란 뜻의 노메우스(nomeus) 대신 쓰이기도 한다(E. Beyreuther).|또한 신들도 목자로 볼 수 있으며 따라서 아문(Amun)은 그의 가축을 보호하는 강력한 몰이자이다.||(b) 플라톤(Plato)이 도시국가의 통치자를 양떼를 돌보는 목자에 비유한 것은 이 단어의 종교적인 용법을 상기시킨다. 왜냐하면 인간인 목자는 신(神)인 목자와 율법수여자의 부본(copy)이기 때문이다.||(c) 고대 동방에서 초기의 목자들은 신들이나 통치자에게 적용한 영예의 호칭이 되었다. 이러한 관용법은 수마리아 왕의 명부와 바벨론 궁정 칭호, 그리고 피라밋 원문들(죽은 자에 대한 책들)에서 상투적인 문구로 발견된다. 이 관습은 고대를 통해 계속 지켜졌다. 그것에 대등한 특성은 이방의 가나안에는 나타나있지 않다. 목자상에 대한 용례의 일면은 테오크리투스(Theocritus)의 이딜스(Idylls : B. C. 3세기)에서 전형적인 예를 보였듯이 시(詩)에 나타난다. 목가적인 용어들은 헬레니즘 세계에서 매우 유행하고 있었다(E.Beyreuther).||#2. 70인역본의 용법||포이멘은 70인역본에서 약 75회 나오며, 라아(풀을 뜯기다, 돌보다, 지키다)의 역어로 사용되어, 주로 '목자'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실제적인 목자, 그리고 비유적으로 하나님, 다스리는 자들, 메시야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이멘은 신약성경에서 18회, 공관복음에 9회, 요한복음에 6회, 히브리서와 베드로전서, 에베소서에 각각 1회 나타난다.||(a) 실제적인 목자에 대한 언급은 눅 2:8-20에 있는 탄생기사에만 나타난다.||(b) 공관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구약성경의 약속된 구세주 목자이시며, 이를 세가지 방법으로 주장한다.|① 예수님은 목자없는 무리를 돌아보심으로 그의 사명을 시작하신다(마 9:36; 막 6:34; 참조: 겔 34:5).|② 예수님은 그의 양떼를 위해 먼저 죽어야 하고(마 26:31; 병행구, 막 14:27), 다시 살아나야 한다(참조: 마 26:32; 막 14:28). 여기서 예수님은 슥 13:7에 나오는 말들을 인용하여, 자신이 구약에서 고대하던 약속된 목자, 즉 그의 대신 죽음으로 인해 구원의 시대가 열리게 되는 목자라고 주장한다(참조: 사 53장).|③ 하나님의 백성인 양떼가 선한 목자 아래 모이는 구원의 시대는 심판의 날에 그 절정에 이른다. 모든 민족이 그의 영광의 보좌 주위에 모여들 때 예수님은 양과 염소를 분별하실 것이다. 그는 심판의 자리에 앉으실 것이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의 선교 사명의 시대에 종말을 가져올 것이며,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래 그의 양떼들이 열방으로부터 불러모아질 것이다(마 25:32).||(c) 요 10:1-요 10:30(요 10:2; 요 10:11; 요 10:12; 요 10:14; 요 10:16)에서 선한 목자는 한편으로는 도둑과 비교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타인과 비교된다. 목자는 문으로 들어가며, 그의 양은 그의 음성을 알고 기꺼이 그를 따른다. 전형적인 요한의 방식대로 이 목자와 그의 양떼 사이의 독특한 관계가 설명되고 있다. 이 독특한 관계는 목자가 스스로 그의 목숨을 버림으로써 이루어질 수 있다. 삯군은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삯군은 위험한 때에는 달아난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요 10:11-요 10:12).|목자가 그들의 주님(퀴리오스)을 나타내듯이 가축떼(포임네, 요 10:16) 또는 그의 모든 양떼(프로바타)는 그의 백성을 나타낸다.||(d) ① 벧전 2:25에서 예수님은 목자, 영혼의 감독자이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은 다시 목자와 그의 양떼의 이미지를 돌아보고 있다: 예수님은 목자시며, 영혼의 감독이시다.|② 히 13:30에서 그리스도는 그 편지의 주제에 따라 모세를 포함한 모든 원형을 능가한 단 한분의 큰 목자(포이멘 메가스)이시다.|③ 엡 4:11에 나오는 직책의 목록에서 포이멘은 '목회자'를 나타내는 듯 하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여기에 포이메네스 카이 디다스콜로이, 즉 "목사와 교사"는 문법상 두가지 직책이 아니라 한 직책이다. 목회자인 교사, 그러면 '목사'라는 번역도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칭호는 당시에 공식 칭호가 아니다. 왜냐하면 벧전 5:1과 행 20:17에서 지방의 기독교 단체의 지도자들은 프레스뷔테로이(장로)라고 불리웠으며, 행 20:28에서는 에피스코포이(감독)라고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역할은 벧전 5:2-벧전 5:4과 행 20:28; 요 21:17(양떼들의 영적 행복에 대한 관심) 등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마 18:12-14과 마 12:30(눅 11:23; 길잃은 양을 찾아다님) 역시 관계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지도자들은 그들 자신이 그들의 양떼에게 값진 모범이 됨을 보여야 한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E.Beyreuther; J.Jeremias ).
양떼
poivmnh
떼, 양떼 flo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임네(Homer. 이래)는 포이메네(%27)의 축약형이며, '떼', 특히 '양떼'를 뜻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임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창 32:17에서 히브리어 에델(떼, 양떼)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슥 13:7에서도 '양떼'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임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포임네는 눅 2:8에서 실제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고전 9:7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b) 포임네는 요 10:16에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여기에서 포임네는 그리스도의 양떼, 즉 예수님을 자신들의 인도자요 지키는 자로 삼고 따르는 자들의 집단을 가리킨다.||(c) 마 26:31에서 '양떼'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는 여호와께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시련을 면할 수 없었다. 우리는 지금 함정에 빠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본다. 즉 제자들이 심히 낭패 당한 나머지 그들이 예수님을 버릴 것이며, 목자없는 양떼처럼 사방으로 도망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슬프고 무서운 일이 지금 일어나려고 하긴 해도 예수님 자신이 이 일을 제자들에게 미리 사전에 알려주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함축한다. 이 사건 경고는 이 흩어진 양떼를 다시 모을 것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R.C.H.Lenski).|(참조: J.H.Thayer; E.Beyreuther).
양 무리
poivmnion
떼, 양떼 flo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임니온(Soph., Hdt. 이래)은 포이메니온(%28)의 축약형이며, '떼', 특히 '양떼'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임니온은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촌(무리, 양떼), 그 다음으로 에델(떼, 양떼)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작은 가축의 무리, 특히 양떼를 의미한다(예: 창 29:2이하; 창 30:30). 비유적으로 백성은 여호와의 양떼이다(렘 13:17; 사 40:11; 겔 34:31; 슥 10:3).||#3. 신약성경의 용법||포임니온은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2:32에서 포임니온은 '무리'로 표현되었지만 '양떼'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적은 무리(혹은 떼)여"라는 표현은 두 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제자로만 된 무리는 그 일반 무리들에 비하면 매우 적은 무리이다. 또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무리의 총수도 그들이 장차 예수님을 전하고 그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온 세계에 비하면 적은 무리이다. 양의 무리와 목자는 팔레스틴에 매우 흔한 것이어서 목자와 양이란 말은 예수님과 그의 추종자들, 즉 그의 교회와의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자주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이 특히 예수님에 의해 사용될 때는 주님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과의 특별히 가깝고 사랑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교회는 언제나 "선한 목자" 및 그의 "양떼(무리)"라는 꾸밈없는 성경의 부드러운 표현에 감동을 받아왔으며, 이 말은 가장 좋아하는 설교와 찬송가와 그림의 제목으로도 사용되었다(C.L.Childers).||(b) 행 20:28; 행 20:29에서 양떼는 교회 회중을 가리킨다: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하셨느니라 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c) 벧전 5:2; 벧전 5:3에서도 양무리는 교회 회중을 가리킨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여기서 기독교 장로들은 회중 위에 군림하는 이기적인 주인이 되지 말고, 목자장이신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에 시험에 합격하도록 회중에게 봉사하는 모범이 될 것을 권유받는다.|(참조: J.H.Thayer; E.Beyreuther ).

poi'o"
어떤 종류의 of what kind.||포이오스(Homer 이래)는 포소스($4214)와 동일 어근 포스(%637)에서 유래한 의문 대명사이며,||(a) '어떤 중류의' of what kind?|(b) '어느' which?, '무슨, 어떤' what?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포이오스는 33회 나오며, 한글 개역성경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했다.|① "어느", 마 19:18; 마 22:36; 마 24:42; 마 24:43; 눅 12:39; 행 23:34; 계 3:3.|② "무슨", 마 21:23; 마 21:24; 마 21:27; 막 4:3; 막 11:28; 막 11:29; 막 11:33; 막 20:2; 막 20:8; 막 24:19; 행 4:7; 행 7:49; 벧전 2:20.|③ "무엇", 막 12:28; 눅 6:32; 눅 6:33; 눅 6:34; 롬 3:27; 약 4:14.|④ "어떤", 요 10:32.|⑤ "어떠한", 요 12:33; 요 18:32; 요 21:19; 고전 15:35; 벧전 1:11.|⑥ "뉘", 행 4:7.|(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폴레메오
polemevw
싸우다, 전투하다, 다투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폴레메오(Soph., Hdt. 이래)는 폴레모스($4171: 전쟁)에서 유래했으며, '전쟁하다' war, '싸우다, 전투하다' fight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폴레메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야고보서에 한번, 그외 모두 요한계시록에 사용되었다.||(a) 약 4:2에서 폴레메오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벌어진 다툼이란 말로 사용된다: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b) 요한계시록에서 폴레메오는 '싸우다, 전투하다, 전쟁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가 나타나는 구절들은 모두 강한 상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이 동사의 주어는 교회의 적대자들이나 신자들, 그리스도의 영이나 높임을 받으신 그리스도가 되기도 한다.|① 계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② 계 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③ 계 13: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④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⑤ 계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난리
povlemo"
전쟁, 싸움, 논쟁, 다툼.||#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레모스(Homer 이래)는 폴레오(%739: 돌리다, 둘레에 배치하다)에서 유래했으며,||(a) 원래의 의미로 '전쟁, 싸움, 전투',|(b) '논쟁, 다툼'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폴레모스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전쟁과 전쟁에 관한 소문들은 예수님의 종말론적 강화에 예언되어 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마 24:6; 병행구 막 13:7; 눅 21:9). 전쟁은 심판보다 먼저 발생할 것이다. 또한 이 주제는 전쟁이 성도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되었다고 언급되어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채택되었다(계 11:7; 계 12:17; 계 13:7; 참조: 단 7:21).||(b) 히 11:34에 의하면 구약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이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한 것은 신앙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구약성경과 후기의 문헌들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여기에 기록된 여러가지 구절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 언급하는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참조: F. F. Bruce). 불에 관한 언급은 단 3:18을 상기시킨다. 몇몇 선지자들, 즉 엘리야(왕상 19:2 이하), 엘리사(왕하 6:31 이하), 예레미야(렘 36:19, 26)는 칼날을 피하여 도망치기도 했다. 기드온은 그의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였으며, 그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가문이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부하 300명의 군사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삿 6:15 이하). 히브리서 기자는 여호수아 시대 이후 유다스마카베오 시대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수많은 승전의 실례들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국 하나님의 활동이 승리하셨다고 믿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믿음을 요나단이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전쟁은 그들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것이었다(대하 20:15). 그러므로 한 사람이 천명을 도망가게 할 수 있었으며, 두 사람이 만명을 도망케 할 수 있었다(수 23:10; 신 32:30; 레 26:8).||(c) 폴레모스는 약 4:1의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난 것이 아니냐"라는 말씀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싸움, 투쟁, 충돌, 알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d) 임금들은 짐승의 권력에 미혹되어서 선지자와 신자들의 무리와 성읍과 어린양과 전쟁을 일으킨다(계 11:7; 계 12:17; 계 20:8-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Bauernfeind; C. Brown).
고을
povli"
도시, 성읍 city, 도시 국가 city-sta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리스(Homer 이래)는 처음에 요새와 피난처로 사용되었던 막힌 담이었음을 시사한다. 이 단어는 `성읍, 도시, 도시국가'를 의미하게 되었다.|폴리스는 첫째로 방비된 거주지를 의미한다. 정치적 발전과 더불어 방비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예컨대 스파르타는 방비되어 있지 않은 네 개 혹은 다섯 개 촌락의 복합체이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는 폴리스를 공간적으로 정의하는 아스튀(도성)와 구별되는 것으로서의 국가를 의미하는데 적합하게 된다. 폴리스는 통치 중심지를 의미한다. 첫째로 성읍을 의미하고 다음으로 그 성읍으로부터 통치를 받는 보다 넓은 지역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폴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600회 나오며, 주로 이르(도시, 성, 창 4:17; 창 10:11이하; 창 11:4이하), 샤알(문, 창 22:17; 신 12:15-신 12:21; 신 14:21이하 등), 간혹 키리야(도시, 성, 수 14:15; 수 15:9; 수 15:13, 수 15:15이하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폴리스는 신약성경에서 16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폴리스는 신약성경에서 `국가'라는 의미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둘러싸인 부락 또는 그 곳의 거주민들이란 의미로 항상 성(동네, 성읍)이라는 뜻을 나타낸다(마 8:34; 마 21:10; 막 1:33). 이 단어와 코메(촌 village) 사이의 구별이 종종 분명치 않다(마 11:20과 막 8:23; 눅 2:4과 요 7:42).||(b) 거룩한 성은 지상 예루살렘을 지칭할 수도 있고 하늘의 도성도 지칭할 수 있다.|① 지상 예루살렘이 `거룩한 성'으로 지칭될 때 구약성경의 용법과 유대적 용법과 일치한다. 구약에서처럼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요 가장 사랑받는 도시이다(마 4:5; 마 27:53; 계11:2). 예루살렘은 종교적 의미에서는 물론 실제적 의미에서도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들이 죽었고(마 23:37) 또한 예수님도 죽이셨다(계 11:8; 눅13:33). 예루살렘의 멸망은 확실하다(마 24:2이하, 병행구, 막 13:2이하; 눅 21:6이하).|② 역사적 예루살렘은 멸망할 것이지만 성, 하늘의 예루살렘이 임할 것이다. 이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로운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의 어머니이다. 율법에서 자유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이 도시에 속한다(갈 4:26).|특별히 히브리서는 현재의 예루살렘과 미래의 예루살렘을 대조하고 있다. 족장들은 이 새로운 도성을 알고 있으며 이 도성을 영원히 존속할 유일한 도성으로서 거기에 소망을 두고 추구하였다(히 11:10, 히 11:16). 이 예루살렘과 비교해 볼 때 세상에 있는 성들은 모두 일시적인 장막에 불과하다. 오직 머리서만 그것을 바라다 보면서 그들은 땅 위의 외인들과 순례자들로서 믿음으로 살았다(히 11:14, 히 11:16).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하늘에 이 도시를 세우셨다. 이 도성은 시온산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이다(히 11:10, 히 11:16; 히 12:22이하). 이 도성은 이 땅에서도 영구한 도성을 소유하지 않은 기독교인들을 기다린다. 기독교인들은 이 땅에 영구한 도성이 없기 때문에 이 도성을 고대한다(히 13:14; 참조: 계3:12; 계 22:4).|이 도성은 참된 실체로서, 즉 모든 시대의 신앙들이 천사들 곁에서 서로 교제를 나누는 도성으로서 하늘에 존재한다. 계 21장에서 이 도성은 신부처럼 기뻐하고 있다. 하늘의 예루살렘은 그것의 이름을 지니는 자들의 완성된 공동체이다(계 3:12). 다양한 주제들이 이 상징에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완성의 축복됨을 묘사하는 은유들(성벽, 금으로 된 길들, 맑은 강, 보석들 등)에 불과하다. 민족주의적 특징들이 제거되어 있고 모든 나라의 신앙인들에게 개방되어 있기 때문에 이 예루살렘은 단순히 옛 예루살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하늘의 예루살렘이 옛 예루살렘으로부터 이름을 물려 받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안의 모든 것들은 완전히 새로운 것들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Bietenhard; H. Strathmann).
읍장
politavrch"
읍장, 시정관(市政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리타르케스는 폴리스($4172)와 아르코($757: 지배하다, 다스리다)에서 유래했으며, `도시나 시민의 통치자', 곧 `읍장, 시정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폴리타르케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에만 나온다.|행 17:6, 행 17:8에서 `도시의 행정관, 읍장'을 의미한다.|마게도니아의 도시들과 다른 곳들에서도 많은 읍장들이 간혹 시의회를 구성하고 있었다. 데살로니가에도 5, 6명의 읍장들이 있었고 그들 앞으로 유대인들이 야손을 끌고 가서(행 17:6, 행 17:8)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이 사람들이 …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는 이"를 묵게 했다고 그를 비난하였다. 읍장들은 이 고소를 각하하였다. 그럼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불리하게 되었고 기독교인들과 귀부인들은 유리하게 되었다(참조: Arndt, 692; E. D. Burton).|(참조: J. H. Thayer; H. Bietenhard).
시민권
politeiva
시민권, 나라, 국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리테이아(Xen., Arstph.)는 폴리튜오마이($4176)에서 유래했으며, `시민권, 시민의 생활, 정치적 활동, 시민 정책, 정체(헌법), 국가'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폴리테이아는 70인역본에서 9회, 본 마카베오서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대개 헌신적인 생활 방식을 뜻하며(마카베오이서 8:17; 마카베오사서 17:19), 마카베오삼서 3:21; 3:23에서는 시민의 권리(citizen's rights)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폴리테이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사도행전과 에베소서에만 나온다.|행 22:28에서 폴리테이아는 바울의 로마 시민권을 의미한다: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엡 2:12에서 폴리테이아는 이스라엘의 `특권적인 위치'를 의미한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폴리테리아는 여기서 구원 역사에 있어서 이스라엘이 가진 특권적인 위치를 나타낸다. 비록 전에는 제외되어 있었지만, 신앙인들은 이제 유대 국각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으로서 성도들과 동일한 영적 시민권을 가진다(참조: 엡 2:19).|(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Bietenhard; H. Strathmann).
폴리튜마
polivteuma
공화국, 국가, 시민권||#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폴리튜마(Pla. 이래)는 폴리튜오마이($4176)에서 유래했으며, `(개인적인) 정치 활동들', `정치대책들', 또는 `정치 음모'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술에서 이 단어는 `정부', `정체'(헌법) 또한 `공공 행정 활동' 또는 `행정 분과'들을 의미한다. 후에도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정치 단체', `국가'를 의미하였고, `시민들의 여러 권리들'이라는 의미로도 드물게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폴리튜마는 70인역본에서 마카베오이서 12:7에만 나오며, 그 의미는 `공동체' 또는 `공동사회'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폴리튜마는 신약성경에서 빌 3:20에만 `수도나 국가'를 나타낸다: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여기서 바울은 기독자의 생활 방식과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의 생활 방식을 대조한다. 과거의 번역 "시민권"citizenship(RV)은 신자들의 신분을 강조하지만 반면에 교제나 사귐(conversation[AV]), 바꾸어 말하면 생활 방식은 동사 폴리튜오마이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지만 폴리튜마의 의미는 시민들을 기록부에 올리는 `출생 수도나 국적이 있는 국가'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이다.(참조: E. Stauffer, New Testament Theology ).|70인역본의 `공동체'라는 의미도 음미해 볼만한다. 이 구절의 후반부는 "또한 거기서부터 우리가 기다리다"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 곳'을 의미하는 장소를 필요로 한다. 더욱이 "본문에서 이 단어의 배경은 수도 로마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로마의 한 군사 식민지였던 도시에 살고 있는 독자들이 처함 상황이다"(R.P.Martin, The Epistle of Paul to Philippians). 로마의 피지배자들로서 빌립보의 기독교인들은 멀리 떨어진 수도 로마에 충성할 의무가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다른 임금, 곧 예수"도 갖고 있었다(행 17:7). 따라서 지상에서 그들은 외국에 잠간 거하고 있으나 다른 곳에 수도와 본향을 갖고 있는 해외 거주자들인 것이다(참조: 벧전 1:1; 벧전 2:11; 약 1:1; 히 11:13; EP. Diog. 5)|(참조: Walter Bauer; H. Bietenhard; H. Strathmann).
생활하다
politeuvomai
시민이 되다, 통치하다, 생활하다,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폴리튜오마이(Thu., Aristoph.)는 `시민이 되다, 시민으로 생활하거나 행동하다, 정치에 참여하다, 국가를 다스리다, 공사(국사)를 수행하다'를 의미한다. 또한 이 단어는 `사업상 거래를 하다'와 보다 약한 의미의 `처신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폴리튜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8회 나오며, `시민이 되다'나 `국가를 다스리다'보다는 항상 `행하다'(walke)를 의미한다(에 8:12; 마카베오이서 6:1; 11:25; 마카베오삼서 3:4; 마카베오사서 2:8, 23; 4:23; 5:16). 이 단어가 나타내는 바는 정치적이 아니라 종교적이다. 종교는 사회 생활과 그 속에서의 개인의 행동을 규제한다.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유대인들이 속하는 사회에 다른 성격을 부여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폴리튜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정치적 암시없이 신앙(종교)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를 나타낸다.|행 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빌 1: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참조: Walter Bauer; H. Strath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