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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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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언제나, 항상, 어느 때든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부사 포포테(Homer 이래)는 포($4452)와 포테($4218)에서 유래했으며, '이제까지, 언제나, 항상, 어느 때든지'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포포테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포포테는 눅 19:30에서 나귀에 관해 '이제까지'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아직 아무 사람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b) 포포테는 '어느 때든지'를 의미한다.|① 요 1:18에서 하나님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② 요일 4:12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③ 요 5:37에서 하나님에 음성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형용을 보지 못하였으며".|④ 요 8:33에서 종에 관하여 사용되었다: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c) 포포테는 요 6:35에서 '언제나 항상'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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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하다, 굳게 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포로오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이래로 사용되었으며, 포로스(석회화)에서 유래했으며, 의학적으로 '단단하게 하다', 골절상을 입은 뼈를 '단단하게 하여' 골절된 뼈들이 다시 합해 붙이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포로오는 '단단하게 하다'라는 의미를 가지며, '치료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포로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카하(희미하다, 어두워지다, 약하다)의 역어로, 욥 17:7에서는 눈이 '어두워지는' 것에 대해, 잠 10:20에는 악인의 마음이 '약해지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로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이 모든 경우에서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막 6:52에서 포로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마음이 둔하여졌음을 나타낸다: "이는 저희가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주님이 어떤 분인지 아직도 깨닫지 못하였다.|막 8:17에서도 포로오는 마음이 둔한 것을 나타낸다: "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의논하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요 12:40에서 포로오는 또 다시 예수님을 거부하는 유대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여기에서 포로오는 자기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하여 인용한 성구, 즉 사 6:9이하의 인용문 속에 나오고 있었는데, 이 인용문은 70인역본을 따른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70인역본과 같이 직설법을 사용하고 있다.|롬 11:7의 "그 남은 자(즉,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와 고후 3:14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라는 바울 서신에 나오는 두 구절도 역시 유대인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이해력이 부족하거나, 잃다'는 의미를 함축한다.|(참조: J. H. Thayer; U. Becker; K. L & M. A. Schmidt)
굳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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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음, 완고 hardness.||#1. 일반 헬라어의 용법||동명사 포로시스는 포로오($4456)에서 유래했으며, '굳게함'을 의미한다. 70인역본에서는 나오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포로시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온다. 막 3:5에서 포로시스는 유대인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셨다고 전한다(막 10:5 및 그 병행절 마 19:8에서 사용된 스클레로카르디아[sklerokardia]와 비교).|롬 11:25에서 바울은 "완악함이 이스라엘에게 일어났다."(한글개역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역주)라고 말한다.|엡 4:18에서는 이방인에 대하여 사용되고 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참조: U. Becker).
어떠하든지
어떻게 해서든지, 어쨌든, 혹시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포스(Homer 이래)는 기본 어근 포스(%1006)에서 유래한 전접 불변사이며, '어떻게 해서든지,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 혹시나, 혹시'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포스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어떻게 해서든지, 어쨌든, 어떤 방법으로': 행 27:12; 롬 1:10; 롬 11:14; 고전 8:9; 빌 3:11.||(b) '혹시나 혹시': 롬 11:21; 고전 9:27; 고후 2:7; 고후 9:4; 고후 11:3; 고후 12:20; 갈 2:2; 갈 4:11; 살전 3: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무슨 방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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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어떤 방식으로.||부사 포스는|(a) 의문문에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b) 감탄문에서 '얼마나'를 의미한다.|이 부사는 신약성경에서 105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라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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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합 Rahab.||라압은 히브리어 라합(넓은, 풍부한)의 음역이며, 한글 개역 성경에서 라합으로 음역되었다.|라합은 기생(수 2:1-24)이며, 그녀의 집은 폭이 넓은 성읍의 성벽 위에, 또는 두개의 중심적인 성벽 사이를 잇는 장소에 있었다(참조: 다메섹의 성벽 위의 집으로부터의 바울의 탈출, 행 9:25). 요세푸스(Josephus)와 랍비들은 라합을 매춘부가 아니라 여관 주인이었던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호수아가 보낸 두명의 정탐과 기꺼이 운명을 같이하여, 라합은 그녀의 집의 평평한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 아래 그들을 숨기고(수 2:6), 창문에 붉은 줄을 메달아 그녀의 집임을 표시한 후에 성벽 위의 그녀의 집에서 줄로 그들을 달아 내려가게 했다(수 2:21). 여호수아 6장이 말하는 바와 같이 포위 공격하는 동안에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성읍 밖으로 이끌어 내어져서 불에 의한 여리고의 완전한 멸망으로부터 벗어났다(그에 대한 증거들이 발굴되었다). 라합은 그 포위 공격 이후에 오랫동안 이스라엘인들 중에서 살았다고 한다(수 6:25). 그녀는 이스라엘의 정탐들을 구해준 믿음 때문에 시 87:4; 사 11:3에 영예롭게 언급되며, 마태복음의 보아스와 예수님의 족보에 열거된다. 어떤 권위자들은 이 라합이 여호수아 2장의 여인과 동일인이라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참조: HBD).
랍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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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를 뜻하는 히브리어 랍비의 음역.||#1. 유대교의 용법||(a) 셈어 랍은 '큰, 위대한'을 뜻하며, 높은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사람을 뜻하는 칭호이며, '관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따라서 랍비는 '나의 큰(위대한) 자, 나의 존경할만한 분'을 의미하며,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스승에게 말을 걸 때 습관적으로 사용한 칭호이며, 선지자 엘리야, 메시야, 하나님에 대해 사용되기도 하였다.||(b) 이 용어가 선생들에 대해 사용된 것은, 생도들이 그들의 선생을 공손히 순종하여 따랐던 주전 2세기부터이다. 이 용어는 가르칠 자격을 가진 사람에게 생도들이 사용한 칭호이며, 이 칭호를 보통 사람들이 사용하기도 하였다. 이 용어는 팔레스타인, 시리아, 키프로스, 이탈리아의 많은 비문에 나타난다(참조: E.Lohse).||(c) 랍비는 신약시대에서는 시민들이 서기관들에 대하여, 혹은 제자가 그의 선생에 대하여 부여한 존경의 표시로서의 칭호였다. 점차적으로 이 단어는 안수식(세미카)을 받은 자, 즉 종교적인 일을 다루는 재판관으로서의 권한을 수여받은 자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가 되었다. 이러한 안수는 그에게 손을 뻗쳐 갖다 대는 것으로써 수여되었다. 안수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어떤 점에서는 기독교적인 견지에서의 목사였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는 오로지 회당에서 배워야만 하였던 율법(토라)에 관한 권위자일 뿐이다. 이 안수식은 팔레스타인에서만 실행되어 오다가 4세기에 와서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때부터 세 사람의 랍비가 율법을 해석할 수 있는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인정하는 세미카에게 랍비 칭호를 수여하게 되었다.|(H.L.Ellison; J.H.Thayer).||#2. 신약성경의 용법||랍비는 신약성경에서 15회 나오며, 복음서에서만 나타난다.||(a) ① 랍비는 서기관들과 그들의 제자들, 바리새인들에 대한 경의의 칭호였다: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마 23:7; 마 27:8). 세례(침례) 요한의 제자들은 세례(침례) 요한에게 말할 때 이 칭호를 사용하였다: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다"(요 3:26).|② 랍비는 예수님에 대해서도 여러번 사용되었다. 요 3:2에서 니고데모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요 1:49에서 나다나엘에 의하여 사용되었다: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베드로에 의하여(막 9:5; 막 11:21), 유다에 의하여(마 26:25, 막 26:49; 막 14:45) 또한 요 1:38; 요 4:3; 요 6:25; 요 9:2; 요 11:8에서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에 의하여 사용되었다.|③ 랍비라는 칭호의 사용은 성전이 파괴된 후에야 일반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신약성경의 용법은 복음서들이 후기에 구성된 것임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논쟁에 종종 부딪치게 된다. 그 논쟁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랍비를 전문 용어로서 사용한 것은 분명히 보다 일찍이 서민들이 사용하던 용법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참조: H.L.Ellison).
랍오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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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인, 나의 선생님||랍보니는 아람어 랍보니에서 유래했으며, '나의 주인, 나의 선생님'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막 10:51에서 바디메오가 예수님께 대하여 사용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요 20:16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께 대하여 사용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참조: J. H. Thayer).
매로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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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로 때리다 beat with a ro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랍디조는 랍도스($4464: 막대기, 지팡이)에서 유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대기로 치다'(Aristoph.),|(b) '채찍질하다'(Diod.),|(c) '타작하다'(P. Rylo),|(d) '쳐서 떨어뜨리다'(나무에서 열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랍디조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하바트('타작하다', 두들겨 '떨다', '떼어내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삿 6:11; 룻 2:17).||#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랍디조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매로 때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후 11:25에서 랍디조는 매를 맞는 것을 나타낸다: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바울이 세 번 매를 맞은 것 중 한번의 경우는 행 16:22에 기록되어 있으며,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서였다: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여기서 매로 때린 것은 고문보다는 오히려 압제 정치의 수단이며, 이 경우에서는 이에 대해 후에 그가 항의한 바 있으며, 불법적인 것이었다.|(참조: C. Schneider; Walter Bauer).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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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지팡이 rod, staff, stick.||#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랍도스(Homer 이래로)의 기본 의미는 '연한 가지, 회초리, 매, 막대기'를 뜻한다. 이 단어는 회초리, 지팡이, 마법사의 지팡이, 홀, 지휘봉, 낚시대, 덫, 금속판, 창자루, 나무가지, 혹은 시의 '한 행'에 대해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랍도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1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맛테(지팡이, 막대기, 가지, 지파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랍도스는 목자의 지팡이(미 7:14), 아론의 지팡이(민 17), 왕의 홀(시 45:6), 형벌의 도구로서의 막대기(출 21:20), 마술사의 지팡이(출 7:9-12, 16)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랍도스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막 6:8에서 랍도스는 여행자의 '지팡이'를 의미한다: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마 10:10; 눅 9:3). 지팡이는 견유학파들이나 랍비들이나 보통 순회하는 선생들이 가지고 다녔으며, 근동에서는 먼 여행길에 필수적인 것이었다.||(b) 고전 4:21에서 랍도스는 '때리는 매'를 의미한다: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유대인 선생들은 혁대를 사용하였는데, 여기서는 헬라 문화권의 선생들을 의중에 두고 말한다.||(c) 히 1:8에서 랍도스는 홀(Sceptre)을 의미한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세상의 통치자로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통치의 표시로서 홀을 잡고 계신다.||(d) 히 9:4에서 랍도스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가리킨다. 이 지팡이에 대해서는 필로와 요세푸스도 언급한다. 유대인의 기록에는 이 지팡이가 첫 안식일 저녁에 만들어져 [홀](a sceptre)로서 사용되었다는 것과 그것이 메시야 왕국에서 다시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익나티우스의 트랄리아인에게 보내는 서신 11:2에서는 이 지팡이가 십자가의 나무가 된 것으로 언급되어 있으며, 후기 무용담에서는 용서하는 은혜를 의미한다.||(e) 히 11:21에서 랍도스는 노인이 의지하는 지팡이를 가리킨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이 구절은 창 47:31의 70인역본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 원문에는 '침대(상)'을 뜻하는 밋타에 관사가 접두어 있다.|70인역본과 히 11:21에서처럼 야곱이 그의 지팡이(맛테)의 머리에 의지하였는지 아니면 본문대로 그의 침상(밋타) 머리에 의지하였는지가 논란이 된다. 밋타(침상)를 맛테(지팡이)로 발음한데서 발생한 차이라면 '침상' 머리일 것이다. 야곱이 침상머리에서 경배한 것은(침상머리 위에 엎드린 것은) 아마도 자기 소원대로 허락받은 것을 감사하여 그 뜻을 하나님께 아뢰느라고 하나님께 경배한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아마도 저자가 야곱이 마지막 기도를 하였을 때 침상 머리를 지팡이처럼 의지하였기 때문에 '지팡이'의 머리를 표현했다고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그렇게 의지하였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 특별한 겸손의 표시이다.||(f) 계 11:1에서 랍도스는 측량하는 나무나 갈대를 가리킨다: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참조: 겔 40:3이하).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성전이 마지막 때까지 해를 받지 않고 존속되리라는 것을 약속한다.||(g) 랍도스는 목자의 지팡이를 가리킨다(계 2:27; 계 12:5; 계 19:15이하; 참조: 시 2:9). 계 2:27에서는 이기는 자가 이러한 지팡이를 가지게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다른 구절에는 그리스도 자신이 이 지팡이를 가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참조: C. Schneider; Walter Bauer).
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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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를 가진 자, 즉 권표를 가진 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랍두코스(Aristoph., Thu. 이래)는 랍도스($4464: 막대기, 지팡이)와 에코($2192: 가지다, 쥐다, 소유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막대기를 가진 사람', 즉 권표를 가진 자를 의미하며, 곤봉을 찬 경관, 종교적 축제에서 감독자, 그리고 왕비를 수행하는 여인들에 대해 사용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랍두코스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에만 2회 나오며, 로마의 형리를 가리킨다.|행 16:35, "날이 새매 상관들이 아전을 보내어 이 사람들을 놓으라 하니".|행 16:38, "아전들이 이 말로 상관들에게 고하니 저희가 로마 사람이라 하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여".|(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르우
@Ragau'
르우 Reu.||라가우는 히브리어 레우(친구)에서 유래했다. 창 11:18에 의하면, 벨렉의 아들이며, 아브라함의 조상이다.|라가우는 신약성경에서 한번 눅 3:35의 예수님의 족보에 나온다: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행동
rJa/diouvrghma
분별 없는 행동, 범죄, 악행.||#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라디우르게마(Dionys.)는 라디우르게오(%688: 경솔하게 잘못 행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경솔한 행위, 분별없는 행동, 범죄, 악행'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디우르게마는 신약성경에서 행 18:14에 한번 나온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무슨 부정한 일이나 괴악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주는 것이 가하거니와".|(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악행
rJa/diourgiva
무분별하게 행함, 해악.||#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라디우르기아(Xen. 이래)는 라디우르게마($4467)에서 유래했으며,|(a) '쉽게 행함, 능숙',|(b) '천박, 경박',|(c) '무분별하게 행함, 파렴치함, 교활, 사기, 해악'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디우르기아는 신약성경에서 행 13:10에서 (c)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가로되 모든 궤계와 악행이 가득한 자요 마귀의 자식이요 모든 의의 원수여 주의 바른 길을 굽게 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겠느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라가
rJakav
라가, 멍텅구리, 바보.||#1. 고전 헬라어 문헌 및 유대교 문헌.||(a) 명사 라카는 예레미야스(J. Jeremias)와 슈니빈트(J. Schniewint)에 의하면 아람어의 욕설 용어인 '텅 빈 머리, 멍텅구리'를 뜻하는 레카(참조: 히브리어 리크: 뇌 속이 빈)에서 유래된 것으로 생각한다.|라카는 신약성경 이전 헬라어에서 단지 제논 파피루스(Zenon papyrus, BC. 257)에서만 사용되었다.||(b) 랍비들의 문헌에서 레카에 대한 수 많은 실례가 표현되고 있다(참조: SB Ⅰ278, 286, 385; Ⅱ586, 714). 개인적 어투에서 레카는 성난 경멸의 표현이며, 아마 '바보'라는 의미일 것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라카는 신약성경에서 마 5:22에 한번 나온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여기에서 라카는 욕설의 용어로 가장 많이 사용되었던 모레와 비교된다. 모레는 의미에 있어서 더욱 격렬한 표현으로 '백치' idiot, 혹은 '얼간이' fool로 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참조: 마 14:1). 이처럼 마 5:22에서 예수님의 시대에 널리 유포되어 있었던 두 개의 일상 욕설이 모여 있다(J. Jeremias, TDNT).|예수님께 있어서 실제적 살인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의 형벌을 당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파괴적인 정신적 태도가 불타올라 거기에서 저주의 말이 나오게 되는 그러한 마음은 그와 동일한 형벌을 받을만 하다. 무시무시할 만큼 날카롭게 예수님의 말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철저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심판이 단순히 완성된 행위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동기까지도 포함한다. 예수님은 단순히 인간의 무능력을 강조하여 과장함으로써 하나님의 계명에 조건을 붙이신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심판의 필연성과 새로운 행위의 진실성을 말씀하신 것이다"(J. Schniewind, op. cit, 60). 세 개의 발전 단계에 의하여 예수님께서는 생각과 언어의 죄(사람을 저주하는 것도 포함)를 오직 죽음으로써 보상되는 육체적 살인과 같은 차원에 놓고 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T. 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