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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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다 sprink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라이노(%1000: 뿌리다)의 후기 어형이다.||(a) 이 단어는 '뿌리다' spinkle를 의미하며 물(Hom. od.), 기름(Hippocr.), 피(Hom. od.), 먼지(Hom. Il.), 소금(Aristot.)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종교적으로 '정결하게 하다'를 의미한다(Plato., Cratylus).||#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70인역본에서 히브리어 나자(5137: 뿌리다, 튀다)를 번역하여, 피가 뭍은 것(레 6:20), 피가 튀는 것(왕하 9:33)을 나타낸다.|이 단어는 시 51:9에서 하타(2398: 속죄제를 드리다, 정결케 하다)를 번역하여 '정결케 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시편 기자는 여기서 문둥병자와 그의 집을 정결하게 하는 의식에 영감을 얻어 뿌리는 의식을 통하여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상징적 표현을 만들어 내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란티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서에서만 사용되었다.||(a) 란티조는 히 9;19과 히 9:21에서 언약과 관련하여 나온다. 히 19:18-21은 시내산 언약의 끝맺음에 관하여 언급한다(출 24:3-8). 모세는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와 함께 송아지의 피를 취하여, 그가 백성에게 읽어준 하나님의 율법이 기록된 책과 온 백성과 회막과 제의 기물들에 뿌린다.|히브리어 기자에게 있어서 "첫 언약"이 "피 없이"(코리스 하이마토스) 세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새 언약"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의 근본적인 중요성을 지적해 주는 것이다.-예수님은 새 언약의 중보이시다(히 9:15; 참조: 히 12:24). 모세가 백성에게 뿌린 피는 "언약의 피"(출 24:8)로 명명되며, 이것은 히 9:20에서 분명하게 인용된다.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한 언약의 피"로서 이것과 대조되는 것이다(히 13:20, 참조: 히 10:29). 첫 언약에서 희생 제물의 피로 뿌리는 것이 한 역할을 했듯이 새 언약에서도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것이 한 역할을 한다.||(b) 히 9:13,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본래 히 9:13 이하는 레 16장의 대속죄일을 생각하고 언급한 것이다(참조: 히 9:7). "육체"(사르크스)를 정결케 하는 제한된 효력만을 가진 염소와 황소의 피는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마음에 뿌림을 받아", 히 10:22) 그리스도의 피와 대조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속죄일에는 제의적 기물만이 뿌림에 의하여 깨끗하게 되고 히브리서에서 일차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뿌림은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구약성경의 뿌리는 의식의 요소에 대한 소개에서는 사람에게 뿌리는 것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 경우에 피로 뿌리는 것이 아니라 시체로 부정하게 된 자들(여기서 케코이노메노이)을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리는 것이다(민 19장). 그러므로 깨끗게 하는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속죄일의 희생 제물의 속죄하는 피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피의 상징이다.|동일한 예표론적 도식이 이 모든 진술들 배후에 있다. 구약성경의 공동체에서처럼 신약성경의 공동체에서도 뿌리는 일이 있다. 구약성경의 공동체에서는 희생 제물 짐승의 피와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뿌려졌다. 신약성경의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진다. 구약성경에서 뿌림은 옛 언약에서 일익을 담당했고 신약성경에서 뿌림은 모든 면에서 옛 언약보다 우월한 새 언약에서 일익을 담당한다. 구약성경에서는 육체가 깨끗케 되었고, 신약성경에서는 양심이 정결케 된다. 이러한 대조에서 히브리서는 제의적 용어인 란티조/ 란티스모스를 채택하지만, 뿌리는 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전이함으로써 실제의 제의적 용법을 제거하고 은유적으로 이용한다.|이미 Ez 36:25과 1Qs 4:21에서 이미 은유적 용법이 나타난다. 여기서 뿌리는 일은 완전한 정결을 주시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행동을 나타내는 은유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 이 뿌림은 자신의 피로 그의 백성을 정결케 하고 그들에게 새 언약에서 한 몫을 나누어주시는 하늘의 대제사장께서 공동체를 위해 이미 행하시는 것이다.||(c) 히 10:22의 상반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일은 세례(침례)에서 일어난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히 10:22의 상반절 앞 부분은 그리스도의 피로 뿌리는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히 12:24(및 벧전 1:2; Barn., 5, 1)이나 간접적으로 히 9:18-21(참조: 히 10:29; 히 13:20)로부터만이 아니라 히 9:13 이하로부터도 알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붉은 암송아지의 재나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정결의 물은 그리스도의 피의 대형(antitype)이다.|그리고 히 9:14의 말씀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는 히 10:22 상반절 앞부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히 10:22 하반절 뒷부분이 세레(침례)를 언급한다는 사실은 거의 증거를 요하지 않을 만큼 분명하다.|이제 히 10:22 상반절의 두 병행절들은 서로 거의 분리될 수 없으며, 히 10:22 상반절 뒷부분은 침례에 대해, 앞부분은 다른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세례(침례)가 육체의 단순한 씻음으로 거의 묘사될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즉시 배제된다.|히 10:22 상반절 뒷부분과 앞부분은 하나의 동일한 것의 두 측면을 묘사한다. 몸이 물로 씻겨지듯이, 마찬가지로 마음도 깨끗해져서 악한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그리스도의 피로 뿌린다는 사상은 이제 세례(침례) 신학에 속한다. 그것은 세례(침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세례(침례)에서 입회자는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하고, 정케하고, 언약을 맺는 능력 안에서 한 몫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