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지심을 입다
rJuvomai
구출하다 rescue, 구해내다 deliver, 보존하다 preserve, 구하다 sav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뤼오마이는 '보호하다, 지키다'라는 기본 의미를 가진 인도-유럽(Indo-Europ) 어군에 속한다. 그 기본 의미는 '보호하다, 지키다, 구원하다'를 의미한다. 이 동사는 호머 이후부터 고전 헬라어와 비문들과 파피루스들에서도 발견되는 중간태 디포넌트 동사이다. 이 동사는 신들과 인간들에 의한 구원과 보호에 대해 사용되었다.|아작스(Ajax)는 아카이아인들을 어두운 밤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아버지 제우스"에게 기도했다(Homer, Ⅰ1. 17, 645). 아킬레스는 아에네아스에게 "오직 제우스와 다른 신들만이 그대를 구하였다"고 외쳤다(Ⅰ1. 20, 194). 이러한 구원은 전쟁시의 개인들에게만 베풀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위험과 고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재산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에게까지 베풀어졌다(Ⅰ1. 15, 257, 290; Hdt. 1, 87).|인간 수준에서 이 동사는 성읍들과 나라들과(Homer,Ⅰ1. 9, 396), 여인들과 어린이들(Ⅰ1. 17, 224), 버림을 받은 자들(Soph., OC 285)을 구원하는 제왕들의 행동에 적용되었다.|백성, 군주들, 전사들, 제사장들, 경비원과 국가들도 보호 역할을 한다. 또한 이 동사는 무생물에 대해서 사용되기도 하였다. 곧 성벽(Ⅰ1. 10, 259), 투구(Ⅰ1. 10, 259)와 갑주(Ⅰ1. 23, 819)도 보호물이라고 한다. 한편 오디세우스는 피로 인해 자멸하는 동료들을 구할 수 없었다(Od. 1, 6이하). 그리고 신들조차 구할 수 없는 경우들도 있다(Ⅰ1. 15, 141; Od. 12, 107; Aesch., Sept. 91; 참조: W. Kasch. Ibid.).||#2. 70인역본의 용법||뤼오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190회 사용되었으며 10개의 히브리어의 역어로 사용되었다.||(a) 뤼오마이는 나찰(구조하다, 구해내다)의 어형의 역어로 88회, 가알(구속하다, 무르다, 구해내다)의 역어로 12회, 그밖에 팔라트(안전을 기하다, 구원하다, 10회), 야샤(구원하다, 건지다, 해방하다, 17회), 파다(구속하다, 5회), 할라츠(구원하다, 5회), 나차르(지키다, 파수하다, 2회), 파차(~로부터 앗아가다, 구해내다, 1회), 그리고 아랍어 셰집(해방하다, 자유롭게 해주다, 1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b) 뤼오마이는 구원이 신들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간주되는 외에는 헬라어 용법과 유사하게 사용되었다.|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출 6:6; 출 14:30; 삿 6:9b; 삿 8:34; 왕하 18:32; 에스델후서 8:31; 미 4:10; 미 5:5; 사 36:15; 사 44:6; 사 48:17; 사 49:7, 사 49:25; 사 54:5, 사 54:8; 겔 13:21, 겔 13:23; 마카베오일서 16:2), 개인들을(삼하 12:7; 삼하 22:18, 삼하 22:44, 삼하 22:49; 욥 5:20; 욥 22;30; 욥 33:17; 시 6:4; 시 7:1; 시 17:13; 시 25:20) 구원하심을 찬양하고 있다.|이 여호와의 구원은 그의 백성을 애굽의 손에서(출 14:30; 삿 6:9), 속박에서(출 6:6), 모든 원수들로부터(삿 8:34), 앗시리아의 손에서(왕하 18:22; 미 5:5; 사 36:15), 포로에서(미 4:10), 모든 악에서(에 10:3이하; 마카베오삼서 2:12), 거짓 선지자들로부터(겔 13:21, 겔 13:23) 구원하는 것이다.|여호와께서 악한 이웃들(시 34:4), 간사하고 불의한 자들(시 43:1; 참조: 사 25:4), 무죄한 자를 미워하는 자들로부터(시 69:14), 살인자(시 18:29), 피(시 51:14), 검(시 22:20), 사냥군의 올무(시 91:3), 사망과 기근(시 33:19; 참조: 시 56:13; 시 57:4; 시 86:13; 시 89:48; 욥 5:20), 음부(시 86:13; 참조: 56:13; 호 13:14), 악인(시 17:13; 참조: 시 59:3; 시 71:4; 시 97:10), 모든 환난으로부터(시 34:17, 시 34:19), 그리고 피와 그 결과들로부터(시 39:8; 시 40:13; 시 79:9)의 구원하심을 노래하고 있다.|일반 헬라어 문헌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에도 인간 구원자들에 관한 언급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언제나 이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과 그의 권능으로 이것들을 행한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곧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을 건져냈다(출 2:17, 출 2:19).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칭해졌다(삿 9:17b). 왕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셨다(삼하 19:9). 왕은 구원자로서 호소를 받았다(삼하 14:16). 구원하는 것은 재판장의 임무였다(시 82:4), 집회서 40:24에는 형제 또는 친구가 구원자로 언급되어 있는 것 같다. 도적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소유물을 기꺼이 내어줄 것이며(잠 6:31, 70인역본), 사람은 돈을 냄으로 자신을 구할 수 있다(3Macc. 2:32).||(c) 구약성경의 용법은 특이하다. 하나님께서는 헬라인들에게 있어 신들과 인간들처럼 존재론적인 법칙들에 의해 제한받지 않으신다. 구원은 더 이상 신들과 인간들을 위해 행해지는 법규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적이고 지속적인 말씀에 의해" 결정된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어서 "백성과 개인의 구원은 여호와에 의해 시작된 구원 역사 속에서 행하시는 여호와의 창조 활동의 일부이다"(Op. cit., 1001).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비하심에 따라(느 9:8), 자기 이름을 위하여(시 79:9), 그리고 그가 원하시는 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다. 바로 그의 이름의 구원자이다(사 63:16). 그리고 그의 구원은 마법적인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다. 역사상의 구원이 그러하듯이, 구원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에 의해 야기되는 상황으로부터의 구원으로서 언제나 공동체나 개인들에 관계가 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임재에서의 보호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간 편에서의 믿음 혹은 신뢰가 요구된다(시 22:4-시 22:5). 이러한 믿음은 윤리적인 관계를 갖는다. 곧 믿음은 순종과 병행한다(cf. 시 34:19).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또한 죄가 고백될 때에도 구원하신다(시 39:8). 구원은 여호와의 자비하심에 기초하고 있다(시 31[30]:1; 시 71[70]:2; 시 86[85]:13).(참조: W.Kasch)||#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뤼오마이는 신약성경에서 15회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7회는 구약성경에서 인용문이나 인유문이다. 이 경우에 항상 하나님이 구원자이시다.||(a) 뤼오마이는 마 6:13의 주기도문에 나타난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여기에서 이 기원문을 "악한 자"에게서 구원받는 것에 대한 언급으로 간주하느냐, 아니면 "악"으로부터의 구원으로 간주하느냐에 관한 문제에 대해 일반적으로는 제자들이 이 시대를 지배하며 계속 그들을 위협하고 있는 권세로부터 해방받음을 구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 간구에는 현재 뿐만 아니라 종말론적인 어조도 있다. 구원의 목표인 영원한 구원 사상도 나타나 있다.|뤼오마이는 마 27:43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방관자들의 조롱에 나타난다: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찌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이 조롱은 시 22:89[시 21:9]을 반영한다. 이 조롱자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고난과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해주지 않으심을 예수님의 주장에 대한 결정적인 반증으로 간주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조롱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그들의 이런 조롱 행위를 예언한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이 기대했던 방법으로 예수님을 사망에서 구원하시지는 않았지만 보다 깊은 의미를 지닌 부활로 그를 구원하셨다.|뤼오마이는 세례(침례) 요한의 탄생시에 사가랴가 읊은 찬송시에 나타난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이 사가랴 송시에는 두려움이 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이스라엘의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신 약속된 구원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로 나타나 있다(참조: 창 22:16이하). 이 송시에는 구원이 아주 임박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이 아이가 구원의 약속된 전달자로 나타나 있다.|뤼오마이는 이스라엘 구원을 주장하는 롬 11:26에 나타난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하나님께서 결국 이스라엘을 거부하셨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은 사 59:20이하를 인용하여, 이 예언은 현재의 완악함은 단지 하나님의 목적에 있어서 일시적인 부분이며 장차 성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인용문은 시 14:7의 사상까지도 채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 27:9에는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죄악에 대한 용서는 새 언약의 상징이다(렘 31:34). 시온은 원래 다윗 도성이었으나 이 곳에서는 어느 정도 "하늘의 예루살렘"과 비교될 수 있는 종말론적인 것으로 이해된다(갈 4:26). 바울이 말하는 바는 언급된 다른 구절들과 결부시켜 사 59:20을 재해석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게 함으로써 구약성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으며 어떻게 성취될 것인지를 알 수 있다.|뤼오마이는 롬 7:24의 마음의 고뇌의 외침에 나타난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 외침에 대한 해석에 관하여는 상당한 논란이 있어왔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사망의 지배를 받는다(롬 5:12, 롬 5:21; 롬 6:23; 참조: 갈 6:7이하).|문제는 이 구절이 구속 받지 못한 자의 부르짖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자신의 죄악된 속성을 너무나 잘 깨닫고 있는 경건한 자의 부르짖음을 의미하는 것인가?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롬 7:25에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 이 세상에서의 신자들의 삶은 여전히 갈등적인 삶임을 암시한다. 이 해답은 로마서 8장에서 더욱 발전되었다. 하나님은 율법이 무능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아들 안에서 행하셨다: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하려 하심이라"(롬 8:3b, 롬 8:4). 신자는 자신의 마음을 육신에 두지 말고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한다(롬 8:5; 참조: 롬 8:6-롬 8:17).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구원은 이 생에서 완성되지 않는다(롬 8:22이하).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것은 단지 종말론적 성취에 대한 기대 뿐이다.||(b) 뒤오마이는 고난에서 구원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롬 15:31에서 바울은 믿지 않은 유대인들부터의 보호받기를 원했다: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고후 1:10에서 아시아에서 당한 고난에 대한 바울의 기사는 여호와께서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심에 대한 시편 기자의 찬양을 상기시키는 말로 표현되었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이 언급은 로마령에 속한 아시아의 수도인 에베소에서 일어난 소요를 지칭하는 것 같다. 이 소요는 행 19:23-행 19:40에 처음으로 나오는 것보다 더 심각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이 심한 질병에 대해 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참조: 고후 12:7, C.K.Barrett).|살후 3:2에서 뤼오마이는 기도의 요청에 나타난다: "무리하고 악한 사람들에게 건지옵소서 하라.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님이라"(시 140[139]:1). 살전 2:15이하에 비추어 볼 때, 이 말은 유대인들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특히 이 서신이 바울이 유대인들과 대립해 있을 때에 고린도에서 기록된 것이라면 그러하다(참조: 행 18:5).|딤후 3:11에서 뤼오마이는 안디옥, 이고니움, 루스드라에서 당한 바울의 고난에서 구원을 언급하고 있다(참조: 행 13:14-행 13:52; 행 14:1-행 14:20; 행 16:1-행 16:5):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딤후 4:17이하는 분명히 로마에서 벌어진 바울의 진술에 대한 예비 공판을 묘사하는 것이다. 비록 피고의 친구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피고와 함께 재판정에 나오는 것이 관례였으나, 바울 옆에 선 자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 이 상황은 다니엘 6:20과 시 22:21(시 21:22)를 연상케 하나 분명히 경기장에서 야수에게 죄수들을 넘겨주는 로마의 관습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 일이 주후 70년에 티투스(Titus)에 의해 정식으로 거행되었던 것처럼 이 경우에도 원형 경기장에서 행해졌을까 하는 것은 의심스럽다. 그러나 구드리(D. Guthrie)는 이 구절에 나오는 사자는 네로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The Pastoral Epistles TC, 1957, 177).|구약성경의 구절들을 언급하고 있는 위의 구절들 외에 벧후 2:9은 구약성경의 요점을 설명해 주는 권고 구절로 나온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여기에서 인용된 예들은 노아와 홍수(벧후 2:5; 참조: 창 6:1-창 8:22),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벧후 2:6; 참조: 창 19:24) 그리고 롯의 구원이다(7절; 참조: 창 19:16, 창 19:29). 각각의 경우에 의인은 불경한 자들에게 내리는 심판에서 구함을 받는다. 따라서 이것은 일종의 격려이며 경고이기도 하다.||(c) 뤼오마이는 골 1:13에 단 한번 신자들이 이미 경험한 구원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하는데 사용되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여기에 왕국은 흑암의 지배와 대조되는 그리스도의 통치이다. 흑암이 잃어버린 자들을 나타내는 것처럼, 빛은 그리스도의 통치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지금 곧 믿는 자들의 삶과 행동을 구체화한다"고 말하였다. 우리가 종되었던 영역은 흑암이다. 이것은 빛이 없는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빛과 반대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을 떠난 존재의 상태를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의 상태까지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반역적 왕국으로부터 벗어나 우리의 의로운 왕의 주권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H. M. Carsson).|딤후 4:18에 나오는 미래 구원에 대한 기대는 죽음을 통한 구원과 아무리 무서운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수반하는 것을 예상하는 것이다(참조: 딤후 4:6이하; 딤후 1:12; 딤후 2:11이하; 빌 1:20이하):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찌어다. 아멘."|(참조: W. Kasch; J. Schneider; C. Brow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