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호
shmei'on
표시, 표적.||#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세메이온은 세마(%361: 표시, 예고)에서 유래했으며, 세마와 함께 '징조, 표시'를 의미하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이 단어는 사람이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표적' sign, 확신 시키는, 확증하는, 증명하는 '특징', '표' mark 혹은 '표', '증거' token를 의미한다. 호머의 작품에서 이 단어는 병의 징후, 짐승의 냄새, 배의 깃발, 희생제물로 바칠 짐승임을 보증해주는 표시, 통치자의 왕관, 반지의 인장, 방패에 있는 문장, 양 떼에 찍은 소인 등을 나타낸다.||(b) 이 단어는 다가올 사건을 알리는 '징조' foretoken, 혹은 '전조' omen을 의미한다.||(c) 세메이온에 놀라움의 성격이 있을 때 이 단어는 "기적의 표적"(miraculous sign)의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사물의 자연적 진행과는 모순되는, 신 혹은 기적을 행하는 자가 행한 '기적'(miracle)을 뜻하기도 한다.|이 단어는 주전 2세기의 저술(Polyb. 3, 112, 18)에서 처음으로 나오는 어구 세메이가 카이 테라타(표적들과 기사들)에서 발견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세메이온은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오트의 역어이며, 이 히브리어 처럼||(a) '표적' sign, '특징', '표' mark, '징후' token.|(b) '기적의 표적' miraculous sign, '기적' miracle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세메이온은 신약성경에서 77회 나온다.||(a) ①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 세메이온은 어떤 사람을 알아 볼 수 있는(눈에 보이는)표시 sign이다. 예를들면, 마 26:48에서 배신자가 성전 파수꾼에게 예수님을 넘겨 줄 때의 입맞춤(사전에 합의한 표시임) 혹은 눅 2:12에서 갓 태어난 구세주임을 지적해주는 말구유("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에 대해 1Q 27Ⅰ1:5; 출 3:12; 삼상 2:34; 삼상 14:10를 참조하라)가 세메이온이다.|경고의 '징조' omen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며, 대개 우주적 성질을 띠며, 역사의 종말을 알리는 것이다(막 13:4; 눅 21:7). 혹은 인자의 임하심과 세상의 끝(세대의 완성)에 징조가 있다(마 24:3). 이때 "메시야의 발자국"과 함께(m. sota 19:15) 전쟁의 무질서와 기근, 온역, 지진이 있으며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눅 21:11)가 있을 것이며, "일월 성신에 '징조'"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구약성경의 영향이다(참조: 막 13:24이하와 병행구에서 사 13:10; 사 34:4과 행 2:19에 인용된 요엘 3:3). "여호와의 날"에 수반하는 현상은 마지막 때의 세대에게 경고의 표시로서 삽입적이고 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표적"은 이해되지 않는다(마 16:3). 파루시아의 중대한 시점은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나타나는 것인데(마 24:30), 이것은 완성을 가리키며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으며, 또 다니엘이 밤에 이상 중에 본 종말론적 심판관의 도래 및 즉위와 관련된다(단 7:13이하; 슥 12:10-14). 예수님 자신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비방을 받는 표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세움 받는다; 예수님의 사역은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이 마음들은 그들 자신의 종말론적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② 세메이온, 하나님의 주권의 은혜로운 의를 드러내고 믿음을 전제로 하는 능력의 역사(뒤나미스)인 예수님의 치유의 기적과는 대조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세주 혹은 선지자임을 확증해주는 기적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표적들은 믿음을 일깨우기 위해 의도되며(참조: 출 4:1-9), 간청된다기 보다는 강력히 요구되거나 촉구된다.|지팡이를 뱀으로 변하게 한 기적이 한 예이다(출 3:12; 출 4:1-5; 출 7:8이하); 애굽의 재앙들도 하나님을 지시하는 표적들이다(출 7:3; 출 10:2; 신 7:19; 신 26:8; 참조: 행 7:36). 유대 전쟁 이전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심을 증명하려는 의도에서 "자유의 표적들"을 약속하면서 나타났다(요세푸스 B.F.ⅱ259: Ant. xx. 168). 이들이 약속한 기적들의 상징적인 특징은 모세나 여호수아의 행위들과 일치한다는 것이었다(참조: Ant. xx. 97.과 수 3:7; xx. 169이하와 수 6:8이하). 그러나 요세푸스는 그들을 사기꾼이라고 비난하였다(Ant. xx. 167; B.J.ⅱ259-61). 막 13:22과 마 24:24은 거짓 선지자들과 메시야들에 대해 경고한다. 그들은 심지어 택함 받은 백성까지도 속이려고 큰 포적들과 이적들을 일으킬 것이다(참조: 신 13:1-4). 그들의 활동무대는 광야이다(마 24:26; 참조: B.J.ⅱ259).|예수님은 "하늘로서 (즉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표적"을 행하라는 요구를 강력하게 거부하신다(막 8:11이하; 마 16:1; 눅 11:16; 참조: 마 12:38); 이 요구는 단지 패역한 세대의 믿음의 결핍을 드러낼 뿐이다(막 8:12; 마 16:4; 마 12:39). 마 12:39; 마 16:4; 눅 11:29에 따르면 이 세대는 오직 "요나 선지자의 '표적'"밖에 받을 것이 없다. 이것은(Q에 따르면) 이방의 도시 니느웨에서 요나의 성공적인 회개에의 요청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하여 회개하여야만 한다는 것이다(마 12:41; 눅 11:32). 마 12:40에 따르면 물고기에 의해 기적적으로 구조된 것이 이 "요나의 표적"이며 따라서 인자가 "땅 속에" 있는 것, 즉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아마도 이 해석은 눅 11:30에도 적용될 수 있으며(요나는 니느웨에게 표적이 되었다). 요한복음에서는 나흘 만에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일이(요 11:39) 요나의 표적 대신 나온다. 마지막으로 헤롯 안디바는 예수님에게서 (확증해주는) 표적을 헛되이 기대했다(눅 23:8). 마 4:1-11 병행구의 마귀의 요구들도 표적을 요구한 것으로 이해되며, 예수님에게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도전한 것도 역시 마찬가지다(막 15:30 병행구). 폭풍을 꾸짖으시고, 물 위를 걸으시고, 소량의 떡으로 많은 무리를 먹이신 것과 같은 기적들은 출 14-16과 관련이 있으므로 확증의 표적이라는 인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지만, 그러한 기적들은 도움을 주시는 자비의 행위로 묘사된다(막 4:38이하; 막 6:34, 막 6:50이하). 마가복음의 끝맺음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약속하시는데, 이 기적들은 제자들이 보고하였고 교회에서 은사들 가운데서 나타났다(막 16:17; 참조: 눅 10:17-19; 고전 12:4이하, 고전 12:28이하). 그러한 기적들은 선포를 눈에 보이도록 확증하기 때문에 "표적들"이라 불리운다(막 16:20).|③ 비록 요한도 역시 표적들과 표적에 대한 요구에 포함되어 있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인식하지만(요 2:18, 요 2:23; 요 4:48; 요 6:2, 요 6:14, 요 6:30)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적들을 세메이아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기적들을 통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그의 사명을 드러내시기 때문이다(요 2:11; 요 20:30이하). 세례(침례)요한은 아무 표적도 행하지 않은 반면에(요 10:41), 많은 위대한 표적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특징짓는다(요 3:2; 요 7:31; 요 9:16; 요 11:47; 요 12:37). 부활하신 예수님의 나타나심도 이와 유사하게 이해되어야 한다(요 20:30). 요한복음의 기적들은 기적 자체를 넘어 종말론적 구세주를 지시하며(요 6:14; 요 7:31; 요 12:18), 그에 대한 믿음을 가져오는 것이다(요 2:11, 요 2:23; 요 4:53; 요 9:35; 요 11:47이하; 요 20:30이하); 그러나 이 믿음은 피상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채로 남아있기도 하고(요 4:48; 요 6:14, 요 6:30) 거부되기도 한다(요 12:37, 요 12:39). 그리고 예수님이 일개 사기꾼이라는 확신을 표적들이 항상 제거할 수는 없었다(요 11:47이하, 신 13:1-4을 따름). 따라서 표적이 의미하는 것, 즉 기적은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그의 "팔"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신다는 것이 간과된다(요 12:37이하, 사 53:1의 인용; 참조: 요 5:20, 요 5:36; 요 9:3이하; 요 17:4). 표적들을 해석하는 구절들을 제쳐놓더라도 요한은 표적들의 확증하는 능력을 각각의 특성들로써 설명하는데, 그것의 목적은 모세, 엘리야, 엘리사의 기적들 같은 고전적인 실례들을 무색케 하는 것이다(참조: 요 2:1-11; 요 4:46-54; 요 5:1-7과 왕상 17장; 왕하 5장, 요 6:9과 왕하 4:42이하, 요 6:31과 출 16:4, 출 16:13-15). 요 2:11; 요 4:54에서 시작된 표적의(단속적인) 계수는 모세(출 4:8)와 엘리야(왕상 17장)의 처음 두 표적을 상기시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고찰하면 이 표적들은 요한의 신학과 일치하고 빈틈을 드러내지 않는다.|④ 사도행전도 역시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들을 확증하는 표적으로 이해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표적에 대해서는 뒤나메이스라는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되고 또한 세메이아 카이 테라타(표적과 기사)에 부가되어 나타나기도 한다(행 2:22; 행 8:13). 자주 사용된 "표적과 기사"라는 어구는 두 표현 사이의 차이점이 모호해져서 "기사와 표적"이라는 순서도 역시 가능하다(행 2:22, 행 2:43; 행 6:8; 행 7:36).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 가운데서 그를 통하여 행하신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그들 앞에 "입증되셨다"(행 2:22). 이 표적들의 계시적·도구적 성격은 선교사역의 이상에 기초하며 모세를 향하여 있으며, 연속성을 위해 의도되어 있다: 모세는 "애굽과 홍해와 광야에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였으니" 하나님 자신과 같이 임하는 선지자임을 지적하는 것이다(행 7:36이하): 하나님께서 이 선지자에게 능력을 부여하셔서 보내셨기 때문에(신 18:15) 하나님은 또한 예수님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표적의 근원이시다. 표적과 기사들은 사도들에 의해(행 2:43; 행 5:12), "집사" 스데반에 의해(행 6:8), 빌립에 의해(행 8:6; 행 8:13),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행 14:3; 행 15:12) 행해졌다. 비록 하나님 자신께서 사도들의 표적들에서 역사하시지만 행 4:30에 따르면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을 행한다(참조: 행 3:6과 행 2:21이하). 높임 받으신 그리스도로서 예수님은 그의 사자들을 통하여 치유하시고(행 9:34), 따라서 예수님 자신이 그를 선포하는 말씀의 진실됨을 확증하신다(행 14:3). 이 표적들은 말씀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앉은뱅이를 고친 일(행 3:1-8)은, 심지어 적대자들까지도 시인하였으며, 그들이 말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모든 거민에게 알려진 표적으로서(행 4:16), 말씀 선포의 진실됨에 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이 표적들은 사람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며(행 8:6; 참조: 행 9:35, 행 9:42) 시몬 마구스의 마술을 패배 시킨다(행 8:13). 그러나 이 표적들은 애굽의 술사들에 대한 모세와 아론의 승리 같은 단순한 시위적인 기적들도 아니고(참조: 출 7:1-13), 응징의 기적들도 아니며(행 5:1-11은 세메이온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치유이다(행 4:22; 행 9:32-42). 욜 2:30을 인용한 행 2:19에서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는 실로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세메이아)"로 보완된다. 여기서 세메이아는 아마도 예수님과 사도들의 기적을 가리키는 것 같다. 행 15:12에 언급된 "표적과 기사"는 바울과 바나바의 이방인 가운데서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가리킨다.||(b) ① 바울에게 세메이온은 서신을 끝맺을 때 자신의 서명과 같은 (외적) '표시'이기도 하다(살후 3:17). "할례의 표"는 아브라함을, 믿는 이방인들의 조상으로 만든 "믿음의 의의 인"이다(롬 4:11).|②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표적"이지만(고전 14:22)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것을 하나님에 의해 유발된 의사소통으로 인식하지 못하며(참조: 고전 14:21에 인용된 사 28:11), 그것을 조롱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완악함과 구제할 도리가 없는 절망적인 상태를 드러낸다.|③ 마지막으로 세메이온은 임박한 구속과 하나님의 활동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기적'일 수 있다. 바울은 "표적을 구하는 것"을 유대인의 종말론적 기대의 특징으로 간주한다(고전 1:22); 십자가의 선포를 받아들이는 것은 헬라인들이 지혜를 사랑하는 것 만큼이나 똑같이 거리끼는 것이 된다(참조: 막 8:11이하). 고후 12:12에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가운데서 그를 통하여 행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참된 사도의 표"라고 말한다. 그 표들은 바울이 "지극히 큰 사도들"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러한 자기 평가는 어리석은 짓이다(고후 12:11), 왜냐하면 이 표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바울 사도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복음의 진실을 증거하고 복음 선포자를 정당화 시켜준다. 사도의 표는 카리스마적인 기적들 뿐만 아니라 회중들의 삶 가운데서 나타나는 성공적인 선교사역을 가리키기도 한다(참조: 고후 3:2).|적그리스도가 나타날 때 기적을 수반할 것이다. 바울은 신 13:1-4을 따라서 그런 기적들을 "거짓 '표적'과 기사"라고 부른다(살후 2:9). 교회의 분당은 믿음을 시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필요한데, 그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종말론적으로 상징적인 특성을 가진다(고전 11:18이하).|히 2:4에 따르면 예수님의 선포와 그의 최초의 경청자들의 선포는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 증거되었다(참조: 행 2:22).||(c) 요한계시록 기자는 통렬한 묵시적 표적들을, 즉 극적인 사건들을 가져올 상징적으로 의도된 하늘의 장면들을 본다: 즉 초승달 위에 있는 한 여자(계 12:1), 그녀의 대적자 용(계 12:3),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들(계 15:1)이다. 이 표적들은 또 기적적인 일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이 기적적인 일들을 행하여 사람들이 "짐승"을 섬기도록 유혹한다(계 13:13, 계 13:14; 계 19:20). 이 짐승에게서 나온 영들도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종말론적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은다(계 16:14).(O. Betz).|(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K. H. Rengstorf; O. Hofi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