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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시데로스
sivdhro"
철 ir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시데로스(Homer이래로)는 '철'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철 뿐만 아니라 철로 만든것 그리고 철을 거래하는 장소까지도 의미한다. 호머 시대에는 철이 큰 가치를 지니고 있었고 철조각이 상으로 주어지기도 했다. 헤시오드는 철기 시대를 인간의 악의 축소판으로 여겼다. 이 단어는 호머에 의해 딱딱하고 완고하고 무자비한 것을 나타내는데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시데로스는 70인역본에서 70여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발젤(철), 아람어 팔젤(철)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아나톨리아(Antolia)의 병기 제조자들은 BC 3,000년에 이미 철로 만든 칼날을 시험하였다. 한가지 예로 도라크(Dorak)에서 발굴된 것은 BC 2,500년의 것이었다. 철의 야금술은 BC 2,000년대에 힛타이트족이 개발했다고 믿는다.||신명기에 나오는 "쇠풀무"(신 4:20)와 관련하여, 시나이와 네게브 지역에서 용광로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는지 알아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힛타이트족의 철은 두로에서 온 상인들에 의해, 그리고 후에는 제철 기술을 독점하고 있었던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팔레스틴으로 유입되었다(삼상 13:19). 그들의 군사적인 승리는 부분적으로는 블레셋인들의 철 독점에 기인한 것이었다(W.F.Albright, Archaelogy of Palestine, Penguin).||가나안 족속은 사사 시대에 철로 만든 병거(즉 철제 부속이 달린 병거)를 가지고 있었다(수 17:16; 삿 1:19; 삿 4:3).|다윗의 시대에 이르러 철은 못을 만드는데 쓰였으나(대상 22:3) 청동은 그 때까지도 많이 사용하고 있었다.||구약성경에서 철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어, 힘(시 2:9; 렘 1:18)과, 인내와 가혹(욥 19:24; 미 4:13), 그리고 잔인함(단 7:7, 단 7:19; 암 1:3), 고난(신 4:20; 왕상 8:51; 렘 11:4), 노예 상태(신 28:48; 렘 28:14), 불모(신 28:23), 강퍅함(사 48:4)을 나타내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시데로스는 신약성경에서 계 18:12에 한번 상품의 목록에 나온다: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참조: J.H.Thayer; J.G.Baldwin).
시돈
Sidwvn
시돈 Sidon(지)||시돈은 히브리어 치돈의 음역이며, 어원은 추트('사냥하다', 아람어에서는 '낚시질 하다')이다. 따라서 본래 이 이름은 이 곳에 물고기가 풍부한데서 연유했다. 시돈은 뵈니게의 매우 오래된 도시이며, 두로(Tyre) 북쪽으로 20마일 떨어져 있고 베이루트(고대의 베리두)에서 남쪽으로 역시 20마일 가량 떨어져 있다. 시돈은 바다에 면하고 있으며, 상업은 시돈 주민의 특성을 결정지었다. 시돈의 뒤에는(동쪽) 높은 레바논 산맥이 둘려 있다.|요세푸스에 의하면 노아의 손자 가나안이 건설했다고 한다. 이것은 시돈의 오랜 역사를 생생하게 증거해주는 것이다(창 10:15; 대상 1:13). 시돈은 B.C. 1400-1375년의 텔 아마르나 서신에서 언급된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시대에 땅을 분배할 때 "큰 시돈"은 스불론과 아셀 지파 접경에 있었다(수 19:28). 시돈은 B.C. 2,000년경에 가장 번영을 누렸다. 시돈 상인들과 선원들이 이사야(사 23:2)와 에스겔(겔 27:8)에 의해 언급된다.||이스라엘의 성전 건축자 솔로몬은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다고 생각하였다(왕상 5:6). 그는 시돈의 제의에 영향을 받았다(왕상11:5-7). 포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은 성전 재건에 쓸 목재를 시돈 사람에게서 가져왔다(스 3:7). 시돈 사람들의 광신적인 바알과 아스다롯 숭배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많은 배교를 하게 하였는데, 시돈 왕 엣 바알의 딸 이세벨이 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함으로써 그 절정에 이르렀다(왕상 16:31-33; 왕상 18:18 이하; 왕상 18:25-28; 왕상 18:40).||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보(B.C. 63년)는 시돈인들이 천문학, 철학, 예술에서 숙달했다고 한다. 뵈니게인들의 후손인 오늘날의 레바논인들은 이에 대해 강조하여 경의를 표한다.||시돈은 선지자들에 의해 언급된다. 이사야는 시돈 거민이 휴식을 취하러 구브로로 피하지만 허사일 것이라고 예언하였다(사 23:12). 예레미야는 시돈 땅이 느부갓네살에게 예속될 것이라 하였다(사 27:3-6). 에스겔은 시돈이 "이스라엘 족속에게 찌르는 가시"였다고 비난하였다(겔 28:21-24). 요엘은 시돈에게 예루살렘을 노략하고 그 거민을 종으로 판 죄과를 물었다(욜 3:4-6).||시돈의 길고 험악했던 역사를 되돌아보자. 시돈은 살만에셀에게 점령 당한 적이 있으며(B.C. 725년), 산헤드립의 침략을 받았고, 에살핫돈(Esar-haddon)에게 지배받았다. 그는 많은 시돈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앗수르가 멸망했을 때 바벨론의 침공을 받았고, 페르시아에게 점령 당하여 그 통치 기간 동안에- 다섯번째 페르시아 통치 관구의 시돈 속주로서- 시돈의 부는 뵈니게의 모든 다른 지역의 부를 능가하였다. 페르시아의 크세륵세스와 그리스의 해전에 시돈의 함대와 선원들이 참가하였으며, 알렉산더 대제(B.C. 330년)에 의해 페르시아의 속박에서 풀려났다.||그리고 로마 지배 하에서 시돈은 헤롯이 다스리는 동안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행 12:20은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였다"고 기록한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북쪽 지방을 여행하실 때 "두로와 시돈 지경"을 방문하셨으며(막 7:24; 막 7:31), 그 악함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셨다(마 11:21 이하). 그러나 예수님은 갈릴리의 성읍들을 책망하시면서, 고라신과 벳새다를 두로와 시돈에 비교시키며, 두로와 시돈이 고라신과 벳새다보다 더 빨리 응답하였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마 11:21; 마 11:22; 눅 10:13; 눅 10:14). 두로와 시돈 사람들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왔다(눅 6:17).||바울이 죄수로 로마로 가던 길에 시돈에서 그의 동료를 만나도록 허락받았다(행 27:3). 시돈에서 초기 기독교 선교 노력의 결과 이곳은 니케아 공회에 참석한 자들 가운데 하나인 데오도루스 감독의 자리가 되었다(A.D. 325). 유럽으로부터 온 그리스도교 십자군들이 A.D. 1110에서 회교도들에게 최후로 빼앗기게 된 1291년까지 오랜 기간 시돈을 차지하고 있었다. 지중해에 면해 있는 아름다운 성 요한의 십자군 교회는 오늘날 시돈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인간 모양의 석관들- 인간의 두상 형태로 조각된 뚜껑이 있는 돌관- 이 시돈에서 남쪽으로 3/4마일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이집트와 그리스의 영향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시돈 근처에서 발견된 두개골은 두개의 건강한 치아에 황금망 고리로 가공 의치를 고정시킨 고대 치과 의술의 실례를 제공해준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시도니오스
Sidwvnio"
시돈의 of sidon.||시도니오스는 시돈($4605)에서 유래했으며, '시돈에 속한, 시돈의'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시도니오스는 행 12:20에 한번 나온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 시돈($4605)을 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자객
sikavrio"
자객, 암살자 assassins||#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시카리오스는 '자객, 암살', 즉 자기가 목표한 자를 비밀히 반역적으로 살해할 수 있도록 옷 속에 단도나 단검(라틴어 sica)을 감추고 다니는 자를 가리킨다.||(a) 로마법에서 sicarii(시카리). 시카리우스(cicarius)에서 파생한 이 단어는 '단도 소지자, 자객'을 의미한다.|로마에는 sicarii 곧 자객이나 난폭한 살인자에 대한 법이 있었다. 또한 lalrones 즉 무장한 강도떼들에 대한 법도 있었다.||(b) 요세푸스의 저작에서의 Sicarii. 요세푸스는 유대인의 봉기 때에 싸운 의병들을 '강도들'과 '자객'이라고 부른다. sicarii는 벨릭스의 치세 때에 맨처음 등장한다. Sicarii는 메나헴(Menahem)을 추종했으며 애굽에서는 유격병으로 활약했으며, 구레네에서 반란을 선동했다. 그들은 조직된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으며 열심당 운동의 게릴라들이었다. Sicarii는 벨릭스가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가혹한 조처를 취하자 (숨긴) 단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반란 동안 그들은 친로마적인 유대인들을 대항하여 단도를 사용했다. Sicarii들이 이런 일을 한 동기는 그들이 무법자나 광신자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율법에 대한 열심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결하거나 로마 지배에 순교 당하는 쪽을 택했다. 로마인들은 세금, 화폐, 신상, 인구조사로 그 땅을 더럽혔다. 그들을 지지하는 유대인들은 배교자요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는 자들이며, 정치적인 제사장들은 우상 숭배를 하도록 백성들을 부추겼다. Sicarii는 이런 요소들을 제거함으로써, 이 땅을 하나님이 오시기에 합당하게 예비하여 그 땅을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지 않게 되기를 원했다. Sicarii는 불의한 맘몬을 타도하고 자유와 평등의 희년을 시작할 목적으로, 재산을 몰수하고 궁전을 불사르고 문서들을 태웠다.||(c) 랍비 저작들에서 Sicarii. 랍비들은 열심당을 비난하고 이들의 폭력적인 행동, 예를 들면 저장 음식을 불사르고 수도관을 파괴하는 행동들을 비난할 때 이 용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암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시카리오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1:38에 한번 나온다: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천부장은 바울이 반란을 선동하고 4,000명의 sicarii를 이끌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 요세푸스는 두 가지 기사에서 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데, 이 사건의 상세한 내용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다(Jewish War 2. 261ff. Antiquities 20. 169). 비록 이 기사들에서 요세푸스가 sicarii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모든 의병들을 sicarii의 부류에 넣는 로마 관원의 말에서 이 용어를 찾아볼 수 있다.|※ 교부들의 저작에서의 sicarii. 히폴리투스는 sicarii를 열심당원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들을 에세네의 일파로 보는 잘못을 저질렀다. 오리겐도 이들에 대해 언급한다.|(참조: O. Betz).
소주
sivkera
독한 음료(술)||#1. 고전 헬라어 및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시케라(Hesychius)는 히브리어 셰카르(7941: 취하게 하는 것, 독한 술) 또는 세카르(취하게 하는 음료)의 강조형에서 유래했으며, '독한 음료(술)'를 의미한다. 이것은 포도주와 다른 취하게 하는 일종의 음료이며, 곡식과 채소 혹은 과일(대추 야자)의 즙 또는 꿀을 달인 것에서 뽑아낸 달콤한 원료의 혼합물로 만든 인공적인 알코올 음료이다.||70인역본에서 시케라는 14회 나오며, 히브리어 셰카르(7941: 취하게 하는 것, 독한 술)의 역어로 사용되었다(레 10:9; 민 6:3; 민 28:7; 신 14:26; 신 29:5; 삿 13:4; 삿 13:7; 삿 13:14; 사 5:11; 사 5:22; 사 24:9; 사 28:7; 사 29:9).||#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시케라는 신약성경에서 눅 1:15에 한번 선구자 세례(침례) 요한과 관련하여 나온다: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시케라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 아닌 재료로 양조된 것으로 사람을 취하게 하는 강한 독주이다. 이 독주와 포도주는 나실인에게 금하는 음료수이다. 그러므로 천사의 예언은 요한이 나실인이 될 것을 예언한 것이다.|나실인은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린 자(민 6:2)이다. 나환자가 죄의 산 상징인 것처럼 나실인은 거룩의 산 상징이다. 그러므로 나실인에 대한 금령은 온갖 취하게 하는 액체나 포도나무 소산은 시나 껍질까지 식음을 금하며, 삭도를 그 머리에 두는 것과 시체로 몸을 더럽히는 것을 금지한다(민 6:2-7). 이렇게 하여 나실인은 의례적(儀禮的)으로 그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여호와께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민 6:8). 사사기 13장에는 포도주와 독주 및 부정한 것의 식음을 나실인 뿐 아니라 그 어머니에게까지 금한다. 요한의 경우, 이 모든 금령이 상세히 언급되지 않았지만 요한과 그 어머니는 천사가 요한을 나실인이 될 것을 지시한 이상, 구약에서 나실인과 그 어머니에게 요구한 것을 다 지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요한은 모태로부터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아니한 것이다.|나실인의 구별은 보통 경우에 일시적이며 자진적이다. 다만 삼손, 사무엘, 요한은 특별한 나실인이다. 요한은 삼손이 신의 명령(삿 13:7)으로, 사무엘이 모친의 서원(삼상 1:11)으로 모태로부터 평생 나실인이 된 것 같이 나실인이 된 것이다. 법정 헌신의 최고도의 엄격이 그리스도의 선구자에게서 보여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는 상징이 아닌 진실한 완전한 나실인이시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이시다(히 7:26).|나실리즘의 상징적 의미의 두 대표(삼손과 사무엘) 중에 어느 분보다 더 위대한 요한은 그들의 선교의 이중 의미(二重意味), 곧 다만 더욱 높고 더욱 영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외적 힘과 내적 힘을 결합할 것이다. 요한은 다른 삼손으로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여 나쁜 나무를 베버리기 위하여 도끼를 쳐들 것이다(눅 3:9). 요한은 다른 사무엘로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것이다. 요한은 이 사업을 위하여 나실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광야에 나타나기까지 나실인으로서 철저한 신앙과 금계 생활을 계속한 것이다. 그러한 하나님의 깨끗한 도구, 경건한 그릇에 성령이 충만한 것이다. 그리하여 요한은 하나님의 사업에 최선의 봉사를 한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실라
Sivla"
실라 Silas(인)||실라는 아마도 실루아노스($4610)의 축약형인 듯하다.|실라는 예루살렘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 중 첫번째 무리에 속하는 탁월한 인물이었으며, 설교하고 권면한 '선지자'였다(행 15:32).|그는 입교 조건에 관한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가지고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냄 받았다(행 15:1-35).|바울과 바나바 사이의 의견의 불일치로 바울은 제 2차 전도 여행에 실라와 동행하기로 결정하였다(행 15:40에서 시작하여 행 18:23의 제 3차 전도 여행에 합류한 기사).|실라는 로마 시민이었을 것이다(행 16:37). 그는 찬미하였으며(행 16:25) 능변력이 있었다(행 16:31 이하). 그는 바울과 함께 남부 갈라디아를 두루 여행하였으며, 빌립보에서 바울과 함께 옥에 갇혔고(행 16:16-40), 회심한 간수와 가족들의 도움을 받았다.|그는 바울과 함께 데살로니가와 베뢰아로 이동하였다(행 17:1-14). 어떤 이유에서 실라와 디모데는 뒤에 남고 바울 홀로 아덴으로 갔다(행 17:15).|실라는 고린도에서 바울과 함께 있었다(고후 1:19). 데살로니가서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실라는 이 전갈(데살로니가서)을 보냄에 있어서 어떤 역할을 한 것 같다(살전 1:1; 살후 1:1).|실라는 베드로전서를 전달한 자로 여겨지기도 한다(벧전 5:12). 베드로전서의 마지막 세 구절은 실라가 그 서신의 필기자였다고 한다. 실라는 바울이 죽은 후에 베드로를 도와 일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실루아노
Silouanov"
실루아노(Silvanus)||실루아노스/ 실루아노는 사도행전에서 실라($4609)라 불리는 사람과 동일한 사람이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4회 나온다(고후 1:19; 살전 1:1; 살후 1:1; 벧전 5:12).|-->실라($4609)를 보라.
실로암
Silwavm
실로암 Siloam.||실로암은 히브리어 쉴로아흐(사 8:6)의 음역이며,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1. 실완(Silwan)의 샘.||실완은 기드론과 예루살렘의 힌놈 골짜기의 연결 지점의 위쪽의 산허리에 접해있는 마을이다. 그 마을에서 옛날의 엔-로겔(En-rogel) 샘이 내려다 보인다. 그 곳에는 아랍인들, 예멘의 유대인들과 소작농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들 중 얼마는 기드론 계곡에 줄지어 있는 한 때 무덤으로 사용되었던 동굴들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병 환자들은 실완(Silwan)에 살았었다. 그 곳은 아마도 예루살렘 지역에 있었던 성경의 실로암(실로아)은 아니다.||#2. 실로암 수로.||실로암 터널은 예루살렘 물의 공급이 산헤립의 군대의 접근(B.C. 701년)으로 위협받았을 때, 히스기야 왕의 기술자들에 의해 B.C. 8세기에 건설되었다(B.C. 715-687년). 그 이전까지는 노출된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간헐적으로 흐르는 동정녀의 샘(Virgin's Fount〓Spring Gihon[기혼 샘])이 주민들의 주된 물의 공급원이었으며, 주민들은 약 11피트의 웅덩이에서 물항아리를 채우기 위해 돌 계단 33 계단을 내려가야 했다. 일찍이 후에 예루살렘이 건설된 언덕의 엽스 사람들의 점유시나 다윗 또는 솔로몬의 치하에 지상의 수로가 동정녀의 샘으로부터 바로 안쪽 그 옛 도시의 남동쪽 모퉁이에 위치한 옛 실로암 연못(Old Pool of Siloam)까지 물을 운반하였다. 이 옛 실로암 연못은 예루살렘의 가장 오래된 개방된 저수지이다. "천천히(softly) 흐르는 실로아 물"(사 8:6)이라는 구절은 사나운 유프라테스 강과 대조되는(사 8:7), 기혼 샘으로부터 그 연못까지 구불구불하게 흐르도록 파놓은 개천의 흐름을 의미할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은 물 항아리를 채우려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예루살렘이 건설된 고지의 꼭대기 근처에서 기혼 샘까지 터널을 파내려 갔다. 이 터널이 다윗의 사람들이 그 성읍를 빼앗았을 때 그 성읍으로 들어가는 데에 성공한 수구였을 가능성이 있다(삼하 5:8). 나중에 지상의 수로("시내" 대하 32:4)가 기혼으로부터 보다 낮은 곳의 옛 연못까지 건설되었다(참조: 사 7:3).|히스기야왕은 산헤립의 위협에 직면하였음을 깨달았을 때에 "다윗성의 서편으로"(대하 32:30) 기혼으로부터 더 윗쪽의 새로운 실로암 연못으로 물을 운반하는 터널 또는 수도를 건설하였고, 아마도 포위 공격 당할 때에, 새 연못을 방어하기 위해 남동쪽으로 노출된 새로운 성벽으로 둘러쌌다(대하 32:4-8, 30; 사 22:9 이하; 왕하 20:20). 히스기야의 기술자들의 공적은 므깃도와 게셀의 터널에 비견되는, 성경 시대에 물의 공급을 위한 가장 놀랄만한 장치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반대쪽 끝에서부터 시작한 두 그룹의 인부들은 곡괭이들(hand picks)을 사용하여 지그재그로 작업하였다. 그들은 366야드를 가기 위해 583야드를 파나갔는데, 아마도 어떤 장소, 어쩌면 왕들의 무덤들이라고 생각되었던 곳을 피해가려고 한 것 같다; 아니면 아마도 물이 흘러들어가는 천연의 갈라진 틈을 따라간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그 수로의 끝인 실로암으로부터 19피트 떨어진 곳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당시의 주목할 만한 비문에 기록된 대로, 결국 서로 만났다. 고전적인 히브리어로 아름답게 새겨진 그 여섯 행(B.C. 701년)-알려진 가장 오래된 히브리어 비문들 중의 하나-은 이스탄불(Istanbul)에 있는 터키 고고학 박물관(Turkish Archaeological Museum)에 보관되어 있다. 그 비문은 1880년 그 연못에서 놀던 두 소년에 의해 우연히 발견되었다.|"터널을 뚫는 일이 완성된다. 이제 이것은 터널 뚫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부들이 각기 상대편을 향하여 파나가기 위해 아직 곡괭이를 들어 올리고 있는 동안, 구멍이 뚫리기까지 3 규빗을 남겨두고 있는 동안, 각자는 그의 상대방을 부르는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른편의 바위에 갈라진 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터널이 뚫리는 날에 석수들은 각자 동료들을 만나기 위해 파고 또 팠다; 물이 그 연못을 향하여 일천 이백 규빗을 흘러갔으며, 석수들의 머리 위의 바위의 높이는 일백 규빗이었다."|고고학자들과 기술자들(Col. C. R. Conder, M. Clermont Ganneau와 Charles Warrenrud)은 강을 포함하는 그 터널을 완벽하게 연구하고 사진 촬영을 하였는데, 그 터널은 길이가 1,777피트이고 넓이가 20인치 약간 넘으며, 평균 높이는 6피트이다.||#3. 실로암 연못.||동정녀의 샘으로부터 터널이 그 곳까지 터널이 나 있는 실로암 연못은 30×20피트의 옥외 연못이다. 그 연못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 있다. 깨어진 기둥들이 엠프레스 유도키아(Empress Eudoxia) 여왕에 의해 세워진 비잔틴 교회로부터 여전히 남아있다. 아마도 헤롯 왕이 목욕했었다고 생각되는 그 연못의 북쪽에서 5세기의 성당이 발견되었다. 예수님의 시대에, 병자들이 실로암 연못으로 목욕하러 나왔다.|이 연못은 요 9:7-11에서 예수님이 맹인을 고치실 때 언급한 실로암 못이다. 눅 13:4에서 18명의 사람들 위에 무너져 그들을 죽게 한 망대-예수님 시대의 유명한 사건이며 예수님에 의해 보기로 사용되었던 사건-는 아마도 그 연못 근처 오펠(Ophel) 산등성이 위에 있었던 것 같다; 둥근 석조 건물의 잔해는 때때로 이 망대라고 지적된다.|히스기야 시대에 성채 안에 있었던 실로암의 위쪽 연못은 때때로 "왕의 연못"이라고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실로암 연못의 배수구에 의해 관개되는 투로포에온(Tyropoeon) 유역 입구의 비옥한 지대에 히스기야 왕의 정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정원은 아직도 정성스럽게 포도와 야채들이 경작되고 있다(왕하 18:17; 사 36:2; 느 2:14, 3:15).|(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NBD)
앞치마
simikivnqion
좁은 앞치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시미킨디온의 기원은 라틴어이며, '좁은 앞치마' 또는 아마포 가리개를 의미하며 노동자들과 종들이 습관적으로 걸쳤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시미킨디온은 신약성경에서 행 19:12에 한번 나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시몬
Sivmwn
시몬 Simon(인)||시몬은 히브리어 쉼몬(들음)의 음역이며, 신약성경에 나오는 몇몇 사람의 이름이다.||1. 시몬 베드로. 베드로를 보라.||2. 열 두 제자 중 하나인 가나안인 시몬(마 10:4; 막 3:18), 또는 "셀롯" 즉 한 유대 민족주의 당파의 일원인 시몬(눅 6:15; 행 1:13).||3. 예수님의 형제(마 13:55; 막 6:3).||4. 예수님께 고침받고 예수님을 베다니에 있는 그의 집에 초대하여 대접한 문둥이(막 14:3-막 14:9).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사건은 시몬의 집에서 일어난 일이다.||5.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도록 강요당한 북아프리카 구레네(Cyrene) 태생의 사람(막 15:21과 병행구절들). 그는 아마도 탁월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였다.||6.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여자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그의 집에 예수님을 초대하여 대접한 한 바리새인(눅 7:36 이하); 의심할 여지없이 누가의 (4)에 대한 변형이다.||7. 가룟 시몬, 예수님의 배반자인 유다의 아버지(요 6:71, 요 13:26).||8. 베드로가 그의 해변의 집에 묵었던 욥바의 피장(tanner)의 이름(행 9:43; 행 10:6; 행 10:17; 행 10:32).||9. 사마리아의 마법사, 시몬(행 8:9; 행 8:13; 행 8:18; 행 8: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BD).
시나
Sina'
시내 Sinai.||#1. 구약성경의 용법.||어미변화를 하지 않는 고유 명칭 시나(Sinai)는 히브리어 시나이를 음역한 것이다. 시내의 의미는 불확실하며, '진흙 투성이의, 점토질의, 빛나는'이라는 의미들이 암시되어 있다. 시내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앞에서 진을 쳤으며, 모세가 여호와와 대화를 주고 받은 거룩한 산의 이름이다.|시내라는 명칭은 출 16:1; 신 33:2; 삿 5:5; 시 68:8; 시 69:9; 집회서 48:7에 나타난다. 시내산을 뜻하는 다른 말들은 토 오로스 토 시나(출 19:11, 출 19:20, 출 19:23; 출 24:16); (토)오로스 시나 (출 19:16; 레 7:38; 레 25:1; 레 26:46; 민 3:1; 에스드라하 19:13; 시빌신탁 3, 256).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이 산 앞에 주둔해 있었다(출 19-24). 모세는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과 이야기 하였고(출 19:3, 출 19:10; 출 24:9), 내려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였다(출 19:14). 언약을 체결한 후에 모세는 사십주야를 산 위에 있었다(출 24:18; 참조: 출 32장). 여호와께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임재를 계시하실 때는 천둥과 검은 구름으로, 그리고 백성들로 하여금 산에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나팔 소리를 내면서 계시하셨다(출 19:16-24). 이곳은 십계명의 자리이다(출 20; 참조: 신 5장).|모세가 산 위에 있는 동안 백성들은 아론을 부추겨서 금 송아지를 만들었다(출 32장). 여호와의 영광은 반석의 틈에 있는 모세에게 계시되었다(출 33:17-23). 두 번째 석판들은 산 위에서 만들어져서 모세가 금 송아지를 보고 산 기슭에 던져 깨어진 석판들을 대신하게 되었다(출 34:1이하; 참조: 출 32:19).|엘로히스트 층(Elohist stratum)의 것으로 알려진 구절들과 신명기 문학에서 이 거룩한 산은 호렙산이라고 일컬어졌다(히브리어 호렙; 70인역 코렙). 지리적인 기록들에서 두 산들 사이의 차이점은 식별될 수 없다. 따라서 이 두 명칭은 동의어이다(참조: 출 3:1; 출 18:5; 신 1장; 신 4:10; 신 5:2). 신 1:2에는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가는데는 열 하루가 걸렸다고 되어 있다. 민 33:16-36에는 이 산과 가데스 사이에 있는 지방의 목록이 상세하게 열거되어 있는데, 이 목록은 순례자들을 위해 보존되어온 것 같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사제들과 경쟁하고 난 후 이세벨에게서 도망칠 때 호렙산을 피난처로 삼았다(왕상 19:1-18). 여기에서 그는 재기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고 자신의 마지막 사명을 인식하였다.|시내산의 정확한 위치는 상당히 논의 되어왔다. 전통적으로 시내산은 시나이 반도의 꼭대기에 있는 높은 산들 사이의 예벨 무사(Jebel Musa)에 있었다고 한다. 다른 곳으로는 라스 에스 - 사프사프(Ras es - Safsaf)가 있는데, 이 곳은 북서 아랍지방 곧 성경상의 미디안 지방 근방에 있다. 이 곳이 유력한 시내산의 위치로 받아들여져 왔는데, 그 이유는 이 곳이 출애굽기 19장의 기사와 일치하는 화산 활동지라는 점, 그리고 모세가 미디안 사람들과 친밀했다는 점 때문이다(출 3:1; 출 18:1). 세 번째 위치는 가데스 바네아 지역에 있는 산들 중의 한 곳이다(참조: 신 33:2; 삿 5:4이하; 민 20:16). (이 논의의 개요에 대해서는 G. E. Wright, JDB Ⅳ 376이하를 참조).|유대교의 전승: 유대교에서는 시내산에서 있었던 사건에 관하여 자주 언급되며 이 사건에 관하여 광범위하게 묘사된다. 필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낙원과 같은 상태에 있었지만, 의지가 박약하여 또 다시 죄를 짓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에 랍비 전승들에서도 이런 식으로 언급되었다. 심지어 악한 충동조차 물러나고 백성들은 다시금 아담이 낙원에서 받은 광휘를 받았다. 그러나 금 송아지를 만든 죄가 이 사이에 끼어 들게 되어, 이제 광휘는 메시야 시대에만 돌아온 것이다. 구전도 포함되는 율법은 이방인들도 알 수 있도록 모든 언어로 주어졌다. 그러나 이방인은 율법을 거부했고,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법령에 따라 삶을 구체화하였다. 시내산은 높고 거룩한 산이요, 하나님의 임재의 처소이다(Philo).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이곳에 다시 오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곳에서 말씀을 하신 것처럼, 그는 종말에도 또 다시 말씀을 하실 것이다. 시내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시켜 주며, 이 곳은 마침내 하나님의 보좌가 될 것이며, 생명 나무를 지닐 것이며 낙원의 산과 융합될 것이다(Ethiopian Enoch). 한 랍비 전승에 따르면 다볼과 갈멜산도 시내산과 결합하여 하나님의 성소의 자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시내는 사도행전과 갈라디아서에 각각 2회씩 언급되어 있고 히브리서 12장에도 암시되어 있다.||(a) 순교 전에 행한 스데반의 연설에 이스라엘 역사 개요가 나오는데, 로제(E. Lohse)는 이 때 스데반이 유대전통을 가지고 그것을 약간 수정만 하여 연설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TDNT Ⅶ 285). 두 구절에서 천사가 모세와 이야기 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곧 첫 번째는 시내산 광야 가시나무떨기 불꽃 가운데에서(행 7:30; 참조: 출 3:1 이하), 그리고 다음에는 "생명의 도"를 주는데에서(행 7:38; 참조: 출 19장; 신 32:47) 따라서 시내산은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데반이 자신의 개관에서 끌어낸 제언은 현재의 유대인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b) 갈 4:21-31에서 바울은 현재의 완고하고 순종치 않는 이스라엘을 하갈(창 16:15; 창 21:2, 창 21:9)과 시내산(갈 4:24이하)과 동일시하는데, 하갈과 시내산은 각각 언약의 약속 밖에 있는 자와 율법에 매여 있는 자에 대한 상징이다. 이것들은 모두 종 노릇하는 현재의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것으로, "자유자"요 우리의 "어머니"인 위에 있는 예루살렘과는 대조된다(갈 4:26).||(c) 히 12:18-29에서 시내산은(그렇지만 그것이 명칭으로 그렇게 언급되어 있지는 않다) 시온산과 대조되어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나타내고 있다. 출 19장과 출 20장에서 끌어내어진 시내산에 관한 기록은 일반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산은 거룩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데 반해, 시온산에 대한 기록은 신자들이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23절)와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님과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로 나아왔음(24절, 아벨의 피는 복수에 대한 외침, 창 4:10)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말하신 자를 거역 할"(25절)만한 더욱 더 좋은 이유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찌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28절 이하).|(참조: C. Brown).
겨자씨
sivnapi
겨자 mustar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시나피(Diocles; Ptebt)는 애굽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되며, '겨자' mustard를 의미한다.|70인역본에는 나타나지 않는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시나피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공관복음서에만 사용되었다.|시나피는 막 4:30-32; 마 13:31이하; 눅 13:18이하에 나오는 겨자씨 비유와 마 17:20; 눅 17:6에서 겨자씨 같은 믿음에 관한 말씀에서 나온다. 두 경우 모두에서 강조점은 겨자씨 낟알이 작다는 데 있다. 겨자씨는 팔레스타인의 격언에도 나온다. 막 4:30이하와 병행구에서 이 식물의 크기는 그 씨앗의 작음과 대조되어 묘사되어 있다.|많은 주석가들은 이 식물이 강한 성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팔레스타인에서 때때로 발견되고 아랍에서 카르달(hardal)로 불리는 소위 겨자나무(Salvadora Persica L)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아람어 하르델라는 풀(plant)과 나무를 모두 포괄한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시나피는 분명히 그럴 리가 없다. 더욱이 그 나무는 나무들 중에서 특히 두드러질 만큼 키가 크지 않으며, 따라서 그 비유에서 사용되기에는 별로 적합하지가 않는다.|또한 시나피는 막 4:30이하에서 분명히 라카나(한글개역 "나물, 풀")에 속하는 것으로 고려된다. 관목이 자라서 마침내 덴드론("나무")이 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마 13:32; 눅 13:19).|보다 정확히는 흑겨자(Sinapis nigra L = Brassica nigra)를 가리킬 것이다. 이 흑겨자의 씨는 절대적으로 가장 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극히 작다(725 ~ 760개의 씨앗의 무게가 1그램이다).||(a) 기적을 이루는 믿음에 관한 말씀은 공관복음서에서 세 가지 다른 설명에서 발견된다: 막 11:23(병행구 마 21:21); 마 17:20; 눅 17:6.|문맥은 다양하며 종속적이다. 그 말씀은 원래 고립된 것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각 구절의 두 번째 부분은 마 17:20에서는 산을 옮길 수 있다고 하고, 막 11:23에서는 산을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다고 하며, 눅 17:6에서는 뽕나무 밭을 바다로 변하게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눅 17:6의 이례적인 문구는 거의 이차적인 기원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지 않으며, 아마도 원래의 것으로 가장 잘 주장된다. 마 17:20은 당시에 널리 보급된 표현에 일찍이 동화되었으며, 또한 과장법(나무가 산이 된다)을 사용한다. 막 11:23은 그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다. 하지만 내용에 있어서 확실하다고 할 수는 없다. 막 11:23의 피스티스에 대한 석의("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는 눅 17:6과 마 17:20의 훨씬 더 대담한 진술에 대한 이차적 설명이요 해석임이 거의 분명하다: ("믿음이 한 겨자씨 만큼만 있으면") "겨자씨 한 알"은 단순히 가장 작은 양을 나타낸다. 특별히 큰 믿음이 필요치 않다; 가장 큰 약속이 가장 작은 믿음에도 적용된다. 믿음의 좀 더 크고 작음에 관한 문제는 믿음이냐 불신이냐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의해 무시된다. 오로지 진정한 믿음만 있다면 그것의 양은 별 의미가 없다. 믿음은 그 자체를 바라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써 믿음 있음을 스스로 보여준다. 믿음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역사하시도록 하면 불가능이 믿음으로 인해 가능해진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막 11:23의 말씀과 기도에 관한 말씀(막 11:24이하)에 대한 마가 이전의 결합을 정당화 해준다. 마 17:20은 또한 막 9:29에 기록된 기도에 관한 언급과 조화를 이룬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기도에서 표현된다.||(b) 전승에 따르면 마 13:31이하와 눅 13:18이하에서 사용된 겨자씨 비유는 누룩의 비유와 짝을 이루고 있으나, 막 4:30-32과 콥트어로 된 도마복음의 증언에 따르면 원래 고립된 비유였던 것 같다. 이 비유는 다른 형태로 전해져 왔다. 따라서 마가는 하나의 사실을 묘사하고 누가는 과정을 기술하는 반면 마태는 그 둘을 결합시킨다. 도마복음은 마가복음의 형식을 지지하며, 마가와 마찬가지로 씨앗의 작음과 식물 크기의 대조를 강조한다. 이 대조가 이 비유의 결정적인 특징이다. 비록 하나님 나라 혹은 교회의 점진적인 확장이 묘사되긴 하지만 그 관심사는 성장 과정에 있지 않다. 작음과 큼이 대조적으로 병치되어 있다.|또 미래의 바실레이아의 압도적인 크기가 묘사되긴 하지만 크기의 마지막 결과에 관심을 집중하지도 않는다. 그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은 이것에 대하여 가르침 받을 필요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비유의 초점은 분명히 출발점에 놓여 있다. 그 출발점은 놀랄 만큼 너무나 작아서 마지막 결과의 관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너무나 다르게 보이지만 겨자 나물에서나 바실레이아에서나 마지막 결과의 여전히 필수적인 전제요 보증이다. 이 비유의 배후에는 분명히 바실레이아가 비록 지금은 감추어져 있고 두드러지지 않지만 이미 현재의 예수님의 역사에서 그 징후가 보인다는 주장이 놓여있다. 이 비유의 목적은 이 뚜렷이 보이지 않음이 거치는 것이 아니라 확신의 보증이 되게 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능력의 현재의 증거가 감추어 있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임박한 승리에 찬 실행에 대한 약속을 본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까지 그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시리라는 맹세의 약속이다. 겨자씨 비유는 이러한 확신을 불러 일으킨다.|(참조: Hunzinger; Walter Bauer; J. H. Thayer).
베 홑이불
sindwvn
고운 베(옷)||#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신돈(trag., Hdt. 이래)은 아마도 인도스(%1004: 인더스강, 인도인)에서 유래한 파생어인 듯하며, '고운 베(옷)'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신돈은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히브리어 사딘(아마포 실내복, 외투)의 역어로 '베옷'을 나타낸다(삿 14:12; 삿 14:13; 잠 31:24).||#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신돈은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공관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삼베, 고운 베옷', 예수님의 시체를 싼 고운 베옷에 대해 사용되었다(마 27:59; 막 15:46; 눅 23:53).||(b) 막 14:51; 막 14:52에서 '무릎까지 내려오는 속옷'이나 '밤에 나체에 걸치는 가볍고 헐거운 옷'을 가리킨다. 혹자들은 속옷보다 홑이불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까부르다
siniavzw
체로 치다, 체질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시니아조는 시니온(%703: 체, 까부르는 키)에서 유래했으며, '체로 치다, 체질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시니아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22:31에 한번 나온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여기에서 사단은 시몬 베드로를 밀 까부르듯 하기를 원하지만, 주께서 그를 위해 기도하므로, 그의 약함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 말씀은 분명히 비유적인 것이다. 체로 치는 것은 믿음에 대한 시험이다(참조: 욥 1장). 베드로는 실패할 것이나(눅 22:34) 주께서 그를 붙들어 주고 회복시켜 줄 것이며, 따라서 이후에 그는 다른 사람들을 강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참조: E. Fuchs).
시튜토스
siteutov"
살찐 fatt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시튜토스는 시튜오(%704: 밀로 먹이다, 살찌우다)에서 유래했으며, '영양이 좋은, 살찌워진, 살찐, 기름진'을 의미한다(Xen., Polyb.).||#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시튜토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살찐'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왕상 4:23; 렘 46:21).||#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시튜토스는 누가복음에만 3회 나온다.|눅 15:25; 눅 15:27; 눅 15:30에서 탕자의 비유에 나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