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
sofiva
지혜 wisdom||#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소피아(Homer. 이래)는 '지혜'를 의미하며, 매우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지식에 관해 사용된다. 그러므로 이 단어가 뜻하는 미묘한 의미의 차이는 각각의 특수한 경우마다 문맥에서 찾아야 한다. 이 단어 및 단어군은 유별난 능력과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초기에는 실제적인 영역까지도 포함했으나(목수의 소피아, Homer. I1), 후기에는 이론상의 지식에 중점을 두고 있다. 후기의 소피아는 가르침을 받을 수도 있고 습득할 수도 있는 지식으로 간주되었다. 스토아 학파에서는 이론과 실제가 일치한다: "지혜는 깨닫게 된 지식이다"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자의 행동은 소피아이다. 그 행동에 있어서 지혜로운 자 그 자신은 스토아 철학의 필요 불가결한 주체이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소피아는 70인역본에서 약 260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호크마(지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출 28:3; 신 4:6; 삼하 14:20; 왕상 2:6; 왕상 5:9이하; 욥 4:21; 욥 11:6; 시 37:30; 잠 1:2, 잠 1:7; 전 1:13, 전 1:16; 전 1:18; 렘 8:9). 이 단어는 또한 다음에 나오는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된다: 그리고 비나(이해, 잠 2:3; 잠 3:5); 테부나(이해, 왕상 3:1; 참조: 왕상 5:9 [왕상 4:29]; 잠 18:2); 다아트(지식, 잠 1:7, 잠 1:29); 무사르(징벌, 단련, 훈계, 징계, 권함, 훈계, 잠 8:33); 마하셰베트(사상, 착상, 출 35:33); 세켈(통찰력, 사려분별, 대상 22:1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소피아는 신약성경에서 5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전통적 용법.|복음서에서 이 단어의 용법은 일반적으로 구약성경 및 유대개념과 연관되어 있으며, 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 간주된다.|눅 2:40에서 예수님의 지혜가 '자라다'라는 말씀은 구약성경의 용례를 반영하고 있다(참조: 삼상 2:26). 이것은 율법의 지식과 경건한 삶의 형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눅 2:52에서도 같은 의미를 지닌다. 막 6:2에는 목수 아들의 지혜에 대한 나사렛 주민들의 놀라움이 묘사되어 있다(참조: 마 13:54). 사도행전에서 스데반도 또한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과 지혜를 소유한 자로서 묘사되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의 증거에 대한 반론을 펼 수 없었던 것이다(행 6:3, 행 6:10). 구약성경의 전례가 정확하게 언급되어 있다(행 7:10; 참조: 창 39:2이하, 창 39:21; 창 41:40-46; 시 105:21). 다가올 마지막 날 핍박 당할 때 변명할 말을 위해 지혜를 주시리라는 약속(눅 21:15)도 역시 동일한 용어로 공식화되었다.||(b) 유대인의 것과 같은 개념이 나타난다.|지혜가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부른다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를 인격체로 이해하는 전통이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 병행구절, 눅 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라는 문장 배후에 놓여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예수님(그의 증거자인 요한도)은 구원을 가져다 주는 "지혜"의 입으로 이해된다. "이 세대"에 대한 심판의 말씀을 도입한다면(이것이 눅 11:49에서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으로 소개되는 반면 병행구인 마 23:24이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땅에 오신 지혜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세대"를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하여 땅 끝에서 온 남방의 여왕과 대면시켰는데 여기에 함축된 책망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라는 언명에서 확실시 된다(마 12:42, 병행구절 눅 11:31; 참조: 왕상 10:1-10; 대하 9:1-12). 사람들이 경멸하는 하늘의 지혜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이 점을 매우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이 지혜는 최종적으로 출현하였으며 소피아 기독론에 대한 거론은 일리가 있는 것 같다.||(c) 바울서신.|① 롬 11:33이하에서 바울은 지혜 용어와 지혜 개념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찬양한다. 이제 하나님의 지혜는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야만 한다는 점이 다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기 때문이다(참조: 롬 10:4, 롬 10:9-10).||②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고린도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순한 지혜의 말로 생각하지 않는다(참조: 고전 1:17; 고전 2:1; 고전 2:4). 그것은 십자가의 말씀이다(고전 1:18 이하). 동시에 바울은 그의 비판자들의 언어를 사용하여 이 말씀을 참된 지혜라고 묘사한다. 고린도인들에게 지혜는 분명히 이 시대에 속하지 않은 구원의 축복이며 이전에는 감추어졌으나 지금 우리의 종말론적 영화(glorification)를 위해 계시된 것이다. 계시를 받아들인 자들은 낮아졌다가 높임을 받으신 주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알기 때문에, 영적이며 지혜롭게 되고 현재와 미래의 모든 것을 알며, 새로운 시대가 완성될 때 심판 받지 않는다. 바울은 십자가를 무시하는 어리석음을 세상의 지혜라고 부름으로써 평가절하한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지혜로운' 십자가의 어리석음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고전 1:25). 그리스도께서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시며, 마찬가지로 믿는 자들도 그들 자신의 지혜는 없으며, 오직 어리석은 자가 되어 그리스도에게서만 능력과 지혜를 구할 때에 지혜롭다.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들을 자신께로 부르심으로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지혜로운 것들을 무효로 하시기 위해 지혜롭지 않은 것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자신을 우리의 지혜가 되게 하셨으므로 자랑할 여지가 없다. 십자가는 헬라인들과 서기관들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하나님을 알도록 세상에게 그의 지혜를 줄지라도 세상은 자신의 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전 1:21).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는 전도의 어리석음, 즉 그 메시지에 일치하는 선포의 형태를 통해서이다(고전 2:1). 이러한 원칙에서 바울은 오직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시작에 기초해서, 그리고 종말과 관계 있는 믿는 자들이 세상과 확고하게 거리를 둠으로 고린도인들이 그리스도에 대해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을 지지한다. 물론 많은 해석자들은 세상의 지혜를 헬라 철학에 속하는 것으로 보며, 따라서 바울은 여기에서 특정한 영지주의의 형태와 그것과 관계된 카리스마적 언설에 대해서가 아니라 고린도의 교육받은 계층에 호소하는 철학적이며 수사적인 복음에 대한 관념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고 결론짓는다.||(d) 골로새서와 에베소서|골 1:9과 엡 1:8에서 하나님의 뜻과 가치있는 행위를 포함하는 기독교적 지식의 성장을 소피아로 부른다. 이 지혜는 은혜를 얻는다(엡 1:7). 이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종말론적 축복에 대한 지식을 포함한다(엡 1:17-18). 이 지혜는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지식인데, 그리스도께는 모든 지혜의 보물들이 감추어져 있다(골 1:26-27). 이 지혜는 인간의 교훈인 영지주의적 교사들의 거짓 소피아(참조: 골 2:8)와 반대되는 것이다. 엡 3:10에서 문맥은 하나님의 각종 지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그리스도께 들어감으로 성취되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숨겨졌다가 나중에 다시 높아지는 지혜의 개념은 공식화된다.||(e) 요한계시록|계 5:12의 죽임당한 어린 양은 종말론적 선물로 지혜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참조:7:12). 계 13:18과 계 17:9의 지혜는 비밀스러운 지식이다. 특별한 지식이 짐승의 수를 세고 계 17:1 이하의 환상을 해석하기 위해 요구된다. 오직 고백하는 자들만이 그 의미와 그 날에 일어나는 일의 결과를 이해할 수 있다.||(f) 야고보서|야고보서에서 지혜는 도덕적으로 올바른 발걸음이다(참조: 약 3:13, 약 3:17-18). 이 지혜는 다툼과 무질서가 아닌 평화로 인도한다. 이 점에서 지혜는 적대자들이 추구하거나 가르치는 지혜와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다. 이 지혜는 이론적인 것이 않고 실제적이고 도덕적인 결과로 그 자체를 나타낸다.||(g) 베드로후서|벧후 3:15은 바울이 "그 받은 지혜대로" 썼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 말씀은 지혜를 사도의 가르침과 동등시하고 있다.|(참조: V. Wilcke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