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비한
tapeinov"
낮은, 비천한 Iowly, 겸손한 humble.||#1. 고전 헬라어 문헌||기본어 타페이노스는 핀다르(Pindar, B.C 55세기)의 작품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단어는 본래는 '낮게 놓는 것'이라는 의미였으며,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비유적 의미가 발전되었다.||(a) 이 단어는 '낮은, 천한, 하찮은, 중요하지 않은, 약한, 가난한'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도시, 나라, 국가, 정치가, 군사력, 별, 강, 상품, 영향력, 인간의 정신과 용기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정신적이거나 윤리적인 상태에 관해서 사용될 때는 '천한, 비굴한, 노예의'를 의미한다. 보통 아첨이나 굴종에 대해 경멸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문이 좋지 않은 태생, 가난한 낮은 신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 사회적 신분에 기인한 신복의 아부성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c) 이 단어는 어려운 상황이나 비천한 상태, 또는 탄원자들과 같이 스스로 비하하는 상태를 표현한다.||(d) 이 단어는 '겸손한, 순종하는, 유순한'을 의미하며, 이러한 행위는 훌륭한 군대나 가족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복종은 단순한 가장(假裝)이나 비굴하게 굴종하는 자기 포기가 되어서는 안된다.||(e) 이 단어는 종교적 문맥에서는 앞의 윤리적인 의미에서와 같이 '비천한' 을 의미하지 않고 '겸손한, 순종하는'을 의미하며, '신들의 옳은 법에 자신의 행위를 일치 시키는것' 등을 의미한다. 이 모든 용법에 있어서 이 단어의 본래의 실질적 의미, 즉 위에 있는 것, 높은 것에 대하여 '아래 있는, 낮은'이라는 의미의 흔적이 전부 남아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타페이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12개 히브리어형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a) 이 단어는 '낮은, 평평한, 아래의'를 의미한다(수 11:16; 삿 1:15; 시 123:6이하; 시 137:6; 레 13:3-26; 레 14:37).||(b) 이 단어는 '굴복한, 작은, 빈약한, 하찮은, 비열한, 천한'을 의미한다(집회서 25:23; 29:4; 레 27:8; 겔 29:14 이하; 단 3:37; 삿 6:15).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작거나, 보잘 것 없는 자를 택하신다(삿 6:15; 삼상 18:23). 하나님은 타페이노이(복수)의 하나님이시다(유딧 9:11). 타페이노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이다(습 2:3).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구하는 자들을 이스라엘 중에 남겨 두신다(습 5:12).||(c) 이 단어는 '굴복당한, 억압받는, 압제받는'을 의미한다. 외부 세력이나(유딧 16:11; 마카베오일서 14:14) 부한 자들에 의해(암 2:7; 사 58:4) 이런 압제를 받는다.||(d)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을 높이신다(시 18:27; 54:18). 낮은 자들을 하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이다(시 138:6).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신다(시 1O2:l7). 메시야는 온유한 자들을 위해 공의를 세우시고 억압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을 선언하신다(사 11:4). 여호와께서는 시온을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삼으셨다(사 14:32; 참조: 25:4). 사 49:13에서도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신다. 평강에 대한 언약은 낮은 자에 대하여는 불변적이다(사 54:10,11). 하나님은 겸손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돌보신다(사 66:2).||#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비천한, 겸손한'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a) 눅 1:52은 눅 3:5에 대한 결론이며,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에 대해 언급한다: "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b) 이 약속과 교훈과 경고의 근거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삶의 방식은 마 11:28이하에 나오는 초대의 말씀에서 해석되어 있는 것과 같다. 주님은 "온유하고(프라위스) 마음이 겸손하다(타페이노스 테 카르디아)". 이 두 개의 표현은 대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으며, 하나님께 헌신하셨다는 사실을, 동시에 주님은 사람에게도 겸손하셔서 그들의 종이자 조력자로 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눅 22:27; 막 10:45; 마 20:28). 이것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주님을 따를 때 그들에게 종말론적 안식을 주신 까닭이다. 이것은 율법교사의 윤리적 모범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집회서 51:23-30과는 대조적이다.(참조: A. Schlater).||(c) 고후 10:1에서 바울은 그가 적대자들을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이라고 호소할 때 이는 적대자들의 모욕적인 말을 인용하고 있다. 사도의 이 호소 배후에는 그가 고린도 교인들과 '마주 대하여 있을 때'에는 "겸비"(비열하거나 빈약한 것을 뜻할 수 있음)하지만 떠나 있을 때에는 그 방법에 있어서 담대하다는 비난이 스며 있다. 그의 대적자들은 평소의 방법대로 진리를 비진리 - 바울의 관용을 연약함으로 해석함 - 로 왜곡했다(참조: F.G.Carver).||(d) 겸손에 대한 바울의 권면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명백한 실제 모습에 근거한다. 롬 12:16(참조: 1절)은 자만과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 구절은 토이스 타페이노이스를 중성으로 보느냐 남성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너희 자신을 비천한 일에 바쳐라'(RSV의 난외 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낮은 자와 함께 행하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필립스(Phillps)는 '거만히 굴지 말고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라'고 의역하였다.||(e)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권면들을 겸손에 대한 구약성경과 바울서신의 의미에 아무 것도 새로운 뜻을 추가하지 않는다. 약 1:9 이하는 부자와 대조하여 사회적으로 낮고 가난한 자를 언급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낮은 형제"는 가난에 찌든 형제이지만 단순히 가난한 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가난한 그리스도인은 비참한 빈곤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그는 그가 겪는 궁핍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물질적인 부족에서 들어 올리는 참 기쁨의 근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높임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갖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의 가치 있는 인식이라 하시기에 적합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했음을 알고 인생의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헤아리게 된다면 그는 만족하며 기뻐하는 자가 되는데 많은 물질적 편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빌 4:10이하).|한편 부한 형제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면 이 절들은 물질적인 부요를 의지하는 개종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다음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한 형제가 누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은 그가 낮아진다는데 있다. 이러한 겸비의 과정은 부한 자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겪는 가치의 재정립이다(A.F.Harper의 야고보서 주석 참조).||(f) 약 4:6b와 그 병행구절 벧전 5:50는 잠 3:34(LXX)을 인용하는데, 그것은 겸손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하고 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주 앞에서 낮추라"(약 4:10과 그 병행구절인 벧전 5:6; 참조 : 창 16:9; 집회서 2:17). 이 두 서신들이 서로 문학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유사성은 '기독교의 일상적인 권면'(참조:M.Dibelius)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g) 교회의 "겸손" 개념은 점차로 종말론적 기대와 그의 일치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부터 참회와 금식에로의 경향과 그 구체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클레멘스일서와 헤르마스(Hermas) 문서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다.|(참조: H.H.Esser; W.Grundmann). → $5013 타페이노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