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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타베르나이
Tabevrnai
여인숙, 상점, 가게.||명사 타베르나이의 기원은 라틴어이며, '여인숙, 상점, 가게'를 의미하며, 삼여관(Three Tarerns)으로 나타난다|명사 타베르나이는 신약성경에서 행 28:15에 한번 삼'관'으로 나타난다: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삼여관은 로마와 압비오 시장 사이, 압비오 도상에 있는 여인숙 또는 휴게소의 이름이며, 로마 마일로, 압비오 저자로부터 10마일, 로마로부터 33마일 거리였다(Cic. ad Attic.).|(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다비다
Tabiqav
다비다 Tabitha(인)||타비다는 '사슴'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행 9:26; 행 9:40에만 나온다.|타비다/ 다비다는 그녀의 자선 행위로 유명했던 욥바의 여자 그리스도인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차례
tavgma
순위, 위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그마(X., Pla. 이래)는 탓소($5021: 순서 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 정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순서 있게 배열된 것, 고정된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이 단어는||(a) '정해진 금액'|(b) '집단, 군대의 분류, 군단'|(c) '지위, 계급, 순위'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타그마는 70인역본에서 17회 나오며, 히브리어 테켈(1714: 기, 군기, 민 2:2이하-24; 신 10:18; 신 10:22; 신 10:25), 라글리(7273: 걷는, 도보의)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군대'(민 2:2이하; 민 10:18이하), '보병'(잠 4:10), '진'camp(삼하 23:13)을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타그마는 신약성경에서 고전 15:23에 한번 나온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여기서 타그마는 하나의 서열 중에서 각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특정한 위치를 가리킨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탁토스
taktov"
정한, 결정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탁토스(Thu. 이래)는 탓소($5021: 순서 있게 정렬하다, 배열하다, 정리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배열한, 결정한, 정한'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탁토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12:21에 한번 나온다: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여기서 탁토스는 '정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탈라이포레오
talaipwrevw
비통(참)함을 경험하다, 심한 노고를 겪다, 고통을 당하다, 고생하다.||#1. 일반 헬라어 문헌||동사 탈라이포레오(Eur와 Thuc 이래로)는 탈라이포로스($5005)에서 유래했으며, '비통(참)함을 경험하다, 심한 노고를 겪다, 고통을 당하다, 고생하다'를 의미한다.|고전 헬라어 저술가들은 탈라이포레오를 힘든 일을 참고 견디는 자나 또는 아마도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참을 수 없는 한계점에서 고민이나 곤경을 겪는 자를 묘사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용어들이 가지는 기본적 의미는 육체나 정신, 또는 환경이든 간에 비참하고 곤궁한 상태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탈라이포레오는 70인역본에서 17회 나타나며, 히브리어 아와(빗나가다, 구부려지다), 샤다드(난폭하게 대우하다, 멸망하다, 약탈하다)의 역어로, 대개 일반적인 육체적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탈라이포레오는 신약성경에서 약 4:9에 중간태로 단 한번 나타나며, '비통함을 경험하거나 느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참조: R.K.Harrison; J.H.Thayer).
고생
talaipwriva
힘든 일, 고난, 곤고, 비참함.||#1. 일반 헬라어 문헌||명사 탈라이포리아는 탈라이포로스($5005)에서 유래했으며, '힘든 일, 고난, 곤경, 곤란, 비참함'을 의미한다. 이 명사는 규칙적인 활동이나 보통의 습관의 개념으로부터 고된 일이나 곤경 또는 고통이란 개념까지 다양하며, 후자에는 육체적 질병에 의해 야기된 고통도 함축한다. 파피루스에 나오는 몇몇 인용문에는 사회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어려운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용어들이 가지는 기본적 의미는 육체나 정신, 또는 환경이든 간에 비참하고 곤궁한 상태를 나타낸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탈라이포리아는 70인역본에 약 32회 나오며, 히브리어 마샥(어두운 곳), 누쉬(아프다, 병나다,) 샤온(황페한 지역), 쇼아(노고,고통), 메쇼아(황폐), 세케르(마시다, 취하다), 쇼드(격렬, 폭력, 황폐), 샤다드(약탈하다, 난폭하게 대우하다, 멸망시키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마소라 본문에선 불행, 곤란, 곤경 등이 문자적으로든지 상징적으로든지 간에 일률적으로 심각한 성질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탈라이포리아는 파멸의 성격 및 정도에 대한 강조가 마소라 본문이 뜻하는 것보다 약하다.||#3. 신약성경의 용법||탈라이포리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타나는데, 롬 3:16에서 나오는 이 말은 수많은 하팍스 레고메나(단 한 번만 기록에 나와 있는 어구)가 나타나는 구절 중의 하나인 70인역본 사 59:7에서 인용된 것이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그리고 약 5:1에 나오는 이 말은 복수형으로 사용되었고 '불행이나 비참함'을 의미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참조: R.K.Harrison; J.H.Thayer).
곤고한
talaivpwro"
비참한, 괴로움받는, 곤란한, 불행한.||#1. 일반 헬라어 문헌||형용사 탈라이포로스는 '비참한, 괴로움 받는, 곤란한, 불행한'을 의미하며, 이러한 용어들이 가지는 기본적 의미는 육체나 정신, 또는 환경이든 간에 비참하고 곤궁한 상태를 나타낸다. 고전 헬라어 저술가들은 형용사를 비참하고 불행하며 불쌍한 사람이나 상황을 묘사하는 말로 사용하며 파피루스에서도 같은 의미로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탈라이포로스는 70인역본에서 12회 나오며, 샤다드(난폭하게 다루거나 대우하다, 약탈하다, 멸망시키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사33:1에서 이 단어를 '비참해지다'를 뜻하는 포이에인 탈라이포루스로 번역하였다. 시 136:8에서는 '멸망자'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외경 문서에서 마카베오 시대의 박해를 묘사하는 말로 나타난다(예: 마카베오이서 4:47).||#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탈라이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온다. 롬 7:24에서 비참하고 불행한 인간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계 3:17에서도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참조: R.K.Harrison; J.H.Thayer).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talantiai'o"
한 달란트의 무게 또는 값어치.||#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탈란티아이오스(Aristot., Polyb.)는 탈란톤($5007: 천칭, 저울)에서 유래했으며, '한 달란트의 무게 또는 값어치의'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탈란티아이오스는 신약성경에서 계 16:21에 한번 나온다: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달란트
tavlanton
달란트 tale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탈란톤(Homer 이래)은 틀라오(%1002: 참다, 겪다, 견디다)에서 유래했으며,||(a) '천칭, 저울'(Homer),||(b) '달란트' talent, 즉|① 중량의 단위(장소와 시대에 따라 달라짐),|② 한 달란트의 무게가 나가는 돈의 액수를 의미한다. 국가에 따라 그리고 통화를 조절하는 법률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아티카의 달란트는 아티카의 60므나 또는 6천 드라크마와 동가였으며, 영국 화폐 240 파운드에 해당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달란톤은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히브리어 킥카르(원, 가장 무거운 히브리 중량)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탈란톤은 에바 위의 납조각처럼(슥 5:7), 아마 어떤 특정한 형태로 주조된 큰 금속 덩어리들을 따라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탈란톤은 금(삼하 12:30 등), 은(왕상 20:39), 철(대하 29:7), 놋(출 38:29)의 무게를 다는 데 사용되었다. 666탈란톤의 금은 솔로몬의 매년 세입에 포함되어 있었다(왕상 10:4).|히스기야가 공물로 바친 30탈란톤의 금화(왕하 18:14)는 산헤립이 받았다고 주장하는 양과 일치하며, 이 시대에 유다와 앗수르에서 사용된 유사한 탈란톤을 나타낸다. 이 탈란톤은 오리가 새겨진 이 가치의 바벨론의 저울추들이 29.76~30.27kg의 범위인 것처럼 약 30kg의 '가벼운' 탈란톤이었을 것이다.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에서 발견된 저울추(4,565gm)는 30.43kg, 또는 더 정확하게 28.53kg(즉 570.6gm의 8마네=11.41gm의 8x50세겔)의 이 탈란톤으로 해석되었다(참조: NBD).||#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탈란톤은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마태복음에만 사용되었다.||(a) 탈란톤은 마 18:24에서 일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 나온다.|이 비유에 나타난 큰 요점의 하나는 두 사람의 부채액의 비교이다. 처음 종은 자기 주인에게 10,000달란트의 빚을 졌다. 한 달란트는 거의 240 파운드에 해당된다. 그러므로 10,000달란트는 2,400,000파운드이다.|이것은 엄청난 빚이다. 보통 한 지방의 전체 예산보다도 큰 금액이다. 이두메, 유대, 그리고 사마리아를 포함한 전체 지방의 수익이 단지 600달란트에 지나지 않았다. 갈릴리와 같은 부유한 지방의 전체 수익도 300달란트 정도였다. 이것은 한 왕의 보석금액보다도 큰 금액이었다. 이 종이 탕감받은 것이 이런 거액의 금액이었다.|그의 동료가 그에게 진 빚은 극히 사소한 금액이었다. 그것은 100데나리온인데 한 데나리온은 현 가치로 보면 약 9페니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그 전체 빚은 5파운드에 불과했다. 이것은 약 50만배 정도의 차이가 있다. 이것은 사람들이 우리들에게 빚진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빚진 것은 도저히 비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가 그에게 빚진 것을 용서해 주신다면 우리는 이웃이 우리에게 빚진 것을 용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우리가 용서 받은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가 용서하는 것은 거의 비교할 수도 없이 미미한 것이다.|우리는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부채-하나님의 아들을 죽음으로 가게한 죄-를 사함 받았으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웃을 용서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진대 우리는 자비를 받겠다고 원할 수도 없다(바클레이의 마태복음).||(b) 탈란톤은 장사와 관련된 달란트 비유에 나온다(마 25:14-30).|(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NBD).
탈리다
taliqav
처녀, 소녀.||명사 탈리다는 아람어 탈예타나 델리타의 음역이며, '처녀, 소녀'를 의미한다.|탈리다는 신약성경에서 막 5:41에 한번 나온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골방
tamei'on
곳간, 내실, 밀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타메이온은 템노(%376: 자르다)의 파생어의 후기형이며,||(a) '창고, 곳간, 저장실'(Thuc.),|(b) '방' 특히 '내실, 밀실'을 의미한다(Xen., Hell.).||#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타메이온은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4회 나온다.||(a) 타메이온은 눅 12:24에서 '저장실(곳간)'을 나타낸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b) 타메이온은 마 6:6에서 '밀실'을 나타낸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c) 타메이온은 마 24:26에서도 '밀실'을 의미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d) 타메이온은 눅 12:3에서 아마도 '내실이나 밀실'을 의미할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집 위에서 전파되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반차
tavxi"
질서, 방식.||명사 탁시스(Aeschyl., Hdt. 이래)는 탓소($5021)에서 유래했으며, 다음의 의미로 사용되었다.||(a) '배열함, 정돈함, 배열, 정렬',||(b) '순서' order, 즉 '또한 일정한 시간을 지키는 일정한 연속', 눅 1:8.||(c) '합당한 또는 올바른 순서(질서)' 순서 있게, 순서에 따라, 고전 14:40; '정돈된(질서 있는) 상태', 골 2:5(혹자들은 여기에서 본 단어에 군사적 의미를 부여한다. 즉 군대의 '질서있는 정렬').||(d) 민정이나 기타 업무에서 아무개가 맡고 있는 지위, 직위; 그리고 이 직위가 일반적으로 그 사람의 재능, 경험, 자원에 의존하기 때문에 탁시스는 '성격, 양식, 자질, 방식'과 같은 뜻이 된다. 멜기세덱의 제사장직(A.V. order)의 방식에 따르는 것에 대해(시 109:5), 히 5:6; 히 5:10; 히 6:20; 히 7:11; 히 7:17; 히 7:21.|(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겸비한
tapeinov"
낮은, 비천한 Iowly, 겸손한 humble.||#1. 고전 헬라어 문헌||기본어 타페이노스는 핀다르(Pindar, B.C 55세기)의 작품에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단어는 본래는 '낮게 놓는 것'이라는 의미였으며,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비유적 의미가 발전되었다.||(a) 이 단어는 '낮은, 천한, 하찮은, 중요하지 않은, 약한, 가난한'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도시, 나라, 국가, 정치가, 군사력, 별, 강, 상품, 영향력, 인간의 정신과 용기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b) 이 단어는 정신적이거나 윤리적인 상태에 관해서 사용될 때는 '천한, 비굴한, 노예의'를 의미한다. 보통 아첨이나 굴종에 대해 경멸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가문이 좋지 않은 태생, 가난한 낮은 신분,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 사회적 신분에 기인한 신복의 아부성 등에 대해 사용되었다.||(c) 이 단어는 어려운 상황이나 비천한 상태, 또는 탄원자들과 같이 스스로 비하하는 상태를 표현한다.||(d) 이 단어는 '겸손한, 순종하는, 유순한'을 의미하며, 이러한 행위는 훌륭한 군대나 가족에 적용될 수 있다. 이런 복종은 단순한 가장(假裝)이나 비굴하게 굴종하는 자기 포기가 되어서는 안된다.||(e) 이 단어는 종교적 문맥에서는 앞의 윤리적인 의미에서와 같이 '비천한' 을 의미하지 않고 '겸손한, 순종하는'을 의미하며, '신들의 옳은 법에 자신의 행위를 일치 시키는것' 등을 의미한다. 이 모든 용법에 있어서 이 단어의 본래의 실질적 의미, 즉 위에 있는 것, 높은 것에 대하여 '아래 있는, 낮은'이라는 의미의 흔적이 전부 남아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타페이노스는 70인역본에서 약 70회 나오며, 12개 히브리어형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a) 이 단어는 '낮은, 평평한, 아래의'를 의미한다(수 11:16; 삿 1:15; 시 123:6이하; 시 137:6; 레 13:3-26; 레 14:37).||(b) 이 단어는 '굴복한, 작은, 빈약한, 하찮은, 비열한, 천한'을 의미한다(집회서 25:23; 29:4; 레 27:8; 겔 29:14 이하; 단 3:37; 삿 6:15).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 작거나, 보잘 것 없는 자를 택하신다(삿 6:15; 삼상 18:23). 하나님은 타페이노이(복수)의 하나님이시다(유딧 9:11). 타페이노이는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이다(습 2:3).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구하는 자들을 이스라엘 중에 남겨 두신다(습 5:12).||(c) 이 단어는 '굴복당한, 억압받는, 압제받는'을 의미한다. 외부 세력이나(유딧 16:11; 마카베오일서 14:14) 부한 자들에 의해(암 2:7; 사 58:4) 이런 압제를 받는다.||(d) 그러나 하나님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억압받는 자들을 높이신다(시 18:27; 54:18). 낮은 자들을 하감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원한 속성이다(시 138:6).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를 멸시치 않으신다(시 1O2:l7). 메시야는 온유한 자들을 위해 공의를 세우시고 억압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심판을 선언하신다(사 11:4). 여호와께서는 시온을 억압받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를 삼으셨다(사 14:32; 참조: 25:4). 사 49:13에서도 이와 유사한 말씀을 하신다. 평강에 대한 언약은 낮은 자에 대하여는 불변적이다(사 54:10,11). 하나님은 겸손하고 심령에 통회하는 자를 돌보신다(사 66:2).||#3. 신약성경의 용법||타페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8회 나오며, '비천한, 겸손한'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a) 눅 1:52은 눅 3:5에 대한 결론이며,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역사에 대해 언급한다: " 51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52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53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b) 이 약속과 교훈과 경고의 근거는 예수님의 삶의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 삶의 방식은 마 11:28이하에 나오는 초대의 말씀에서 해석되어 있는 것과 같다. 주님은 "온유하고(프라위스) 마음이 겸손하다(타페이노스 테 카르디아)". 이 두 개의 표현은 대등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셨으며, 하나님께 헌신하셨다는 사실을, 동시에 주님은 사람에게도 겸손하셔서 그들의 종이자 조력자로 되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눅 22:27; 막 10:45; 마 20:28). 이것이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이 주님을 따를 때 그들에게 종말론적 안식을 주신 까닭이다. 이것은 율법교사의 윤리적 모범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는 집회서 51:23-30과는 대조적이다.(참조: A. Schlater).||(c) 고후 10:1에서 바울은 그가 적대자들을 "대면하면 겸비하고 떠나 있으면 담대한 나 바울은"이라고 호소할 때 이는 적대자들의 모욕적인 말을 인용하고 있다. 사도의 이 호소 배후에는 그가 고린도 교인들과 '마주 대하여 있을 때'에는 "겸비"(비열하거나 빈약한 것을 뜻할 수 있음)하지만 떠나 있을 때에는 그 방법에 있어서 담대하다는 비난이 스며 있다. 그의 대적자들은 평소의 방법대로 진리를 비진리 - 바울의 관용을 연약함으로 해석함 - 로 왜곡했다(참조: F.G.Carver).||(d) 겸손에 대한 바울의 권면도 역시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명백한 실제 모습에 근거한다. 롬 12:16(참조: 1절)은 자만과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는 것을 경고한다. 이 구절은 토이스 타페이노이스를 중성으로 보느냐 남성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너희 자신을 비천한 일에 바쳐라'(RSV의 난외 주)로 번역할 수도 있고, '낮은 자와 함께 행하라'라고 번역할 수 있다. 필립스(Phillps)는 '거만히 굴지 말고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가져라'고 의역하였다.||(e) 야고보서와 베드로전서에 나오는 권면들을 겸손에 대한 구약성경과 바울서신의 의미에 아무 것도 새로운 뜻을 추가하지 않는다. 약 1:9 이하는 부자와 대조하여 사회적으로 낮고 가난한 자를 언급한다: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낮은 형제"는 가난에 찌든 형제이지만 단순히 가난한 자를 가리키지 않는다. 가난한 그리스도인은 비참한 빈곤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다. 그는 그가 겪는 궁핍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혼을 물질적인 부족에서 들어 올리는 참 기쁨의 근원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높임은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갖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보실 때 인간의 가치 있는 인식이라 하시기에 적합한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그리스도께 속했음을 알고 인생의 영적인 가치의 중요성을 헤아리게 된다면 그는 만족하며 기뻐하는 자가 되는데 많은 물질적 편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빌 4:10이하).|한편 부한 형제가 부유한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면 이 절들은 물질적인 부요를 의지하는 개종자들에 대해 경고하는 동시에 다음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한 형제가 누릴 진정한 기쁨의 근원은 그가 낮아진다는데 있다. 이러한 겸비의 과정은 부한 자가 그리스도를 따를 때 겪는 가치의 재정립이다(A.F.Harper의 야고보서 주석 참조).||(f) 약 4:6b와 그 병행구절 벧전 5:50는 잠 3:34(LXX)을 인용하는데, 그것은 겸손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하고 있다. 이 두 구절은 모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주 앞에서 낮추라"(약 4:10과 그 병행구절인 벧전 5:6; 참조 : 창 16:9; 집회서 2:17). 이 두 서신들이 서로 문학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유사성은 '기독교의 일상적인 권면'(참조:M.Dibelius)이 있었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g) 교회의 "겸손" 개념은 점차로 종말론적 기대와 그의 일치하는 삶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부터 참회와 금식에로의 경향과 그 구체적인 행동을 묘사하는 말로 변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특히 클레멘스일서와 헤르마스(Hermas) 문서에서 두드러지게 볼 수 있다.|(참조: H.H.Esser; W.Grundmann). → $5013 타페이노오
겸손
tapeinofrosuvnh
마음의 낮음 lowliness of mind, 겸손 humility.||%72 타페이노프론|겸손한 마음을 가진||#1. 일반 헬라어 및 70인역본||명사 타페이노프로쉬네는 형용사 타페이노프론에서 유래했으며, 이 명사와 형용사는 1세기와 2세기의 세속적 헬라어 문학작품에 나타나며(Josephus, Plutark, Epictetus), '비열하게 생각하는 것, 나쁘게 생각하는 것, 잘못 마음먹는 것, 마음이 약한 것, 비굴한 마음을 가지는 것' 등, 품위를 떨어뜨리는 의미로 언제나 사용되었다. 그러나 70인역본과 신약성경은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70인역본에서 잠 29:23에 형용사 타페이노프론이 단 한번 사용되었는데 좋은 의미로 심령이 '겸손한' 이라는 의미를 나타낸다.||#2. 신약성경의 용법||신약성경에서 형용사 타페이노프론이 1회, 명사 타페이노프로쉬네가 7회 사용되었으며, '마음을 낮추는 것, 다른 사람의 가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 겸손'이란 의미를 나타낸다.|(a) 형용사 타페이노프론은 벧전 3:8에 한번만 나온다: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b) 행 20:19에서 사도로서의 자신의 일에 대한 바울의 생각을,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이라는 말로써 충실히 전해주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분쟁(행 20:20)과 부도덕(행 20:2lc 이하)에서 드러난 자신의 실패를 통하여 그를 겸손하게 하심 속에서, 그리고 분쟁과 마음의 두려움(참조: 고후 7:5 이하; 사 49:13)으로 낮추어진 자들을 안위하심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인식한다. 사역을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들 속에서 바울은 오실 주님이 우리의 낮은 몸을 변화시켜 주님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만드시리라는 소망을 의지하였다.|(참조: 빌 3:21).||(c) 겸손에 대한 바울의 권면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모범에 근거한다. 엡 4:2(1절 참조)과 골 3:12(l절 참조)은 교회를 하나되게 하고 결속시키도록 섬길 용의를 가지라고 분부한다. 전자에서 "겸손"으로 행하라고 권한다. 후자에서는 "겸손…으로 옷입으라"고 권한다.|겸손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그리고 그로 하여금 자신을 비워 종이 되게 한 겸손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겸손은 연합을 이루는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모든 불화의 뒤에는 교만이 숨어있는 반면에, 조화를 이루는 가장 귀중한 한 가지 비결은 바로 겸손이다. 이 사실을 경험을 통하여 증명하기란 어렵지 않다. 우리가 쉽게 본능적으로 좋아하여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란,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존경을 우리에게 돌리는 사람들이다. 반면에 우리가 쉽게 본능적으로 싫어하게 되는 사람들이란 바로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허영은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의 주된 요소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을 존경하려고 억지로 무리하게 애쓰는 대신에(이것은 교만이다), 본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본질적인 가치를 인정하면서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준다면 이것이야말로 겸손이다. 이런 겸손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사회에서 한층 더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J.R.W.Sott).|벧전 5:5에는 겸손을 옷 입는다는 은유가 나온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 여기서 권면하는 것은 실제로 겸손한 마음으로 겸손을 실천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섬기며, 그들로부터 명령을 받고 그들의 요구에 맞게 행동함에 있어서 겸손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겸손히 섬기는 일을 옷 입는 것처럼 하라는 것이다.|빌 2:3에서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한다. 이것은 겸손으로 가장한 비열한 굴종에 대한 호소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이 모르는 단점을 가지고 있으며, 또 내가 가지지 못한 장점을 다른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정한 자아 평가를 할 것을 요망한 것이다(John A.Knight).||(d) 골 2:18에서 그는 일부러 겸손한 척하고, 천사를 숭배하며, 금욕주의를 따르는 적대자들에게 경고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매번 타페이노프로쉬네를 사용하고 있다.|(참조: H.H.Esser; W.Grundmann).
타페이노프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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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겸손한 humble-minde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타페이노프론(Plut.)는 타페이노스($5011: 낮은, 지위가 낮은, 신분이 천한, 마음이 낮아진)과 프렌($5424: 마음, 정신, 생각)에서 유래했으며,||(a) '마음이 겸손한, 겸비한' humble-minded,|(b) '비열한 정신의' mean-spirited, '무기력하고 소심한'을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타페이노프론은 70인역본에서 잠 29:23에서 히브리어 셰팔 루아흐의 역어로 사용되어 '마음(심령)이 겸손한'을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타페이노프론은 신약성경에서 벧전 3:8에 한번 '마음이 겸손한'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이 구절은 상세한 지시 사항을 모두 마음이 겸손해야 한다는 요구로 끝맺는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친교를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섬기고자 하는 겸손한 마음의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참조: 벧전 5:5; 벧전 5:9).|(참조: W. Grund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