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348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트로고
trwvgw
깨물거나 씹다, 먹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트로고(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 '갉아 먹다, 바삭 바삭 깨물거나 씹다, 먹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트로고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마태복음(1회)과 요한복음(5회)에만 사용되었다.||(a) 마 24:38,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여기서 마지막 날의 생활 상황에 대해 언급한다.||(b) 요 13:18,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이 구절은 시 41:9의 인용이다. 떡을 함께 뗀다는 것은 우정의 서약이었다. "발꿈치를 든다"는 말은 말(馬)의 갑작스런 발길질처럼 잔인한 폭력 행위를 묘사한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예언이다. 이제 조금 후이면 유다는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신 그 선택의 조각을 입에 맛보면서 나갈 것이었다. 그런 후에는 살기가 등등한 폭도들을 이끌고 와서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 잔인한 폭력 행위를 자행할 것이었다.|(J. H. Mayfield).||(c) 요한복음 6장의 신학적 의미.|그 용법은 요 6:51c-58에서 에파곤(요 6:52 이하)가 트로고(요 6:54; 요 6:56 이하)로 변한 것은 우선 말의 형태 간의 문법에 입각한 교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시시한다. 그러나 말의 형태의 교환은 그 단락의 의도를 조명해 주기도 한다. 요 6:51c의 "먹다 to eat"는 이제 요 6:51b에서처럼 말씀 안에서 믿음으로 자신을 제공하신 예수님을 수용한다(요 6:35)는 은유적인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실제적인 먹음(physical eating)을 통해 성만찬에서 예수님의 자기 제공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요 6:51; 요 6:53에서 선물의 제시는 틀림없이 성만찬의 표현을 채택하며 먹는 것은 알레도스(데스)에 의하여 정말로 육체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만일 중간에 끼여 있는 요 6:54이 세 번 되풀이 되는 트로고가 있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많은 선행하는 에파곤의 언급들을 깨뜨린다면, 이것은 적어도 성만찬에 대한 암시를 강조하는 것일 것이다.|표현의 형태로 성찬식을 소개하는 방법은 신학적으로 중요하다. 요 6:51c -58은 교회의 제도의 하나에 대한 비유적 묘사가 아니라 선행하는 계시의 말씀의 직접적인 계속을 담고 있다. 그것의 표현 형태에서 그 단락은 믿음을 요구하는 선포이지만 그 명확한 표현은 이것이 정확하게 성만찬의 형태에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말씀에 의한 예수님의 자기 제공은 성만찬에 의하여 더 구체적인 자기 제공이 되고, 듣는 것을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을 유사하게 먹는 것을 믿음으로 수용할 것과 같다. 요 3:5에서 세례(침례)에 의한 구원처럼 어떤 의미에서 요 6:53에서 진술된 구원을 위한 성만찬의 필요성은 축소되지 않은 말씀의 구체화의 필요성이다. 우리가 요 6:51c -58과 생명의 떡에 대한 말씀 사이에서 발견하게 되는 연결하는 절수는 따라서 그것들이 합쳐서 전체를 이룬다는 명백한 표시이다. 이 단락의 삭제는 신약성경에서 말씀과 성만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장 훌륭한 표현을 파괴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Goppelt).
튕카노
tugcavnw
맞히다, 얻다, 발생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튕카노(Homer. 이래)는||(a) 표적에 '명중하다, 맞히다, 때리다' hit,|(b) '올바른 일을 행하다',|(c) '성공하다' succeed, '얻다, 받다' obtain, '도달하다' reach,|(d) 자동적으로 '일어나다, 우연히 일어나다(발생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튕카노는 70인역본에서 31회 나오며, 신 19:5에서만 히브리어 마차(4672: 맞히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나머지 구절에서는 해당하는 히브리어 없이 나타난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튕카노는 신약성경에서 12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튕카노는 '얻다, 획득하다'라는 의미로 다음 구절에 나오며, 여기서 문맥은 우리의 힘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언급한다.|①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② 히 11:35,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③ 눅 20:35,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b) 히 8:6에서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직분에 관해 언급한다: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c) 튕카노는 행 19:11에서 이례적인 사건의 발생을 나타낸다. 여기서 강조는 치유의 성질에 관한 것이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행 28:2에서 튕카노는 역시 이례적 사건의 발생을 나타낸다: "토인들이 우리에게 특별한 동정을 하여 비가 오고 날이 차매 불을 피워 우리를 다 영접하더라"||(d) 고전 15:37에서 바울은 임의적인 예를 언급하는데, 여기서 '에이튀코이'는 언급하는데 '예를 들면, 예컨데(for example)'란 의미로 사용한다: "또 너의 뿌리는 것은 장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갱이 뿐이로되"|고전 14:10에서 '에이튀코이'가 많은 수에 대해 사용되었는데 여기서 '~가 있을 지라도'라는 의미로 나타내는 듯하다: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e) 고전 16:6에서 바울은 한번 그가 계획하고 아직 실행하지 못한 여행에 관하여 튀콘(%722)을 아마 perhaps라는 의미로 사용했다: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과동할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나의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f) 행 27:3; 행 26:22에서 '얻거나 받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O. Bauernfeind).
악형을 받다
tumpanivzw
튐파눔으로 고문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튐파니조(Aristoph., Plut.)는 튐파논(%650: 캐틀드럼, 솥 모양의 큰 북)에서 유래했으며,||(a) '북(드럼 또는 탬버린)을 치다',|(b) 형벌의 도구인 '팀파눔으로 고문하다', 이 팀파눔이란 바퀴 모양의 고문 도구였던 듯하다. 범죄자들을 마치 가죽처럼 그 위에 늘여 놓고 곤봉이나 가죽 끈으로 호되게 후려쳤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튐파니조는 신약성경에서 히 11:35에 한번 나온다: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며 또 어떤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아니하였으며". 튐파니조는 여기서 (b)의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자국
tuvpo"
자극, 흔적, 원형, 모형||#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튀포스(Aesehyl., Hdt. 이래)는 튑토($5180: 때리다, 치다)에서 유래한 단어일 것이다.||(a) 이 단어는 '부조' relief , 동전, 빵의 형태 같은 구체적인 사물을 가리킨다.||(b) 다음으로 이 단어는 어떤 형태의 흔적(역시 구체적임), 즉 '자취, 상처 자국, 흉터, 도장, 날인한 것, 찍은 것'을 의미한다.||(c) 이 단어는 이론(교리)체계나 문체와 같은 막연한 형태나 틀을 뜻하는 상당히 추상적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두 가지 개념, 어떤 형태를 찍어 내는 주조 틀과 거기서 찍혀 나오는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튀포스는 '원본' original, '원형' pattern, 그리고 '원형' prpotype, '모형' model을 뜻하는 기술적 의미와 모범 example이라는 윤리적 의미로 사용된다.||#2. 70인역본의 용법.||(a) 명사 튀포스는 70인역본에서 4회 나오며, 출 25:40에서 팁디드(8403: 구조, 모형, 모습, 형상)를 번역하여 '식양'을, 암 5:26에서 첼렘(6754: 형상)을 번역하여 '우상'을 나타낸다. 그리고 마카베오삼서 3:30에서 튀포스는 '문형', '문체' form, style of writing를 나타내고, 마카베오사서 6:11에서는 (종교적-윤리적인) '모범' example을 나타낸다.||(b) 필로에서 튀포스는 '원본, 복사본, 모방, 모범'을 의미했으며, 랍비들 사이에서 '형태, 모델'을 의미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튀포스는 신약성경에서 1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요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기에서 튀포스는 어떤 형태의 '자국'을 뜻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손에 나 있는 못자국에 대하여 사용하였다. 이것들은 인식표이며, 믿음을 세우는 역할을 한다. 의심하는 자는 그 흔적을 만지기 요구하며, 주님은 기꺼이 흔적을 내보이신다. 그러나 실제로 제자들은 흔적을 만지지 않고 믿는다.||(b) 행 23:25에서 튀포스는 '본문' 곧 편지의 내용이란 의미를 지닌다: "또 이 아래와 같이 편지하니 일렀으되"||(c) 롬 6:17에서 튀포스는 모범과 규범으로서의 교훈에 관해 사용되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어떤 형태를 찍어내는 원형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전에는 죄가 그랬듯이, 이제는 새로운 가르침, 즉 그리스도의 메시지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주장함으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 양상을 찍어 내주고 결정해 주는 요인이 되는 것이다(H. Muller).|하나님은 신자들을 새로운 세력권으로 넘기셨고 이들로 하여금 마음에서부터 그 세력에 순종하도록 만드셨다. 튀포스 디다케는 여기서 단순히 교훈의 개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모든 행위를 연단시키며 따라서 규범과 표준의 역할을 감당하는 흔적을 의미한다|(참조: L. Goppelt).||(d) 튀포스는 믿음의 순종에 관한 구절에 나타난다.|① 바울은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와 살후 3: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에서 교회에 대한 실례 혹은 본이 된다.|② 살전 1:7에서 교회가 본이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여기서는 이 교회가 이상적인 교회라는 뜻이 아니고, 교회가 하나님의 연단으로 인한 흔적을 갖게 되고, 믿음을 통해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말씀과 본은 믿음의 생활에 대해 증거하는데, 이 증거는 우리를 믿음으로 이끌며, 믿음으로만 파악될 수 있다. 생활이 말씀에 의해 연단되면 될수록, 생활은 더욱 튀포스가 되어간다. 이 생활은 모방이 아니며 믿음에 의해 자유로이 살아나가는 것이다.|③ 딤전 4:12과 벧전 5:3에 의하면 직분 맡은 자는 이러한 면에서(말과 행실로) 본이 되어야 한다.||(e) 행 7:44과 히 8:5에서는 출 25:40을 인용하며, 여기서 튀포스는 하늘의 원본(형)을 의미한다. 모세는 이 본(식양)대로 성막을 세웠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땅 위에 성소를 짓는 일을 위임하신 것과 이 성소의 제도를 지시하신 것에 초점을 맞춘 반면에 히브리서에서 구약성경의 인용은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에 관한 구약성경의 주장에 대한 해석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갖고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이 구절은 히브리 역사의 종말론적 일시적 신학에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하늘의 원형(튀포스, 히 8:5과 에이콘, 히 10:11)과 지상의 모형(사본: 안티튀폰, 히 9:24, 혹은 휘포데이그마와 스키아: 그림자, 히 8:5)과의 관계는 구원의 과거와 현재의 축복에 관한 계획에 삽입된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늘의 원형이 역사 속에 들어와, 모형과 그림자들은 사라지는 것임을 보여준다.||(f) 행 7:43에서 암 5:26을 인용하며, 여기서 튀포스는 '우상의 형상'을 의미한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g) 튀포스는 옛 역사적 사건들에 대해 사용되었다.|① 고전 10:6; 고전 10:11에서 옛 조상들이 광야에서 당한 사건들을 튀포스라고 부른다: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여기서 바울이 생각한 것은 구약 본문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들이다. 하나님은 이 사건들을 일으키시고 또 기록되게 하셨는데, 이는 그 사건들이 말세에 행하실 그의 행위와 본질적으로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 유사성은 단순히 외적인 유사성이 아니며, 하나님의 현재 행위의 종말론적 성격으로 인한 차이를 완전히 배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여기서 고린도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성만찬 및 세례(침례)를 구원과 심판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인격적으로 만나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와 연관짓기 위해 기본적인 유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단어(튀포이)는 물론 '실례'를 뜻할 수도 있으며, 문맥상으로 볼 때 종말론적 사건들을 나타내는 '예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유형'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의 옛 백성이 저들의 수치스러운 실행으로 말미암아 받은 형벌을 성찬을 업수이 여기고 만홀히 하는 자들에게 대한 심판의 예표로 보인 것이다. 이것은 성찬을 남용하지 않도록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에게 특별히 경고하는 것이다. 바울이 이렇게 전개한 모형적 방법은 현재나 미래 종말론적 사건들을 예시하는 과거의 예표라는 의미에서 구체적인 구약의 역사적 사건들의 유사한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② 롬 5:14도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인류에게 파탄을 가져온 아담은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의 튀포스가 되며, 하나님은 이 튀포스를 통해 마지막 아담(그리스도)이 이루실 구원 행위를 암시하신다. 그리스도는 아담과 대조되며, 또한 그와 경쟁을 벌이신다. 여기서 튀포스는 예표를 뜻하지만, 대형을 만들어내는 틀(hollow form)을 암시한다(참조: L. Goppelt).|여기서 튀포스 개념은, 모형론적 방법을 통해 근본적으로 깨어지는 하나의 긴장 관계를 산출한다. 아담과 그리스도의 표상이 "모든 사람"을 의미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비교 및 대조가 된다. 아담은 "오실 자의 튀포스(표상)"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아담-그리스도 모형론을 탄생시킨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담은 사실상 그리스도의 충실한 예표로 여겨질 수 없고, 또 다른 한편으로 대조적인 그림을 뜻하는 튀포스가 다른 곳에는 나오지 않기 때문에, 여기서 바울은 전통적인 아담-메시야 모형론을 배척하려는 아주 정확한 논증적인 의도로 튀포스 개념을 채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것에 의한 옛것의 근본적인 폐지 문제이다: 새것은 옛것이 정복될 때에야 만이 두각을 나타내게 된다. 이리하여 바울은 다음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옛것과 새것이 근본적으로 반대가 되면서도 깊은 연관 관계를 지니는, 이 역설적 공동체가 이미 현재에 살고 있는 현실이다. (H. Muller).|(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H. Muller; L. Goppelt).
튀피코스
tupikw'"
본보기로||부사 튀피코스는 형용사 튀포스($5179)에서 유래했으며 '모법으로, 본보기로'를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고전 10:11에 한 번 나온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TR에는 튀포스($5179)로 표기되어 있다.|(참조: Gesenius).
튑토
tuvptw
때리다, 치다 strike, smit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튑토(Homer. 이래)는 기본어이며,||(a) 기본적 의미는 '때려서 멍하게 하다',|(b) '검인을 찍다, 인상을 주다',|(c) 그 후에 좀더 일반적으로 '때리다'를 의미하게 되었다.||튑토의 용법은|① 손이나 주먹, 발, 작대기, 지팡이, 채찍, 무기 등으로 때리는 것, 또한 때려 죽이거나 대적을 치거나 땅을 쳐서 멸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전이된 의미로서 튑토는 슬픔이나 후회, 양심의 가책, 공포 등으로 '찌르는' 것을 나타낸다.|③ '자신을 때린다'는 구절은 경기를 위한 훈련을 할 때나 슬픔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④ 전이된 의미로서 '자신을 때리다'는 '애곡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튑토는 신약성경에서 1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예수님의 말씀 전파.|① 눅 6:29은 뺨을 치는 것을 나타낸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② 눅 12:45에서 이 종은 자기의 직위를 남용하여 남종과 심지어 여종들까지 때린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노비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③ 마 24:51과 그 병행구에서 때림의 처벌은 마 24:49의 잘못에 대한 대가이지만 그 정도는 상당히 심하다. 먹고 마시며 때리는 종에 대한 비유는 교회에서 특별한 책임을 맡은 자들이 재림 이전 시기에 주인처럼 놀지 못하도록 경고하는 역할을 한다(참조: 고후 4:5). 눅 18:9이하에서 세리의 가슴을 치는 행위는 죄를 자각하고 은혜를 간구하는 자발적 표현이며, 그렇게 하는 것만이 그가 하나님 앞에 설수 있는 유일한 태도이다.||(b) 수난기록.|① 수난 기록 중에 예수님께서는 두 번 매를 맞으시며(눅 22:63-64; 막 15:19), 구경하는 자들도 스스로 가슴을 친다(눅 23:48).|② 눅 22:64에 있는 눈이 가려진 예수님을 희롱하는 장면에서, 거칠게 대하는 것은 일종의 조롱이다. 어법에 있어서도 70인역본의 사 50:6과의 연관성이 명백히 드러난다. 이 사건들이 저자들로 하여금 구약 원본을 생각나게 해서, 어법과 표현이 그에 따르게 된 것이다. 모욕과 때림에 대한 예수님의 참고 받아들이심도 역시 그러하다. 군사들은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면서 예수님을 왕이라고 조롱한다(막 15:18-19). 이와는 대조적으로, 십자가 발치에서 자기네 가슴을 치는 자들은(눅 23:48) 백부장의 고백에 대해"아멘"을 외치고 있는 듯한데,이들은 단순히 예수님을 애도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눅 13:18에서처럼 회개의 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c) 사도행전.|①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은 복음을 배척할 때 때리는 일을 종종 한다. 예를 들면 그들은 행 18:17에서 소스데네를 때린다: "모든 사람이 회당장 소스데네를 잡아 재판 자리 앞에서 때리되 갈리오가 이 일을 상관치 아니하니라"(참조: 행 23:27이하에 나오는 바울에 대한 공격).|② 행 23:2에서 아나니아는 바울의 입을 때리게 하고, 바울은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치실 것이라고 응답한다. 심판하실 때의 하나님의 치심은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지지만(신 28:22), 그 치심은 보통 직접적인 죽음의 타격으로 묘사된다(창 8:21; 민 33:4 등). 바울은 아마 아나니아가 A.D. 66년에 쓰러지는 것을 살아서 목도했을 것이다.||(d) 바울서신.|신약성경에서 전이된 의미는 오직 고전 8:12뿐이다: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여기서 강한 자가 약한 자들로 하여금 양심에 거스리는 행동을 하게 함으로, 그 양심에 타격을 가한다고 언급된다. 이 타격은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믿음에 가해지는 손상이며 따라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가해지는 손상이다|(참조: G. Stahlin).
두란노
Tuvranno"
두란노 Tyrannus (인)||튀란노스/ 두란노는 '주권'을 의미하며 신약성경에서 행 19:9에 한번 나온다. 그는 에베소의 한 헬라 교사 또는 강연자의 이름이다. 바울은 석 달 동안 설교하던 회당에서 쫓겨난 후 두란노의 방에서(또는 그의 이름을 따서 이름 지은 유명한 건물에서) 날마다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에게 강론하였다(행 19:8 이하). 만약 두란노가 바울의 시대에까지도 살아 있었다면 그는 아마도 동양의 교사들이 늘 행하는 바와 같이 서늘한 아침 시간에 인기 있는 토론 모임을 이끌었을 것이다. 이 경우에 바울은 기독교 모임을 위해 그의 강당을 하루 중 좀 더 더운 때나 저녁에 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두 해 동안 가르치기를 계속하여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행 19:10).|(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튀르바조
turbavzw
소란하다, 걱정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튀르바조(Soph. 이래)는 튀르베(%651: 군중)에서 유래했으며, '소란(교란)하다, 어지럽히다, 괴롭히다, 걱정시키다', 비유적으로 수동태에서 '마음이 어지럽다, 걱정(불안)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튀르바조는 신약성경에서 눅 10:41에 한번 나온다: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여기에서 튀르바조는 '걱정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두로
Tuvrio"
두로 사람 Tyrian.||튀리오스는 튀로스($5184: 두로)에서 유래했으며, '두로 사람, 두로의 주민'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이 단어는 행 12:20에 한번 나온다: "헤롯이 두로와 시돈 사람들을 대단히 노여워하나 저희 지방이 왕국에서 나는 양식을 쓰는 고로 일심으로 그에게 나아와 왕의 침소 맡은 신하 블라스도를 친하여 화목하기를 청한지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튀로스
Tuvro"
두로 Tyre (지)||튀로스는 아람어 투르(바퀴)에서 유래했으며, 지중해 연안에 있는 페니키아의 고대 중요한 항구도시이다.|이 도시는 히람 왕의 고국이며 다윗과 솔로몬의 무역 동맹국이었다; 그리고 두로는 건축가이자 숙련공이며 금속 세공사인 히람의 고국이기도 하다.|이 도시는 이사야에 의해 "고대에 건설된 희락의 성, ... 면류관을 씌우던 자요 그 상고들은 방백이요 그 무역자들은 세상에 존귀한 자"(사 23:7 이하)였다고 묘사된다.|이 도시의 가장 유명한 산물은 이 지방 특유의 연체 동물(뿔고둥)에서 만들어지는 두로의 자줏빛 염료이다. 분명히 페니키아 어미 도시 시돈에 의해 세워진(사 23:12; 창 10:15), 그 딸 항구―처음에는 본토에 건설되었으나 후에는 포위 공격을 막기 위해 근처의 섬에 건설됨―는 더 오래된 시돈보다 더 큰 지중해 무역의 강력한 중심지로 발전하였는데, 방탕하고, 이기적이며, 처세에 능한 바다의 중심이며, 이러한 이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이 예언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자의 선언의 서문인 겔 27 장의 유명한 절수들에 잘 묘사되어 있다(겔 28:1-19; 참조: 암 1:9; 슥 9:2).|두로는 성경의 역사에서 수 19:29에 처음으로 나타나는데, 그 곳에서 두로는 아셀 지파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견고한 성읍"으로 나타난다. 그곳이 이스라엘인들의 소유권 내에 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기록은 없다. 다윗과 솔로몬은 히람 왕과 친밀한 동맹 관계에 있었으며,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할 때 다른 히람을 고용하였다(왕상 9:10-14; 대하 2:3, 16). B.C. 922년 왕국의 분열 후의 관계는 결코 다시는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으며, 아모스로부터(암 1:9) 계속 선지자들의 대부분은 두로를 그곳의 물질주의와 노예 매매 때문에 통렬히 비난하였다(욜 3:5 이하). 두로의 힘은 결코 군사적인 특성에서가 아니라 그것의 원양 어선과 선원들, 확실한 상업적 감각, 유망한 상업 지역에 대한 식민 정책, 높이 평가되는 상품들―염료들, 유리 제품, 금속 제품의 제조에 기초한다. 그곳의 부요 때문에 두로는 모든 정복자들이 높이 평가하여 탐내는 지역이었다.|B.C. 9세기에 두로는 앗시리아의 앗슈르나시팔(Assyrian Asshurnasipal)에게 공물을 바쳤지만 손상당하지는 않았다. 살만에셀 Ⅲ세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었으나(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그와 자주 적이 되곤 하는 다메섹의 벤하닷을 포함하여), 나중에는 그에게도 공물을 바쳤다. 옛 두로(본토 대륙에 있는)는 살만에셀 V세에게 점령당했으나 섬에 있는 그 성읍은 일 이년 후 앗수르 왕이 사망할 때(B.C. 722)까지 정복당하지 않았다. 두로는 사르곤에게 평화적인 조건으로 굴복했다. 그리고 산헤립에 의한 일반적인 연안 도시의 약탈을 피했으나 시돈을 피괴한 에살핫돈의 군대에 의해 공격당했다. 그러나 그 앗수르의 대 정복자의 마지막 때에 애굽에 대한 정복으로 분주한 동안 저항을 계속 할 수 있었고 그 후 곧 그는 사망했다. 그 이후 한 세기 동안 두로는 번창했고, 그 때 느부갓네살이 섬 도시의 점령에 끝나지 않고 바벨론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한 12년 간의 포위 공격을 시작했다. 아마도 두로에 대한 가장 유명한 포위 공격은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에 의한 공격이다. 알렉산더는 본토에서 섬까지 대략 1/2마일 폭의 방파제 혹은 둑길을 만들어 군사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였다. 떠내려오는 모래의 퇴적으로 넓어지긴 했지만 그 방파제는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다. 두로는 결코 다시는 알렉산더의 제국의 뒤를 잇는 제국들로부터 해방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로는 몇세기 동안 이전의 번영의 일부를 향유했다.|나중에 로마의 최고의 적수가 된 카르타고(Carthage)는 B.C. 9세기에 두로의 식민지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졌다.|멜가드(Melkarth)의 두로 제사장들은 그 도시에 은신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헬라의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가 그곳에 대한 글을 쓰게 되었을 때 그는 그 도시의 건설은 이 지도자들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헬라 신전이 남쪽 또는 그 도시의 애굽 사람들의 항구를 아름답게 하였다고 생각되는 것처럼, 그들의 신전 중 하나는 아마도 북쪽 또는 두로의 시돈 사람들의 항구에서 뛰어났다.|예수님께서는 두로 부근의 지역을 방문하셨고(막 7:24-막 7:31) 환영받으셨다(눅 10:13). 바울은 한때 두로에 상륙하여 칠일간 머물렀다. 그가 항해를 떠나려 할 때 그의 제자들이 배까지 전송하고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행 21:3-행 21:7).|두로는 초기 기독교 감독 관할의 영지가 되었다. 오리겐(Origen)은 3세기에 그곳에 매장되었다. 제롬(Jerome)은 4세기에 그 도시를 방문하여 그곳의 아름다움에 감명받은 내용을 기록했다. 십자군은 A.D. 638년에 그곳을 점령한 사라센에게서 두로를 빼앗았다. 건축가인 동시에 군인인 이들 그리스도인들은 A.D. 1124년 아름다운 해안에 성 요한의 기사들의 교회를 세웠다(of the Knights of St. John). 그후 회교도들이 1291년 폭력적인 파괴로 두로를 다시 탈환하였다; 그 교회는 지금 자미 케빌(Jami-Kebir) 회교 사원이다.|(참조: HBD; Walter Bauer; J. H. Thayer).
눈먼
tuflov"
눈먼 bl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튀플로스(Homer)는 튀포오($5187: 연기로 둘러싸다, 흐리거나 어둡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눈먼'(blind)을 의미한다.|이 단어는 문자적 의미로는 사람이나 동물에 대해서 사용되었으며 비유적 의미로는 마음과 다른 감각들에 대해서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심지어 어둡고 불분명한 사물이나 진흙으로 덮여있는 강이나 항구를 가리키기도 하였다. 복수나 형벌로서 눈을 멀게 하는 야만인들의 풍습은 잘 알려진 바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튀플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4회 나오며 히브리어 아우웰(눈먼), 아우웨렛(눈멈)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튀플로스는 문자적 의미로 사람이나 동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눈먼 동물은 제물로 드릴 수 없고(신 15:21; 말 1:8) 눈먼 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레 21:18).|율법은 소경을 보호하기 위한 여러 규정들을 마련하고 있다(레 19:14; 신 27:18).|눈 머는 것은 몇몇 경우에 하나님에 의한 것일 수 있다(출 4:11; 습 1:17). 한편 소경을 치유하고 시력을 회복시키는 분도 역시 하나님이시다(시146:8). 눈멂은 이스라엘이 언약을 어길 경우 기대할 수 있는 저주들 가운데 하나이다(신 28:29).|은유적으로 무력하고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사람을 지칭할 수 있다. 거짓 선지자들(사 56:10; 애 4:4)과 이스라엘 민족(사 42:19; 43:8)이 눈먼 것으로 묘사된다. 뇌물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해서(출 23:8; 신 16:19) 더 이상 불의를 식별하지 못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자를 눈 멀게 하셔서 그로 하여금 더 이상 옳고 참된 것을 분별할 수 없도록 하실 수 있다(사 6:10; 29:9 이하). 이스라엘은 그 눈 먼 상태를 슬퍼한다(사 59:10). 남은 자를 회복시키겠다는 약속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소경을 인도하여 시온으로 되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사 29:18; 35:5; 42:16; 렘 31:8).|이 단어의 중요한 용법은 고난 받는 종이 소경의 시력을 회복시켜 줄 것이라는 약속에서 발견된다(사 42:7). 이 약속은 육체적 시력과 영적 시력 모두를 회복시켜 주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영광스럽게 성취되었다.|(참조: Schrage; C. Schultz).||#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튀플로스는 신약성경에서 50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은유적 의미의 '눈먼'에 대하여 사용되었다.||(a) 예수께서 소경들을 고치신 많은 사례들은 그가 메시야임을 나타내는 징표이었다(마 9:27 - 마 9:31; 마 12:22; 마 15:30; 마 21:14; 막 8:22 - 막 8:25; 막 10:46 - 막 10:52 및 그 병행구; 눅 7:21). 세례(침례) 요한이 의심이 생겨 그의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께 물었을 때에 예수께서는 사 29:18; 35:5을 가리키시면서 "소경이 보며"(마 11:5)라는 말로써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활동하신 것은 약속된 구원의 때가 현실이 되었음을 뜻한다. 즉 다시는 눈머는 것이 없을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참조: F. Graber).||(b) 요 9:1이하(요 9:1 - 요 9:45)의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치유한 이야기에서 "왜 이 사람이 소경인가"하는 물음에 대해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 9:3)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의 죄가 고통의 궁극적인 원인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궁극적인 요인이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것은 다시 예수님의 권위와 직임, 그리고 그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하나님의 일이 이 사람 속에서 이루어지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예수님를 세상의 빛으로 드러내신다. '하나님께서는 파괴되고 유폐된 삶을 치유된, 그리고 자유로운 삶으로 바꾸어 놓으심 으로써 하나님의 용서라는 진리를 드러내어 보이셨다'(A. Schlatter, Der Evangelist Johonnes, ad. loc.).|이 이야기는 이 이야기를 인간 존재, 인간 그대로의 존재에 적용을 기대한다(요9:39 - 요 9:40). 계시의 빛에 대한 인간의 눈멂은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시는(요 9:39b; 참조: 요 3:19) 예수님에 의해 치유된다. 요 10:21는 소경의 치유하여 보게하고(요 9장), 예수님이 귀신들릴 수 있다는 관념을 거절한다.|요 11:37은 소경의 눈을 뜨게 한 예수님이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는가를 묻고, 그 다음에(요 11:38-44)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일으키는 큰 능력을 가지셨다는 것을 보여준다.||(c) 행 13:11에서는 저주의 결과로서 일시적으로 눈이 먼 사람에 대해 말한다: "보라 이제 주의 손이 네 위에 있으니 네가〔소경이〕되어 얼마 동안 해를 보지 못하리라 하니 즉시 안개와 어두움이 그를 덮어 인도할 사람을 두루 구하는지라". 이것은 기적의 치유를 전제로한 일시적인 눈멂임을 시사해 준다. 이것은 이방의 마술사에 대해 하나님의 종이 가지는 우월성을 명백히 해준다. 즉 이방의 술사가 실패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권능이 마술이나 악마와의 교섭보다 뛰어남을 나타낸다.||(d) 튀플로스는 은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마 15:14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마치 바울이 롬 2:19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호데고이 투플론(소경들의 인도자)"이며, 그래서 이 말을 경칭으로써 사용할 자격이 있다고 하는 율법에 정통했던 유대인들의 가정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의 권위있는 해석자들로 여겼고, 따라서 그들만이 "눈먼" 이방인들을 합법적으로 인도하고 지도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빛을 가져오는 자로 자부하며, 이방인들에게 소위 진리와 이해력을 제공해 주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맹목 속에 빠져있는 바리새인들을 동정하시기는 커녕 오히려 그들을 비난하셨다. 왜냐하면 그들 마음이 완악하여졌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참조: 마 23:16 이하; 마 23:19; 마 23:26; 마 16:4).|눅 6:39에 나타나는 마 15:14의 병행구는 다소 다른 각도에서 고찰되어진다. 이것은 판단에 대한 가르침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너희 스스로가 눈이 멀어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조차 갖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 판단하는 자로 자처할 수 있는가?|(참조: Walter Bauer; F. Graber).
멀게 하다
tuflovw
눈멀게 하다 bl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튀플로오(Pind., Hdt. 이래)는 튀플로스($5185: 눈이 먼, 장님의)에서 유래했으며, '눈멀게 하다, 시력을 빼앗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튀플로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비유적으로 '정신적 분별력을 무디게 하다, 마음을 어둡게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a) 요 12:40, "저희 눈을 멀게 하시고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음이더라".||(b)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c)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교만하다
tufovw
자만으로 어리석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튀포오(Hippocr., Pla.)는 튀포스(%652: 연기 smoke; 자만 pride)에서 유래했으며, '연기를 일으키다, 안개(연무)로 감싸다, 흐리게 하다'라는 의미에서,||(a) '자만하게 하다, 뻐기다, 잘난체 하다, 자만심으로 우쭐하다'(Strab., Joseph., Diog.),|(b) '자만심으로 눈멀게 하다, 어리석게 하다'(Dem., Aristot., Polyb., Plut.).||#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튀포오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에만 3회 나온다.||(a) 딤전 3:6, "새로 입교한 자도 말찌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정죄하는 그 정죄에 빠질까 함이요". 튀포오는 여기서 '자만심으로 어리석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b) 딤전 6:4, "저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훼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튀포오는 여기서도 '자만심으로 어리석게 되는 것'을 나타낸다.||(c) 딤후 3: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여기서 완료 분사가 사용되어 '흐려진, 정신이 멍한'이란 의미를 지닌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튀포
tufwv
연기를 일으키다(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튀포(Eur., Hdt. 이래)는 '연기를 일으키다, 연기를 뿜다'를 의미한다. .||#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튀포는 신약성경에서 마 12:20에 한번 나온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리논 튀포메논'은 연기를 내면서 깜박이다가 꺼져가는 불꽃을 표현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튀포니코스
tufwnikov"
회오리 바람 whirlwind.||#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튀포니코스(Etym. Mag.)는 튀폰(%653: 폭풍)에서 유래했으며, '회리 바람, 폭풍, 태풍, 회오리 바람과 같은'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튀포니코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7:14에 한번 '회오리 바람(같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