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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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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light, 광채, 광휘 brilliance , brightness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스(Homer 이래)는 근본 의미로 `빛, 광채(광휘)'이며, 햇빛, 횃불, 불빛, 시각, 새벽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비유적으로는 생명의 빛, 즉 생명 자체를 의미하며, 그것은 또한 빛나는 어떤 것으로 구원, 행복, 승리와 비교될 수 있는 것으로 높이 평가받는 것들이다. 이러한 구원을 가져다 주는 자도 포스로 나타낼 수 있다. 그리고 진리와 그 지식, 선(행)을 의미할 수도 있다.||#2. 70인역본의 용법||포스는 70인역본에서 약 180회 나오며, 대부분 오르(빛)의 역어로 사용되었고, 문자적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스는 신약성경에서 72회, 그 중에 공관복음서에 14회, 요한의 기록에 33회, 바울서신에 13회, 사도행전에 10회 사용되었다.||(a) 포스는 원래의 의미에서 `빛'으로 사용되었다. 밤에 없는(요 11:10) 햇빛(계 22:5), 등불의 빛(눅 8:16; 눅 11:33; 눅 15:8; 행 16:29; 계 18:23; 계 22:5), 그리고 불에서 나오는 따뜻한 빛(막 14:54; 눅 22;56)을 나타낸다.||(b) 포스는 신현현의 표시로 나타난다. 마17:7의 예수님의 변모시에 빛이 나타났다: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하나님의 출현에는 반드시 광채가 동반한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이다. 다른 곳에서는 승천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지시한다(행 9:3; 행 22:6; 행 22:9; 행 22;11; 행 26:13).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자의 도래를 표시한다(행 12:7).||(c) 포스는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표현한다.|요일 1:5에서 빛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딤전 6:16에서 빛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의 영광이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고후 4:6에서 빛의 창조자시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참조: 창1:3).|약 1:17에서 빛은 하나님의 공명정대하심이다: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d) 특히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포스로 묘사한다.|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빛이시다. 요한은 이미 그의 복음의 서언에서 빛과 생명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 즉, 본래 어둠에 처한 인간들은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제받을 수 있다.|요 8:12에서 예수님은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하신다.|세례(침례) 요한은 빛을 증거하는 자로 불리워졌으나 그와 빛 자체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가 있는 것이다(요 1:6이하; 요 5:35이하). "각 사람에게 비취는 참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세상 속으로 오게 되었다(요 1:9). 예수님은 그의 유명한 말들 중의 한 구절, 즉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는 말에서도 그가 계시를 독점하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요 8:12; 참조: 요 9:5; 요 12:46). ``그 빛'은 직접적으로 예수님의 본성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빛과 유사한 존재가 아니라 그가 곧 `빛'이다'||(e) 제자들은 세상의 빛으로서, 빛을 세상에 가져다 주는 자들로 묘사되어 있다(참조: 요12:35; 엡 5:8; 빌 2:15), 제자들은 그들이 받은 거룩한 빛을 전해주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다.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비밀히 들은 것을 `광명한데서' 혹은 `빛 가운데서' 즉 공개적으로 선포해야 한다(마 10:27; 참조: 눅 12:3). 그들은 그리스도의 선교사로서 그들 자신의 빛이 아니라 천국의 참 빛으로 세상을 밝혀야 한다.|제자들, 또는 신자들은 "빛의 자녀들"이 되었으며, 이제 "주 안에서 빛"이 된 것이다(엡5:8; 참조: 살전 5:5; 눅 16:8).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엡5:9).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빛을 따라 걸어야 하며 그들을 둘러싸고 있을 세상에 대한 선교적 책임을, 그들이 "어두운 세상에서 빛들"(빌 2:15; 참조: 행 13:47; 사 49:6)로 생활함으로 오직 만날 수 있는 어떤 책임을 짊어진 이상 더욱 더 그렇게 행해야 한다. 그렇게하여 그들이 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요 12:36에 보면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된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인간은 빛보다 어두움을 사랑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훈계는 필요하다. 인간은 오로지 최초의 빛의 창조와 같은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로 말미암아 변모될 수 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참조: 창 1:3).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후에 "어둠이 지나간" 것이 틀림없는 사실일지라도(요일2:8), 빛으로 나아온 기독교인들은 여전히 형제애에 관한 계명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요일 2:8이하). 왜냐하면,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만이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이다(요일 2:10). 진리를 행하는데 선행조건-딴 곳에서 처럼 여기서도 빛의 개념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세상의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인 친교를 나누는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빛 가운데서 행하고, 형제를 위해 살며,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통해서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된다(요일 1:6이하).|우리는 그를 통해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게 되었다(골 1:12).||(f) 벧전 2:9에서 포스는 구원을 가리킨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롬13:12에서 포스는 의를 가리킨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후 11:14-고후 11:15; 요일 2:9, 요일 2:10도 참고하라.|마 5:14; 마 5:16; 요 5:35에서 포스는 하나님에 대한 증거를 가리킨다.||(g) 계 18:23에서 바벨론은 멸망할 때 "결코 다시 등불 빛이 그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리라"는 경고를 받는다.|반면에 계 21:24에서 천국성은 빛의 세계가 된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그 곳에는 빛으로 비취시기 때문에 등불과 햇빛이 필요치 않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5).|(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W. E. Vine; H.-C. Hahn; H. Conzelmann).
포스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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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광체, 광채, 빛남||#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포스텔(Heliodorus 이래)는 프호스($5457)에서 유래했으며, `발광체, 광채, 빛남'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스텔은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히브리어 조할(빛남, 단 12:3)과 마올(빛, 발광체, 창 1:14, 창 1:16)을 번역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스텔은 신약성경에서 2회, 빌립보서와 요한계시록에만 나온다.||(a) 빌 2:15에서 포스텔은 `빛을 발하는 자 곧 조명자'를 의미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b) 계 21:11에서 포스텔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빛남'을 묘사한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참조: J. H. Thayer; H. Conzelmann).
샛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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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가져오는 것, 새벽별.||#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포스포로스(Arstph., Eur. 등)는 프호스($5457)에서 유래했으며, `빛을 가져오는, 빛을 발하는'을 의미하며, 유리피데스(Euripides) 이래로 `새벽별'을 의미하게 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포스포로스는 신약성경에서 벧후 1:19에 한번 나타난다: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태양을 포스포로스,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빛을 가져오는 자(light-bringer)로 해석할 사전적 근거는 전혀 없다. 고대 그리이스어에서, 이 용어는 여명 전에 떠오르는 샛별, 즉 금성을 가리키는데 사용되었다(릿델-스코트, Liddell-Scott, 1968). 별이 메시야적 상징으로 사용된 예에 관해서는 민 24:17을 보라: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벧후 1:19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사상은 그 구절은 그리스도의 도래를 그림과도 같이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그때 그리스도는 그들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일체의 의심과 불안을 깨끗이 몰아낼 것이며, 그들을 놀라운 광채로 가득채울 것이다.(J. N. D. Kelly)|(참조: J. H. Thayer; C.Brown).
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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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shining, 밝은 brigh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포테이노스(Xenopen 이래)는 프호스($5457)에서 유래했으며, `빛나는, 밝은'을 의미하며, 전이적 의미로 `맑은, 깨끗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테이노스는 70인역본에서 2회 나오며, `밝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집회서 17:31; 23:19).||#3. 신약성경의 용법||포테이노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마 17:5에서 `빛난' 구름은 신현현의 표시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하나님이 그의 아들의 변형시에 사용한 빛난 구름은 구름 자체를 지나 하나님을 지시하는데, 그의 출현에는 필연적으로 광채가 동반하게 된다.||(b) 마 6:22에서 `밝은'이란 의미를 나타낸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병행구, 눅 11:34; 눅 11:36).|(참조: J. H. Thayer; H. Conzelmann).
드러내게 하다
fwtivzw
밝게하다, 비추다, 조명하다 light up, illumine , 밝히다 bring to ligh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포티조(Aristotle 이래)는 자동사로 `빛나다, 비치다'를 타동사로 `조명하다, 밝게하다, 밝히다'를 전의된 의미로 `알리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포티조는 70인역본에서 약 40회 나오며, 8개의 단어들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빛나다'(잠 4:18), `비취게 하다'(민 8:2), `가르치다, 알려주다'(삿 13:8; 왕하 12:2)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포티조는 신약성경에서 11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계 22:5에서 포티조는 자동사로서 `비취다'를 의미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b) 포티조는 타동사로서 ① `밝게하다, 조명하다, 비추다'. 눅 11:36에서 `비추다'를 의미한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계 21:23에서도 같은 의미를 나타낸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계 18:1에서 수동태로 `밝게 되다'를 의미한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② `밝히다, 명백하게 하다'. 고전 4:5에서 어두움에 감추인 것을 `밝히다'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엡 3:9에서 비밀의 경륜을 `밝히다'를 의미한다: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딤후 1:10에서도 `밝혀 명백하게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저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c) 포티조는 `가르친다, 알려주다'는 의미에서 `영적으로 계몽이나 교화하다'를 나타낸다. 요 9:1에서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히 6:4("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와 히 10: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에서 복음의 구원 지식을 받는 것을 나타낸다.|엡 1:18에서도 계몽이나 교화라는 의미를 지닌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참조: J. H. Thayer; Walter Bauer; H. Conzelmann).
프호티스모스
fwtismo"
조명, 계몽, 계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호티스모스는 프호티조($5461)에서 유래했으며, `빛남, 밝힘, 나타냄, 계시'를 의미하며, 매우 드물게 사용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프호티스모스는 70인역본에서 6회 나오며, 히브리어 오르(빛, 욥 3:9; 시 27:1; 시 44:4; 시 78:14)와 마오르(빛, 발광채, 시 90:8)을 번역하였다.||#3. 신약성경의 용법||프호티스모스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후서에 2회 나온다.||(a) 고후 4:6에서 프호티스모스는 `조명, 교화'를 나타낸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이것은 가르침에 의해 교화되는 것을 나타낸다.||(b) 고후 4:4에서 프호티스모스는 복음의 광채 곧 복음의 계시를 나타낸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참조: J. H. Thayer; H. Conzelmann).
기뻐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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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다 be glad, 즐거워 하다 rejoic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카이로(Homer이래로)는 '기뻐하다, 즐거워 하다'를 의미하며,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기뻐하는 것을 나타낸다. 현재 명령법은 인사말로 자주 나타난다. 즉 카이레(단수)와 카이레테(복수)는 "안녕하십니까?" "안녕히" Hail!라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카이레는 무엇보다 신들에게 대한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서신의 서두에서 부정사 형태인 카이레인이 가끔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동사 레게이가 보충되어야 한다(참조: Funk § 480). 즉 "…문안을 [드리다]"([…says] greetings!). 똑같은 관용 어구가 축배를 들 때도 사용되며(즉, "건강을 빌면서!" good health!) 헤어질 때도 사용된다(즉 "안녕히 계십시오[가십시오]!" Farewell!).||#2. 70인역본의 용법||카이로는 70인역본에서 약 80여회 나오며, 주로 '기뻐하다, 기쁘다'를 뜻하는 길, 사마흐, 시스와 '기쁨, 즐거움'을 뜻하는 사메아흐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러한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카이로는 신약성경에 74회 나오며, 이 동사와 명사 카라($5479)는 특히, 그리스도를 통한 종말론적 완성 및 그리스도 안에 존재함과 그리스도 안의 소망을 언급한 곳에 현저히 나타난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선포인 신약성경 메시지 전체가 기쁨의 메시지(→복음 Gospel)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a) 카이로는 인사말로 사용되었다. 부정사 카이레인을 써서 인사한 경우는 행 15:23; 행 23:26; 약 1:1의 편지의 서두에서만 나타난다. 요이 1:10에서 신자들은 이단에 속한 자들에게 카이레인을 하지 말라고 한다: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여기서 수신자들은 이단 교리를 전하는 자들의 악한 행위에 완전히 연루되지 않도록, 그들을 영접하지도 인사하지도 말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마 28:9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친숙한 일상적 인사말 카이레테를 사용하여 제자들에게 자신을 알리고 있다: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마 26:49에서 배반자 유다는 예수님께 인사했다: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안녕과 행복을 소원하는 그 인사의 이면에는 무서운 음모를 감추고 있다.|마 27:29에서는 예수님께 대하여 유대인의 왕(이스라엘)이라고 조롱적 인사를 던지고 있다: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그들이 이렇게 인사하지만, 그러나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고 그 말을 하였으나, 주님이 당연히 받으셔야 할 인사였으니만큼, 그 속에는 하나의 반어적(反語的) 의미가 숨겨져 있다고 볼 수 있다.|눅 1:28에서 마리아는 카이레 그 자체보다는, 오히려 잇따른 메시지에 놀랐다.||(b) 공관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오심과 사역은 기쁨을 가져왔다. 카이로는 잃어 버린 것을 찾았을 때(눅 15:5이하; 마 18:13), 자기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알았을 때(눅 10:20), 구세주의 선구자가 났을 때(눅 1:14), 그의 탄생의 별을 보았을 때(마 2:10),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에(눅 13:17; 눅 19:6), 기뻐하는 것을 표현한다.|눅 19:37이하(참조: 눅 18:43)에서 예수님께서 입성할 때의 사람들의 분위기는 예수님의 승천 후에 제자들의 분위기처럼 기쁨의 분위기였다: "이미 감람 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 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마 5:12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핍박을 받을 때도 기뻐해야 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예수님이 하나의 공격의 대상이 되고, 그를 뒤따르는 자들의 길이 고난과 핍박에 이르게 된다 할지라도, 기쁨에 찬 구원의 확신은 상실되지 않아야 한다(눅 6:23).|눅 22:5에서 유다가 당국자들과 예수님을 넘겨 주기로 합의했을 때 그들이 기뻐했다: "저희가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언약하는지라".|눅 23:8에서 수난의 때에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보고 기뻐했다: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c) 사도행전에서는 교회의 불가항력적, 전세계적 확장에 대한 기쁨이 반복적으로 표현된다. 먼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과 핍박을 받음에 대한 사도 Apostle들의 기쁨이 있다(행 5:41; 마 5:11이하). 박해가 복음의 승리적 진행을 정지시킬 수 없다. 이방인을 끌어 모은데 대한 기쁨도 있다(행 11:23; 행 13:48; 행 15:3).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고, 그들이 세례(침례)를 받았을 때, 거기에 해당된 사람들은 크게 기뻐하였다(행 8:8, 행 8:39; 행 15:31).||(d) 요한의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충만한 기쁨이다. 요 3;29에서 세례(침례) 요한은, "신랑" 즉 약속된 하늘의 진리의 계시자로 인하여 지금 기쁨이 충만해 있다(참조: 마 9:14이하, 병행구, 막 2:18이하; 눅 5:33이하). 종말론적 시간은 이미 도래하였다. 요 4:35 전후 문맥을 보면 이 때는 계속적인 파종과 수확기가 병존하는 시기이고(요 4:35이하), 예수님께서는 자기에게 주어진 사역을 이미 성취하고 계신다(요 4:34). 요 8:56에 보면,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아브라함도, 수확이 시작되는 이 때를 보며 즐거워 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여기에서 카이로는 기다리는 기쁨이고 아갈라오마이는 성취된 기쁨이다.|요 16:20이하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죽음을 자기의 제자들이 기뻐해야 한다고 설명하신다. 왜냐하면 죽음은 승리요 발전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슬픔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부활이 그 슬픔을 기쁨으로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요 14:27이하에서 기쁨을 평화와 연결시키는 것은 기쁨의 종말론적인 성격을 만들어 낸다.|요 11:15에서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때 거기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셨다. 그 이유를 설명하신다: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신대".|요이 1:4; 요삼 1:3에서 사도 요한은 믿음의 형제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기뻐했다.|계 11:10에서 카이로는 악한 즐거움을 나타낸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9:7에서 성도들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의 때가 되었기 때문에 즐거워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e) 바울 서신들은 기독교인의 기쁨은 슬픔과 고통과 근심 가운데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역설적 의미를 증거하고 있다. 진실로 이와 같은 사실은 이 기쁨의 능력을 확실히 증명해 주는 것이다.|① 이러한 기쁨의 원천은 단순한 지상적, 인간적 기쁨 너머에 있다. 그것은 주 안에 있는 기쁨이며, 따라서 우리의 외부에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계속하여 기쁨의 존재를 상기시켜 주고, 그 기쁨을 표현하라고 권면하고 있다(빌 3:1; 빌 4:4; 빌 4:10; 롬 12:12; 고후 6:10).|빌 1:15이하; 빌 1:18에서 바울은 동기에 상관하지 않고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였다: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바울은 놀라운 비이기적 자세를 유지했다. 그는 어떤 자들이 그들 자신의 명성을 얻기 위해 전파하고 있는 것을 알았으나 이 전도자들의 동기에 상관없이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을 기뻐하였다. 믿음과 그것의 결과적 기쁨이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에, 좋지 못한 동기에 의해 그리스도가 전파된 때 조차도, 바울은 확신과 기쁨을 지닐 수가 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운 사역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공유해야 한다는 사실이다(빌 1:15-18).|②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은 기쁨을 들립시스(고통, 고난, 박해, 환난)와 직접적으로 대조시키고 있다.|바울이 편지를 기록할 때, 들립시스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고후 2:4), 엔 퀴리오, 즉 "주 안에" 있는 기쁨인(빌 3:1) 자기의 기쁨을 모두가 함께 나눠 갖도록 하기 위해(고후 2:3) 썼다고 하였다. 고린도인들의 삶은 수동적 자포자기 상태 또는 사망을 낳는 세상 근심(고후 7:9이하)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결한 믿음의 기쁨에 의해 지배를 받아야 했다. 바울은 그들을 이전에 엄히 책망했었으나, 그의 권면이 결국 유익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에 그들에 대하여 다시 안심하게 되었다(고후 7:13).|③ 바울은 빌립보서를 쓸 때 감옥에 있었다. 당시에는 아직 자기의 재판의 결과를 알 수 없었고, 분명히 외로움을 느끼었을 것이다(빌 2:20이하). 그리고 충성스런 복음 전파도 위기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빌 1:15이하; 빌 2:21). 또 다시 들립시스가 있었으며(골 1:24), 이것이 근심의 원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계속적인 기쁨의 근거 역시 있었다. 즉 그것은 빌립보인들이 복음에 참여함으로 인한 감사(빌 1:5)와 그리스도가 계속 전파됨으로 인한 기쁨이었다(빌 1:18). 그리스도와 복음에 의해 속박을 당한 바울은 그의 독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기뻐하라고(빌 2;17이하), 또 염려를 버리라고(빌 4:6), 나아가서는 성령의 교제 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비록 바울에게 근심할 수 밖에 없는 까닭이 있고, 그가 곧 죽게 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가 그의 몸에서 존귀하게 되는 한(빌 1:20),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리오!|이처럼 빌립보서의 기쁨은 계속적이고 "도전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릎쓰는" 기쁨이다(K.Barth).(참조: 빌 2:17; 빌 4:4). 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힘은 그 자체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지칠 줄 모르는 기도를 통해 생성된다(빌 4:6; 참조: 살전 5:16; 골 1:11). 그것은 복음의 세계적 확산에서(살전 3:9; 골 2:5), 그리고 복음을 전한 교회들의 왕성한 성장에게 그 힘을 얻는다(빌 4:10; 참조: 살전 2: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것은 주 안에서의 기쁨이다(빌 4:4).|④ 벧전 4:13에서 카이로는 고난과 영광에 관련되어 나타난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그리고 롬 12:15에서 관용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으로부터의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타인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해 준다. 다른 한편 고전 7:30; 고후 6:10에서 카이로는 우리에게, 현재의 기쁨과 슬픔은 이 생(生)에만 속할 뿐이며 우리의 궁극적 몫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참조: H.Conzelmann; E.Beyreuther; G.Finkenrath).
우박
cavlaza
우박 hail.||#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칼라자(Homer 이래로)는 칼라오($5465)에서 유래했으며, '우박'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칼라자는 70인역본에서 약 37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바라드(우박)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바라드는 애굽에서의 여섯번째 재앙과 관련하여 나온다(출 9:18-출 9:33; 시 18:12등). 그 외의 구절들에서, 비유적으로, 특히 불순종한 이스라엘에 임하는 파괴적인 힘을 묘사하는데 사용되거나(사 28:2) 문자적으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었다(시 148:8).(J.N.Oswalt).||#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칼라자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서만 4회 나타난다.|계 8:7에서 첫번째 나팔을 분 다음 나타난다: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계 11:19에서 우박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열리자 곧 이어 나타난 기상 현상 중 하나이다.|계 16:21에서 특별히 큰 우박은 일곱번째 대접을 쏟은 후에 뒤이어 나타난 마지막 공포이다. 엄청나게 쏟아내리는 우박의 맹렬함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것이었으며 하나님의 심판은 불가항력적이라는 진리를 강조한다.|(참조: L.L.Morris).
내려놓다
calavw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칼라오(Pind., Aeschyl. 이래)는 기본어이며,||(a) '느슨하게 하다, 늦추다, 이완시키다',|(b) '내리다, 내려 보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칼라오는 신약성경에서 7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막 2:4에서 지붕을 통해 침상을 달아 내리다: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누운 상을 달아내리니".||(b) 눅 5:4-5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그물을 내리다: "4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c) 행 9:25에서 사람(바울)을 성벽으로 밖으로 광주리에 담아 달아 내리다: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d) 고후 11:33에서 같은 사건에 대해 수동태로 표현한다: "내가 광주리를 타고 들창문으로 성벽을 내려가 그 손에서 벗어났노라".||(e) 칼라오 스큐오스는 전문적인 언어에서는 아마도 닻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행 27:17).||(f) 행 27:30에서 칼라오 텐 스카펜은 구조선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사공들이 도망하고자 하여 이물에서 닻을 주려는체하고 거루를 바다에 내려 놓거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EDNT).
갈대아 사람
Caldai'o"
갈대아인 Chaldean||명사 칼다이오스(Hdt. 이래)는 '갈대아인, 갈대아에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신약성경에서 칼다이오스는 행 7:4에 한번 나오는데 여기서 창 11:28; 창 11:31과 창 15:7에 대한 언급은 남쪽 아르메니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고통하는
calepov"
어려운, 곤란한, 악한||#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칼레포스(Homer. 이래)는||(a) '힘든, 어려운, 곤란한'을 의미하며, 참기 어려운 말들, 또는 다루기 힘들어서 위험한 인간들이나 동물들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참조: 예: Josephus, Antiquities 15,98).|(b) 도덕적으로 '나쁜, 악한'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칼레포스는 70인역본에서 11회 나오며, 오직 히브리어 야레(3372: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사 18: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칼레포스는 지혜서에서는 도덕적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악'과 '사악'을 뜻한다(지혜서 3:19; 지혜서 17:11; 지혜서 19:13). 한편 집회서 3:21에서는 지적 어려움, 즉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칼레포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마태복음과 디모데후서에만 사용되었다.||(a) 마 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 저희는 심히 사나와 아무도 그 길로 지나갈 수 없을만하더라". 여기서 칼레포스는 가다라 지방에 있는 귀신들린 두 사람의 격렬한 난폭성을 가리킨다. 이것은 마태 특유의 표현 수법이다.||(b) 딤후 3:1,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여기서 칼레포스는 특이한 방식으로 종말의 성격을 나타내고 있다. 이 때는 자기 이익이 인간 관계의 결정적 요인이 되는 고통과 고난의 때이다(참조: 딤후 3:2-4).|(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P. J. Budd).
굴레 씌우다
calinagwgevw
굴레나 재갈 먹이다, 제어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칼리나고게오(Lucion)는 칼리노스($5469: 굴레, 고삐)와 아고($71: 인도하다, 데려오다, 끌어오다, 가져오다)에서 유래했으며,||(a) '굴레나 재갈 물려 이끌다, 이끌다',|(b) 비유적으로, '굴레 씌우다, 재갈 먹이다, 제어하다, 저지(억제)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칼리나고게오는 신약성경에서 야고보서에만 2회 나온다.||(a) 약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여기서 칼리나고게오는 '재갈 먹이다' 곧 '제어하다'를 의미한다.||(b)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여기서 칼리나고게오는 '굴레 씌우다' 곧 '제어하다'를 의미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굴레
calinov"
굴레, 재갈.||#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칼리노스(Homer 이래)는 칼라오($5465: 늦추다, 느슨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굴레, 재갈, 고삐' a bridle(Aeschyl., Pind.)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칼리노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야고보서와 요한계시록에만 사용되었다.||(a) 약 3:3,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b) 계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칼케오스
cavlkeo"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칼케오스는 칼코스($5475: 구리, 청동)에서 유래했으며, '구리나 청동으로 만든'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칼케오스는 신약성경에서 계 9:20에 한번 나온다: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구리장색
calkeuv"
동세공인 coppersmith.||#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칼큐스(Homer이래로)는 칼코스($5475: 동이나 청동)에서 유래했으며, '동세공인'을 의미한다. 그 다음에 '금속 세공인'(Aristot., Poet.25)을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칼큐스는 70인역본에서 7회 나오며, '세공인'이나 '조각가'를 뜻하는 히브리어(호레쉬, 하라쉬, 차라프)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칼큐스는 신약성경에서 딤후 4:14의 '구리 세공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구리 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니".|(참조: J.G.Baldwin; J.H.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