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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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 붓다(바르다) anoi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크리오(Homer이래로)는 능동태로 '몸이나 부분들을 문질러 바르다, 어루 만지다', 중간태로 '자기 자신을 문질러 바르거나 어루만지다'를 의미한다. 크리오가 기름에 대하여 사용될 때, '기름을 붓다, 기름을 바르다'를 의미한다.|그 용법들을 보면, 총에 기름을 칠하거나 독약을 묻힌다. 옷을 솔질하다, 목욕 후에 몸에 기름을 바르다, 환자나 죽은 시체에 기름을 바른다. 새의 날개에 피치(pitch)를 칠하다, 백도제를 바르다, 색칠하다 등이다(참조: W.Grundmann).||#2. 70인역본의 용법||크리오는 70인역본에서 약 78회 나오며, 마샤흐('기름 바르다나 붓다')의 역어로, 3회만 같은 뜻을 가진 수크(신 28:40; 겔 16:9)와 야사크(출 30:2)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크리오/ 마샤흐는 70인역본에서 여러가지 용법으로 나타난다.||⒜ 크리오는 일상적인 용법에서 방패에 기름을 바르는 것(사 21:5), 집에 칠을 하는 것(렘 22:14), 혹은 몸에 기름을 바르는 것(암 6:6)과 같은 그러한 행위에 대한 언급에서 나타난다.||⒝ 크리오는 종교 의식과 관련해서는 성막, 제단, 혹은 놋대야(출 40:9-출 40:11), 혹은 심지어 속죄 제물(출 29:36)과 같은 것들에 의식적으로 기름을 바르는 것과 연관된다.|보다 더 자주 크리오는 뿔에 담긴 기름을 개인의 머리에 붓는 것과 연관된 행위, 즉 통치하는 직분에 대한 취임 의식에 대해 사용된다. 크리오의 가장 빈번한 언급은 이스라엘의 사울 및 다윗과 같은 왕들에 대한 것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삼하 12:7; 아람인 하사엘에게도 사용됨을 유의하라, 왕상 19:15). 대제사장은 기름부음을 받으며(출 29:7; 민 35:25), 또한 다른 제사장들도 기름부음을 받았다(출 30:30). 2회에 걸쳐 이 단dj는 선지자에게 기름 붓는다는 것에 대한 언급이 있다(왕상 19:16; 사 61:1).||⒞ 크리오의 네 가지의 중복된 신학적 의미가 있다. 첫째, 어떤 개인이나 어떤 대상에게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봉사를 위해 권위가 위임되는 rn별을 가리킨다. 모세는 "거룩하게 하려고"(레 8:12; 참조: 출 29:36, 제단에 대하여) 아론에게 기름을 부었다.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라는 표현을 주목하라(대상 29:22). 크리오가 명예의 직위를 표현하는 반면, 또한 증가되는 책임을 표현한다. 사울과 다윗은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와 같은 말의 회고로써 자신들의 죄에 대한 책임을 추궁받았다(예: 삼상 15:17; 삼하 12:7).|두번째로, 대행자가 제사장 혹은 선지자라 할지라도 성경 기자들은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을 주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들로 말하였다(삼상 10:1; 참조: 삼상 12:7). 이와 같은 말은 권위의 부여자는 하나님이시라는 것: 기름부음을 받은 자들은 신성하다(참조: 삼상 24:8이하)는 것을 나타낸다. 따라서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과 직접 접촉하며 신성불가침한 자로 간주되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는 특별한 존경을 부여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참조: 삼상 26:9이하).|세째로, 하나님의 권한 부여가 마샤흐에 수반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추론할 수 있다. 사울과 다윗의 경우에 모두, "네게는 하나님의 신이 크게 임하리라"하는 것은 그들에게 기름 붓는 것과 관계되어 언급된다(참조: 삼상 10:6이하; 삼상 16:13이하). 따라서 기름부음은 권세와 힘과 영예의 선물의 전달을 의미하였다(참조: 시 45:7). 기름부음을 통해 왕은 특별한 권세를 갖는 자가 되었다.||⒟ 사 61:1과 겔 16:9과 같은 구절들에서 기름부음을 은유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기름 붓는 의식은 왕과 제사장들에게만 유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 61:1은 예언자의 증언으로 보아야 한다. 예언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카리스마적 자질을 권위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눅 4:18)에서 이 본문은 예수님께 적용된다. 곧 예수님께서는 약속된 예언자가 되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다.|(참조: V.P.Hamiltion; D.Muller).||#3. 신약성경의 용법||크리오는 신약성경에서 5회 나오며,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고, 70인역본의 용법과 일치한다 기름 부음은 성령, 특별한 능력, 또는 신적 위임의 부여를 나타낸다.||⒜ 크리오는 4회의 경우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기름 부으심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 본문들은 모두 성령에 의한 초자연적 능력의 특별한 부여를 나타낸다(특별히 행 10:38). 성령에 의한 이 기름 부으심(눅 4:18; 행 4:27; 행 10:38)은 예수님의 세례(침례)에서 일어났던 바를 상기시켜 준다.|세례(침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크리스토스, 즉 메시야로 세우시는 왕적, 제사장적인 기름부으심을 받으셨다. 나사렛 예수는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평화의 복음의 도구로 선언되셨다.|눅 4:18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으로서 시작하는 이 시기가 구원의 시기임을 선포하시기 위하여 이사야의 구절을 낭독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행 4:27에서 누가는 바로 앞에서 인용한 시 2편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예수님 안에서 성취된 것으로 본다.|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것은 그 세례(침례)를 받으실 때였다. 그의 사역은 반대를 유발시켜 마침내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그를 거스려 함께 모였다. 그러나 이들 대적들이 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 밖에 없었다. 이 기도에서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은 예수님을 통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다(참조: R.Earle).|행 10:38에서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그의 사역을 위해 능력과 성령을 부어주셨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히 1:9은 기름 부음을 말할 때 세례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 대관식의 행위를 언급하는 것이다(히 1:3, 히 1:4 참조). 예수님께서는 고난에 대한 복종과 인내를 인하여(디아) 기름 부으심을 받으셨고 승천에서 말세의 통치자와(히 1:8) 대제사장의 지위로(히 5:9이하) 높임을 받으셨다(참조: D.Muller).||⒞ 고후 1:21이하에서 크리오는 그리스도인의 세 과정에 나타난다.|바울은 근본적으로 세 개의 부정과거 기름을 부으신 … 인치시고 … 주셨느니라(고후 1:21, 고후 1:22)로 표현된 성령의 결정적인 행위를 적용하지만 오로지 그 자신의 소명과 위임(행 9:15-행 9:18)에만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그리스도(문자적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사 61:1-사 61:3, 막 1:10-막 1:11, 눅 4:18-눅 4:19; 참조: 행 26:17-행 26:18)가 그러했던 것처럼 효과적인 증인(행 1:8, 행 5:32, 또 요 3:34; 요 15:26-요 15:27을 보라)이 되도록 성령에 의하여 권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구약의 선지서들(왕상 19:16)에 보면 제사장들(레 16:32)과 왕들(삼상 15:1)이 그들의 맡겨진 직무를 위하여 기름 부음을 받았다.|기름 부음은 확실성과 신빙성의 개념을 수반한다(요일 2:20, 요 2:27 참조). 바울은 인간의 개성에 그 자신의 형상을 새기는(롬 8:29; 골 1:15) 그리스도의 영(롬 3:17; 롬 8:9)에 의하여 "인치심"을 받았다. 이러한 성령의 인치심은 하나님과 바울의 관계에 대한 진실성을 보증하며(엡 1:13, 딤후 2:19; 계 9:4; 참조: 롬 4:11; 왕상 21:8), 그러한 관계 속에서 그를 보호하는 것이다(엡 4:30, 또 단 6:17을 보라). 인치심은 신원 확인과 보증에 대한 표시이다(스 9:4; 에 3:12; 렘 32:10-렘 32:14).|세째로 바울은 "보증으로" 성령을 그의 마음에 받았던 것이다. 그는 완전 지불을 보증하는 제 1차 불입금에 대한 법적 상징으로 성령의 선물(행 2:38; 행 15:8-행 15:9)에 관하여 말한다. 그것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롬 8:23; 참조: 롬 5:5)로 "본질상 동일한 것'이다. 미래의 일부는 이미 현재가 되었고 그것으로 미래에 대한 보증이 된다. 보증이란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바울은 성령을 하나님의 약속의 이행과 구속 받은 자의 부활한 생명(롬 5:5), 그리고 구속의 기업에(엡 1:14) 결부시킨다. 라이트푸트(Lightfoot)는 보증이란 은유가 또 다른 개념과 관련되어 있다고 시사한다. 즉, 보증금 수령인은 불입자가 계약을 이행할 것을 자신에게 보증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이 계약에 대한 자기의 할 바를 성취할 것을 서약한다. 바로 일부 지불금을 인수하는 그 행위로 그는 친히 어떤 정해진 교호 작용에 서약하는 것이다. 성령의 선물은「특전」일 뿐만 아니라「의무」이다 … 말하자면 성령은 우리에 대한 선취 특권을 갖고 있는 것이다.|(F.G.Car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