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닫지 못하다
ajgnoevw
알지 못하다 not know, 모르다 be ignorant.||#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그노에오(Homer 이래)는 부정 접두어 %107와 기노스코($1097: 알게 되다, 지각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알지 못하다'를 의미하며, 지식에 대한 헬라어 개념의 모든 뉘앙스를 지닌다. 특별히 이 단어는 행위의 성격으로 '실수하거나 잘못하는 것'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그노에오는 70인역본에서 22회 나오며, 아샴(죄를 범하다, 호 4:15), 샤가(길을 잃다, 잘못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레 4:13; 삼상 26:21; 겔 45:20), 사각(길을 잃다, 잘못하다, 정도에서 벗어나다, 레 5:18) 등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지혜서 7:12에서 아그노에오는 '알지 못하다'를 의미한다.||#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그노에오는 신약성경에서 21회 사용 중 바울 서신 15회, 공관복음서 2회, 사도행전 2회, 히브리서 1회, 베드로후서 1회 나타난다. 아그노에오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아그노에오는 '이해하지 못하다, 무지하다'를 의미한다.|① 막 9:32과 눅 9:45에서 각 경우 예수님의 수난 예고에 대해 사용되었다.|② 행 13:27에서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대해 마음을 닫아 불순종하다는 의미에서 알지 못하는 것을 나타낸다: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과 저희 관원들이 예수와 및 안식일마다 외우는바 선지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므로 예수를 정죄하여 선지자들의 말을 응하게 하였도다".|롬 10:3에서 이것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이것은 단순히 지식의 부족 뿐만 아니라 "그릇된 이해, 즉 알고 생각하는 데 있어서 잘못된 길"을 의미한다(롬 10:3에 대한 O. Michel의 해석). 여기서 무지와 불순종은 병행되어 있다. 즉, 무지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로부터 돌아서는 죄이다. 유대인들의 무지의 죄는 내성(introspection)이나 어떤 종류의 자기 개혁으로 정복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시고 복음 안에서 자기 자신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처리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잘못하는 무지가 아니다. 이것은 지식과 올바른 행위, 따라서 지식에 대한 고의적인 거부와 심판 사이를 연결시키는 구약성경적 관점을 반영해 준다.|③ 고전 14:38에서도 이러한 의미를 지닌다: "만일 누구든지 [알지 못하]면 그는 [알지 못하는] 자니라." 이 구절의 하반절은 하나님의 인정하심에 대해 말한다. 왜냐하면 바울은 "주의 명령"으로 말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37절). 따라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으로, 결과적으로 이것은 바울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서도 인정 받지 못한다는 의미를 함축한다.|④ 딤전 1:13에서 아그노에오는 '정도에서 벗어나는', 또는 미혹시키는 '무지'를 나타낸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서 무지는 그가 항상 지식을 포함하는 기독교적인 믿음에로 개종(회심)하기까지 잘못되었던 자기 생활을 특징짓는 특성이다.|히 5:2의 "무식하고 미혹한"이라는 말에서 동일한 의미가 나타난다. 여기에서는 구약성경적 언어가 사용되었는데 '알지 못하는' 고의적이 아닌 죄와 고의적인 죄를 대조시키고 있다. 이 문맥에서 아그노에오의 의미는 알지 못하는 것에서 바라지 않는 것으로 확대되어 있으므로, 이 단어는 속죄받을 수 없는 죄와 대조되는 속죄 받을 수 있는 죄를 의미한다.||(b) 아그노에오는 '알지 못하다'를 의미한다. 롬 2:4; 고후 2:11; 행 17:23; 벧후 2:12에서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① 행 17:23에서 바울은 에덴 사람들을 그때까지 지식이 없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섬긴 자들이라고 부르고 나서, 이제 그는 이 하나님을 계시된 분으로 선포하고 있다. 많은 신들 가운데 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은 사실상 참되고 유일하신 분이시다. 그는 구약성경과 구원사의 하나님이시다. 부지에 대한 언급은 인간을 정당화시켜 용서하고자 의도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구원 목적을 소개하여 그들을 회개의 기쁨으로 인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② 벧후 2: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이 구절에서 불경건한 자들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일, 즉 그들이 들어 보지 못했던 일들을 훼방한다.|③ 바울은 특히 항상 "형제들아"라는 호칭과 함께 우 델로 휘마스 아그노에인, 즉 "너희가 모르기를(또는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문구에서(롬 1:13; 롬 11:25; 고전 10:1; 고전 12:1; 고후 1:8; 살전 4:13) 함축적인 이중 부정을 사용하여, 자기가 자기의 지식을 독자들과 나누어 가짐으로서 그들의 지식 부족을 종식시키고 싶어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아그노에오가 '알지못하다'나 혹은 아마도 오히려 '깨닫지 못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통상 문구인 에 아그노에이테("또는 알지 못하느뇨", 롬 6:3; 롬 7:1)에도 사용되었다. 이 두 구절에서는 복음에 대한 응답의 필요를 암시하는 현재의 지식이 전제되어 있다.||(c) 아그노에오는 수동태로 '알려지지 않다'를 의미한다.|① 갈 1:22에서 아그노에오는 수동태로 '알려지지 않았다'를 의미하다: "유대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나를 얼굴로 알지 못하고".|② 고후 6:9에서 아그노에오는 '알려지지 않다'나 '인정받지 못하다'에서 '오인이나 오해되다'를 의미한다. 바울은 그가 세상에서 "무명한" 자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세상의 큰 자들 가운데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그는 하나님과 교회에 잘 알려져 있는 인정받는 사람이었다.|(참조: R. Bultmann; J. H. Thayer; E. Schut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