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바톤
provbaton
양 sheep.||#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프로바톤(Homer이래)는 프로바이노($4260: 앞에 가다)에서 유래했으며, 고전 헬라어에서는 드물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프로바톤은 헤엄치거나 기는 것들과 다른 네 발 달린 동물(짐승), 특히 길들이고 사육하는 가축, 말, 황소, 희생 동물을 나타낸다.|그리고 몸집이 작은 가축(특히 양)에 대하여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작은 가축은 다른 동물들보다 연약하면서도 앞서 간다. 이 단어는 복수로만 사용되었으나(양떼나 소떼), 후대에 이르러 특정하게 '양'을 의미하는 단수 용법이 생겼다.||(b) 프로바톤은 단순한 사람에 대해 사용되었다.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이 단어를 욕설의 용어로 은유적으로 사용한다(Nubes,1203). 그는 무엇이든 열등하거나 우둔한 것은(예: 얼간이) 양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단어에는 누군가에 의해 안내를 받아야 하는 사람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되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다(Epictetus, Dissertationes, 3, 22, 35).||(c) 프로바톤은 '물고기'(Oppianos Depiscatione등)에 대해 사용되었다(참조: H.Preisker; S.Schulz).||#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프로바톤은 70인역본에서 약 300회 나오며, 주로 촌(작은 가축, 양, 염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프로바톤은 구약성경에서 주로 유용하며 또한 떼지어 사는 동물인 양을 의미하며(창 30:38; 사 7:21; 암 7:15) 그리고 희생 제물로서의 양의 의미로는 매우 드물게 사용된다(레 1:2). 프로바톤(거의 항상 복수 프로바타)은 은유적으로 '백성'(삼하 24:17), 특히 '하나님의 백성'(시 74:1, 회중; 시 77:20; 시 78:52)에 대해 사용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요지는 양에게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목자의 인도가 없으면 양떼는 흩어지며(겔 34:5, 겔 34:6) 양은 각기 제 길로 가며(사 53:6), 양들은 방랑하다가 광야의 위험의 희생이 되기도 하며(겔 34:5이하), 그러므로 그들은 목자에 의해 올바른 초장으로 인도되어야 한다(시 23장). 광야에서 지도자가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것이다(민 27:17). 개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없으면 "잃은 양 같이 유리"한다(시 119:176). 여호와께서는 그의 흩어진 양떼를 위하여 메시야 왕이나(렘 23:1이하; 겔 34:23) 모세(시 77:20; 사 63:11)와 같은 목자들을 지명하거나, 친히 자기 백성의 목자로서 행동하심으로 목자를 확보하여 주신다(시 78:52이하; 시 80:1; 사 40:11).|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을 하나님의 양이라고 부름으로써 첫째로 자신들의 힘만 갖고는 자신들을 보호할 수 없음을 인정하였으며, 둘째로 그들의 선한 목자이신 여호와의 인도하심을 신뢰하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였다(시 23장; 시 95:7; 시 100:3).||#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프로바톤은 신약성경에서 37회 나오며, 마태복음(11회)과 요한복음(17회)에 자주 나온다.||(a) 예수님께서는 비유에서 양을 들어 교훈하였다. 양은 목자의 돌보는 것 없이 홀로 내버려 두면 잃게 된다(눅 15:4). 따라서 양에게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 사랑이요, 비이기적 보호이며(마 12:11; 눅 15:4) 이 기본적인 사실이 그리스도께서 사용하신 은유의 배경을 이룬다.|목자 없는 양은 고생하고 유리하며(마 9:36), 길을 잃고(벧전 2:25) 잃어버린 바 된다(마 10:6; 마 15:24).|예수님께서 구약성경의 용례를 따라 자기 백성을 목자 없는 양떼로 비유하신 것은(막 6:34; 참조: 민 27:17; 왕상 22:17) 그들이 구원 받지 않으면 어떤 파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케 하신 것이다. 벧전 2:25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개종 이전에 그들이 양과 같이 길을 잃었으므로, 즉 희망없이 잃어버린 바 되었으며 거짓 목자들에게 이용당했음을 상기한다(참조: 겔 34:5).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내심 받은(마 15:24) "양의 큰 목자"이시다(히 13:20).||⒝ 마 26:31에서 양은 예수님께서 모으신 제자들에게 적용된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병행구, 막 14:27). 이 인용 구절은 다음의 슥 13:7의 예언을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 적용하는데, 마소라 본문은 "목자를 치라, 그러면 양 떼(촌)가 흩어지리라"로 읽고 70인역본은 "목자를 치고 양들을(프로바타) 흩으라"라고 읽는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참 이스라엘이요, 예수님을 치실 이는 하나님이심을 적용하여 복음서에서 기독론적으로 해석된다. 스가랴서의 문맥은 이 구절이 목자에 대한 심판임을 시사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하나님의 뜻을 행한 "양"은 대심판의 날에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리할 때에 비로소 마침내 염소와 분리될 것이다(마 25:32이하).(참조: R.Tuente).|스가랴의 예언이 달리 어떻게 성취되었든 간에 예수님은 여기서 그의 예언을 그 자신의 죽음과 제자들에 대한 그 효과(결과)를 가리키기 위해 인용하셨다. "내가 목자를 치리니…"는 여호와께서 예수님을 죽음에 내어주심을 뜻한다. 그러면 제자들은 이 시련을 면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 함정에 빠지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본다. 즉 제자들이 심히 낭패 당한 나머지 그들이 예수를 버릴 것이며, 목자 없는 양 떼처럼, 사방으로 도망가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슬프고 무서운 일이 지금 일어나려고 하긴해도 예수님 자신이 이 일을 제자들에게 미리 사전에 알려주셨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가진다. 이 사전 경고는 이 흩어진 양떼를 다시 모을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R.C.H.Lenski).||(c) 요한복음에서 프로바톤은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즉 그의 백성을 뜻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 10:14). 양들은 그들의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를 따른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아시고, 그들을 부르시고, 이리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신다(요 10:1-요 10:11).|마태복음에서는 목자와 양떼의 관계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왕의 관계인 반면에 요한복음에서 목자는 하나님을 계시하려고 하나님께로서 오신 아들이요 양떼는 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교회이다. "한 양떼와 한 목자"가 있을 때(요 10:16; 참조: 요 17:20이하), 즉 마침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주님 밑에서 한 교회 안에서 모일 때 그 때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목적이 성취되는 때이다.||(d) 프로바톤은 매우 드물게 희생 동물에 대해 사용되었다(요 2:14; 행 8:32; 롬 8:36). 하지만 이 사상은 신약성경에서 주로 암노스와 아르니온으로 표현된다.|(참조: J.H.Thayer; Walter Bauer; J.G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