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던 사람
ajpovstolo"
사도 apostol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아포스톨로스(Lysias, Demosth.)는 처음에는 동사적 형용사로 사용되었으나 후에 명사로 사용되었다.||(a) 아포스톨로스($652)는 '보내다'를 뜻하는 동사 아포스텔로($649: 보내다)에서 유래되었으며, 그 기본적 의미는 '보내심을 받은 자'이다.||(b) 아포스톨로스는 고전 헬라어에서 처음에 해양 언어로 발견되는데, 화물선이나 보낸 선단, 후에는 원정 함대의 함장이나 해외로 임무를 위해 '파견된 자'나 원정대, 또는 일단의 식민 개척자들을 의미하였다.||(c) 아포스톨로스는 헤로도투스의 두 구절에서만 한 인격으로써 '사절, 대사, 특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그는 Alyattes가 Miletus에게 보낸 사자와 같은 메시지의 전달자를 말한다(1.21).||(d) 아포스톨로스는 파피루스에서 나일강의 배로 운반되는 정부의 곡물 창고로부터 알렉산드리아로 보내는 곡식의 선적량을 지시하는 공식 서류인 나타내는 전문 용어이다. 아포스톨로스는 여권, 안전 통행증, 또는 심부름꾼이 떠나려 할 경우의 출국 허가서(P.Oxy. 1271; 참조: Strabo 2.3.5), 수출 면허장을 말한다. '여권 없이 승선한(알렉산드리아에서) 사람에 대한 법적 조치가 장관의 관할 하에서 취해진다'는 규정이 있었다(Gnomon of the Idios Logos 162).||#2. 70인역본 및 구약 등의 용법.||(a) 아포스톨로스는 70인역본에서 왕상 14:6에 한번 샬라흐의 역어로 나오며, 여로보암의 아내에게 신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아히야의 임무를 서술하는데 사용되었다.|대하 17:7-9에 의하면 이 보냄을 받은 자들은 단순한 사절이 아니라 책임있는 직무, 즉 어떤 사람의 권한을 위임받은 대표를 말한다. 그의 행위는 "보낸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이 점에서 당사자(보낸 사람)과 그 대리인은 동일하다: "어떤 사람의 샬리아흐는 그 사람 자신과 같다. 그러므로 사자는 자신에게 사명을 준 사람의 대리인이 된다(참조: 삼상 25:40 이하; 삼하 10:4, 6). 사자나 그에게 사명을 준 사람의 인격에는 관계 없이 그리고 심지어 임무에도 관계 없이 샬리아흐라는 말은 '전권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을 의미한다(참조: W. Schmithals). 이 규칙이 종교적인 영역에까지 적용된다. 샬리아흐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할 때 그것은 아브라함, 엘리야, 엘리사의 경우(Midr. Ps. 78 5; 173b)에서처럼 하나님 자신이 행하시는(b. B. Mes. 86b) 것과 같다. 랍비들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제사장들을 "우리가 행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행하는" 하나님의 샬리아흐로 생각했으며(b. b. Qidd. 23b; 참조: Rengstorf), 속죄의 날에 그들은 대제사장을 "하나님 앞에 있는 백성들의 대표자"로 불렀다(m. Yoma 1. 5; m. Git. 3.6). 회당 기도회의 인도자는 공동체의 샬리아흐였다. 랍비들은 고국의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들을 시찰하고 결집시키는 산헤드린의 대리자로 보냄을 받았다. 다른 한편 미쉬나와 탈무드에서 샬리아흐는 공동체를 대표하여(m. Ros, Has, 4.9), 그의 선거인들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신약성경의 사도의 의미에 영향을 주었다.||(b) 요세푸스는 이 단어를 사명을 받고 파송된 사절단에 대하여 사용하였다(로마에 보낸 유대인들).||(c) 아포스톨로스는 아마도 후대 영지주의적 계통에서 신적 계시의 중재자로서의 '사자'라는 동방적인 개념을 지니게 되었는데, 그들의 학설에서 그 단수로는 '천상의 구세주'를, 복수로는 '수많은 구원자들' 즉 '영적인 사람들'을 표현하는데 사용했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포스톨로스는 신약성경에서 80여회 나타난다.||(a) 신약성경에서는 고전 헬라어의 경우와는 달리, 아포스톨로스라는 말이 오직 '사자'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무엇보다 하나의 특정한 직무 즉 원(原) 사도직에 대한 확고한 명칭으로 사용되었다.|눅 6:12-눅 6:13, "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맟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13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 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따르고, 그의 삶을 함께 나누고, 그에게 속한 제자들 중에서, 특별한 방식으로 그를 대표하고, 그와 보다 더 친밀하게 교제하고, 그럼으로써 특별한 권한을 가지게 될 열 두명을 선발하셨다. 그 당시에는 단지 샬리아흐라는 단어 자체가 그들이 합당한 권세를 지닌 사절이나 대리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나타낼 뿐, 그들의 역할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으셨다.|그 역할에 대해서는 막 6:7에서 잠시 동안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전도를 위해 보내실 때에 말씀하신다: "열 두 제자를 부르사 (그들)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참조: 마 10:1-마 10:2). 사도들은 그들이 배치될 때에 예수님의 엑수시아(권세)와 함께 그들의 사명을 수행하도록 준비되었다. 여기에서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사도직의 본질적인 특성을 보게 된다.||(b) 사도는 경건한 사람이며 예수님에 의해 다른 사람들 중에서 선택되어 부름받은 자이다; 이것은 사도는 예수님의 처지를 공유하고 그의 재산과 그의 직업과 그의 가족을 포기하며, 그의 잔을 마시고(마 20:23) 이와 함께 주님께서 받으시는 세례(침례)를 받게 될 것이라는 것(막 10:39)을 포함한다. 누가는 "예수님께서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셨다"(행 1:2; 참조: 요 15:16; 요 15:19)고 주장한다. 바울은 항상 대리자로서의 그의 권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한, 즉 소명에 의한 사도(롬 1:1)이다.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문구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고전 1:1; 고후 1:1; 골 1:1; 엡 1:1)이다. 속격 크리스투(벧전 1:1)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명백히 설명되고 하나님의 뜻(델레마)으로 보강된, 소유와 기원에 대한 속격(참조, 롬 1:5)이다. 사도의 사명의 합당함을 위해 더 이상 확실한 근거는 있을 수 없다: 그 위임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및 죽은 자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된"(갈 1:1) 것이다. 이러한 위임은 공적이며 영속적이다.||(c) 사도는 본래 어떤 누군가에 의해서 다른 누군가에게 보내어진 사람이다. 그 목적은 다소 세속적일 수 있다; 대리자나 대표로서 '아포스톨로스는 그를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다'(요 13:16);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다"(요 13:20). 한 사람이 살리아흐를 대하는 태도는 실제로 보낸 사람을 향한 것이다. 사도의 사명은 우선 첫째로 전도하는 것이지만 또한 교회들을 세우고(고전 9:2), 죄를 용서하며(요 20:23), 성령을 전하고(행 8:18), 집사를 안수하고(행 6:6), 장로들을 세우는 것(딛 1:5)이다. 만약 필요하다면 다른 청중도 열거된다: 베드로는 할례자에게 보내어지고(갈 2:7),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보내어진다(롬 11:13; 참조, 고후 10:13-고후 10:16).||(d)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의 이러한 역할을 위해서는 사도에게 능력과 권위가 부여될 필요가 있다(눅 24:49; 살전 1:5).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과 마귀를 억제하는 엑수시아(권세)를 주셨다. 그리스도의 후계자 또는 대리자로서 사도들은 순회하는 전도자로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권위를 지닌 공동체의 우두머리로서 살아간다: "사도들로 인하여, 보다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의 능력으로(고후 6:7)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행 2:43; 행4:33; 행 4:37; 행 5:12). 실제로 그들은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만 전하였기 때문에(살전 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것은 사도들의 가르침과 약속들이 매우 신뢰할 만한 것임을 증명한다 (벧후 3:2; 유 17). 그들은 이것을 깨닫고 있었으며(바울이 말씀을 전할 때에 "성령의 능력의 증거"가 함께 했다[고전 2:4-고전 2:5;참조, 행 4:7-행 4:33]), 비록 그들이 만물의 페립세마("찌꺼기")로 여겨진다 할지라도(고전 4:13) 그들 스스로 지도자에 어울리게 처신한다. 그들은 특별한 특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종이다(요 13:12-요 13:17; 눅 22:25-눅 22:27).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에서 최고의 계급이다. "거룩한 사도들은"(엡 3:5; 계 18:20) 하나님께 완전히 바쳐진 자들이므로 아포스톨로스는 영예로운 칭호이다("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고전 15:9];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살전 2:6]).||(e) 신약성경에는 높은 사도들이 있고 두 번째 가는 지위의 사도들이 있다.|① 누가는 열 두 제자들을 사도로 알고 있다: 눅 6:13("열 둘"). 마 10:2은 열 두 사도를 열거한다. 막 3:13-막 3:19에서 셈족의 어투로 된 '에포이센 도데카'(문자적으로 '열 둘을 만드셨다')는 참으로 예수님 자신께서 새 이스라엘을 통치하시기 위해 열 두명의 성직자회(college)를 세우셨다는 것을 확증한다. 이들은 그가 소유하신 능력을 부여받은 대리자, 대표, 전권 대사들이다: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 하시니라"(참조: 눅 10:16; 마 10:14). 교회를 다스릴 때에(참조, 마 19:28; 눅22:28-눅 22:30), 쿰란(Qumran) 공동체를 다스리던 "열 두 사람과 세 명의 제사장"보다 나은 이 사도들은 "기둥들"(갈 2:9), "유명한 자들"(갈 2:2; 갈 2:6)이며 영원히 지속되도록 세워진, 그리스도와 연합한 정통 신앙의 재판관이자 보증인이다. 그들은 "어린 양의 십 이 사도"들이다(계 21:14).||여기서 우리는 바울의 사도직에 관해 생각해 볼 필요를 느낀다. 골 1:1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디모데는" 하며, 그의 서신을 시작한다. 여기서 바울은 그 말의 가장 높은 의미, 곧 보다 제한적인 의미로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주장을 공포한다. 그는 자신을 예수님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졌던 12제자들의 반열에 선 사도로 간주한다.|바울은 최초의 12 사도에 속하는 사도가 아니다. 사도직의 자격 중 하나는 예수님을 목격하는 것이다. 그도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들었다(고전 9:1; 고전 15:8-고전 15:9). 하나님은 그에게 그의 사도직을 입증할 기적적인 능력을 주셨다(고후 12:12; 히 2:3-히 2:4). 그가 세운 교회들은 그의 사도직에 대한 봉인이 되었다(고전 9:2). 그리고 그의 몸에는 사도로서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은(고전 15:10), 표적인 예수님의 흔적이 있었다(갈 6:7).|제자들의 특별한 경험과 비교할 때 바울도 복음 전파를 위해 그리스도께서 직접 개인적으로 보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행 26:15-행 26:19; 갈 1:11-갈 1:17). 그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살아서 축복하고 다스리심의 인격적 경험이 입증하는 특권에 그들과 함께 참여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에 대한 선택된 증인들인 원 사도들과 동등함을 주장한다.|바울의 전(全)기독교 사상은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실제로 나타났었던 그 경험과 확신 위에 세워졌다. 다메섹 도상에서 본 그 환상은 그의 생애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의 주님을 보고 주님의 입술로부터 그의 임무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그리스도의 사도이다.|그의 사도직과 그 권위에 대한 주장은 그의 제자 디모데에 관한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묘사하는 반면 디모데를 "형제"라고 묘사한다(참조: 롬 16:23; 고전 1:1; 고전 16:12). 이것은 일반적 의미로 디모데가 사도이지만(참조: 살전 2:6), 그러나 바울과 동일한 사도가 아님을 나타낸다(참조: H. M. Carson).||바울은 그의 서신의 서언에서 항상 그의 사도적 권위를 말하지 않았다. 그의 최초기 서신, 곧 데살로니가에 보낸 서신들에는 이러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던 즐거운 서신에서 그는 그의 권위를 주장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 아무도 그것을 전에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빌레몬에게 보낸 개인 서신에서 우정은 최상이며, 그가 말한 것과 같이 매우 대담하게 명령할 수 있을지라도, 그는 도리어 간청하며 사도로서 명령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자로서 호소한다.|그는 그의 다른 서신들에서 그의 사도권에 관한 언급을 골로새서처럼 전면에 두지 않는다. 그리고 기억할 것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사도권과 그 토대가 하나님의 뜻으로 인한 것임을 매우 강하게 강조한다는 것이다. 거기서 그는 다른 어떤 곳에서 반대를 받은 것보다 더 반항적인 반대를 받았던 것이다.|한편 골로새서의 경우 그가 자신의 권위를 그렇게 강력히 주장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는 그의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이 전하는 말이 주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의 권위를 분명히 밝혀둘 필요가 있었다.|따라서 그의 말은 초대 교회 당시에 활동하였던 한 위대한 선교사 개인의 견해 이상의 권위를 갖게 된다. 즉 그는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그리스도의 대변자로서의 권위를 갖고 있었다. 골로새 교인들은 이러한 바울의 서신을 읽을 때, 그 말씀을 단순한 인간 바울의 말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며, 사도 바울의 말,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다'는 선포에 포함된 사상은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에, 사도로서 너희에 말한다. 나는 나의 결정(의지)이나 나의 공로로 말미암은 사도가 아니다 나는 사도라 칭함을 받을 가치도 없다. 너희들과 같이 초라한 죄인이며, 하나님은 순전한 자비와 사랑의 이적으로 이 입에 그의 말씀을 두셨다. 하나님은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전하는 말씀은 나의 것도 아니고 어떤 다른 사람에게서 배운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다. 하나님의 숨결이 음악을 만드는 깨진 파이프에 신경을 쓰지 말고 그 음악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바울은 자기의 메시지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권위에 대한 단호한 주장은 깊은 겸손과 연합되어 있었다. 소수의 기독교 교사들은 바울 처럼 강직한 성격을 가지거나 계속적으로 두드러진 경험을 가진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말씀에 수반되기를 기대하는 영향력은 전적으로, 자기를 통해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말씀에 있는 것이다.||② 다음으로 아포스톨로스는 '보냄 받은 자' 곧 '사자'(使者)라는 일반적 의미로 사용된 실례는 적지 않다. 고전 15:5-고전 15:8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먼저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은 열 둘(제자)에게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시고 맨 나중에 나에게 나타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열 두 제자들 다음에 언급한 이들 아포스톨로이(사도들)는 신적으로 사역자로 임명될 수 있으며 교회의 공적인 성직자들 중에서 첫 번째로 명기된 카리스마를 지닌 자들인데(고전 12:28-고전 12:31; 엡 4:11), 성직과 은사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을 익명으로 한 것은 행 15:4; 행 15:6; 행 15:22; 행 15:23; 행 16:4에서 막연한 교회와 관계가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의 경우와 같다. 그렇지만 우리는 바울의 협력자인 바나바(행 14:4; 행 14:14; 고후 12:7)와 에바브로디도(빌 2:25). 디모데와 실루아노(살전 2:6), 디도(고후 8:23)와 사도들 중에서 유명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 같은 특별히 열심있는 전도자들을 알고 있다.||③ 항상 불충성한 청지기가 있는 것처럼 편견으로 굳어진 유대인 그리스도교 전도자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사도의 칭호를 자랑하고 그들의 명성을 선전하였으니, "지극히 큰 사도로" 여긴 것이다(고후 12:11). 이들 "지극히 큰 사도들"(고후 11:5)은 "거짓 사도들"이다(고후 11:13). 에베소 교회는 그들의 정체를 밝힘으로 칭찬받는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2:2).||(f) 히 3:1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고 말한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를 아포스톨로스라고 묘사한 유일한 구절이다(before Justin, 1 Apol. 1.12). 아마도 여호와의 천사, 사자, 광야를 지날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한 안내자(출 14:19; 23:20, 23; 32:34; 33:2; 민 20:16), 그의 백성을 위하여 사람의 형상을 입으신 하나님의 돕는 자에 대한 언급일 수도 있다. 우리는 또한 이스라엘을 인도하기 위해 그들 가운데서 선택받았으나, 아들처럼 하늘에서 오신 자가 아닌 모세와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기자는 그리스도가 최초의 으뜸가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은 받으신" 분이라는 요한복음의 전통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요 17:3; 요 17:18; 요 20:21; 요일 4:10).|요 9:7의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를 주목하라. 그 복음서 기자는 운하 또는 물을 "보내는"을 의미하는 명사 살르아흐(실로암)를 수동 분사로 표현하여 그것을 고유의 이름으로 간주하고(참조, 사 8:6이하; 창 49:10, 히브리어 실로; 창세기에서 메시아에 대한 해석으로 주어짐. Rab. 98.13; 99.10; Tg. Onq.), 그 이름을 "보내신 이", 즉 예수님에 대해 환칭으로 사용한다(요 3:17; 요 3:34; 요 5:36; 요 7:29). 더욱이 히 3:1에서의 사도와 대제사장과의 결합은 예수님의 신성한 사명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대표하고 믿는 자들에게 변호를 위임받은 자, 변호자(요일 2:1), 샬리아흐가 되며 하늘의 지성소에서 그들을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하는 것이다(요 14:13-요 14:14). 그의 "사도직"은 그의 영속하는 제사장직이다.|(참조: C. SpicQ, TLNT; C. Brown; K. H. Rengstor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