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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해설
압비오
#Appio"
압비오 Appius.||압피오스는 라틴어 압피우스(Appius)의 음역이며, 이탈리아에 있는 한 도시 이름이다.|압피오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8:15에 한번, '압피우 포론'으로 나온다: "거기 형제들이 우리 소식을 듣고 압비오 저자와 삼관까지 맞으러 오니 바울이 저희를 보고 하나님께 사례하고 담대한 마음을 얻으니라". 압피우 포론은 '압비오 저자'(market of Appius)를 의미한다. 이 압비오 저자는 로마 남쪽으로 68.8㎞ 지점에 위치한 아피안 도로(Appian way) 상에 있으며, 여행자들이 머무르는 곳이다.|사도 바울은 이 곳에서 로마로 호송되어 가던 도중 로마의 성도들을 만났다(ISBE; PEB).
가까이 하지 못함
ajprovsito"
가까이 할 수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프로시토스(Ctesias, pers. 41; Polyb; Diod. 등)는 부정접두사 %107와 프로시에나이(%400: 가다)에서 유래했으며, '가까이 할 수 없는' unapproachable, '접근할 수 없는' inaccessible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프로시토스는 신약성경에서 딤전 6:16에 한번 나온다: 하나님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안에 계신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거리낌이 없는
ajprovskopo"
범죄케하지 않은, 허물이 없는, 거리낌이 없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포로스코포스(PGiess)는 부정 접두사 %107와 프로스콥토($4350: 부딪치다, 걸려 넘어지다)에서 유래했으며,||(a) 능동적으로, '아무것도 부딪치지 않는, 넘어지게 하지 않는', 비유적으로 '범죄케하지 않는',||(b) 수동적으로, '~에 부딪히지 않는, 넘어지지 않는', 비유적으로, '죄로 이끌리지 않는, 허물이나 비난할 것이 없는',||(c) 수동적으로, '거리낌이 없는, 기분 상하게 함이 없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포로스코포스는 신약성경에서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고전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여기서 아포로스코포스는 '범죄케 하지 않는'이란 의미를 나타내며, 사람이 그의 생활 양식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죄에 빠뜨리게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b)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바울은 빌립보에 있는 기독교인들을 위해 그들이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를 수 있도록 기도한다. 바울은 외적이고 윤리적인 행동만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인간의 관계의 성격도 언급하고 있다(참조: 빌 1:9). 그의 기도는 교회에 대한 하나의 경고이기도 하다.||(c) 행 24:16에서 벨릭스 앞에서 변론할 때, 바울은 더들로의 고소를 반박하며 선언하기를 "나로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양심은 죄로 더럽혀지지 않은 양심인 것이다. 이러한 양심은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거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Guhrt).
외모로 보지 않는
ajproswpolhvptw"
편견없는 unbiased.||#1. 헬라어의 용법||부사 아프로소폴레프토스는 부정접두사 %107와 프로소폴레프테스($4381)에서 유래했으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즉 '차별 대우하지 않고, 편견이나 편애 없이'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부사 아프로소폴레프토스는 벧전 1:17에 한번 나온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하나님은 사람의 겉 모습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공정하게 각 개인의 실제 행위대로 판단하신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E.Lohse).
거침이 없는
a[ptaisto"
비틀거리지 않는.||#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프타이스토스(Xenophon 이래)는 부정접두사 %107와 프타이오($4417: 비틀거리다)에서 유래했으며, '비틀거리지 않는, 굳게 서는, 넘어지지 않는'을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프타이스토스는 신약성경에서 유 1:24에 한번 나오며, '비틀거리거나 넘어지게 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대게 하다
a{ptomai
만지다, 대다, 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하프토마이는 하프토($681)의 중간태이며, '대다, 달다, 먹다, 공격하다'를 의미한다.|5세기전 고전 작가들에게서 이 단어는 여인과의 성관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며 또한 '잡다' seize, '공격하다, ~에 관여하다'(concern oneself with, 곧 작품이나 철학 따위에 관여하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한다. 마지막으로는 '이해하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되었다.|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는 치료의 신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가 어떻게 만짐에 의해 기적적으로 치료를 하는가를 반어적으로(ironically) 말한다. 아스클레피우스나 세라피스(Serapis), 또는 다른 어떤 신들을 막론하고, 그들에 의한 만짐으로써 치료가 되는 여러 설화들은 대개 주후 2세기와 3세기부터 나온다.||#2. 70인역본의 용법||하프토(마이)는 70인역본에서 약 125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나가('~에 대다, 달다, 이르다, 치다'), 하하즈(굳게 잡다, 겔 41:6에 1회), 셀라 야드(손을 뻗다, 욥 1:12에 1회), 아랍어 셰레트(~에 지배하는 권능을 소유하다, 단 3:27에 1회), 카라브(접근하다, 손대다, ~의 뒤를 쫓다, 민 3:10; 민 3:38, 겔 42:1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중간태 하프토마이는 신약성경에서 모두 3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a) 고전 7:1에서 성관계에 대해 사용되었다: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골 2:21에서 부정한 음식을 만짐에 대해 사용되었다: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고후 6:17에서 사 52:11을 인용하여 이교도의 귀신 숭배적인 부정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눅 7:39에서 예수님은 부정한 여인의 만짐을 피하지 아니하셨다: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요 20:17에서 예수님은 부활 후에 자신을 마리아가 만지는 것을 금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b) 막 1:41에서 주님은 자신의 육신의 손으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만지심과 동시에 문둥병자의 심령 깊은 곳을 불가시적으로 또한 만지심으로써 그의 부정을 제거하셨다: "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막 7:33이하에서 예수님은 어눌하고 귀먹은 자를 고치실 때 손가락을 귀에 넣고 침을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일련의 행동들은 이 사람에게, 자신 앞에 서 있는 분에게서 고침을 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고치는 행동 자체는, 결함이 있는 인체의 기관이 아닌 전인으로서의 이 사람에게 전해진 '열리라'는 해방의 말씀으로, 완성되었다(W. L. Lane, The Gospel of Mark).||(c) 막 3:10이하; 막 6:56에서는 병고치심에 대한 위대한 기사는 만지심을 수반하는 기적들이다. 병자들은 "능력이 예수께로 나오는"(눅 6:19) 것을 실감하였기 때문에 "예수를 [만지]고자 하여 핍근히" 하였고(막 3:10), 또는 옷이나(마 9:20이하, 병행구, 막 5:27-막 5:30; 눅 8:44이하) 심지어는 옷가라도 만지고자 하였다(막6:56; 마14:36). "부정한" 질병으로 고생하던 여인이나(막 5:27), 또는 질병에 걸려 걸을 수 없었던 갈릴리 사람들처럼(막 6:55)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이라도 만진 자들은 병이 나아 온전하여졌다(마 14:36). 왜냐하면 그들이 알거나 모르거나 간에 영광과 생명의 형체를 만졌기 때문이었다.|막 5:30과 눅 8:45 이하에 의하면 예수님께서는 누가 자신을 만지므로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아셨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마가와 누가는 현대적인 사고와는 맞지 않는 어떤 것을 선언한다. 즉 믿음으로 주님을 만지고자 하는 고유적 힘이다. 예수님께서만이 병자 안에, 자신을 만지고자 하는 믿음을 일깨우실 수 있으시다. 믿지 않는 자는 단지 피상적으로 예수님을 만질 뿐이며(막 5:31)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한다. 예수님께서 자유 의사로 만져주시는 자는 예수님의 신적 능력에 참여하여(막 9:27) 하나님 자신께서도 그에게 돌이키신다. 여인들은 오래된 유대 관습에 따라 서기관들이 하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자신들의 자녀들을 축복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주시기를 바라고 자녀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을 때(마 19:13이하, 병행구, 막 10:13-막 10:16; 눅 18:15이하) 이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었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기사는, 항간의 신앙에서 자주 발견되는 만짐의 마술적 능력에 대한 개념의 여지는 전혀 없다.|(참조: Walter Bauer; J.H.Thayer).
하프토
a{ptw
불을 켜다, 잡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하프토(Homer. 이래로)는||(a) '단단히 고정시키다, 잡다, 불을 붙이다',|(b) '만지다, 접근하다, 대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하프토는 70인역본에서 약 125회 나오며, 대부분 히브리어 나가('~에 대다, 달다, 이르다, 치다'), 하하즈(굳게 잡다, 겔 41:6에 1회), 셀라 야드(손을 뻗다, 욥 1:12에 1회), 아랍어 셰레트(~에 지배하는 권능을 소유하다, 단 3:27에 1회), 카라브(접근하다, 손대다, ~의 뒤를 쫓다, 민 3:10; 민 3:38, 겔 42:14)의 역어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하프토는 신약성경에서 누가의 문서에만 4회, 불을 켜는 것과(눅 8:16; 눅 11:33; 눅 15:8) 불을 피우는 것에 대해(행 28:2), 그리고 손대는 것에 대해(마 17:7)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압비아
!Apfiva
압비아 Apphia(인)||압비아는 그 의미가 분명치 않으나 프리지아(Phrygia)의 원주민를 나타내는 듯하다. 압비아는 신약성경에서 몬 1:2에 한번 나온다: "및 자매 압비아와 및 우리와 함께 군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압비아는 골로새 여성 기독교인이다. 문맥에서 이 여인의 이름이 나타나는 위치를 보아서 빌레몬의 아내인 것 같으며, 문법적으로는 그의 누이(자매)일 수 있다. 어쨌든 그녀는 빌레몬 가족의 일원이었기 때문에 오네시모와 관련된 편지 중에 직접 언급한 것이다.|전승에 의하면 압비아는 빌레몬과 아깁보와 함께 네로 황제 시대에 돌로쳐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희랍 정교회에서는 11월 22일을 그녀를 기념하는 날로 기리고 있다(ISBE; PEB).
밀뜨리다
ajpwqevw
밀어버리다, 거절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포데오(Homer 이래)는 아포($575)와 오데오(%515: 밀다, 밀어내다, 치우다)에서 유래했으며,||(a) '밀어버리다, 쫓아버리다',|(b) '거절하다, 거부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포데오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아포데오는 행 7:27에서 '밀어버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b) 아포데오는 '거절(거부)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경우에 '밀어 버린다'는 의미를 함축한다.|① 행 13:46에서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거절하신 것을 나타낸다: "바울과 바나바가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② 롬 11:1; 롬 11:2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거절하지' 아니하셨다고 한다: "1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c) 아포데오는 양심에 대해 사용되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여기서 아포데오는 '거절하다'를 의미한다. 양심을 무시하면 영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이 말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은 우리들이 선한 양심을 계속 가지고 있을 때만 보존될 수 있다(J. G. Goul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침륜
ajpwvleia
멸망 destruction .||#1.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폴레이아는 아폴뤼미($622)에서 유래했으며,||(a) '파괴, 파멸, 허비, 낭비'(Polyb.),|(b) '소멸, 멸망'(Aristot.),|(c) '상실'(Ditt.)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아폴레이아는 70인역본에서 약 110회 나오며 21개 이상의 히브리어 단어들을 번역하는데 여호와께 속해 있는 것으로부터의 축출 뿐만 아니라 파멸과 생명의 상실까지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아폴레이아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문자적 의미와 비유적 의미로 사용되었다.||(a) 아폴레이아는 대부분의 예문들에서 '파멸, 멸망'이라는 자동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마 7:13; 롬 9:22; 빌 1:28; 벧후 2:1; 계 17:8). 그러나 간혹 '허비, 낭비'라는 타동사적 의미로도 나온다(막 14:4 병행구).||(b) 아폴레이아는 소테리아(구원)와 조에 아이오니오스(영생)가 확실한 영원한 구원을 의미하는 것과 같이 '최후의 멸망, 곧 단순히 육체적 실존의 근절'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지옥과 소망없는 사망의 운명으로의 영원한 돌입이라는 의미에서의 '멸망'을 의미한다(A.Oepke).|이러한 파멸은 "멸망의 인도하는 넓은 길을 가는 자"(마 7:13), 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 중의 하나인 자(빌 3:18이하)가 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적그리스도 Antichrist (살후 2:3)는 특히 "멸망의 아들"로 묘사된다.|미켈(O.Michel)은 롬 9:22이하를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오르게(orge)와 아폴레이아는 함께 속한다. 미래의 멸망은 미래의 영광이 하나님의 자비하심에서 계시되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진노에서 계시된다"|(참조: Walter Bauer; H -C.Hahn; A.Oepke ).
아라
ajrav
저주 curs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아라는 본래 '소원, 간구'를 의미했으나 호머 시대 이후 '주저'를 의미하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아라는 70인역본에서 31회 나오며, 히브리어 알라(423: 맹세, 저주, 창 24:41; 신 29:11; 왕상 8:31; 대하 6:22; 민 5:21; 신 30:7), 클랄라(7045: 저주, 악담, 욕설; 신 29:26; 잠 26:2; 렘 42:18), 알라(422: 맹세하다, 저주하다; 호 4:2)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그런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아라는 신약성경에서 롬 3:14에 한번 나온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저주는 종종 기도의 형식을 취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Buchsel).
그러면
a[ra
그런 까닭에, 그러므로, 그렇다면.||불변화사 아라는 '그런 까닭에, 따라서, 그러므로, 그러면, 그렇다면, 확실히 그러면'을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51회 사용되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라
a\ra
의문 불변화사||의문 불변화사 아라(Homer 이래)는 아라($686)에서 유래했으며, 질문자 편의 걱정, 열망, 안타까움을 암시한다. 앞의 아라($686)와 동일한 어원에 속하며, 단지 첫 음절의 모음 위에 서검플렉스가 붙는다는 점에서 아라($686)와 다르다.||신약성경에 이 단어는 3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부정적 대답이 기대되는 추론적 질문(의문)을 표시한다(눅 18:8; 행 8:30).||(b) 의문 귀결절에서 단정적인 대답이 기대되는 질문을 표시한다. '그렇다면 그이냐?' he is then?, 갈 2:17, 다소 막연하게 아라($687)는 있음직한 결과에 대하여 당황하는 것을 표현한다. 아라($686)가 결단을 내리는 것인 반면에 아라($687)는 결단을 못내리고 주저하는 것을 나타낸다 고 할 수 있을 것이다(Bp. Lghtft. on Gal).|(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아라비아
!Arabiva
아라비아 Arabia.||#1. 구약성경.||아라비아(Hdt. 이래)는 '사막'을 의미한다. 히브리어로는 '아랍'이다. 아라비아(반도)는 서쪽으로 홍해에 면해 있으며, 남쪽으로는 아덴만과 인도양, 동쪽으로는 오만 해협과 페르샤만을 마주 보고 있다. 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이며, 그 면적은 약 100만 평방 마일이며, 모양은 직사각형이다.|구약성경에 아라비아의 지리, 수자원, 광산물, 식물, 동물, 조류, 곤충, 바다 생물, 무역 등에 대해 상당히 많이 언급되어 있다.||#2. 신약성경||아라비아는 신약성경에서 2회 나오며, 갈라디아서에만 사용되었다.||(a) 갈 1:17에서 바울은 회심후 그가 어떻게 아라비아로 갔는지를 말하고 있다: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이 사건의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다. 아마도 그 유일한 목적은 하나님과 교제였을 것이다. 아라비아는 번창하는 큰 도시가 아니라 사막이었다. 여기서 바울은 사람과 교제하는 대신에 하나님과 친교를 했다. 역사적인 견지에서 바울은 그의 전체 사상 체계를 재확립하는 것이 필요했다. 이것은 그가 유대교의 경계를 넘어서 사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었다. 바울은 아라비아에서 하나님과 교제와 명상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왔다. 여기에서 그는 아마도 새로운 힘과 통찰력을 가지고 말씀을 전했을 것이다(참조: R. E. Howard).||(b) 갈 4:25에서 하갈이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이라고 한다: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바울은 이 비유에서 단순히 하갈이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갈과 시내산은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라고 한 것은 이 둘이 예루살렘에 그 중심을 둔 바울 시대에 유대인의 율법 제도를 상징한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그는 마치 하갈과 그의 아들처럼 예루살렘이 그의 자녀 유대인과 더불어 율법의 노예가 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R. E. Howard).|(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ISBE).

!Aravm
아람 Aram.||#1. 구약성경.||아람은 '높은, 고양된'이란 뜻이며, 람으로 번역되었다. 아람은 헤스론의 아들이며, 다윗의 조상이다(룻 4:19-룻 4:22; 대상 2:9; 대상 2:10).||#2. 신약성경||마 1:3; 마 1:4의 족보에서 예수님의 조상이 나온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눅 3:33의 족보에서는 '아니'라고 표기되어 있다: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