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증한 것
bdevlugma
가증한 것, 몹시 미운 것.||#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브델뤼그마(Aesop. pab. 45p)는 브델륏소($948)에서 유래했으며, 성경과 교회 용어로, '더러운 것, 가증한 것, 몹시 미운 것' 곧 혐오의 대상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브델뤼그마는 70인역본에서 약 120회 나오며, 주로 토에바와 쉭쿠츠 어군의 역어로 사용되었다.|토에바/ 브델뤼그마는 '가증스러운 것'(관습이나 사물),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가증한 것은 일반적인 것, 제의적 혹은 윤리적인 것일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께 가증스럽게 여겨지는 것, 사람에게 가증스럽게 여겨지는 것일 수 있다. 애굽인들은 히브리인과 함께 식사하는 것(창 43:32),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출 8:22)을 싫어했다.|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것은 동성애와 기타 성도착(레 18:22-30; 20:13), 우상 숭배(신 7:25), 인신 제사(신 12:31), 의식적으로 부정한 동물을 먹는 것(신 14:3), 흠있는 제물(신 17:1), 마술(신 18:9-14), 부정직한 거래(신 25:13-16), 제의적 매음(왕상 14:23 이하) 등이다.|토에바는 우상과 동의어로 사용되며(사 44:19 이하), 왕하 23:13에서 밀곰은 암몬 자손의 가증한 것이라고 한다.|쉭쿠츠/ 브델뤼그마는 '몹시 싫은 것, 가증한 것, 우상'을 의미하며, 항상 우상 숭배 행위와 관련하여 사용되며, 하나님 보시기에 밉고 가증한 것이라는 뜻으로서 우상 그 자체를 언급할 때나 또는 우상 숭배 의식과 관련된 어떤 것을 언급할 때 쓰인다. 우상은 일반적으로 가증한 것이며(렘 16:18; 겔 5:11; 7:20; 대하 15:8; 기타), 우상만이 가증한 것일 뿐만 아니라 우상에 예배하는 자들도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한 것이다(참조: 호 9:10).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을 우상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다.|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적그리스도의 모형이며, 단 11:31에 예언된대로 성전에 제우스의 제단을 설치하고 제우스 신상을 세웠다. 이것이 "멸망케 하는 가증한 것"이라 불린다. 즉 제단의 진정한 목적을 파괴하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적그리스도도 성전에 가증한 것을 세울 것이다. 즉 거짓된 귀신 예배 행위를 뜻한다(단 9:27; 12:11).|나 3:6의 쉭쿠츠는 "가증하고 더러운 것"이다.||#3. 신약성경의 용법.||브델뤼그마는 신약성경에서 6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6:15에서 브델뤼그마는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그 실상과 반대이면서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높임을 받으려는 자와 관련하여 우상 숭배와 연관성은 사람들 가운데서 매우 높임을 받으려는 것이나 받는 것은 사람의 마음 안에 우상을 만드는 것임을 암시한다.||(b) 계 21:27에서 '부정한 자들', 혹은 '가증한 일과 거짓말 하는 자'들은 거룩한 도성의 출입이 금지된다.||(c) 계 17:4에서 브델뤼그마는 악한 여인의 손에 있는 금잔의 내용물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브델뤼그마는 혐오스러운 어떤 것을 의미하나 구약에서처럼 우상 숭배와 연관되어 있다. 이것이 여기서 깊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계 17:5에서 그 악한 여자 이름 중 하나는 "땅의 …가증한 것들의 어미"로 나타난다.|음녀 로마의 잔은 온갖 가증하고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기독교인의 편견이 아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가 로마를 일러 '세계 도처로부터 온갖 잔학하고 추악한 것들이 흘러 들어오고 그런 것이 환영받는 곳'이라고 하였다. 로마의 대철학가 세네카도 로마를 '냄새나는 하수도'라고 불렀다. 로마의 메살리나(Messalina) 왕비가 일반 사창가에서 돈을 받고 몸을 파는 타락한 생활을 했다면 로마 도성의 추악함이 어떠 했는지 짐작이 간다. 로마에 대한 요한의 표현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로마인 자신들이 그들의 문명에 관해 언급한 것에 비교하면 오히려 억제한 것이다. 이 문명으로 기독교가 들어간 것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부터 사람들이 단정한 행위로 돌아서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십자가의 기적이며, 또한 승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W. Barclay).||(d) 막 13:14; 마 24:15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을 표현한다. 다음 항목에서 설명한다.|||#토 브델뤼그마 테스 에레모시스(946+2050)|멸망의 가증한 것||#1. 고전 헬라어 문헌과 70인역본||막 13:14과 병행구, 마 24:15에 토 브델뤼그마 테스 에레모시스라는 문구가 나온다. 이 문구는 70인역본 단 12:11에서 인용된 것이며, 단 9:27, 단 11:31과 마카베오일서 1:54 이하에서는 이 문구가 약간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다니엘서에서 이렇게 번역되는 히브리어(쉭쿠츠 쇼멤)는 "(영적) 멸망의 원인이 되는 가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즉 이것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혐오감을 일으키거나 영적 파멸의 외적 조건을 만들어낸다. 구약성경에서 가증한 것은 주로 하나님께 가증스러운 것, 특히 의례법에 비춰볼 때, 죄를 범하게 하는 대상을 뜻하며, 그래서 이 말은 흔히 우상숭배의 대상들을 나타내곤 한다(쉭쿠츠는 토에바와 동의어이며, 겔 5:11에서 이 두 용어들은 혐오스럽고 가증스러운 우상들을 의미한다. "가증한 것들"을 숭배함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혐오감을 생생하게 예증해주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에스겔 8장을 참조).|넷슬은(E. Nestle, ZATW 1884의 한 논문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문구가 이방신에 대한 경멸을 나타내는 전형적인 유대 용어로서 생겨난 것이라고 논증하였다. "하늘의 주"(바알 샤마임, 흔히 바알 샤멤이라고 발음됨)라는 칭호가 신들의 우두머리인 제우스에게 수여되었다. 유대인들이 그런 말로 제우스를 시인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 그들은 제우스를 바알 샤멤이 아니라 쉭쿠츠 쇼멤으로, 즉 "천상의 주"가 아니라 "멸망케하는 가증한 것"으로 묘사하였다. 이런 상황은 마카베오1서 1:54 이하에 서술되어 있으며, 이 구절에는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Epiphanes , BC. 175-164)가 예루살렘 성전의 대 제단 위에 이교 제단을 세우게 했으며, 이 이교 제단이 "멸망의 가증한 것" 으로 묘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이 제단과 함께 제우스(안티오쿠스는 제우스의 대리자라고 자처하였다)의 형상이 있었음을 시사해 주는 증거가 있다. 물론 이리하여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에 대한 혐오감은 더욱 극렬해졌다(참조: C. C. Torrey, Documents of the primitive Church ). 이렇게하여 하나님의 성전은 이교 신전으로 바뀌어졌다. 예루살렘과 그 외의 지방에서 그런 예배를 드리라는 명령이 발해졌기 때문에 결국 마카비 봉기가 일어나고 다니엘 예언서가 쓰여지게 되었다.||#2. 신약성경의 용법||마 13:14에서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말은 널리 알려진 말이었기 때문인지, 아무런 설명없이 언급되었다. 많은 주석가들은 "가증한 것"의 성(gender)이 중성이나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이란 분사의 성이 남성이란 점을 고찰하고 나서, 가증한 것이란 하나님을 위해 예비된 자리를 차지한 적그리스도라고 결론지었다(참조: 살후 2:4). 만일 "적그리스도"라는 말이 하나님에 대적하는 힘을 의미하는데까지 확장된다면, 이 말이 이 문맥에서 사용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계 13장과 17장 같이 나중에 발달된 교리가 막13:14의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어떤 종류의 우상숭배를 염두에 두고 "가증한 것"이란 말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누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이란 말로 바꿔썼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눅 21:20). 이 표현은 일반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보다 예수님의 의도에 더욱 가까운 것 같다. 왜냐하면 로마 군인들은 군기에 우상의 형상을 새겨서 밤에는 그것을 땅에 세워 놓고 숭배한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과의 협정에 따라 이 군기들이 결코 예루살렘에 있는 로마 요새안에는 들어오지 못하였다. 만일 이 군기가 성스러운 곳에 세워진 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폭력의 결과 때문일 것이며, 여기에는 목숨을 내건 전쟁이 수반되었을 것이다. 이렇듯 이 "가증한 것"은 성읍과 지성소에 대한 신성모독을 불러 일으켜서 마침내 파멸적인 전쟁을 야기시키고 말았으며 그래서 예수님이 막13:2에 나와 있는 예언을 하신 것 같다. 이런 해석은 다니엘서에 있는 구절의 의미와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민족과 예루살렘에 내릴 재앙을 예상하고서 행하신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들과 부합된다(참조: 마 23:35이하; 눅 13:1이하; 눅 19:41이하; 눅 23:28이하). 예수님께서 이 성전 및 성읍에 대한 신성모독과 궁극적인 파괴를 나타낼 때 "멸망의 가증한 것"이란 말을 사용하셨다는 것은 그 이전의 구약시대 선지자들, 그리고 특히 이 가증한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다니엘과 마찬가지로 이런 사건을 주의 날에 비추어 고찰하셨음을 나타내준다.|(참조: G. R. Beasley - Murra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