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룩 없는(떡)
a[zumo"
누룩 없는 unleavened.||#1. 일반헬라어 문헌의 용법||형용사 아쥐모스(Pla. 이래로)는 %107(부정접두사)와 쥐메($2219:누룩)에서 유래했으며, '발효되지 않는', '누룩 없는'이란 의미를 가진다.||#2. 70인역본의 용법||형용사 아쥐모스는 70인역본에서 약 50회 나오며, 히브리어 맛차(발효되지 않은 빵, 무교병)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 이에 대해 복수 형태의 '타 아쥐마'로 나타난다. 급히 준비된 무교병은 일상 식사로 갑자기 찾아온 손님에게 제공된다(창 19:3; 삿 6:19-21; 삼상 28:24).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급히 떠났기 때문에 빵이 발효할 시간적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출 12:39).|무교 과자는 아론과 그 아들들이 제사장 직분에 임명될 때 희생제사에서(출 29:2), 소제의 예물(레 2:4-5)과 함께, 화목 예물(레 7:12)과 함께, 그리고 나실인의 서원을 온전히 할 때에 드려진 것이다(민 6:15,17,19). 무교병은 광주리에 담았다(출 29:23; 레 8:2,26; 민 6:15,17). 레위인들은 그 제사에 수종했다. 희생제사 후에 소제 예물의 남은 것은 제사장들이 먹었다(레 6:16; 10:12). 요시야의 개혁 때에 산당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형제들 가운데서 무교병을 먹었다(왕하 23:9).|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을 떠나던 날 밤(출 12:8)과 여정의 초기 시기에(출 12;39) 무교병을 먹었기 때문에 그 후 해마다 첫 번째 유월절이든 혹은 두 번째 유월절이든 간에 유월절 절기에는 쓴 나물과 함께 무교병을 먹었다(출 12:14-20; 민 9:10). 쓴 나물과 함께 먹은 그것은 고난의 떡으로 불리웠다(신 16:3).|원래 유월절은 하루 밤의 축하 의식으로, 일주일 동안 연속 베풀어지는 무교병의 절기와는 구분되었다. 그러나 두 날 모두 유월절 혹은 "무교절"로 언급된다. 무교병은 니산월 14일 저녁에 먹기 시작해서(출 12:15,18; 13:6; 34:18; 레 23:6; 미 28:17; 신 16:3; 겔 45:21) 일주일 동안 계속되었다(신 16:8은 6일 동안이라고 언급하며 제 7일은 성회의 날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기간은 무교절로 불리운다(하그 함맛초트[hag hammassot], 출 23:15; 출 34:18; 레 23:6; 신 16:16; 겔 6:22; 대하 8:13; 대하 30:13, 21; 대하 35:17). 이스라엘 백성은 팔레스타인에 들어갈 때 길갈에서 이 절기를 지켰다(수 5:11). (J.P.Lewis)|유대인들은, 눅 22:1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언제나 유월절을 무교절과 동일시하였다(겔45:21; Josephus, war, 2, 10).|매년 유월절과 무교절 예식 때에는, 모든 누룩은 니산월 14일 하루 동안에 전 유대 가정에서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되었고, 유대인들은 그날 저녁부터 7일 동안 오직 무교병 만을 먹으며(출 20:14,20) 애굽에서 급히 도망쳐 나온 것을 기념하였다(출 12:34,39). 이러한 춘계 대청소는 제의 의식이었지만, 한편 그것은 신 누룩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야기되는 연속적인 전염병 발생을 막고자 하는 위생상의 목적을 갖고 있다(C.L.Mitton, "Leaven").||#3. 신약성경의 용법||형용사 아쥐모스는 신약성경에서 9회 나오며, '누룩 없는'을 의미한다.||(a) 아쥐모스는 고전 5:7이하를 제외한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복수 형태의 '타 아쥐마'로 나온다. 마 26:17; 막 14:1; 막 14:12; 눅 22:1; 눅 22:7; 행 12:3; 행 20:20, 이 구절들에서 '무교(병)절'을 의미한다. 위의 70인역본의 용법 참조.||(b) 고전 5:7 이하에서 바울은 공동체에게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고 권면했다. 이것은 범죄자를 축출하라(고전 5:13)는 명령이거나 죄와의 연합에 대한 "자랑"을 버리라는 훈계일 것이다. 명령의 근거는 유월절 어린 양 그리스도께서 희생당하셨다는 것과, 기독교인들은 "누룩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명절은 누룩(곧 악과 악의)를 내어버리고 누룩 없는 떡(곧 순전함과 진실함)을 함께 나눔으로써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우화가 아닌, A. T. Hanson).|(참조: G. T. D. Angel; J. H. Th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