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하다
diakonevw
섬기다, 봉사하다.||우리가 봉사나 섬기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은 자발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행한 일과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생길 이익을 의미한다. 봉사라고 해서 보수(Reward)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섬기는 행위는 지배하는 것과 대조가 된다.|성실한 봉사는 교만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자가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자는 종속적 위치에 있으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죄의 지배와 율법에서 자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므로서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봉사(섬김)하다"에 대해 사용되는 단어들의 개념은 때때로 구별하기 어렵지만 각각 그 기본 강조점이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둘류오($1398)는 복종, 예속을 강조하는 것으로, '노예로 섬기다'를 의미한다.|* 데라퓨오($2323)는 기꺼이 섬기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에 의해 존경과 관심을 표현한다(특별히 신을 향하여).|* 라트류오($3000)는 '삯을 위해 봉사하다'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신앙적, 제의적 의무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레이투르레오($3008)는 '공무에 봉사하다'를 뜻하며, 70인역본에서는 성전에서 봉사를, 기독교회에서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휘페레테오($5256)는 '노나 키를 잡다'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며, 특히 봉사가 주인과 관계된다. 그 명사 휘페레테스는 때때로 '노잡이, 조수'를 의미한다.||이런 단어들과는 달리, 디아코네오는 매우 인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봉사라는 특별한 자질을 가진다. 휘페레테오와 가장 가깝지만, 디아코네오에는 사랑의 봉사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Beyer, TDNT).|디아코네오는 일반적으로 '섬기다, 봉사하다, 지원하다, 집사로 섬기다'를 의미하며, 개역 한글판에는 '수종들다, 섬기다, 일하다, 돕다, 맡다, 집사의 직분을 하다, 공양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1. 헬라어 문헌의 용법||디아코네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코나리와 어원이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와 관련이 없으므로 '먼지 속을 통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일반 헬라어에서 기본 의미는,|(a) '식사의 시중을 들다'인데, 이것이 확대되어,|(b) '가족을 돌보다',|(b) 일반적으로 '봉사하다'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첫 번째 (a)의 의미는 자유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던 개인적인 복종을 함축한다.|세 번째 (c)의 의미로 사용될 때 그것은 어떤 큰 목적을 위한 봉사, 예를 들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또는 어떤 신(神)을 위한 봉사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봉사는 자유민에게 영예로운 임무이며 적절한 일이다.|일반적으로 동료 인간들을 위한 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헬라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 헬라인들은 봉사를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는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인간 앞에 놓여진 최고 목표는 그 자신의 인격 함양이었다. 봉사는 그것이 개인적인 발전이나 국가에 대한 봉사(긍극적으로 신에 대한 봉사)로서의 온전한 발전을 가져올 때만이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이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디아코니아는 그 동사가 함축하는 여러가지 직업을 나타내며, 또한 봉사, 직무를 의미한다. 두 번째 파생 명사 디아코노스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구약성경에는 봉사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레 19:8)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비로운 자선 행위를 알고 있을지라도, 70인역본에서 디아코네오를 역어로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디아코노스는 7회, 디아코니아는 2회 사용되었다.||(b) 유대교에서 봉사는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으므로, 봉사의 의미에 대한 보다 심오한 이해를 보였다.|① 필로는 이 단어를 '식사의 시중을 들다'라는 기본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써 '봉사하다'란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요세푸스는 '식사의 시중을 들다, 복종하다'는 의미의 '봉사하다, 제사장으로 봉사하다'를 뜻하는 말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그러나 후기 유대교에서 이것은 의인과 불의한 자들을 구별하고 봉사를 희생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공로를 쌓는 것으로 추론함으로써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Beryer, TDNT).
|②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가 그 사회적인 책임, 예를 들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알고 또 실천했을지라도 이것은 주로 구제금으로 하였지 봉사로 하지 아니하였다(참조, 눅 10:30 - 눅 10:35). 천한 봉사, 예를 들면 식사의 시중을 드는 것은 자유민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참조, 눅 7:44). 때때로 고귀한 자들이 식사의 시중을 들곤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었다.|③ 그러나 가난한 자(poor)를 돌보는 기관이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그 지역에 사는 가난한 자들은 자선 바구니(쿱파 quppah)로부터 14번의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돈을 받았다. 나그네들은 매일 자선 그릇(탐후이 tamhuy)으로부터 음식을 받았다. 이 음식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맡은 관원이 미리 각 집에서 모은 것이다(SB. Ⅱ 643ff; 참조, J.Jeremias,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1959, 131이하). 그 밖에 또 공동 식사와 구제금이 있었다.|디아스포라(diaspora)의 회당은 종종 그 봉사를 위해서 일곱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명칭은 음식을 뜻하는 파르네스(parnes)에서 유래한 파르나심(prnasim)으로서 식탁에서의 봉사와 일반적인 봉사를 뜻한다(참조, 프토코스[$4434]).|④ 요세푸스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여인들과 결혼하지 않고, 하인 두기를 원하지 않으며 …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라고 말하였다(Ant I8, 21). 바르트의 교의학 14:12에서는 가난한 노인들을 돕기 위한 정규적인 기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필로에 따르면 또한 병자들도 잘 돌보았다고 한다(Omn. Prob. Lib. 12, 87).|아마도 종말론적인 뜻과 더불어(1QS 2:l7ff) 가난한 자들에 대한 봉사와 공동 식사는 의(義)의 성취와 왕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에 속하였다. 공동체가 그 소유물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시적이나 그것에 상당하는 본을 보였다.(참조: K.Hess, DNTT).||#3. 신약성경의 용법||(a) 디아코네오는 '섬기다'나 '봉사하다'라는 뜻으로서 '식사의 시중을 들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경우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식사의 시중을 들며,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마 8:15(막 l:31; 눅 4:39)에서 예수님께서 열병 들린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을 때 그녀는 "일어나 예수께 수종 들더라".|눅 l7:8에서 종은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그 후에" 먹고 마신다.|눅 l0:40(참조, 요 l2:2)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할 때 마르다는 [일을 보고], 즉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르다는 "주여 내 동생이 나를 혼자[일하게] 하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이상은 식사의 시중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행 6:2에서 "공궤"라는 말은 디아코네인 트리페자이스, 즉 '식탁에 시중들다' 이다. 그것은 음식을 관리하는 것, 그 공급, 준비 기관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눅 12:37에서 놀라운 일은 돌아온 주인이 종들을 수종함으로 말미암아 종들을 상 주실때 일어난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할 것이다.|눅 2:27에서 예수님은 이와같이 친히 섬기는 자로 계신다. 여기서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고 물었을 때 헬라인들이 대답을 하였더라면 분명히 잘못 대답했을 것이다. 즉 '앉아서 먹는 자입니다'라고. 그러나 예수님은 신학적으로는 반대되는 그 대답을 대치시키지 아니하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자신을 지적하셨으니 그는 왕국의 주님되신 인자로서 식사의 시중을 들거나 발을 씻기까지 하는 인간 관계의 새로운 모범을 세우셨다(요 13:4이하).|막 1:l3(마 4:11)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에 천사들이 예수님께 [수종들]었을 때 금식으로 주린 그에게 아마도 음식을 가지고 와서 드린 것이다.||(b) 디아코네오는 '…을 돌보다'(혹은 도움을 베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7:55; 막 15:41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기]던 여자들이 있었다.|눅 8:3에서 이들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섬기]었다. 이런 경우에 그들을 섬기는 자로서 도움을 베풀었으니, 음식 곧 식사의 시중을 드는 일 뿐만 아니라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였다.|마 25:42 - 마 25:44에서 디아코네오는 나그네, 주린 자, 목마른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그 필요에 따라 돌보는 것이다. 즉 힘써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와같은 봉사는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이다.|벧전 4:10에서 모든 은사는 청지기로써 서로 봉사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봉사는 서로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로서 봉사해야 한다.||(c) 디아코네오는 역시 '…을 돌보다'(혹은 도움을 베풀다)의 의미로 교회를 위한 봉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행 19:22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은 복음전도 사역에서 바울을 돕는 자들이다.|몬 1:13에서 오네시모는 갇힌 바울을 몸으로 물질로 돌보았다.|딤후 1:18에서 오네시보로는 로마에서 또한 에베소에서 너무나 많은 것으로 바울을 돌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많은 섬김의 은혜를 입고 있음에 대하여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히 6:10에서 이러한 봉사는 여기에서 칭찬받는 일로, 성도를 [섬기는] 일반적인 봉사의 사례가 된다. 기독교 공동체의 생활은 이와같이 봉사의 생활이다.||(d) 디아코네오는 헌금의 모금과 관련된 직무수행에 대하여 사용되었다.|고후 8:19에서 바울의 특별한 봉사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모금이었으며, 디도와 다른 두 형제는 택함을 받아 이 일에 동참했다. 바울은 이 일을 "우리의 [맡은(혹은 섬기는)] 은혜의 일이라"고 한다.|롬 15:25에서 바울이 성도를 도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했을 때 디아코논(디아코네오의 주격 단수 남성 능동태 현재분사)이란 말을 사용하여 "내가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라"고 했다. 이러한 봉사는 역시 히 6:l0에서 칭찬한 성도를 섬기는 더욱 일반적인 봉사의 한 실례가 된다.||(e) 특별히 집사의 일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딤전 3:l0 - 딤전 3:l3에서 10절의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은 명령법으로 직역하면 '섬기게 하라'는 것이며, 13절의 "집사의 직분"은 분사로 직역하면 '섬기는 일'이란 말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집사로서 섬기게 하라'와 '집사로서 섬기는 일'을 말한다.||(f) 그리고 그외에 디아코네오는 다음과 같은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① 벧전 1:10 - 벧전 1:12; 고후 3:3에서 디아코네오는 복음의 선포를 표현한다. 벧전 1:10 - 벧전 1:12에서 선지자들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와 예언은 하나님이 보내신 전도자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과 같이 저들을 [섬기는 일]이었다. 고후 3:3의 사도들의 [섬기는 일] 역시 고린도 교회를 섬긴 일로서 복음의 선포를 나타낸다.|② 마 20:8(막 10:45; 참조, 눅 18:26)에서 디아코네오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을 표현한다.|③ 눅 22:26에서 디아코네오는 제자들의 자발적인 겸손을 표현한다.|④ 요 12:26에서 디아코네오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표현한다.||디아코네오가 이렇게 사용됨으로써 그 개념은 그 이전의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 확대되었다. 이미 눅 12:37의 종말론적인 말은 그 이전에 가졌던 의미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 앞절과 연결된 눅 22:27에 있어서도 그렇다 - 여기서 예수의 겸손이 제자들의 삶을 위한 표준(규범)이 되고 있다.|* 벧전 4:10 - 벧전 4:11에서 봉사는 교만하고 자의적인 봉사가 되어서는 안되며, 다만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디아코네오에 대한 신약성경의 의미가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복음에서 파생되고 있다(마 20:28; 병행구 막 10:45). 이 단어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며,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단어로써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 FeIIowship)의 완성을 묘사하기도 한다.|제자들과 일반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봉사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이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류애의 실례였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참조, 요 13:1-요 13:1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 20: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그들의 발을 씻음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다(요 13:15). 그들 중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눅 22:26; 참조, 마 20:26, 병행구 막 10:43; 마 23:11).|누구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로써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집없는 자에게 피난처를, 헐벗은 자에게 의복을 제공하며, 또는 병들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특히 여인들이 지상의 예수님께 바친 봉사 사역은(참조, 눅 7:44이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막 14:9). 여러 여자들이 또한 "자기들의 소유로"(눅 8:3) 예수님을 섬겼다.|이러한 섬김으로의 부름은 그 배후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막 10:45)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놓여 있기 때문에 구속력을 지니게 된다. 요일3:l6은 이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참조: Beyer, TDNT; K.Hess, DN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