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해설 85 페이지 > 기독정보닷컴

홈 > 성경 > 원어해설
원어해설
아주 깨다
diagrhgorevw
완전히 깨어 있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그레고레오는 디아($1223)와 그레고레오($1127: 깨어 있다, 지켜보다)에서 유래했으며, '완전히 깨어있다, 철저히 지켜보다'(Hdian. 3. 4. 8)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그레고레오는 신약성경에서 눅 9:32에 한번 나오며, '완전히 깨어 있는 것'을 나타낸다: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곤하여 졸다가 아주 깨어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지내다
diavgw
지내다, 살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디아고는 디아($1223)와 아고($71: 인도하다, 데려오다)에서 유래했으며,||(a) '인도하여 나가다, 가로질러 건네주다, 건너 보내다',|(b) '지내다', 인생을 보낸다는 의미에서 '살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고는 신약성경에서 목회서신에서만 2회 나온다.|딤전 2:2에서 '살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니라".|딛 3:3에서도 악독과 투기로 '사는 것'을 나타낸다: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디아데코마이
diadevcomai
계승하여(혹은 차례로) 받다, 계승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데코마이(Hdt. 이래)는 디아($1223)와 데코마이($1209: 받다, 영접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이전 주인으로부터(차례로) 받다, 계승하여 받다, 상속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데코마이는 신약성경에서 행 7:45에 한번 나온다: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이 단어는 "우리 조상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들이 광야에 있는 동안 증거의 장막을 소유했는데 그것을 조상들이 계승하여 받는 것이다. 이 용법은 이전 주인으로부터 '차례로' 또는 '계승하여 받는다'는 것과 일치한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면류관
diavdhma
머리띠, 왕관.||#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디아데마(X., Cyr.; Epict.; Dit.)는 디아데오(%258: 둘러매다)에서 유래했으며, '머리띠, 왕관'을 의미한다.|디아데마는 엄밀히 말해서 페르샤 왕(크세노폰)의 왕관에 두른 띠를 의미하였고, 알렉산더 대왕과 후대의 왕들(Arrian, Plutarch)도 왕관에 이 띠를 둘렀으며, 이렇게 해서 일반적으로 "왕관"은 왕권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디아데마는 왕권의 상징인 '관'이며, 동의어 스테파노스($4735)는 라틴어 Corona처럼 화관, 화환 - 경기의 승리, 용맹, 결혼의 기쁨, 축제의 즐거움 - 이라는 의미의 '관'이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디아데마는 신약성경에서 요한계시록에 3회 나오며, '왕권'을 상징한다.||(a) 계 12:3에서 용의 왕권에 대해 사용되었다: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b) 계 13:1에서 짐승의 왕권에 대해 사용되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c) 계 19:2에서 그리스도의 왕권에 대해 사용되었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나누다
diadivdwmi
나눠주다, 넘겨주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디도미(Thu., X., Cyr. 등)는 디아($1223)와 디도미($1325: 주다)에서 유래했으며,||(a) '분배하다, 나누다',|(b) '넘겨주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디도미는 신약성경에서 4회 나오며, 다음과 같이 사용되었다.||(a) 눅 18:22에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의 재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b) 행 4:35에서 헌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c) 요 6:11에서 예수님의 오병이어 이적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주시다".||(d) 눅 11:22에서 강한 정복자가 취한 재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e) 계 17:13RT에서는 '넘겨주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소임
diavdoco"
계승함, 계승자.||#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디아도코스(Aeschyl. 이래; Hdt. 등)는 디아데코마이($1237: 계승하여 받다, 계승하다)에서 유래했으며, '계승함' succeeding, '계승자' a successor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디아도코스는 신약성경에서 행 24:27에 한번 나온다: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벨릭스는 한 계승자, 보르기오 베스도를 받아들인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J. A. Bengel).
두르다
diazwvnnumi
둘러서 졸라매다(띠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존뉘미(Thu. 이래)는 디아($1223)와 존뉘미($2224: 건너가다)에서 유래했으며, '둘러서 졸라매다, 둘러 띠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존뉘미는 신약성경에서 요한복음에 3회 나온다.||(a) 요 21:7,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베드로는 되는대로 옷을 입은 채로 주님을 만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겉옷을 둘렀다.||(b) 요 13:4; 요 13:5,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여기에 주인이신 예수님이 종의 일, 즉 사랑의 봉사를 하기 위한 준비차 겉옷을 벗고 수건으로 허리를 두른 경위를 말하고 있다. 그 사랑의 봉사는 동시에 막 오고 있는 세대에 속한 성질의 것이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F. Selter).
언약
diaqhvkh
언약 covenant. 유언.||#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디아데케(Democr., Aristoph.이래)는 디아티데마이($1303: 정리하다, 유언에 따라 처분하다)에서 유래되었으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a) 디아데케는 '정돈, 명령, 제도'를 의미한다.||(b) 디아데케는 '유언(장)'을 뜻하는 법률 전문 용어이다. 헬라니즘 시대에 유언자는 전권을 지녔으며 그의 명령은 구속력이 있었다. 디아데케는 취소될 수 없는 결정을 의미한다.||(c) 아리스토파네스는 디아데케를 '협정'(agreement)이나 '조약'(treaty)을 뜻하는 말로 1회 사용하였다.||(d) '법령'(ordinace)이나 '처분'(disposition)를 의미하며, '유언(장)'이라는 의미로 좁혀지기 전에는 이 의미가 일반적인 것이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디아데케는 70인역본에서 400회 이상 나오며, 거의 대부분 히브리어 베리트(언약)를 번역했다. 디아데케는 70인역본에서 '계약이나 조약, 언약'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3. 신약성경의 용법||명사 디아데케는 신약성경에서 33회 나오며, 히브리서에서 가장 많이 나타난다(17회).||(a)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디아데케의 용법.|① 눅 1:72의 사가랴의 찬송에서 디아데케는 아브라함에게 한 약속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참조: 시 105:8이하; 시 106:45). 이 문맥에서 디아데케는 구약성경에서처럼 미래 약속과 구원과 자기 책무에 관한 하나님의 뜻의 선언이라는 전통적 의미로 사용되었다.|구원 시대는 디아데케를 상기 또는 기억하는 자비를 의미하며, 따라서 시간과 역사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해준다.|행 3:25의 용법도 이와 비슷하다: "너희는 선지자들의 자손이요 또 하나님이 너희 조상으로 더불어 세우신 언약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에게 이르시기를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셨으니". 하나님의 구원 의지는 예수님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 행 7:8은 할례와 관련을 지닌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참조: 창 17:10).|② 막 14:24(병행구, 마 26:28; 눅 22:20; 고전 11:25)에서 예수님은 주님의 만찬 때 사용한 포도주를 디아데케의 피 혹은 그의 피로 인한 새 디아데케라고 부른다: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이 말의 요지는 예수님의 피 혹은 죽음이 새 디아데케를 세우며 포도주는 이것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렘 31:31이하(그리고 아마도 사 42:6; 사 49:8)에 의거하고 있다. 유언이라는 의미는 없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실행하신 다. 새 언약은 천국과 상관 관계가 있다. 천국이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듯이, 언약은 그 목적을 정하고 그 유효성을 보증해주는 하나님의 구원 의지를 나타낸다.|따라서 신약성경의 디아데케 용법은 그 형식과 내용면에서 구약성경의 용법을 따른다. 단지 우리가 지금 예언을 지나 성취에 이르렀다고 하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디아데케는 하나님의 처분(의향), 즉 역사 내에서의 그의 뜻의 강력한 선언이다. 이 언약에 의해 그는 그의 구원 목적에 따라 자신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정하시며, 이 언약은 하나님의 명령의 권위를 수반한다.||(b) 바울 서신에서의 디아데케의 용법.|① 갈 3:15이하에 나오는 법적인 언어는 바울이 헬라적 개념에서 한 가지 예를 빌어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유효한 유언이 의문시 되거나 변경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본래의 "언약"도 율법으로 변경되거나 취소될 수 없다. 만일 어떤 인간적 유언이 폐기될 수 없다면 하나님의 이스라엘과의 언약은 더욱 폐기될 수 없지 않겠는가(갈 3:17)?|만일 약속으로 구성되어 있는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이 효력을 발생하였다면(갈 3:16) 후에 이에 대한 추가로서 생겨난 것(참조: 롬 5:20), 곧 율법(갈 3:17)은 이 약속을 좁히거나 폐할 수 없는 것이다. 요지는 하나님의 디아데케가 인간의 유언과 같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유언처럼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이다.|② 롬 11:27에서는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오직 하나님의 구원하는 처분을 의미하는 형태로서의 디아데케의 예언적 의미의 중요한 역할을 이어받는다.|롬 11:25이하에 의하면(참조: 사 29:20이하), 완악함이라는 장애가 계속 존재하는 한 이 언약의 성취는 계속 기다려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에 이르지 않았기 대문에, 또는 하나님께서 폐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하나님께서 후회하시지 않으시기 때문에(롬 11:29)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에 대해 성취될 것이다.|③ 롬 9:4에서 언약은 약속과 계명들을 지니고 있는 구약에 있는 하나님의 뜻의 선언이다: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엡 2:12에서 또 다시 이 언약들은 약속의 언약으로 나온다.|④ 고후 3:6에서 바울이 섬기는 새 언약은 복음과 관련되어 있고 성령으로 특징지어지며, 따라서 렘 31:31이하를 상기시킨다. 옛 언약도 역시 하나님의 언약이다. 따라서 옛 언약은 그 자체의 영광을 지니며, 새 언약의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적 선언이지만, 오직 이 언약의 잠정적인 조건들이 충족될 수 없기 때문에 폐지되고 더 큰 영광을 지닌 새 언약으로 대치된 것이다.|갈 4:24이하의 예표론에 이와 동일한 비교가 나온다: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종 하갈은 속박을 가져오는 시내산 언약을 나타내며 자유한 사라는 해방을 가져오는 하늘의 언약을 나타낸다. 이들 모두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는 질서들이다. 이 언약들은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조건들이 다르다는 단지 그 이유 때문에 구별된다. 그러므로 바울에게 있어, 언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경영과 무조건적인 유효성의 견지에서 이해된다. 한 가지 하나님의 뜻은 구원 역사를 지배하고, 텔로스 노무("율법의 마침")이면서(참조: 롬 10:4) 동시에 모든 약속의 성취(참조: 고후 1:20)인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을 이룬다.||(c) 히브리서에서의 디아데케의 용법. 히브리어에서의 상황은 바울 서신의 상황과 거의 같다.|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은 '히브리서 기독론의 주요한 개념'으로서 새 언약을 제사적 배경 속에서 표현하며 '정결, 성화, 완전'에 대한 저자의 강렬한 관심을 반영하고 또한 희생, 대속, 피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반영하기도 한다(W.G.Kummel). 그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명확하게 대조시키는데 새 언약이 더 좋은 언약이다(히 7:22). 이 새 언약의 보증인이며 중보자는 그리스도로(히 8:6; 히 12:24), 그리스도께서는 옛 언약의 죄로부터 구속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을 통해 이 직분을 행하셨다(히 9:5이하).|② 다른 법적인 용어들과 함께 디아데케는 히 9:16 - 히 9:17에서 "유언"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 그렇지만 여기에서도 그리스도를 중개자로 하는 새 언약은 독특한 구약적인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새 언약은 첫번째 언약 아래에서 지은 죄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언의 개념은 왜 그리스도의 죽음이 언약의 성취에 반드시 필요한지를 보여주기 위한 비유로서만 소개된다. 분명히 비유가 강조될 수는 없으며 이 비유가 그 외의 곳, 예를 들면, 히 8:8이하; 히 9:15; 히 12:24에 나오는 디아데케의 의미를 확정지어주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③ 히브리서의 중심 개념은 새 언약의 개념이다. 이 언약은 시내산에서 주어지고(히 9:20) 제사와 결부되고(히 9:14), 범죄와 연루되는(히 9:15) 옛 언약을 대신한다. 이 언약은 그리스도를 보증인으로 삼는 구원의 은사들을 지닌다. 따라서 그의 피는 언약의 피이다(히 10:29; 참조: 출 24:6).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하늘의 제사장직분으로, 첫 번째의 불완전한 언약을 완성시킨다. 하나님의 구원 의지의 두 가지 선언들은 그들의 관계와 차이에 있어서, 유형론적으로 해석된다.||(d) 계 11:19에서 디아데케는 하나님의 '언약'궤에 대해 사용되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구약에서 보면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요시아 왕이 레위인들에게 언약궤를 성전에 두라고 한 이후 그것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대하 35:3). 예레미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자세히 알아 언약궤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고대했었다(렘 3:15이하). 유대인의 전설 중에 예레미야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다시 모으실 때까지"(마카베오이서 2:4-8) 언약궤를 성막과 향단과 함께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 숨겨 버렸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은 본문에 나오는 언약궤에 흥미를 갖게 해주지만, 이것은 '땅의 언약궤'가 아니라 '하늘의 언약궤'이다.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등장한 것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넓게 열려있음을 가리킨다(히 10:19참조). 땅의 성전에서는 장막이 언약궤를 영원히 가지고 있어서 인간이 접근할 수가 없었으나(히 9:8참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사역을 통해 이 모든 것을 깨뜨리시고 길을 크게 열어 놓으신 것이다. 언약은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역사를 통해 목적하신 바를 성취해 오셨으며, 이제는 최후로 그의 언약의 신실함을 상징을 통해 보여주고 계신다.|하나님의 영광이 그 언약궤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그 언약궤의 나타남은 신의 현현을 의미하며 그의 표징인 번개와 천둥이 동반한다(참조: L.Morris)|(참조: Walter Bauer; J.H.Thayer; J.Behm; J.Guhrt).
여러가지
diaivresi"
할당 allotment, 분할, 분배 division.||#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명사 디아이레시스(Hdt. 이래)는 디아이레오($1244: 나누다)에서 유래했으며,||(a) '분해, 분리, 분할, 분배, 배당',|(b) '분류, 구별'을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디아이레시스는 70인역본에서 약 25회 나오며, 주로 히브리어 마할로케트(분할)를 번역하고 있으며, '분배, 부분'(part), '분할'을 의미하고, 심지어는 '씨족'(氏族, 삿 5:15)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디아이레시스는 신약성경에서 고린도전서에만 3회 나온다.|고전 12:4, 고전 12:5, 고전 12:6에서 디아이레시스는 '구별'보다는 '분배'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여기에서는 성령의 은사들의 다양한 특성에 관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유일하신 은혜(grace)의 조화 속에서 많은 구성원들에게 부여하시는 이 은사들의 "분배"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성령은 영적 은사의 분배에서 나타나고, 카리스(은혜)는 카리스마타(은사)에서 나타나는 한편, 디아이레시스는 분배와 분배된 것들을 나타낸다. 이러한 은사는 하나님의 계시를 증거하기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이 용법으로 인하여 이 단어는, 후에 교부들에게 있어서 삼위일체 각위(各位)들 간의 관련성의 차이점을 뜻하는 술어로 출현하게 되었다.|(참조: J.H.Thayer; H.Schlier, G.Nordholt).
나눠주다
diairevw
나눠주다 distribute, 나누다 divide.||#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이레오(Homer 이래)는 디아($1223)와 하이레오마이($138)에서 유래했으며, '분해하다, 갈가리 찢다, 나누다, 분리하다, 구별하다, 결정하다, 분배하다, 할당하다'를 의미한다.||#2. 70인역본의 용법||디아이레오는 70인역본에서 약 45회 나오며, 할락(나누다, 함께 나누다[하다], 공유하다)과 하차(나누다)의 여러 어형, 그리고 바하르(bahar, 창 15:10) 및 기타 단어들의 역어(譯語)로 사용된다.|70인역본에서 디아이레오는 '분배한다, 할당한다'는 의미로 가장 흔히 나타난다(창 4:7; 창 15:10; 창 32:7; 레 1:12; 수 18:4이하; 삿 16:24; 마카베오일서 1:6; 6:35등).||#3. 신약성경의 용법||디아이레오는 신약성경에서 2회 누가복음과 고린도전서에 나온다.|눅 15:12에서 디아이레오는 '분배하다'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고전 12:11에서는 성령님께서 뜻대로 교회의 여러 구성원들에게 나눠주시는 영적 은사의 분배에 대해 말한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참조: Walter Bauer; J.H.Thayer; G.Nordholt).
정하게 하다
diakaqarivzw
철저히 깨끗하게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카다리조는 디아($1223)와 카다이로($2508: 깨끗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철저히 깨끗하게 하다'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카다리조는 신약성경에서 마 3:12에 한번 나온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디아카다이로
diakaqaivrw
철저히 깨끗케 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카다이로(Aristoph. 이래)는 디아($1223: 통하여, 때문에)와 카다이로($2508: 깨끗하게 하다)에서 유래했으며, '철저히 깨끗게 하다' cleanse thoroughly를 의미한다.||#2.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디아카다이로는 신약성경에서 눅 3:17에 한번 나온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이김일러라
diakatelevgcomai
완전히 논박하다.||동사 디아카텔렝코마이는 '완전히, 또는 철저하게 논박하다'를 의미한다. 디아는 '완전'이란 의미를 지닌다.|신약성경에서 디아카텔렝코마이는 행 18:28에 한번 나온다. 아볼로는 성경으로서 예수님은 그리스도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유대인들을 완전히 논박했다.|(참조: Walter Bauer; J. H. Thayer).
공양하다
diakonevw
섬기다, 봉사하다.||우리가 봉사나 섬기는 것에 관하여 말할 때 그것은 자발적으로 또는 의무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행한 일과 그런 도움을 받은 사람에게 생길 이익을 의미한다. 봉사라고 해서 보수(Reward)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섬기는 행위는 지배하는 것과 대조가 된다.|성실한 봉사는 교만과는 대조적으로 낮은 자가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것이다. 섬기는 자는 종속적 위치에 있으며, 그의 자유는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죄의 지배와 율법에서 자유한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므로서 참된 자유를 발견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봉사(섬김)하다"에 대해 사용되는 단어들의 개념은 때때로 구별하기 어렵지만 각각 그 기본 강조점이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둘류오($1398)는 복종, 예속을 강조하는 것으로, '노예로 섬기다'를 의미한다.|* 데라퓨오($2323)는 기꺼이 섬기는 것을 강조하는데 그것에 의해 존경과 관심을 표현한다(특별히 신을 향하여).|* 라트류오($3000)는 '삯을 위해 봉사하다'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주로 신앙적, 제의적 의무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레이투르레오($3008)는 '공무에 봉사하다'를 뜻하며, 70인역본에서는 성전에서 봉사를, 기독교회에서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에 대해 사용되었다.|* 휘페레테오($5256)는 '노나 키를 잡다'라는 기본 의미를 지니며, 특히 봉사가 주인과 관계된다. 그 명사 휘페레테스는 때때로 '노잡이, 조수'를 의미한다.||이런 단어들과는 달리, 디아코네오는 매우 인격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봉사라는 특별한 자질을 가진다. 휘페레테오와 가장 가깝지만, 디아코네오에는 사랑의 봉사라는 개념이 더욱 강하다(Beyer, TDNT).|디아코네오는 일반적으로 '섬기다, 봉사하다, 지원하다, 집사로 섬기다'를 의미하며, 개역 한글판에는 '수종들다, 섬기다, 일하다, 돕다, 맡다, 집사의 직분을 하다, 공양하다'라는 의미로 번역되었다.||#1. 헬라어 문헌의 용법||디아코네오는 '섬기다, 봉사하다'라는 뜻으로 '자신을 괴롭게 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코나리와 어원이 같은 단어이다. 이 단어는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와 관련이 없으므로 '먼지 속을 통과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일반 헬라어에서 기본 의미는,|(a) '식사의 시중을 들다'인데, 이것이 확대되어,|(b) '가족을 돌보다',|(b) 일반적으로 '봉사하다'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첫 번째 (a)의 의미는 자유민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생각되었던 개인적인 복종을 함축한다.|세 번째 (c)의 의미로 사용될 때 그것은 어떤 큰 목적을 위한 봉사, 예를 들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또는 어떤 신(神)을 위한 봉사일 수도 있다. 이러한 경우 봉사는 자유민에게 영예로운 임무이며 적절한 일이다.|일반적으로 동료 인간들을 위한 봉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헬라 사상에 부합되지 않는다. 헬라인들은 봉사를 품위가 없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리는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스리기 위해서 태어났다고 한다.|인간 앞에 놓여진 최고 목표는 그 자신의 인격 함양이었다. 봉사는 그것이 개인적인 발전이나 국가에 대한 봉사(긍극적으로 신에 대한 봉사)로서의 온전한 발전을 가져올 때만이 가치를 가지는 것이다.||이 동사에서 파생한 명사 디아코니아는 그 동사가 함축하는 여러가지 직업을 나타내며, 또한 봉사, 직무를 의미한다. 두 번째 파생 명사 디아코노스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한다.||#2. 70인역본 및 유대교의 용법||(a) 구약성경에는 봉사의 개념을 가지고 있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레 19:8)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비로운 자선 행위를 알고 있을지라도, 70인역본에서 디아코네오를 역어로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디아코노스는 7회, 디아코니아는 2회 사용되었다.||(b) 유대교에서 봉사는 무가치한 것으로 생각되지 않았으므로, 봉사의 의미에 대한 보다 심오한 이해를 보였다.|① 필로는 이 단어를 '식사의 시중을 들다'라는 기본 의미를 반영하는 것으로써 '봉사하다'란 일반적 의미로 사용하였다. 요세푸스는 '식사의 시중을 들다, 복종하다'는 의미의 '봉사하다, 제사장으로 봉사하다'를 뜻하는 말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그러나 후기 유대교에서 이것은 의인과 불의한 자들을 구별하고 봉사를 희생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공로를 쌓는 것으로 추론함으로써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Beryer, TDNT).
|②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가 그 사회적인 책임, 예를 들면 가난한 자들에 대한 사회적인 책임을 알고 또 실천했을지라도 이것은 주로 구제금으로 하였지 봉사로 하지 아니하였다(참조, 눅 10:30 - 눅 10:35). 천한 봉사, 예를 들면 식사의 시중을 드는 것은 자유민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것이었다(참조, 눅 7:44). 때때로 고귀한 자들이 식사의 시중을 들곤하였지만 그러나 이것은 예외적인 것이었다.|③ 그러나 가난한 자(poor)를 돌보는 기관이 있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그 지역에 사는 가난한 자들은 자선 바구니(쿱파 quppah)로부터 14번의 식사를 하기에 충분한 돈을 받았다. 나그네들은 매일 자선 그릇(탐후이 tamhuy)으로부터 음식을 받았다. 이 음식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일을 맡은 관원이 미리 각 집에서 모은 것이다(SB. Ⅱ 643ff; 참조, J.Jeremias, 예수 시대의 예루살렘, 1959, 131이하). 그 밖에 또 공동 식사와 구제금이 있었다.|디아스포라(diaspora)의 회당은 종종 그 봉사를 위해서 일곱 명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명칭은 음식을 뜻하는 파르네스(parnes)에서 유래한 파르나심(prnasim)으로서 식탁에서의 봉사와 일반적인 봉사를 뜻한다(참조, 프토코스[$4434]).|④ 요세푸스는 에세네파 사람들은 '여인들과 결혼하지 않고, 하인 두기를 원하지 않으며 …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라고 말하였다(Ant I8, 21). 바르트의 교의학 14:12에서는 가난한 노인들을 돕기 위한 정규적인 기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필로에 따르면 또한 병자들도 잘 돌보았다고 한다(Omn. Prob. Lib. 12, 87).|아마도 종말론적인 뜻과 더불어(1QS 2:l7ff) 가난한 자들에 대한 봉사와 공동 식사는 의(義)의 성취와 왕국(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기대에 속하였다. 공동체가 그 소유물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일시적이나 그것에 상당하는 본을 보였다.(참조: K.Hess, DNTT).||#3. 신약성경의 용법||(a) 디아코네오는 '섬기다'나 '봉사하다'라는 뜻으로서 '식사의 시중을 들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런 경우는 음식을 준비하는 것으로부터 식사의 시중을 들며, 음식과 음료수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마 8:15(막 l:31; 눅 4:39)에서 예수님께서 열병 들린 베드로의 장모를 고쳐주셨을 때 그녀는 "일어나 예수께 수종 들더라".|눅 l7:8에서 종은 주인이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 들고]... 그 후에" 먹고 마신다.|눅 l0:40(참조, 요 l2:2)에서 예수님을 위하여 잔치할 때 마르다는 [일을 보고], 즉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마르다는 "주여 내 동생이 나를 혼자[일하게] 하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라고 하였다. 이상은 식사의 시중과 준비하는 것을 의미한다.|행 6:2에서 "공궤"라는 말은 디아코네인 트리페자이스, 즉 '식탁에 시중들다' 이다. 그것은 음식을 관리하는 것, 그 공급, 준비 기관을 담당하는 것을 의미한다.|눅 12:37에서 놀라운 일은 돌아온 주인이 종들을 수종함으로 말미암아 종들을 상 주실때 일어난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할 것이다.|눅 2:27에서 예수님은 이와같이 친히 섬기는 자로 계신다. 여기서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고 물었을 때 헬라인들이 대답을 하였더라면 분명히 잘못 대답했을 것이다. 즉 '앉아서 먹는 자입니다'라고. 그러나 예수님은 신학적으로는 반대되는 그 대답을 대치시키지 아니하셨다. 대신에 예수님은 자신을 지적하셨으니 그는 왕국의 주님되신 인자로서 식사의 시중을 들거나 발을 씻기까지 하는 인간 관계의 새로운 모범을 세우셨다(요 13:4이하).|막 1:l3(마 4:11)에서 예수님께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에 천사들이 예수님께 [수종들]었을 때 금식으로 주린 그에게 아마도 음식을 가지고 와서 드린 것이다.||(b) 디아코네오는 '…을 돌보다'(혹은 도움을 베풀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7:55; 막 15:41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기]던 여자들이 있었다.|눅 8:3에서 이들 여자들은 자기들의 소유로 예수님과 그 제자들을 [섬기]었다. 이런 경우에 그들을 섬기는 자로서 도움을 베풀었으니, 음식 곧 식사의 시중을 드는 일 뿐만 아니라 생활 필수품을 공급하였다.|마 25:42 - 마 25:44에서 디아코네오는 나그네, 주린 자, 목마른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를 그 필요에 따라 돌보는 것이다. 즉 힘써 도와주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이와같은 봉사는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봉사이다.|벧전 4:10에서 모든 은사는 청지기로써 서로 봉사하도록 주어진 것이다. 봉사는 서로의 유익을 위한 것이며, 누구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로서 봉사해야 한다.||(c) 디아코네오는 역시 '…을 돌보다'(혹은 도움을 베풀다)의 의미로 교회를 위한 봉사에 대하여 사용되었다.|행 19:22에서 디모데와 에라스도 두 사람은 복음전도 사역에서 바울을 돕는 자들이다.|몬 1:13에서 오네시모는 갇힌 바울을 몸으로 물질로 돌보았다.|딤후 1:18에서 오네시보로는 로마에서 또한 에베소에서 너무나 많은 것으로 바울을 돌보았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 많은 섬김의 은혜를 입고 있음에 대하여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린다.|히 6:10에서 이러한 봉사는 여기에서 칭찬받는 일로, 성도를 [섬기는] 일반적인 봉사의 사례가 된다. 기독교 공동체의 생활은 이와같이 봉사의 생활이다.||(d) 디아코네오는 헌금의 모금과 관련된 직무수행에 대하여 사용되었다.|고후 8:19에서 바울의 특별한 봉사는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모금이었으며, 디도와 다른 두 형제는 택함을 받아 이 일에 동참했다. 바울은 이 일을 "우리의 [맡은(혹은 섬기는)] 은혜의 일이라"고 한다.|롬 15:25에서 바울이 성도를 도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간다고 말했을 때 디아코논(디아코네오의 주격 단수 남성 능동태 현재분사)이란 말을 사용하여 "내가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라"고 했다. 이러한 봉사는 역시 히 6:l0에서 칭찬한 성도를 섬기는 더욱 일반적인 봉사의 한 실례가 된다.||(e) 특별히 집사의 일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다.|딤전 3:l0 - 딤전 3:l3에서 10절의 "집사의 직분을 하게 할 것이요"라는 말은 명령법으로 직역하면 '섬기게 하라'는 것이며, 13절의 "집사의 직분"은 분사로 직역하면 '섬기는 일'이란 말이다. 그래서 본문에서 '집사로서 섬기게 하라'와 '집사로서 섬기는 일'을 말한다.||(f) 그리고 그외에 디아코네오는 다음과 같은 것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① 벧전 1:10 - 벧전 1:12; 고후 3:3에서 디아코네오는 복음의 선포를 표현한다. 벧전 1:10 - 벧전 1:12에서 선지자들의 그리스도에 관한 연구와 예언은 하나님이 보내신 전도자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과 같이 저들을 [섬기는 일]이었다. 고후 3:3의 사도들의 [섬기는 일] 역시 고린도 교회를 섬긴 일로서 복음의 선포를 나타낸다.|② 마 20:8(막 10:45; 참조, 눅 18:26)에서 디아코네오는 그리스도의 겸손과, 고난과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을 표현한다.|③ 눅 22:26에서 디아코네오는 제자들의 자발적인 겸손을 표현한다.|④ 요 12:26에서 디아코네오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표현한다.||디아코네오가 이렇게 사용됨으로써 그 개념은 그 이전의 의미의 한계를 벗어나 확대되었다. 이미 눅 12:37의 종말론적인 말은 그 이전에 가졌던 의미의 근본적인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그 앞절과 연결된 눅 22:27에 있어서도 그렇다 - 여기서 예수의 겸손이 제자들의 삶을 위한 표준(규범)이 되고 있다.|* 벧전 4:10 - 벧전 4:11에서 봉사는 교만하고 자의적인 봉사가 되어서는 안되며, 다만 하나님의 힘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수행되어야 한다.||디아코네오에 대한 신약성경의 의미가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복음에서 파생되고 있다(마 20:28; 병행구 막 10:45). 이 단어는 형제와 이웃에 대한 사랑의 행위를 뜻하는 용어가 되며, 이와 같은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단어로써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 FeIIowship)의 완성을 묘사하기도 한다.|제자들과 일반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의 봉사 사역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이자 하나님이 바라시는 인류애의 실례였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참조, 요 13:1-요 13:1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마 20:28),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감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그들의 발을 씻음으로써 모범을 보이셨다(요 13:15). 그들 중 지도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눅 22:26; 참조, 마 20:26, 병행구 막 10:43; 마 23:11).|누구든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로써 봉사해야 한다(벧전 4:10).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주고 집없는 자에게 피난처를, 헐벗은 자에게 의복을 제공하며, 또는 병들고 옥에 갇힌 자를 돌아보는 자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바로 그분을 섬기는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특히 여인들이 지상의 예수님께 바친 봉사 사역은(참조, 눅 7:44이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막 14:9). 여러 여자들이 또한 "자기들의 소유로"(눅 8:3) 예수님을 섬겼다.|이러한 섬김으로의 부름은 그 배후에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하여"(막 10:45)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이 놓여 있기 때문에 구속력을 지니게 된다. 요일3:l6은 이 예수님의 희생으로부터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결론을 끌어내고 있다.|(참조: Beyer, TDNT; K.Hess, DNTT).
구제
diakoniva
봉사, 직무, 집사의 직무||#1. 일반 헬라어 문헌과 70인역본의 용법||명사 디아코니아는 디아코네오($1247: 봉사하다, 섬기다)에서 유래했으며, 봉사하는(섬기는) 활동, 곧 '봉사'를 의미한다. 일반 헬라어와 70인역본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나온다. 그러나 디아코니아는 외경에서 오직 두 번 중요하지 않은 경우에 사용되었다(1Maccabees 11:58; Esther 6:3,5).||#2. 신약성경의 용법||디아코니아는 신약성경에서 34회 나타난다, 이 단어는 사도행전에는 흔히 나타나고 바울 서신에는 매우 자주 나타나는데, 복음서에는 눅 10:40을 제외하고는 나타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a) 이 단어는 '식사의 시중을 드는 것'(waiting at table), 더 넓은 의미로 '육신의 식물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눅 10:40). 초대 교회에서 '식사 관리'는 행 6:1에서 '디아코니아 카데메리네'(개역: 매일 구제), 즉 매일 급식이라고 하였다.||(b) 이 단어는 진정한 '사랑의 봉사 수행'(discharge of service)에 대하여 사용된다. 스데반의 집은 성도 섬기는 일에서 그 대표적인 예이다(고전 16:15). 계 2:19에서도 이 '사랑의 봉사'를 의미하며, 사업, 사랑, 믿음, 인내와 연결되어 있다. 이 개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정적 요점은 초대 기독교회가 공동체의 교화를 위한 모든 중요한 활동을 디아코니아로 알고 묘사하였다는 사실이다(엡 4:1l - 엡 4:12).|고전 12:4이하에 의하면, 여러 가지 직임(디아이레세이스 디아코니온)과 여러 가지 역사(디아이레세이스 에넬게마톤)에 부합하는 여러 가지 은사(디아이레세이스 카리스마톤)가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서로 다른 봉사들은 모두 같은 주께 바쳐진다. 그들 각자에게 있어 신자는 그의 형제요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그는 은혜의 선물로 그에게 맡긴 봉사를 할 책임이 있다.|일반적으로 고전 12:28에 언급된 안틸렙시스($484: 돕는 것)는 이러한 봉사 행위의 내용, 즉 공동체를 돌보고 도우는 활동을 형성해야 한다.|롬 12:7에서 디아코니아는 프롭헤테이아(예언)와 디다스칼리아(가르침) 사이에 온다.|그러나 행 6:4에서는 말씀의 전파까지도 바로 디아코니아, 즉 생명의 떡으로서의 복음의 제공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도자의 참된 봉사는 그의 형제들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며, 따라서 그는 화목케 하는 말씀을 그들에게 전파함으로 말미암아 텐 디아코니안 테스 카탈라게스(화목케 하는 직책[봉사])를 다해야 한다(고후 5:18이하).|히 1:14에 보면 이 점에서 천사들은 하나의 모델이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봉사는 복음(Gospel)으로 지향한다. 고후 3:7 - 고후 3:9에서 율법을 지키려는 모든 노력은 디아코니아 투 다나투(개역: 죽게하는 직분), 디아코니아 테스 카타크리세오스(개역: 정죄의 직분)이며, 한편 복음에 대한 믿음은 디아코니아 투 프뉴마토스(개역: 영의 직분), 디아코니아 테스 디카이오쉬네스(개역: 의의 직분)이다. 바울이 새로 만든 이런 문구는 기독교의 봉사(service)의 개념의 변증적 긴장 상태를 나타낸다.||(c) 이 단어는 공동체에서 '어떤 직무나 의무의 수행'에 대해 사용된다. 사도의 직분(롬 11:13; 고후 4:1; 고후 6:3이하; 고후 11:8; 행 1:17; 행 1:25; 행 20:24; 행 21:19; 딤전 1:12), 복음 전도의 직무(딤후 4:11)나 마가와 같은 동역자들의 활동(딤후 4:11)은 봉사로서 '어떤 의무나 직무 수행'이다.|골 4:17에서 바울이 아킵보에게 권면한 봉사 활동은 비록 아킵보가 집사인지 아닌지 불확실하지만, 직무상의 활동이다.||(d) 이 단어는 '모금'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예루살렘을 위한 모금은 디아코니아로 묘사되었다. 사도의 강조하는 바는 이것이 단순히 외형적인 일이 아니라 기독교적인 사랑의 참된 행동이라는 것이다(롬 15:31이하; 고후 8:1-고후 8:6; 고후 9:1; 고후 9:12이하; 참조: 행 11:29이하; 행 12:25)(참조: Beyer, TDNT).|* 식사 대접(행 6:1)을 포함한 공동 식사 친교가 신약성경의 디아코니아를 이해하는데 기본적 요소가 된다. 각 개인의 집에서 '떡을 떼는 것'에 대해, 부자가 가난한 자를 돌보았던 애찬(참조:고전 11:17 - 고전 11:34)에 대해, 그리고 디아코니아에 전념했던 스데반의 집과 같은 가정 교회들(고전 16:15)에 대해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한다.|힘과 소유물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사용한 이와같은 봉사는 친교를 지켜 주는 기본적 요소로 볼 수 있다(고후 9:13; 참조: 행 5:4; 고후 9:7). 이 봉사 사역은 또한 지교회로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타 교회로 확장되었다(행 11:29; 행 12:25; 고후 8:3이하; 고후 9:1 - 고후 9:5). 주고 받은 물질적, 영적 디아코니아는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인식에서 이루어진다(고후 8:9; 고후 9:12 - 고후 9:15).|금전과 소유물 뿐만 아니라 몸과 생명까지도 포함하는(고후 8:5) 이 봉사 사역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수단이 된다(엡 4:12).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바울은 카리스마적 은사들을 디아코니아(봉사들 services)라 부르는데, 이것들은 전 유기체의 일부인 것이다(고전 12:5; 개역: 직임).|디아코니아는 개개의 특별한 영적 은사(Gift, 롬 12:7)에 대해서도 사용되며(롬 12:7), 마찬가지로 집사 역시 여러 봉사자들 중의 한 부류인 것이다.|바울은 디아코니아의 개념을 더욱 더 확대시켰다. 그는 사도들의 디아코니아에서 표현된 구원의 전체,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들 중에서와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디아코니아를 보았다.|구약성경에 이미 하나님의 디아코니아가 존재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율법으로 표현되었으며, 따라서 사망과 정죄로 표현되었다(고후 3:7; 고후 3:9).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봉사'(개역: 직분), '의의 봉사, 화해의 봉사'가 시작되었다(고후 3:8이하).|그리고 이 봉사 사역은 사도들에게 위임되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자들로서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선언한다(고후 5:18이하). 따라서 디아코니아라는 용어는 복음 선포 사역에 대한 전문 술어로 사용될 수 있다(롬 11:13; 고후 4:1; 참조: 딤후 4:5).|나아가서는 교회 전체가 세상을 위해 봉사하는 하나의 몸이다(엡 4:1 - 엡 4:16). 그 구성원들은 곧 "일군들"이며, 교회는 주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는 직원들(functions)이다.|(참조: K. Hess, DN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