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간하다
diakrivnw
구별하다, 판단하다, 정확하게 분별하다, 결정을 내리다, 의심하다, 흔들리다, 주저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디아크리노는 호머이래로 나타나며, 디아($1223)로 강화된 크리노의 강의형이다.||① 판단하다, 구별하다(Hom., Od., 8, 195). 여기에서 '분리하다, (양떼를)나누다'(Hom., Il., 2, 475)는 의미로 발전되었다.|② 이 동사는 주로 법적 전문용어로 사용되는데, '판결을 내리다, 재판을 실시하다'(Xen., Hel., 5, 2, 10)를 의미한다.|③ 수동태에서 이 동사는 결정이 내려진 문제에 대해 사용되며(Hdt., 9, 58) '분리되다' be separated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참조: Hdt., 7, 206).||#2. 70인역본의 용법.||디아크리노는 70인역본에서 30회 나타나며, 주로 히브리어 샤파트의 어형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70인역본에서도 일반적으로 고전 헬라어 문헌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또한 '판단하다'는 의미에서 '검사 또는 시험하다, 택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신약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3. 신약성경의 용법.||디아크리노는 신약성경에서 18회 나오며, 다음과 같은 의미를 표현한다.||(a) 디아크리노는 '구별하다, 분간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행 15:9.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는니라." -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방인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 사이를, 즉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 혹은 분간하지 않으신다.|② 행 11:12,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사본에 따라 상당히 다르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능동태 분사 디아크리난타를 따르면 유대인과 이방인간에 '구별, 혹은 분간'치 말고 가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그러나 수동태분사 디아크리노메논을 따르면 '의심하다, 망설이다, 주저하다'는 의미를 가진다.||(b) 디아크리노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나머지 다른 것들로부터) 구별(혹은 분별)하다, 결과적으로 어떤 자를 더 좋아하여 그에게 우선권이나 영예를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곧 차별적 평가를 한다는 의미이다.|① 고전 4:7,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냐]" -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 때 다른 사람보다 위에 구별했다는 것을 나타낸다.|② 고전 11:29, "주의 몸을 분별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 주의 몸을(다른 떡으로부터) 구별, 혹은 분별해야 한다. 즉 다른 것들과는 다른 그 어떠한 몸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분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죄"(여기에 "죄"라는 말은 크리마로 문자적으로 심판이란 말이다), 곧 심판을 먹고 마신다(정죄된다는 것이다. 롬 3:3).||(c) 디아크리노는 '분별하다, 시험해 보다, 판정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① 마 16:3,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② 고전 11:31, "우리가 우리를 [살폈으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 - 이 구절은 만일 우리가 충분히 판정하였다면 판단, 곧 현재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란 뜻이다. 주의 몸을 충분히 혹은 철저히 혹은 구별하여 알기 위하여는(고전 11:29) 우리가 우리 자신을 충분히 철저히 판정해야 한다.|③ 고전 14:29,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 거짓 예언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 말인 듯하다. 예언하는 사람이 실제로 성령의 감화로 말하는지 시험해 보거나 잘 판단하여 결정해야 한다(요일 4:1-3), 특별히 "영 분별하는 능력"으로(고전 12:10).||(d) 디아크리노는 '판결하다, 판결을 내리다, 논쟁을 해결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고전 6:5, "너희 가운데 그 형제간 일을 [판단할]만한 지혜 있는 자가 없느냐".||(e) 디아크리노는 '반대하다, 다투다, 싸우다, 논쟁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중간태로 2회 사용되었다.|① 행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란하여] 가로되" - 할례자들이 베드로와 논쟁을 벌였다.|② 유 1:9, "천사장 미가엘과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 하였다.||(f) 디아크리노는 '아무에게서 물러나다, 아무를 버리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참된 그리스도인 사회에서부터 물러난 이단자들에 대해 이런 의미로 사용되었다.|유 1:22의(LT Tr AW 사본) 신앙을 버리는 어떤 자들을 정죄하라(혹은 징계하라, 책망하라). 또한 '논쟁을 일으키는 어떤 자들을 책망하라'(혹은 징계하라)라고 번역할 경우에 (e)에 해당한다.||(g) 디아크리노는 '자기 자신과 모순(혹은 불화)하여 있다, 주저하다, 의심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러한 의미는 일반 문헌에서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의심은 믿음의 부족과 같은 것으로 나타난다]|① 롬 14:23, 의심은 믿음의 부족, 곧 죄로 나타난다.|② 약 1:6-8, 본 절은 의심을 기도와 관련시킨다. 즉 믿음으로 구해야 하는데 의심하며 구하는 자는 분열된 자로, 소망의 능력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기도하는 자인 것이다.|[의심은 소심함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③ 마 21:21(마 11:23), 의심하지 않은 믿음은 산을 옮길 수 있는 믿음으로 묘사한다. 예수님께서 마 17:20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와 비교하여 볼 때 의심은 소심함과 유사한 것임을 보여준다. "강하고 담대하라."|[의심은 불신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나타난다]|④ 롬 4:20[아브라함], "이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 확신하였으니"라고 하였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의 탐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숨겨진 채로 있는 초자연적인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대체 지식이 아니다. 믿음은 언제나 역사상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그러므로 의심은 하나님께서 계속 실행하고 계시며 또한 인간이 기다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것이다.||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⑤ 유 1: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 여기서는 교의상의 의심인 것 같다. 공인 본문을 따르면 개역 한글판과 같이 번역될 수 있고, 또한 '신앙을 버리는 어떤 자들(어떤 변절자들)을 긍휼히 여기라'고 번역할 수 있다. 말하자면 배교자일지라도 긍휼히 여기라는 것이다. 어떤 사본(LTTrAW)에 따라 "의심하는 자들을 납득(확신)시키라"고 번역할 수 있다.|⑥ 행 10:20,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 또 다른 사본(ReC)의 읽기를 따르면 이와 같이 번역된다. 여기에서 의심은 베드로를 이방인 신자 고넬료에게로 보내고자 하셨던 성령에 대한 신뢰의 부족일 수 있다.|신약성경에서 의심하는 자는 특별히 디아크리노가 의미하는 바, 하나님을 그릇되게 판단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과 그 약속을 거스리는 죄를 짓는 것이다.|의심하는 자는 결국 그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자이다. 따라서 그는 자기 자신, 곧 자신의 신뢰성을 의심해야 한다(약 2:4; 참조: 1:8, 디프쉬코스: "두 마음을 품어"). 그의 행위는 하나님의 행위와 조화를 이루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에는 동요함이나 모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혜 있는 자는 아디아크리토스, 즉 흔들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으며(Arndt, 16), "편벽이 없다"(약 3:17).|만일 약속이 복음의 구조적 요소라면 소망은 믿음의 구조적 요소이다. 엄밀히 말하면 신약성경에 나오는 의심은 소망과 신뢰에 반대 방향으로 지향한다. 이와 같은 의심은 종말론에 관계되는 문제이다.|그것은 의심의 가능성이 복음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곳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항상 복음과 마주대하여 일어난다. 왜냐하면, 의심은 복음과 관계가 되기 때문이다. 의심이 분명히 불신에 이를 수 있기는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의심은 불신자의 문제라기보다는 신자의 문제이다.|(참조: J. H. Thayer; B. Gartner; F. Buch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