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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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다, 요구하다.||#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동사 아이테오(Homer 이래)는 원래 '어떤 것을 원하다, 자신의 몫으로 어떤 것을 요구하다'를 의미하며, 이로부터 '구하다, 요구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2. 70인역본의 용법.||동사 아이테오는 70인역본에서 주로 히브리어 샤알의 역어로 사용되었다(약 90회 중 57회). 샤알은 '구하다, 요구하다, 바라다, 요청하다'를 의미한다(신 10:12; 삿 5:25; 삼상 12:13 등).|이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언급과 함께 사용되었는데, 기도라는 개념에 거의 가까우며 종종 기도의 응답에 대해 감사하는 것과 관련되어 사용된다(삼상 1:20; 시 105[104]:40; 21[20]:4 등).|히브리어 샤알은 '묻다'(창 24:57), 법적인 용어로 쓰일 때 '심문하다'(신 13:15), '~의 의견을 듣다, 조언을 구하다'(삿 18:5)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 요구가 매우 특수한 것일 경우에만 아이테오로 번역되었다(출 3:22; 수 14:12; 삿 5:25; 삼상 12:17). 예를 들면, 한나는 그녀 자신을 위하여 여호와께 아들을 얻게 해달라고 구하였고 엘리는 그녀에게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삼상 1:17)을 약속하였다. 이와 유사한 예로서 시편에서는, 이 동사가 기도의 응답에 대한 약속을 표현할 때마다 특수한 요청의 뒷 배경에 대하여 쓰인 것을 알 수 있다(시 2:8; 21:4; 27:4; 40:6; 78:18; 105:40; 참조: 사 7:11이하; 58:2; 잠 30:7).(H. Schonweiss)||#3. 신약성경의 용법.||동사 아이테오는 신약성경에서 70회 사용되었으며, 복음서(마 14회, 막 9회, 눅 11회, 요 11회)와 사도행전(10회)에는 자주 나타나지만 서신들에는 드물게 나타나며, 목회서신, 히브리서, 요한계시록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아이테오는 신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다'(demand), '요청하다'(request), '구하다'(ask)를 의미한다.||(a) 아이테오는 '요구하다'를 의미한다.|① 아이테오의 대상이 아래 사람일 때, 그 의미는 '요구하다'(눅 1:63; 행 16:29)를 의미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물건이나 위탁해 준 것들을 돌려달라고 요구할 때, 혹은 그것에 대해 보고해 달라고 요구할 때에도 이와 같은 의미를 띤다(눅 12:48). 여기에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요구에 대해 말한다.|②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메시야 되시는 증거로서 표적을 요구하였다. 이 의미는 고전 1:22에서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의 요구 배후에 놓여있는 의미를 밝혀준다.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할 때 그는 사실상 자신을 하나님 위에 올려놓고 하나님에게 책임을 묻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그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던 것에 관련하여 하나님 자신이 옳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③ 벧전 3:15에서 베드로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에 대한 설명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이라는 구절은 그 보고의 진실 및 신빙성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거나 혹은 단순히 정보를 요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위에서 살펴본 바, 신약성경에서 '요구들'은 종종 종교적으로 적용되었다.||(b) 아이테오는 '요청(간청)하다'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에서 아이테오는 세속적 의미와 종교적 의미에서 모두 이 용법을 사용하고 있으며, 능동태와 중간태 사이의 구별도 거의 없다.|① 세속적 용법으로는 거래, 계약(마 14:7; 막 6:24-막 6:25) 혹은 공적인 요구(마 27:20; 막 15:43; 눅 23:23; 행 9:2)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단어가 사람의 지위에 대해서는 거의 항상 윗사람에게 구하는 경우에 사용되었다.|아이테오는 오직 이 구절에서 '불쾌하다'라는 어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혹은 적어도 '다른 사람이 불유쾌하게 느낄 정도로 요구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힐(D. Hill)은 마 5:42에 나오는 두 개의 절이 병행절이며 또한 여기에서의 아이테오가 '꾸어달라고 요구하다'라는 뜻이라고 주장한다(참조: 출 22:25).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요청들까지도 제자들이 응답해야만 한다고 강조하신다(참조: 마 7:7; 마 7:8). 이 구절이 지니고 있는 윤리적인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즉, 나는 내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극복하고 요청하고 있는 사람에게 마음과 손을 열어 펼친다. 왜냐하면 그 요청은 실로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그를 향해 열며 복종하라고 나를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이다.||② 종교적인 용법에서, 즉 하나님에게 요청하는 것을 표현한 그 구절들에서 이 동사의 능동태형과 중간태형 사이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다. 이러한 차이는 때때로 약 4:2 이하를 근거로 하여 시도되었다. 능동태는 입술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고 중간태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았다(Mayor, Exp., 525). 그러나 신약성경의 나머지 구절들에서 그런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참조: 특별히, 요일 5:15; 요 16:24; 요 16:26; 마 21:22; 요 11:22).||③ 기도에는 확신이 요구된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표현한 구절들에서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마 6:8; 마 7:7; 마 7:11; 마 18:19; 마 21:22; 요 14:13 이하; 요 15:7; 요 15:16; 요 16:23 이하; 요 16:26; 요일 3:22; 요일 5:14 이하; 약 1:5). 이러한 확신은 모든 기도를 계속 살아있게 하는 것이며 이런 확신이 의심으로 인해 약해지거나 없어지게 되면 기도는 죽게 된다.|마 7:8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구하는 것을 들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기본 원칙이라고 말씀하셨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이 원칙은 여기에서 그 명령의 기초이며 이에 따른 약속, 즉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의 토대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토대는 마 6:8; 요 15:16; 요 16:23; 요 16:26 이하; 골 1:9-골 1:12 및 특별히 마 7:9-마 7:11과 같은 구절들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은 세상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사랑하는 것보다도 더 욱 하나님 자신의 아들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시며, 따라서 자식들의 요청이 헛되게 됨을 허락치 않으시는 아버지이시므로 오직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그들에게 주신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구하는 자가 그의 요구가 응답 받는다는 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버지 같은 선함과 사랑에 대한 확신이 그 자신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듣고 보시고 동정으로 가득찬 마음을 갖고 계시는 살아있는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다.||④ 간구는 하나님의 뜻과 일치해야 한다. 요일 5:14-요일 5:16에서 기도와 하나님의 뜻 간의 관계를 밝히면서, 기도에 있어서 담대함과 그 효험을 얻는 방법을 제시한다(요일 3:21-요일 3:22).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그로부터 옳고 좋은 것을 구한다는 뜻이다(마 7:11). 누가는 이를 특별히 성령을 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눅 11:13).|요 15:7에서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라는 구절은 곧 우리의 존재가 예수님 그리고 그의 말씀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 우리의 요구가 분명히 그의 뜻에 일치함에서 생기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요일 3:22은 한층 더 윤리적인 면으로 진전되고 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이것은 우리의 요구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구절은 기도 중에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함축적인 의미를 간략하게 요약하여 제시한다.|마 18:19 역시 하나님의 뜻과 관계 될 수 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제자들이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는 모든 이기적인 욕망을 버린 것임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기적인 기도는 그릇된 것이며, 하나님에게서 아무 것도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약 4:3; 막 10:35).|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려져야 한다(요 14:13; 요 15:16; 요 16:23 이하).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아버지께 접근을 허락 받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 자신이 기도하였던 것처럼 기도하는 것이며, 성자가 우리에게 성부를 알려주셨던 대로 성부께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 있어서 기도의 초점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기본 특징이 여기에 있으니, 기도는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확보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드리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조화되는 기도이다(J.G.S.S. Thomson).|기도는 믿음으로 드려야 한다(마 21:22; 약 1:5 이하).||⑤ 예수님 자신의 요청이나 기도에 대해서는 아이테오가 아니라 에로타오(2065)나 데오마이(1209)가 사용되었음이 명백하다(참조: 요 14:16; 요 16:23-요 16:26; 눅 22:32). 그 이유는 아마도 아이테오가 자기 자신을 위한 요구, 혹은 구한다는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거나 에로타오보다 덜 친근하기 때문인 것 같다.|(참조: G. Stahlin; TDNT; H. Schonweiss, DN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