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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낫세 지파에게 분배하였느나 원주민을 쫑아내지 못하고 사역하므로 동거 하였다(수 17:11-13, 삿 1:27).
아하시야가 예후를 피하여 도망하다가 이 근처 에서 상함을 당하였다.
(대상 6:70)의 빌르암과 동일시 한다.

하나님이 싸워주심

[1] 구약-이스라엘 이라는 이름은 야곱시대부터 유래하여(창 32:24-32)그 어원의 해석은 (호 12:3-4) 에 적용되어 있다.

(1) 유목 시대와 가나안 정주 시기에는 12지파로 구성된 전체를 가 리켰다.

(2) 한 임금의 지배하에 들어간 신정정치 시대에는 일종의 정치적 지리적 개념으로 쓰였다.

(3) 왕국의 실재가 사라진 후에는 종교적 의미가 회복되어 남은 백 성을 지칭하였다.

(4) B.C 586년의 예루살렘 함락과

구약 시대의 인도는 인더스강이 흘러가는 지방을 가리켰다.
이 나라는 아하수에로 제국 동 쪽에 있던 나라로 알려졌다(에 1:1, 에 8:9).

기쁨

바울이 전도한지경중 가장 서쪽에 있는 지명이다(롬 15:19).
마게도냐의 북 쪽 드라기아의 서쪽에 해당하는 아드리아 바다의 동쪽 지방이다.
이 지역은 후에 달마티아라 불렀다.


성서에는 바사로 되어 있다.
성서에 기록된 군주의 이름은 여섯명이다.
(1) 고레스 B.C 538-529,(스 1:1, 스 5:13, 스 6:3).

(2) 다리오 B.C 521-486,(스 4:5, 학 1:1, 슥 1:1).

(3) 크셀크세스 1세 B.C. 486-665, (스 4:6-) 아하수에로왕

(4) 알타크셀크세스 1세 B.C. (스 4:7-8, 스 4:11, 느 1:1, 느 2:1, 느 5:14, 느 13:6-) 아닥스다 왕.

(5)

성지를 지칭하는 근대의 명칭인데 성경에는 한번도 이런 이름이 나온 일이 없다.
옛날에는 가나안이라 부르다가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바벨론에서 돌아 온후는 유대라 불렀고 기독교가 발생 후부터 성지라는 칭호가 생겼다.
팔레스틴 이라 부르는 땅은 북은 단,남은 브렐세바,동은 요단강,서는 지중해 로 남북이 225키로 넓이는 북방이 40키로 남방이 144키로 면적 15,540Km2로 우리나라의 경기도 보다 조금 크다.
인구는 가장 번성하였던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유다 남방에 있는 산인데 다윗의 피란처요 사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진을 쳤던 곳이다(삼상 23:19, 삼상 26:1-3).


예루살렘 성위 곧 양의 문과 어문 사이에 있는 탑인데 건축사의 이름을 따라 지은 것이다 (느 3:1, 느 12:39, 렘 31:38, 슥 14:10).


소안과 같이 쓰이는 애굽의 도시(사 30:4).

날카롭다

포로 귀환후에 유대인이 식민한 도읍이다(스 2:33, 느 7:37, 스 11:34).
룻도 동쪽 5키로 현재의 엘 하딧과 동일시된다.


시내산과 가데스 중간에 있는데 이스라엘 백성이 진을 쳤던 곳이다(민 33:24-25).
아가바만 부의 제벨랏산일 것이라 한다.

마르다

(1) 아브라함의 형인 하란의 거주지다.
밧단아람의 한 성읍으로 아브라함이 우르에서 옮겨 이 성에 가서 사는 동안에 데라가 죽었다 (창 11:27-32, 행 7:2).

(2) 야곱이 이 성에 거주하는 외숙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있으면서 2처 2첩 을 취하여 11남 1녀를 생산했다(창 29:30).
지금의 씨리아국 메스케네성 부근인둣 하다.


가나안왕 야빈의휘하 장수 시스라의 거주지(삿 4:2, 삿 4:13, 삿 4:16)로서 에스드라 엘론 평원의 서단에 있어 전략상 중요한 땅이요 지금의 이름은 델엘할바지 이다.

떨다

기드온이 미디안을 야습하기 전에 진쳤던 곳 부근에 있는 우물의 이름 (삿 7:1)
이물은 바위 틈에서 솟아나와 직경 20미터의 못을 이루고 동으로 흘러 요단강에 들어 간다.


(암 4:3)에 기재된 지명인데 지금은 그 소재를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