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4편

시편 2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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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주제-이 시에는 "다윗의 시"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다. 이 머리말로부터 우리는 단지 이 시를 다윗이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성령께서 이스라엘의 노래하는 자 다윗에게 역사하셔서 탄식하는 노래인 시 22편을 쓰게 하시고, 이어서 평화롭고 목가적인 시 23편을, 그리고 위엄과 승리의 노래인 시 24편을 쓰게 하셨다. 이와 같이 진행되는 그 흐름이 참으로 흥미롭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시면, 우리는 언제든지 노래할 수 있다. 

어쩌면 오벧에돔의 집에서 언약궤를 메고 시온 산으로 올라갈 때에 부르기 위해, 다윗은 이 시를 지었을 것이다. 이 시는 이처럼 즐거운 상황에서 다윗이 그들을 인도하면서 흥겹게 춤을 추며 부르기에 적합한 언어로 되어 있다. 시편 기자는 언약궤가 올라가는 것을 노래하면서 이것이 상징하는 바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이 시를 "즉위 시"라고 부르겠다. 


구성-이 시는 시 15편과 쌍을 이루며, 세 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다.


1-2절참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의 우주적인 통치를 노래함.

3-6절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참 이스라엘을 묘사함.

7-10절택하신 자들이 들어가도록 하늘문을 여신 참된 구속주의 즉위를 묘사함.


강해


여호와의 것이로다

2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우리 구세주의 시대에 유대인들이 품고 있던 하나님에 대한 사상과 여기에 나와 있는 하나님에 대한 모습은 어찌 그리 다른지! 유대인들은 "거룩한 땅은 하나님의 것이요, 아브라함의 씨는 그분의 유일한 백성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왕 다윗은 이보다 훨씬 전에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또한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스도의 시대에 유대인들은 완고하고 편협한 신앙을 가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편협한 신앙을 깨우치는 말씀을 하셨다.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오직 사렙다의 과부에게만 선지자가 보내심을 받았고, 이스라엘에 문둥이가 많이 있었지만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선지자의 도움으로 고침을 받았을 뿐이라고 하셨다. 유대인들은 주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서 분개하였다. 바울도 그들의 편협한 신앙을 깨우치고자 했다. 바울이 자신은 이방인에게 보내심을 받았다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역시 분개했다. 그들이 이처럼 영적 소경과 같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은 유대인의 하나님만이 아니요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는 것을 가르치는 이런 시를 노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흑인을 멸시하며, 또한 멸시받는 민족들은 하나님께서 돌보시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다. 이 시는 이런 사람들에게 책망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인간으로서 인정해 주시는데, 어느 누가 사람을 물건이나 상품으로 취급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 여호와의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의 국수주의적인 태도에 종지부를 찍으셨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분별이 없이 모두 하나가 되었다(골 3:11). 


"땅과 거기 충만한 것." 사람들은 "땅"에 살고 있다. 왕과 군주들은 이 땅을 나누어서 통치한다. 그러나 땅은 사람의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단지 이 땅을 위임받아 대리로 다스리고 있을 뿐이며, 언제라도 하나님은 그를 쫓아내실 수 있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벌레와 같은 인간들이 땅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보시고 웃으실 뿐이다. 토지 상속권은 이 땅의 지주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에게 있다. 땅의 "충만한 것"은 땅에서 추수한 것이나 그 재물, 생명, 또는 그 생명이 경배하는 것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 이 땅은 하나님으로 충만하다. 그분은 이 땅을 충만하게 지으셨고, 또 충만하게 지키신다. 바다에서는 물이 구름으로 변하여 공중으로 올라가지만, 바다에 남아 있는 물은 여전히 충만하다. 세상에 사는 모든 피조물이 공기를 호흡하지만, 공기는 여전히 충만하다. 수백만 종류의 나무들이 땅에서 양분을 빨아들이지만, 땅은 여전히 비옥하고 영양이 충만하다. 사람이 손으로 땅을 경작하면서 이 땅은 더욱 비옥해지고 풍성한 열매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도 다 여호와의 것이다. 황금 들판과 거기 있는 곡식, 이 땅과 거기 있는 모든 놀라운 것들이 모두 여호와의 것이다. 천년왕국이 이르면 이 땅은 더욱 이상적인 세상이 되고, 땅은 더욱 충만해질 것이다. 그때에도 이 땅은 여호와의 것이며, 거기 충만한 것들도 모두 하나님의 것이다.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 "세계"라는 단어는 생물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서, 여호와의 주권이 인정되는 곳을 가리킨다.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새가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그분이 가장 귀하게 창조하신 사람이 그분께 불순종할 수 없다. 여호와는 온 세상의 왕이시다. 모든 나라들은 그분의 통치 아래 있다. 나라의 주권자들, 왕들과 황제들이라도 모두 그분의 종에 불과하다. 사람은 그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의 몸에 속한 입술, 가슴, 또는 육체의 어떤 부분이라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주인이 되신다. 특히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사탄에게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로, 그리고 그분의 구속으로 인해 여호와의 특별한 소유가 되었다. 

바울은 이 구절을 두 번이나 인용하면서, 어떤 음식도 정결한 것이며, 어떤 것도 거짓 우상의 소유가 될 수 없다고 가르쳤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자연에 속한 어떤 것도 부정하다고 버려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며, 세상에서 나온 음식도 내 아버지의 것으로서 거룩하게 된 것이며, 무엇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시편 기자는 2절에서 왜 이 세계가 하나님께 속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바다에서 땅이 나오게 하시고 마른 땅이 되게 하신 분이 곧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지금이라도 노아의 시대처럼 모든 땅을 바다에 잠기게 하실 수도 있다. 전능자의 명령으로 이 땅을 계속해서 지키지 않으시면 이 땅은 모두 바다에 삼키운 바 되고 말 것이다.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여호와께서 대대로 이 세계의 기초를 세우시고, 보존하시고, 붙드시므로 세상은 여호와의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신다는 것은 이 세상의 소유권이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확증하는 두 가지 도장과 같다. 집의 기초를 세우고 건물을 짓고, 보존하는 자에게 그 집의 소유권이 있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다. 이 지구상의 것들이 얼마나 취약한 기초 위에 세워졌는지 살펴보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을 "바다 위," 그리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 성도들은 또 다른 세상을 바라보고, 더 확실하고 안전한 기초 위에 세워진 세상을 소망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이 세상을 신뢰하는 자는 바다 위에 건설하는 자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소망을 반석이 되신 주님께 두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는 변치 않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서 안식을 누리고, 신실하신 구세주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오! 너희 세상 사람들은 너희들의 재물을 의지하고 너희들의 나라를 의지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바다 위에, 그리고 강들 위에 세워진 것들이다. 이것들은 기초가 약한 것이다. 이 기초는 언제라도 물에 녹아 버릴 수 있는 것이다! 모래 위에 세워진 것이라도 위험하기 짝이 없거늘, 바다 위에 건설되었다면 무엇을 더 말할 수 있겠는가? 


3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5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셀라)


이 구절에서 우리는 참된 이스라엘이 어떤 사람인지 그 특성을 볼 수 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궁전에서 하나님을 섬길 신하는 인종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성품으로 구분된다. 그들은 유대인만도 아니고, 이방인만도 아니며, 어떤 특정한 민족으로만 구성된 것도 아니다. 그들은 우리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서 거할 수 있도록 성결하게 구별된 사람들이다.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피조물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산에 올라야 한다. 그 높은 산에 오를 자가 누구인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은 영광스러운 하나님을 뵈옵기 위한 것이다. 누가 영광스러운 왕을 눈으로 뵈옵고, 그분의 궁정에 거할 수 있겠는가? 그분은 하늘의 궁정에서 가장 영광스럽게 통치하신다. 누가 존귀하신 왕의 앞에 나타나도록 허락을 받겠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창조하셨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는 것은 아니다. 높은 곳에서 여호와와 함께 거할 자들은 특별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나누기를 바랄 것이며, 하나님은 이들이 소원하는 것들을 들어주실 것이다.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누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에 오를 수 있는가? 시편 기자는 이 질문을 다른 형태로 만들어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라고 물었다. 그분은 악인을 던져 심판하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누가 그분의 집에 거할 수 있겠는가? 거룩하신 분을 바라볼 수 있는 자는 누구이며, 그 영광의 불꽃을 대하고 그분과 함께 거할 자는 누구인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결코 하나님과 영적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만이 하나님을 뵈올 수 있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질문은 우리 모두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을 얻고 평안을 누리기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 보자:"여호와여, 내가 이런 사람입니까?"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사람이 거룩하게 산다는 것은 은혜를 받았다는 귀한 표증이 된다. 빌라도처럼 물에 손을 씻는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많은 성도들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왜곡해서 해석한다. 그래서 그들은 선행을 말하는 자들을 경멸한다.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만일 선행을 경멸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마지막 심판날에 영원한 멸시를 받게 될 것이다. 매일 매일의 삶에서 부정과 불의와 폭력과 압제로부터 자유하지 못하면서, 내적 체험에 대해 말하며 수다를 떨어 보아야 이것은 쓸데 없는 일이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자는 먼저 '깨끗한 손'을 가져야 한다. 어떤 왕이 그의 신하로 하여금 더러운 손으로 그를 섬기고 식탁을 준비하도록 허락하겠는가? 종교 의식에서, 부정한 자들은 손으로 만든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도덕적으로 더러워진 자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영적 교제를 나누도록 허락을 받겠는가? 우리의 손이 더럽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에 손을 씻자. 그리고 깨끗한 손을 들고 하나님께 기도하자. 


"마음이 청결하며." 손이 깨끗하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깨끗한 손'은 '청결한 마음'과 함께 있어야 한다. 참된 종교는 마음의 문제를 중요시한다. 우리는 그릇의 겉을 씻고서 깨끗하다고 자랑하며 우쭐해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릇의 내면이 더럽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와 같이 우리의 마음이 더럽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우리 전체가 더러운 것이다. 우리의 손보다 우리의 마음이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의 손이 잘려도 우리는 살아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살 수 없다. 우리의 생명은 내면의 특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내면의 순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우리의 손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에도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결코 하나님을 뵈올 수 없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성결케 하시고 힘을 주셔서, 우리가 죄를 미워하고 거룩함을 사랑하게 되기를 간구한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다. 다른 모든 사람들은 영적 창녀일 뿐이다. 마음이 돌같이 굳은 자들은 영적인 눈이 돌처럼 어두운 자들이다. 마음에 있는 오물은 우리의 영적 눈에 먼지를 끼게 한다.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사람의 영혼은 이 땅의 쾌락을 야비하게 즐겨서는 안 된다. 하늘로서 난 자는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즐기고 기뻐하는 것이 있다. 세상 사람들은 육적인 쾌락을 즐기며 기뻐하지만, 이것은 허탄한 것에 불과한 것들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더 본질적인 것을 좋아한다. 여호사밧처럼 그들은 여호와의 도를 지킨다. 알곡이 아니라 껍데기로 만족하는 자들은 돼지와 같은 자들이다. 우리가 이 세상의 품에 안겨 젖을 빨아먹는다면, 그것은 스스로 이 세상에 속한 자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 세상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 주는 상을 받고 이생에서 분깃을 얻는 자이다. 다른 기쁨을 도무지 알지 못하는 그대여, 이 세상의 것으로 만족할 수 있나 보라.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성도들은 명예로운 자들이다. 성도들이 하는 말은 그 자체가 서원이나 맹세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성도들의 단순한 말은 세상 사람들이 스무 번이나 맹세하며 하는 말처럼 신실하고 믿을 만한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그의 직업이 무엇이든, 그가 무엇을 행하든 간에 거짓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자들과는 아무 상관도 없으시고, 단지 불못에 던지실 뿐이기 때문이다.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마귀의 자식이며, 그의 아비의 집으로 보내심을 받을 것이다. 거짓 선서, 사기, 비방, 거짓말, 이 모든 것들은 불의한 자들의 모임에 적합한 것들이고, 참된 성도들은 이것을 혐오한다. 거짓말을 미워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실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겠는가? 


5절.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3, 4절에 기록된 내용을 보고서 내적, 외적으로 거룩한 자들이 그들의 행위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5절에서 보는 것과 같이 성도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은혜로 살아가는 성도들은 위대한 왕께서 값없이 사랑으로 입혀 주신 거룩한 옷을 입고 살아간다. 진실된 성도들은 돈이나 값을 주고 산 의복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결혼 예복을 입는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성도들은 구원을 받아야 한다. 즉 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받고, 또한 "복"을 받는데, 이는 그들의 구세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는 자로서가 아니라 은혜를 받는 자로서 여호와의 산에 오른다. 그들이 입는 의복은 자신이 행한 선행의 옷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께로서 받은 의의 옷이다. 거룩하게 사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선물로 받는다. 그러나 이것도 새 언약에서 받는 축복이며,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우리가 선행을 할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먼저 선행을 하게 해 주시고, 이어서 그 선행에 대한 상을 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시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모순되는 말이 아니다. 거룩함과 은혜는 모두 하나님께서 값없이 거저 주시는 자비로운 선물이다. 


6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이 사람들은 중생한 자들이다. 이들은 은혜의 족보를 따른 자들이며, 아브라함의 참된 후손이다. 이들은 여호와를 "찾는" 사람들이다. 여호와를 찾는 자는 거룩하고 성결케 된다. 하나님의 얼굴과 은혜를 구하고, 그분과 영적 교제를 소망하는 자는 자신을 성결하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더욱 확실하게 보기 위해서 영적 갈증과 배고픔을 느껴야 한다. 이러한 자들은 자신의 더러움을 씻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한다. 차를 타고 가면서 차창 밖으로 친구를 바라보기 원하는 자들은, 창문을 깨끗이 닦아 친구를 보지 못하고 지나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진정 깨어 있는 영혼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여호와를 간절히 찾고, 이러한 사람들은 흔치 않기에 그들만으로도 한 족속을 형성하게 된다.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멸시를 받되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다. 

위의 3-6절은 유대인들의 헛된 자만심을 깨뜨린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만을 특별히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거룩하시기에 오직 거룩한 자들만 그분 앞에 나타나도록 허락하신다. 이 구절을 읽는 자들은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셀라." 이제 하프를 들고 목소리를 높여 노래하라. 더 아름다운 노래가 앞으로 나타난다. 이 노래는 우리가 사랑하는 주님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7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8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9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10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이 세번째 단락의 마지막 구절들, 7-10절은 위에서 말한 조건을 모두 갖추어 거룩한 시온 산에 스스로 올라가신 분을 묘사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산에 오르실 수 있었다. 그분은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청결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믿음으로 그분의 형상을 닮아 간다면, 우리 역시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이 구절에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승천을 묘사하는 내용을 볼 수 있다. 그분은 감람 산에서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위로 들림을 받으셨다. 구름이 그분을 영접하고 천사들이 그분을 호위하여 하늘문에 이르렀다. 

이 구절은 영원한 성전의 문을 의인화하여 노래를 부른 것이다.


보라, 그분의 승리의 수레가 기다린다

천사들도 엄숙히 노래를 부른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너희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스러운 문들도 지극히 영광스러운 왕을 맞이하기에는 비천한 것이기에, 시편 기자는 문들을 향해서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라고 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위대하신 왕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해야 한다. 가장 높은 하늘이라도 "영광의 왕"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특별하게 단장해야 한다. 십자가에 달리시고 무덤에 장사지낸 바 되었던 분, 그분이 이제는 새 예루살렘의 문을 지나 달리신다. 진주문은 장엄하고 영원한 것이지만, 그분에게 비하면 초라하고 비천한 것이다. 그분 앞에서는 하늘도 초라하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8절. "영광의 왕이 뉘시뇨." 문을 지키는 자들이 노랫소리를 듣고서, "영광의 왕이 뉘시뇨?"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이 질문을 대하면서 영원에 대한 묵상을 해야 한다. 그분은 누구신가? 그분은 어떤 특성과 성품을 가지셨으며, 그분의 직위와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그분의 족보는 어떠한가? 그분의 서열은 어떠하며, 그분은 어느 족속에 속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뒤에 나타난다.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마치 강렬한 음악 소리와 함께 이 대답이 나오는 듯하다. 우리는 예수께서 싸우신 전투를 통해 그분의 능력을 안다. 그분은 죄와 사망과 지옥에 대해 승리하셨다. 그분이 잡아오시는 포로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분께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마음을 다해 그분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능하신 분이시여, 당신은 모든 왕의 왕이시고, 또 모든 주의 주시니 면류관을 쓰소서. 


9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편 기자는 왕을 맞이하기 위해 문을 활짝 열 것을 반복해서 표현했다. 이처럼 반복해서 표현함으로써 깊고 간절한 감정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 표현에도 힘이 있다. 동양에서는 손님을 환영할 때 문을 아예 돌쩌귀에서 떼어 놓기도 한다. 어떤 문들은 위 아래로 움직이는 격자문처럼 위 아래로 움직이기도 하고, 위로부터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문을 여는 모습이 문자 그대로 머리를 드는 것과 같다. 이 모습에는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또한 우리 주님께서 승천하셨을 때 하늘문이 얼마나 넓게 열렸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소서! 그 이후로, 이 문은 아직도 닫혀지지 않았다. 하늘의 열린 문은 가장 연약한 성도들도 들어오라고 부른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당신은 "나는 손이 깨끗하지 못하고, 마음도 순결하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려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그분은 이미 거룩한 산에 오르셨다. 그리스도는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의 선구자로서 먼저 들어가신 것이다. 그분의 발걸음을 따르라. 그분이 행하시고 이루어 놓으신 것을 의지하라. 그분은 개선 장군처럼 하늘에 오르셨고, 당신도 그분을 신뢰하면 하늘에 오를 수 있다. 당신은 "하지만 어떻게 여기 기록된 성품을 가질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이것도 선물로 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 안에 새 마음과 옳은 심령을 창조하실 것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도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 믿음 안에 모든 덕이 포장되어 있다.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보혈의 샘 곁에 서는 것이다. 그곳에서 씻으면 손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순결해지며,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영혼과 진실된 혀를 선물로 주신다. 


10절.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셀라)." 마지막 끝맺는 구절은 말할 수 없이 장엄하다. 만군의 여호와, 사람들과 천사들의 주님, 온 우주의 주님, 세상의 주님, 그분이 영광의 왕이시다. 참된 하나님께 참된 영광이 있다. 다른 모든 영광은 사라지는 것들이며, 잠시 동안 겉치장을 하고 허세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승천하신 구세주는 온 우주의 머리시고 면류관이시며, 영광의 왕이라고 선포되었다. 시편 기자는 우리의 임마누엘을 가장 엄숙한 곡조로 노래한다. 나사렛 예수,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주해


시 24편 전체. 이 시는 찬양대가 둘로 나뉘어서 교송하도록 기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성 예루살렘을 하늘의 모형으로 간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생각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데, 이 시편에서도 나타난다. 장막은 여호와의 임재가 있는 곳이다. 장막은 그분의 궁전이고, 언약궤는 그분의 보좌와 같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이 시를 읽으면, 이 시의 구조가 아름답고 웅장하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교송을 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마 왕 자신이 영장으로서 역할을 다했겠지만, 영장은 다음의 문장을 엄숙하고 낭랑한 목소리로 암송하면서 교송을 시작했을 것이다.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성가대는 이 노래를 이어받아 왕이 암송했던 구절과 같은 구절을 화음을 잘 맞추어서 노래했을 것이다. 이어서 여러 가지 악기로 노래하고, 성가대의 모든 사람들이 악기에 맞추어 높은 소리로 하늘을 향해 시편의 내용을 노래하며 선포했을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이 예배 의식에 참여했을 것이라고 믿는 이유가 있다. 성경에는 "다윗과 이스라엘 온 무리는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주악하니라"(대상 13:8). 이어서 성가대는 둘로 나뉘어서 교송을 하다가 마지막에는 다시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끝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온 산은 그 위치상 가까이 오기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행진이 시온 산 밑에 도달하거나, 시온 산이 보이는 곳에 도달하기까지 이 부분을 계속해서 노래했을 것이다. 이때에 왕은 다시 앞으로 나서서 엄숙하고 간절한 소리로 이렇게 노래했을 것이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여기에 첫번째 성가대가 응답을 할 것이다.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두번째 성가대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할 것이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이 부분도 행진이 성문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되었을 시온 산은 그 위치상 가까이 오기까지는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성문에 도달하면 왕은 다시 앞으로 나서서 장엄하고 높은 목소리로 노래할 것이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성가대는 이 부분을 반복해서 교송했을 것이다. 

성문 위 높은 곳에서 성문을 지키는 책임자가 물을 것이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여기에 첫번째 성가대가 응답한다.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두번째 성가대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장엄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이제 성가대는 악기를 연주하고, 장막뜰에 나아가기까지 이 노래를 계속했을 것이다. 여기에 도착하면 왕이 다시 노래를 시작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왕의 말에 이어서 노래가 절정에 이른다. 악기를 연주하고, 성가대가 노래하고, 백성들은 외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존 키토, Daily Bible Illustrations. 


시 24편 전체. 영광의 주께서 오심, 그분의 백성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수준 높은 요구, 그분의 도착을 준비할 필요성, 이런 것들이 이 시의 주제가 되어 있다. -헹스텐버그. 


시 24편 전체. 유대인들은 일주일 동안 예배를 드리며, 매일 다음과 같이 다른 시편을 읽었다고 랍비들은 말한다. 


시 24편-첫째 요일(일요일, 주일)

시 48편-둘째 요일(월요일)

시 82편-셋째 요일(화요일)

시 94편-넷째 요일(수요일)

시 81편-다섯째 요일(목요일)

시 93편-여섯째 요일(금요일)

시 92편-유대 안식일(토요일)


그렇다면 이 시는 우리의 주일에 부르도록 되어 있으며, 메시아의 부활과 그분이 하늘로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보좌에서 대제사장으로 일하시고, 그곳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축복과 자비를 베푸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을 기념하기 위한 시이다. -라일랜드. 


시 24편 전체. 애국가와 같은 찬양의 시로서, 예루살렘의 성문을 열고서 언약궤가 들어올 때에 부른 노래이다. 또한 정결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와 함께 장막뜰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시는 다윗의 시로서 다음과 같이 구분해서 종교 의식과 함께 낭송되었다. 1, 2절-성가대. 3절-첫번째 소리. 4, 5절-두번째 소리. 6절-성가대. 7절-언약궤를 따르는 자들의 합창. 8절-성문 안에서 나는 소리. 8절-언약궤를 따르는 제사장들의 합창. 9절-언약궤와 함께하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합창. 10절-성문 안에서 나는 소리. 10절-장엄한 대합창. -마리 안네 스힘멜펜닝크(Mary Anne Schimmelpenninck, The Psalms, with Prefatory Titles, etc., from the Port Royal Authors, 1825). 


시 24편 전체. 다른 사람들이 이 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하늘의 문 이편에서 이처럼 천국을 노래하고, 이처럼 엄숙하고 장엄하며 위대한 시는 보거나 들어 보지 못했다. -패트릭 딜레니(Patrick Delany, D.D., 1686-1768).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것들은 모두 우리 주님의 것이다. 주님은 "만주의 주"(계 19:16)이시다. 주님께서 이것들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근거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마 28:18)를 주셨다.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것은 무엇이나 아들의 것이다(요 16:15). 아들은 "만유의 후사"(히 1:2)가 되셨다. 둘째, 그리스도는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요 1:3). 만물을 창조하신 그분은 또한 만물을 말씀으로 붙드신다(히 1:3). 그분은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 바울은 이것을 요약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여기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이 있다. (1) 그리스도는 "영광의 왕"이시며, "만군의 여호와"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은 여호와시고,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고, 돌들을 명하여서도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게 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전능하시다는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이며, 땅의 기초를 세우셨다는 것도 그분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증거한다.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렘 10: 11). (2)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것이라는 사실에서, 교회는 특정한 지역에 국한되거나 한 사람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느 지역이든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용납하신다.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행 10:35). -존 보이스.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이 시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보다 하나님과 더 친근하고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보존하시고, 그분의 나라는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로서 종족에 따라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 -칼빈.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땅은 창조주 그리스도의 것이다(2절, 요 1:1, 2). 그리스도는 부활하셨기에 이 세상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신다(마 28:18). 또한 영광스럽게 승천하신 그분은 이 세상의 왕으로서 다스리신다. 이 시는 시 8편과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크리스토퍼 워즈워스. 


1절.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크리소스톰은 에우독시아(Eudoxia) 황후 아래서 박해를 받는 동안 그의 친구 키리아쿠스(Cyriacus)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 때마다 어떻게 자신을 무장했는지 설명했다. 


황후가 나를 추방할까?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중에 거하는 자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내 물건을 다 압수할까? 

"내가 적신으로 나왔으니 적신으로 돌아갈지라."

나를 돌로 쳐 죽일까? 

스데반도 돌로 맞아 죽었다. 

내 목을 자를까? 

세례 요한도 목이 잘려 죽었다.


안식하면서 살고, 안식하는 가운데 죽으려면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비가 오는 날을 대비하여 무엇인가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약속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받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것을 베풀어야 한다. 그리하여 악한 날이 올 것을 대비하여 좋은 일들을 쌓아 두어야 한다. -존 스펜서(John Spencer).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다윗이 젊은 시절에 베들레헴의 비옥한 땅에서 양을 치는 동안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했다. 그래서 그는 깨달음을 얻었고, 밤이 하는 노래를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빛나는 별들이 합창하며, 그들의 합창곡이 땅에 울려퍼지고, 그들의 감미로운 소리가 온 땅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빛은 영원하신 분의 얼굴"이라고 해가 말했다. "나는 그분의 옷자락에 불과해요"라고 장밋빛 석양은 말하는 듯했다. 구름이 모여서 "우리는 그분의 장막입니다"라고 했다. 구름 속에 있는 물과 울려퍼지는 천둥 소리는 목소리를 합하여 노래했다:"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뇌성을 발하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시 29:3). 

"그분은 내 날개를 타고 다니십니다"라고 바람이 속삭이고, 살랑이는 미풍은 "나는 하나님의 숨결이에요"라고 했다. 메마른 땅은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찬양으로 가득한데, 오직 우리만 슬픔과 적막 가운데 있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떨어지는 이슬 방울은 "내가 네게 물을 주지. 넌 신선함을 되찾아 기뻐하고, 네 어린 것들은 싱그러운 장미처럼 피어날 거야"라고 했다. 파릇파릇한 초원은 "우리는 기쁨으로 다시 자랍니다"라고 했다. 알맹이가 충실하게 여문 옥수수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주리지 않도록 보내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랍니다"라고 노래했다. 

"참 잘 되었구나. 축하한다"라고 달이 말하자. "나도 축하해"라고 별이 응답했다. 그러자 땅에서는 메뚜기가 날며 "나도 축하해. 그분이 진주와 같은 이슬을 내려 주시고 내게 복을 주시는걸"이라고 했다. 암사슴은 "그분이 내 갈증을 풀어 주셨어요"라고 했고, 수사슴도 그를 따라 "나도 새 힘을 얻었는걸"이라고 했다. 숲속의 짐승들은 "그분이 우리에게 먹을 것을 공급해 주십니다"고 했고, 양은 "그분이 내 새끼들에게 옷을 입히셨어요"라고 감사드렸다. 

"그분은 내가 홀로 있을 때에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주셨어요"라고 참새가 말하자, 바위 위에 있던 야생 염소도 "내가 새끼를 날 때에도 그분은 내 소리를 듣고 도와주셨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비둘기, 종달새, 그리고 다른 새들이 함께 노래하며 "그분은 우리에게 보금자리를 주십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제단에서도 거하고, 그분의 날개 아래서 잠을 자기도 한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밤은 "그분은 평화도 주셨지요"라고 했고, 이 소리는 메아리를 치며 멀리 멀리 울려퍼지고, 새벽이 되어 수탉은 이렇게 기쁨으로 외쳤다:"문을 열어라. 세상의 대문을 활짝 열어라! 영광의 왕이 가까이 오신다. 깨어라! 사람들아, 일어나라. 만주의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리라. 영광의 왕이 오신다." 

다시 태양이 떠오르고, 다윗은 아름답고 황홀한 꿈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그가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의 합창곡이 그의 영혼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하프를 켜면서 그 밤에 들었던 합창을 회상했다. -콕스(F. A. Cox, D.D., LL.D., Biblical Antiquities, 탈무드에 나오는 Legends of the Songs of the Night에서 인용한 것, 1852). 


1절. "땅과 거기 충만한 것······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 -인그램 코빈(Ingram Cobbin, 1839).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땅을 바다 위에 세우시고, 강들 위에 건설하셨다는 것은 진정 놀라운 일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그의 종 욥에게 이렇게 물었다:"그 주초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욥 38:6). 하나님은 바다에 물을 채우시되, 물을 족쇄에 채우듯 채우신다.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욥 38:11). "저가 바닷물을 모아 무더기같이 쌓으시며 깊은 물을 곳간에 두시도다"(시 33: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바닷물 한 방울도 땅으로 흘러오지 못한다. -존 보이스. 


2절.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이 구절은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 기사 중에서 마른 땅이 물에서 솟아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쓴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 근거하여 지구의 표면에 대한 어떤 이론을 펼치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욥은 "땅을 공간에 다시며"(욥 26:7)라고 했다. 이러한 표현들은 과학적인 표현이 아니라 분명 시적인 표현인 것이다. -스튜어트 퍼론. 


2절. "바다 위에······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이 구절에서 "위에"라고 번역된 두 단어는 모두 히브리어로 "알"(l[)을 번역한 것이다. 이 단어는 "위에"라는 뜻이 있으며, 이렇게 해석하면 이 구절은 창세기 1:9, 10에서 하나님께서 뭍이 바다 가운데서 드러나게 하시고, 강과 바다가 뭍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경계를 세워 두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 이 단어는 또한 "곁에"라는 뜻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하나님은 지구를 물로 둘러싸인 곳에 창조하셨다는 것이 된다. 이 물이 한 번만 넘쳐도 지구를 물에 잠기게 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게 하신다. 이것은 이 땅과 거기 충만한 것과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벤야민 바이스(Benjamin Weiss). 


3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만일 깨끗하고 청결한 자, 허영과 거짓이 없는 자만이 산에 오른다면 누가 오를 것인가는 자명해진다. 이런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에, 결국은 아무도 오르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깨끗하지 못하다. 또한 우리는 속성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순결하지 못하다. 우리가 아무리 무겁다고 해도 헛된 것보다 더 가볍고, 우리 중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라도 속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러나 여호와의 산에 오르실 분이 오직 한 분이 있다. 그분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시고, 높은 곳으로 승천하신 분이다. 그분은 깨끗하고 순결하신 분이며,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그러나 이렇게 살았던 자는 오직 그분 외에는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나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다.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신다. 그러므로 만일 머리가 죽음에서 일어나고 승천하셨다면, 몸의 각 지체들은 각각 때가 되면 그분을 따르게 될 것이다. -마크 프랭크. 


3절. "여호와의 산." 이 산은 영광의 산이다. 그분이 계신 거룩한 장소는 바로 영광의 장소이며 영광의 보좌이다. 이 산은 영광의 산이며, 바위가 많고 가파르기에 오르기가 어렵다. 쉽고 넓은 길은 여호와의 산으로 인도하는 길이 아니고, 다른 곳으로 인도한다(마 7:13).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길은 좁은 길이다(마 7:14). 이 길은 거칠고 험난하다. 그리스도의 신실한 종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전투를 하는 것과 같고, 경주를 하는 것과 같으며, 지속적으로 전쟁을 하는 것이고, 배고픔과 추위와 헐벗음과 목마름과 옥에 갇히는 것과 위험과 멸시와 책망과 박해와 세상의 미움과 친구들의 무시와 그 외에도 우리가 참기 어려운 것들이 모두 이 길에 있다. 이런 어려움을 만나면서 투쟁하는 일이 없다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없다. 죄를 버리고 나쁜 친구들을 떠나고, 탐욕을 버리고, 덕스러운 길을 걷지 않는다면, 여호와의 산에 오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에 오를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거해야 한다. 지속적으로 진실되고 경건한 삶을 산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살려면 더욱 많은 어려움을 견뎌야 할 것이다. -마크 프랭크. 


3, 4절. 이 시는 질문으로 시작하여, 질문에 대한 만족할 만한 대답을 제시하고, 이어서 적절하고 열광적인 돈호법으로 끝을 맺는다. 질문은 다음과 같다:"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3절). 질문에 대한 답은 다음과 같다:"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4절). 이런 사람은 "여호와께 복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라고 했다(5절). 사람은 온전한 의로움을 얻을 수 없으나, 여호와께서는 이 의를 주신다. 이 의는 성도들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이 받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의를 주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행복에 대한 소망을 품을 수 있고, 여호와의 산에 있는 즐거움의 집에 들어갈 것을 허락해 주시도록 간구할 수 있게 된다. 

이어서 돈호법이 시작된다. 시편 기자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도들과 함께 하늘 나라에 승천하는 장면을 바라본다. 그는 주님께서 구속받은 무리들의 머리로서 그들을 영광과 즐거움을 누리는 곳으로 인도하는 모습을 본다. 이러한 장면에 걸맞게, 그는 가장 아름다운 시로 하늘 나라의 문을 부르며 말한다:"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7절). 그리스도는 은혜를 받은 자들, 의로움을 받은 자들과 함께 하늘 나라에 승리의 입성을 하실 것이다. 그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간 후에는 결코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제임스 허비. 


3, 4절.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노래를 잘한다거나, 시편을 잘 암송한다거나, 금식을 많이 한다거나, 자신의 것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이 나누어 준다거나, 설교를 잘 한다거나, 친절하고 조용히 산다거나, 과학적인 지식이 많다거나, 언어를 많이 안다거나, 선행을 많이 하여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고 하여 여호와의 산에 오르는 것은 아니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는 오직 안과 밖으로 모두 순결한 자들이다. -마르틴 루터.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떤 사람이 도덕적인 사람인지 알겠는가? 하나님의 율법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가 도덕적인 사람이다. 그는 무엇을 행하든지 하나님을 생각하고 행한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의 변하는 관습이나 편리함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항상 일정하고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 이런 사람을 법정에 세워 증언하게 하면 그는 결코 거짓 증거를 하지 않는다. 액수나 수량이 정해지지 않은 보화를 그에게 맡겨도 그는 도적질하지 않는다. 그는 마음속에 진리와 정직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알고서 살아가기 때문에 그에게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맡겨도 안전할 것이다. 어두운 밤이라도 마치 밝은 대낮처럼 그를 믿을 수 있다. 그의 명성 때문이 아니라, 그가 도덕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를 감시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의 마음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에벤에셀 포터(Ebenezer Porter, D.D., 1834).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이런 조건은 아무도 만족시킬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이 조건을 만족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깨끗한 손은 덕스러운 일을 행하고, 다른 사람을 치료한다. 이 손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손이며 사람을 축복하는 손이다. 이 손은 온 세상을 정결케 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못박힌 손이다. -아이작 윌리엄스. 


4절.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아리우스 몬타누스(Arius Montanus)는 이 구절을 "그의 영혼을 헛되이 받지 아니하며"라고 해석했다. 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을 헛되이 받아, 그저 돼지처럼 살아가는지! 어떤 철학자는 이런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은 단지 육체가 썩어 냄새나지 않도록 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는다고 했다. 귀한 영혼을 받아 헛되이 사용하는 자를 생각하면 정말 슬픈 일이다. -조지 스윈녹(George Swinnock). 


4절.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사람이 거짓 맹세를 하면 이것은 그의 혀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고, 지옥의 썩은 대화를 나누는 것이며, 하나님께 불명예를 돌리는 일이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이다. 거짓 맹세는 다른 악한 것들보다도 가장 해를 끼치는 것으로서 여기에서 악한 행동의 대표로 기록되었다. 페랄두스(Peraldus)는 혀로 범할 수 있는 사백 이십여 개의 죄를 세어 보았다. 이것들은 모두 새 예루살렘의 시민들이 피하는 것이며, 마귀가 군침을 흘리는 것이고, 순결한 입술에는 올릴 수 없는 것들이다. -존 트랩. 


4절.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산에 오를 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네 가지 요건이 나타나 있다. (1) 악한 행동을 금지한다:"곧 손이 깨끗하며." (2) 악한 생각을 버린다:"마음이 청결하며." (3) 그가 이 세상에서 행해야 할 의무를 다한다:"뜻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며." 이 말은 불가타 역본에서 번역한 것처럼 "그의 영혼을 헛되이 받지 않은 자"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4) 그가 하나님께 드린 서원을 기억한다:"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이런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분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 그래서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음의 성구로 응답할 수 있다:"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요 3:13). 그리스도에 대해 베르나르는 이렇게 말했다:"이런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적합하다. 그분은 하늘의 산으로 오르는 길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또한 그 길을 올라가야 하는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다." -닐(로리누스와 베르나르의 글을 인용함). 


4절.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천국은 말을 그럴 듯하게 하고 좋은 직장을 가졌다고 해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행함이 없이 믿음을 자랑하던 자가 모두 넘어지는 그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은 바로설 것이다. 말을 그럴 듯하게 하는 사람일수록 행동은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말하는 대로 거룩한 삶을 살지 않는 자들은 신앙도 헛된 것이다. -윌리엄 거놀. 


5절.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이 말은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시 21:6)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여호와는 사람을 축복하시는 분이다. 이 땅의 모든 백성이 그분에게서 복을 받을 것이다. 그분은 산에 오르셔서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하시며 복을 받도록 가르치셨고, 이제는 하늘의 시온 산에서 면류관을 쓰셨다. 우리는 여호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에게서 복을 받는다(엡 1:3). -아이작 윌리엄스. 


5절.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에세이(Esay)는 우리 자신의 의는 "더러운 의복"과 같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이 두 가지 비유는 우리 주위에서 보는 것들이지만, 이것들은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의는 불쾌한 것이다. 그 의복이 얼마나 더러운 것인지, 그 배설물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말하고 싶지도 않다. 우리의 의가 이러할진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의를 찾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라고 했고, 바울은 이 의를 "의의 선물"이라고 했다(롬 5:17; 빌 3:8, 9). 그러므로 우리는 선물로 받을 의를 추구해야 한다. 누구에게서 이 선물을 받을 것인가? 욥도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욥 4:18; 15:15; 25:5). 우리는 하늘이나 별들에게서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 이것들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성자들에게서도 얻을 수 없다. 그들도 모두 죄인들이기 때문이다. 천사들에게서도 얻을 수 없다. 그들이 의를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향해야 하겠는가? 의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여호와의 이름을 "여호와 우리의 의"(렘 23:6)라고 했다. -랜슬롯 앤드루즈. 


6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찾아야 한다.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다. 천국에 들어오는 자들은 모두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다. 하늘에는 하나님을 찾고 또한 그분을 기뻐하는 자들이 모여 있다. 이 땅에서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찾는다. 우리는 행복을 추구한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항상 무엇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 바라고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고, 그분의 임재를 바라야 한다······하나님의 임재를 바란다는 말은 우리가 무엇인가 도움이 필요할 때에 그분의 도우심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곤란에 처했을 때에 그분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은혜로운 얼굴로 대하신다. 자녀들이 갈 길을 몰라 방황할 때면 그분은 빛으로 임재하셔서 그들을 인도하신다. 연약함에 처했을 때는 그분의 능력을 보이시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는 은혜와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을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힘을 주신다. -리처드 십스(Richard Sibbes). 


6절.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이는"이라는 지시대명사를 씀으로써 시편 기자는 모든 사이비 이스라엘 족속들을 제외시켰다. 사이비 이스라엘 족속이란 그들이 받은 육체의 할례와 짐승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신뢰하지만,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을 말한다. 그러나 교회에도 이런 사이비 이스라엘의 수가 급증하고 있다. -존 칼빈. 


6절.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잠언에서는 "얼굴을 구하다"라는 말은 "그의 은혜를 구하다," 또는 "그를 즐거워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잠 7:15; 29:26). 그들은 에서처럼 "땅의 기름짐"(창 27:39)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고서 즐거워하는 자들이 아니다. -앤드류 보나. 


6절. "야곱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족속"을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라고 했다. 여호와를 추구하는 자들은 마치 야곱과 같다는 말이다. 이렇게 비교하는 것이 적합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그들은 참된 이스라엘이기 때문이다(요 1:47; 롬 9:6). 둘째, 야곱이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처럼(창 32:24-30), 그들도 하나님을 뵈옵기 때문이다. 셋째, 야곱이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호 12:4), 그들도 복을 받기 때문이다:"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시 24:5). -존 트랩.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성전이 특별히 대형 건축물이었던 것처럼, 성전의 문도 매우 높고 장엄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라는 표현은 그 장엄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문의 아랫부분은 접히도록 만들어진 반면에, 윗부분은 들리도록 만들어졌다는 것을 가리킨다. -로버트 제이미슨, Paxton's Illustrations of Scripture.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시리아의 바니아스(Banias) 성에는 고대의 문이 남아 있는데, 이 문은 홈에 잘 맞추어서 만들어졌고, 스크린을 올리듯이 위로 올리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고대의 유물을 상상해 보면 이 구절을 쉽게 이해하게 될 것이다. -존 개즈비. 


7절. "머리를 들지어다."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 장군을 환영하기 위해 아름답게 장식한 반원형 아치를 나타내는 구절이다. -조반니 디오다티. 


7절.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이 요한계시록의 말씀처럼 우리 마음의 문을 말한다고 해석한다:"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우리는 복음서에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이하는 여러 종류의 접대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집으로는 모셔들이지만 마음에는 모시지 않는다. 바리새인 중에 시몬이 이런 사람이다(눅 7:44). 그는 그리스도에게 입도 맞추지 않았고,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그분을 마음속에 모시지만 집으로는 모시지 않는다. 충성스러운 백부장이 이런 사람이다(마 8:8). 그는 그리스도를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집으로도, 마음속으로도 모시지 않는다. 가다라 지방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주님께 그 지방을 떠나실 것을 간구했다(마 8:34).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집으로도, 그리고 마음속으로도 모셔들인다.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가 이런 사람이다(요 3:15; 눅 10:38). 

이제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우리 마음속에 계시고, 성령께서는 우리의 육체를 성전으로 삼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들이 권고하는 대로 우리의 영혼을 들고 "위엣것"을 생각해야 한다(골 3:2). 우리는 위에 있는 것을 사랑하고, 땅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에 마음이 붙들리지 말고, 하나님의 우편에서 누릴 기쁨을 더욱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첫째 아담의 형상을 가졌던 것처럼, 이제는 하늘에 계시는 두번째 아담의 형상을 닮아야 한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 15:49). 세상 사람들은 마귀처럼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막 1:24)라고 말한다. 욥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즐겨 하지 아니하나이다"(욥 21:14)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분께 찬양을 돌리며 룻이 나오미에게 했던 말로 자신의 신앙을 나타낸다:"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룻 1:16). 

죽음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분리시키지 못한다. 내가 이 육체의 감옥을 벗어나면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잇대가 다윗 왕에게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께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다:"여호와의 사심과 우리 주 왕의 사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무론사생하고 종도 그곳에 있겠나이다"(삼하 15:21). 오 여호와여,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내 마음을 당신께 향하여 당신을 찾나이다. "여호와여 나의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나이다"(시 25:1). 나의 귀를 여시고, 나의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의 구세주, 당신의 아들이 내 마음에 들어와 나와 함께 거하게 하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그분이 나를 부를 때에 내가 그 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분이 문을 두드리실 때에 내가 문을 열게 하소서. 그리하여 당신의 산으로 올라가 당신의 거룩한 곳에 서게 하소서. 당신의 장막에 한두 번 가는 것으로 족하게 생각하게 마시고, 그곳에서 안식하며 거하게 하소서. -존 보이스. 


7절. "영원한 문들." 하늘 나라의 문은 "영원한" 문이다. 이 문이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이고, 또 이 문은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을 위한 문이기 때문이다. -존 보이스.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다윗은 이제 마음문을 열고 하나님을 마음속으로 영접할 시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자신의 마음에,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보라:"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사람의 마음문이 잠겨 있기 때문에, 그리고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깊이 잠들어 있기 때문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왕이 서서 두드리고 그 소리가 아무리 커도 듣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윗은 다시 문을 두드린다:"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죄인들은 왜 이렇게 서두르느냐고 물을 것이다. 서두른다고- 여기 왕께서 네 문 앞에서 기다리고 계시지 않는가? 그분은 보통 왕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왕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다. 네가 문을 속히 연다면, 그분은 너의 마음속으로 거처를 삼고, 너와 함께 거하시고 너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이 말을 듣고서 문을 열지 않고 다시 묻는다. 마치 그분이 친구가 아니라 원수인 것처럼 묻는 것이다:"영광의 왕이 뉘시뇨?" 이에 대해 다윗은 다시 대답한다:"그분은 만군의 여호와시다." 당신이 속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문을 열지 않는다면, 그분은 당신의 집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분이시다.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능하고 강한 군대를 지휘하는 분이시다. 당신이 친구로 삼을 수 있는 분이 누구라는 것을 당신은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속히 열라. 하나님을 원수로 삼지 않고 친구로 삼으려면 속히 문을 열라." 아! 죄인들은 이렇게 부르짖어야 한다. 여호와여, 문이 잠겼습니다. 당신은 열쇠가 있지 않습니까? 내가 문을 열려고 별수를 다 써 보았지만, 자물쇠가 녹슬어 열쇠로 도저히 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이 문짝을 뜯어 내소서. 그리하여 내 안으로 들어와 나와 함께 거하소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여, 들어오소서. 쇠로 만들어진 철문을 부수시고, 빗장을 꺾으시고, 당신의 사랑과 능력으로 들어오소서. 여호와여, 들어오소서. 내가 가진 것은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내 영혼으로 당신이 기뻐하는 영혼이 되게 만드소서! -제임스 제인웨이. 


7절.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그분은 우리에게 영의 소망을 주시고, 육체의 욕정을 가져가셨다. 그분은 이것을 하늘로 가져가시면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온전히 하늘에 인도하실 것을 보증하신 것이다. -터툴리안(Tertullian).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그리스도는 승리자로서 하늘 나라로 가셨다. 그분은 죄와 사탄과 죽음과 지옥, 그리고 그분의 모든 원수들에게 승리를 거두신 것이다. 그분은 그분만을 위해서 원수를 이기신 것이 아니라, 그분의 백성을 위해서 승리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백성들을 승리자로 만드셔서 넉넉히 이기게 하신다. 그분이 원수들에게 승리를 거두신 것처럼, 그분의 백성들도 승리할 것이다. 그분은 이제 구세주로서 하늘에 계신다. 그분이 하늘에서 땅으로 오셨을 때에도 구세주로서 오셨다.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영원한 구원을 얻으시고, 이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구세주로서 계신다.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도 구세주로서 오실 것이다. 그분은 하늘 나라에 가실 때 하나님의 후사로서 가셨다. 나그네로서가 아니라 만물의 후사로서 가신 것이다. 그분은 하늘의 영광과 행복의 후사이시며, 성도들도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이다. -헨리 펜들버리(Henry Pendlebury, 1626-1695). 


7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너희 만민들아 손바닥을 치고 즐거운 소리로 하나님께 외칠지어다······하나님이 즐거이 부르는 중에 올라가심이여 여호와께서 나팔 소리 중에 올라가시도다"(시 47:1, 5). 홍수로 온 세상이 심판을 받았을 때에 물 위에 오랫동안 떠다니던 방주는 마침내 산 위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죄가 없는 요셉은 구덩이에 던져졌다가 마침내 면류관을 받았다. 삼손은 지옥문을 던져 버리고 승리를 거둔 후에 영원한 산으로 올라갔다.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가지고 요단 강을 건너 약속의 땅을 정복했다. 태양은 십 도나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벌레처럼 탄생하고, 양처럼 고난을 받고, 사자처럼 다시 일어선 그분은 이제 독수리처럼 하늘로 올라, 우리도 그분을 따라오라고 격려하신다. 이제 천국에는 사람들이 거하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별들 가운데 걸어다닌다. 이제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왕이 계시고, 교회에는 대제사장이 계시며, 온 세상을 다스리는 분이 계신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심이라······하나님이 열방을 치리하시며 하나님이 그 거룩한 보좌에 앉으셨도다 열방의 방백들이 모임이여······저는 지존하시도다"(시 47:6-9). -The Life of Jesus Christ in Glory. 


7, 8절. "영광의 왕······전쟁에 능한 여호와." 그리스도께서 천국문에 도달하시자 그분을 호위하던 하늘의 천사들이 말하기 시작했다:"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안에 있던 천사들은 그분이 누구신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과 위엄을 찬양하기 위해 다시 말한다:"영광의 왕이 뉘시뇨?" 그러자 천사들이 다시 대답한다:"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그러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열두 문이 저절로 열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는 영들을 데리고 들어가셨다. 오, 내 영혼아! 그리스도께서 이제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에서 기쁨과 위로를 얻으라.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스러운 분이시다. 이 신비스러운 사실을 기억하고 살라.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신 것을 그려 보라. 그러면 당신의 마음에도 영광의 불꽃이 일어나리라. 아! 이 광경은 진실로 장엄한 광경이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아이작 암브로스. 


7, 8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하나님의 살아 있는 성전이며,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을 이미 받은 너희여,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기대하고 기쁨과 소망 가운데 너희 마음의 문을 들지어다. 믿음으로 영원하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영접할지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임하시고, 그분의 사랑과 은혜가 너희 안에 충만히 임하게 하라. 이 영광스러운 왕 예수 그리스도, 세상 사람들이 그분을 멸시하지만 그분께 순종하는 너희는 용기를 얻기 위해서라도 그분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알고 경외심을 품으라.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 그분의 백성들과 교회를 보존하실 수 있는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세상 사람들과 마귀가 너희를 대적하지만, 그분을 신뢰함으로 그들의 방해를 이기고,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라. -조지 애벗(George Abbot, Brief Notes upon the Whole Book of Psalms, 1651). 


7-10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아! 영광의 왕께서 영원한 영광으로 들어가시는데 어느 천사장의 혀로 다 찬양을 드릴 수 있으랴! 지금까지 하늘에는 이처럼 기쁜 때가 없었다. 주께서 나팔 소리와 함께 기쁨으로 승천하신 것이다.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들이 그 같은 하늘의 기쁨을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모든 천사가 저에게 경배할지어다"(히 1:6)라고 하셨다. 이제 그분이 하늘로 승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에게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모든 무릎으로 예수의 이름 앞에 꿇어 경배하게 하셨다. 그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실 때, 사람의 연약한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에 거룩한 천사들이 노래했다면, 이제 온전한 승리를 거두시고 사람을 온전히 구속하신 후 천국으로 돌아오는 그분을 얼마나 성대하게 환영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모형인 다윗이 골리앗을 쳐부수고, 그의 머리를 잘라 예루살렘으로 가져갔을 때에 처녀들이 노래하고 춤을 추며 그를 맞이했다면, 이제 예수께서 사망과 지옥을 이기시고 승리자로서 돌아오셨을 때에 천사들이 그분을 어떻게 맞이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들은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라고 외치며 기뻐하지 않았겠는가? 

그분은 하늘로 떠나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단 7:10). 그들은 모두 이렇게 주님을 찬양할 것이다:"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계 5:12, 13). 그렇다면, 내 영혼아, 너는 어찌하여 하늘의 노래를 함께 부르지 않는가? 내 영혼은 어찌하여 크게 즐거워하지 않는가? 사람이 되셨다가 하늘의 모든 권세보다 더 높임을 받으시고, 천사들과 천사장들의 경배를 받으시며, 무한한 영광과 위엄의 면류관을 쓰고 앉으신 그분을 인하여 왜 즐거워하지 않는가? -조셉 홀(Joseph Hall). 


7-10절. 시 24편은 그리스도께서 천국에 들어가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영국의 왕이 템플 바를 통해서 런던에 들어가려고 할 때 문이 닫혀 있으면, 왕의 앞에 가는 자가 "문을 열어라"고 외친다. 그러면 안에서는 "누구냐?"라고 묻고, 왕의 사자는 "영국의 왕이시다"라고 외친다. 문은 즉시 열리고, 백성들이 즐거이 외치는 가운데 왕은 문을 통해 들어간다. 이것은 고대의 습관인데, 시편에서는 이러한 모습을 언급하는 듯하다. 주님께서는 위로 오르시고, 하늘의 문에 도달하시고, 그분을 호위하던 사자는 문을 통해 들어갈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안에서 천국문을 지키는 자가 묻는다:"영광의 왕이 뉘시뇨?" 그리스도의 사자는 다시 응답한다:"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질문과 응답이 다시 한 번 반복된 다음에 문들은 그 머리를 들고, 영원한 문들이 들린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궁정에 들어가시고, 하늘의 천사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뻐 외친다:"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크리스마스 에반스. 


7-10절.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구세주께서는 승천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다. 그분은 만주의 주가 되셔서 천사들과 권세들이 그분께 굴복하고, 원수들로 그분의 발등상을 삼으셨다. 그분은 하늘에서 날마다 찬송을 받으실 것이다. 그분이 죽음과 부활을 통해 승리하시고 승천하시자, 천국은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천국에 있는 자들은 모두 그분을 송축하고, 그분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만왕의 왕께서 죽음으로 죽음을 폐하시고, 삶과 영생을 가져오신 것을 생각하라. 어두움의 권세를 멸하시고, 그들의 모든 궤계를 물리치셨다. 그분이 승리하시고 천국으로 돌아오셨다! 이 땅에서 그분이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을 때에도 그분은 사람들의 찬송을 받으시며 승리자로서 들어오셨다. 성의 모든 사람들이 소동하여 놀라며 "이는 누구뇨?"라고 물었다. 그리고 백성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마 21:11)라고 했다. 어린아이들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마 21:9)라고 외쳤다. 그분이 천국에 들어가셨을 때는 그 광경이 어떠했겠는가! 모든 성이 소동하며 "이분이 누구뇨?"라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수천의 천사들이 그분을 호위하고, 천천과 만만의 천사들이 그분께 경배하러 오지 않았겠는가! 언약궤가 다윗의 성에 들어가는 것은 이것을 모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앤드류 풀러. 


7-10절. 왜 이 구절에는 같은 내용이 두 번이나 반복되었는가? 왜 영원한 문들에게 머리를 들라고 두 번이나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시편에 담긴 뜻을 다 헤아리지 못한다. 그러나 이 시에서 이처럼 반복된 것은 우리 주님께서 두 번 승천하실 것을 우리 마음속에 새겨 주기 위한 것은 아닐까? 그분은 물론 다시 죽지는 않으실 것이다. 죽음이 다시 그분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를 위한 희생 제물이 되실 필요가 다시는 없다. 그러나 그분이 이 세대의 마지막에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이 세상에 오시면, 다시 올라가셔야 한다. 이 시에서 두번째 영원한 문들에게 문을 열라고 하는 것은 영광의 왕께서 두번째 올라가시는 것을 가리킨다. 

이제 두 번에 걸쳐 반복되는 질문과 응답을 살펴보라:"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라는 같은 질문이 두 번 반복되는데, 첫번째 대답에서는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라고 했다. 그러나 두번째 대답에서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했다.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우편에서 우리를 중보하기 위해 하늘에 승천하실 때에는 "전쟁에 능한 여호와"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을 심판하시고, 선인과 악인을 영원히 구분하신 후 두번째 승천하실 때에는 "만군의 여호와"라고 했다. 

왜 하나님의 이름이 이처럼 바뀌게 되었는가? 이것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다시 올라가시는 목적이 두 번에 걸쳐 각기 다르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분이 첫번째 오실 때는 겸손히, 그리고 혼자 오셨다. 천사들이 그분을 둘러서 있었지만 보이지 않았고, 또한 큰 영광도 없었다. "만민 중에 나와 함께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사 63:3). 그분은 사망과 지옥과 사탄과 홀로 싸우셨다. 그분은 홀로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그분은 또한 사람이 보기에 홀로 하늘로 가셨다. 이처럼 그분은 "전쟁에 능한 여호와"로 나타나셨다. 우리의 원수와 홀로 싸우셔서 승리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이 두번째 오시고 다시 올라가실 때는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실 것이다. 이번에는 그분이 세상에 첫번째 오실 때처럼 혼자 숨어서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군대와 함께 오실 것이다.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유 14절).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마 16:27).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단 7:10). 마리아의 자궁에서 소리 없이 지내시고, 나사렛에서 조용히 사시던 것과는 달리, 그분이 다시 오실 때에는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가 울릴 것이다. 이처럼 그분은 만군의 여호와로서 오시고, 만군의 여호와로서 다시 아버지께로 가실 것이다. 이 땅에서 심판을 베푸신 후에 그분은 다시 영원한 문을 통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자들을 데리고 천국으로 가실 것이다. 그분은 죽은 자들 중에서 부활한 자, 그리고 산 자들 중에서 주님을 믿는 자를 데리고 하늘 나라로 가실 것이기 때문이다. 심판의 날에 주님 곁에 있을 자가 그날 있을 두려운 광경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펴보라.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 17). -존 키블(John Keble, M.A.). 


7-10절. 


그분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좁은 길을 걸으셨다

우리는 그분의 죽음에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값을 보고

승천에서 영생의 증거를 본다

그분은 부활하셨는가? 

열방은 이 말을 들으라, 죽은 자들도 들으라

그분이 부활하셨다! 그분이 부활하셨다!

그분이 사망의 빗장을 깨뜨리셨다

영원한 문들아, 네 머리를 들라!

영광의 왕을 모셔들이라

영광의 왕이 누구시뇨?

죽음의 고통을 맛보고자 

영광의 보좌를 떠나셨던 분이시다

네 머리를 들라, 영원한 문들아!

영광의 왕을 모셔들이라

영광의 왕이 누구시뇨?

모든 인류를 삼키려는 원수를 죽이신 분이시다

영광의 왕, 그분은 사람을 사랑하시고

그 영광으로 하늘을 가득 채우셨다.

-에드워드 영(Edward Young). 


7-10절.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라

영원한 문들아, 왕의 오심을 준비하라

영광의 왕이 오신다!

영광의 왕이 누구시뇨?

지옥을 정복하시고

어두움의 세력을 견고한 사슬로 결박하신 분

영광으로 둘러싸인 분

아버지와 함께 다스리시는 분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무한하신 분이시다!

-제임스 스코트(James Scot). 


8절. "영광의 왕이 뉘시뇨." 그리스도는 두 가지 면에서 "영광의 왕"이시다. (1) 모든 존귀와 영광이 그분께 속했기 때문이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마 6:13).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이런 점에서 그분은 "영광의 주"(고전 2:8)이시다. (2) 그리스도는 우리로 그분의 영광에 참예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주님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약 2:1)라고 부를 수 있다. 만일 만군의 여호와, 전쟁에 능한 여호와께서 영광의 왕이시라면,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분은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사 발등상으로 삼으시고, 사망을 이기시고, 사망을 세운 마귀를 이기시고, 사망의 쏘는 것인 죄도 이기시고, 사망의 감옥인 무덤도 이기시고, 마귀와 사망의 영역인 지옥도 정복하신 분이시다. 그리스도는 바로 이 "영광의 왕"이시다. 그분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던 것처럼, 또한 우리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려고 부활하셨다. 그분은 또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승천하셨는데, 이 땅에서는 은혜를 주시고, 다음 세상에서는 영광을 주신다. 그분이 우리의 "영광의 왕"이 아니시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가 그분의 전투를 할 때에 우리는 그분으로 인하여, 그리고 그분만을 통해서 우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고, 승리자가 되며(고전 15:57), 넉넉히 이기게 된다(롬 8:37). -존 보이스. 


8절. "강하고 능한 여호와." 여호와는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는 데 "강하고 능한" 분이시다. 그분은 또한 사망의 권세를 가진 마귀와 죽음을 정복하는 데에도 "강하고 능한" 분이시다. -아이작 윌리엄스(루돌프의 글을 인용함). 

10절. "만군의 여호와." 히브리말로 "체바오트"(twabx)를 "만군"으로 번역했다. 바울은 이 구절을 인용하여 헬라어로 쓰면서 번역하지 않고 음역하여 사용했다(롬 9:29). "체바오트"는 전쟁에 나가기 위해 정열한 "군대"를 말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한 군대를 말한다. -헨리 에인즈워스. 


힌트


1절. 대지주. 그분의 소유지와 하인들, 그분의 권리. 


1절. 땅은 여호와의 것. (1)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존재들은 무엇인가?우상, 교황, 사람, 마귀 등. (2) 재판을 하라. (3) 재판에 선고를 내리라. (4) 주인의 이름이 정확하면 이 땅이 얼마나 영광스러울 것인가를 보이라. 


1절 하반절.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의 아들도, 하인도, 종들도, 양이나 염소도. 


2절. 하나님은 한 가지 방법으로 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 


2절. 바다 위에 세워진 것. 기초가 흔들리는 이 세상의 것들. 


3절. 매우 중요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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