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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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펄전의 시편강해

시편 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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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주제-이 시에는 단순히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다. 이 시는 아마도 다윗이 작사하고, 다윗이 부르고, 다윗과 관계가 있고, 다윗의 주님을 가리키는 시일 것이다. 시 20편에서 예측하고 기대하던 것이 시 21편에서 실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당일에 받는다면, 해가 지기 전에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후에 하나님의 응답이 있을 것을 기대할 자격이 없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이 시를 "다윗의 승리의 노래"라고 불렀는데, 우리는 "왕의 승리의 노래"라고 부르겠다. 이 시는 "왕"을 노래하는 시이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노래하고 그분의 능력을 찬양하면서, 우리가 받은 구원의 영광으로 왕께 면류관을 돌려야겠다. 다음에 나오는 시 22편은 우리를 십자가 앞으로 인도할 것이고,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길로 안내할 것이다. 


구성-이 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할 수 있다. 


1-6절승리에 대한 감사.

7-13절미래의 승리에 대한 확신.


강해


1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2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셀라)

3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4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5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6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1절. "여호와여 왕이 주의 힘을 인하여 기뻐하며." 예수는 왕이시다.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요 18:37)라는 물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요 18:37). 그분은 세상의 다른 왕들 중의 한 분이 아니라, 왕 중 왕이시며 유일한 왕이시다. 그분은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되 사랑으로 다스리신다. 이 사랑의 통치와 비교해 보면 다른 모든 통치는 야만적인 힘을 과시하는 통치에 불과하다.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그분의 왕권이 선포되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 위에서도 그분은 보좌에 앉으신 것처럼 세상의 가난한 자들에게 세상의 왕이 주지 못하는 축복을 주시며 다스리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백성들의 구원을 이루셨을 때, 그분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을 얻으셨다. 예수께서는 한적한 산에서 홀로 기도하시는 시간을 보내셨고,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홀로 외롭게 기도하시며 힘을 얻으셨다. 주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이 힘이 이 시에서 기쁨의 주제가 되었다. 이제 '슬픔의 사람'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 그분은 여호와의 능력을 힘입고 모든 원수들을 물리치시고 기뻐하신다. 

왕 되신 예수의 신하들은 왕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도 여호와의 능력을 의지하자.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즐거워하자. 감사의 노래를 부르며 크게 기뻐하자. 예수께서는 그분이 이루신 승리로 기뻐하셨다. 또한 그분이 값 주고 사신 죄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을 보시며 즐거워하실 것이다. 우리도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의 능력을 더 알아 갈수록 더욱 즐거워할 것이다. 우리의 약함은 하프의 줄을 풀어 놓지만, 그분의 능력은 하프의 줄을 조이고 조율하신다. 우리 자신의 능력을 생각한다면 노래할 수 없어도,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 안에서는 즐거워할 수 있다.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주의 능력'이 구원의 원천이 되셨으므로 이 구원은 "주의 구원"인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것을 계획하시고, 예정하시고, 또한 이루셨다. 그러므로 이 구원은 여호와의 구원이다. 이 즐거움은 평범한 즐거움이 아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크게 즐거워하리이다"라고 감탄을 했다. 죽음에서 일어나신 우리 주님의 즐거움은, 그분의 고난을 말로 표현할 수 없듯이,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골짜기가 깊으면 산도 높다. 그분의 슬픔의 골짜기가 깊어서 즐거움의 산도 더욱 높다면, 그분이 주시는 축복은 칠층천에서 주시는 기쁨과도 같이 귀하고 높은 것이다. 그분은 앞에 놓인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견디시고, 수치와 멸시를 개의치 않으셨더니, 이제 그분이 누리는 즐거움도 날마다 더해 간다. 사람들이 그분의 피를 의지하고 구원을 얻으며, 구속받은 자들과 함께 노래하며 즐거워하는 것을 그분이 보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님과 함께 하나님께로서 얻은 구원을 감사하자. 이 구원이 우리에게 이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르며, 마침내 온 땅을 정복할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자. 온 땅이 즐거워할 것이니, 우리가 더욱 즐거움을 누리자. 우리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으며,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라신다. 


2절.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주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자 열심히 사셨다. 그분은 이것을 위해 기도하시고, 움직이며 활동하시고, 고난을 받으셨다. 그분은 땅에 계시는 동안 그분의 백성들을 구속하기를 바라셨다. 이제 하늘에 계신 그분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그분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그분이 계시는 곳으로 가서 함께 있기 때문이다. 주 예수께서는 진심으로 그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를 바라셨고, 여호와께서는 그 소원을 들어 주셨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르다면,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소원도 들어 주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분의 행하심을 이렇게 노래했다:"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시 145:19).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드리는 기도만이 진실된 기도이다. 예수께서는 묵상으로 기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한 입을 열어 소리 내어 말씀하시며 기도하셨다. 말로 표현하는 것은 우리의 생각을 더 명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혼자서 기도할 때에도 소리 내어 기도하면 우리의 생각을 더 잘 정리할 수 있다. 우리 구주께서 기도하신 것을 하나님은 거절치 않으셨다. 예나 지금이나 그분이 기도하시는 것을 하나님은 들어 주신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 드리는 기도는 헛된 기도가 아니다. 예수께서는 그분의 택하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리시고 마침내 영광을 주실 것을 기도하셨다. 그분이 드린 기도를 하나님은 받으신 것이다. 그분은 지금도 속죄소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소망하는 것이 있다면 그분 앞에 아뢰기를 망설이지 말라. 우리를 위해 간구하기를 기뻐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 그분이 기도하시면 하나님은 들어 주신다. 그분께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것을 게을리 하지 말자. 


"셀라." 여기에서 잠시 머무르며 생각해 보자. 하나님은 우리 왕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분을 통해 우리의 소원을 아버지께 아뢰자. 잠시 멈추어 무엇을 부탁해야 할지 생각해 보자. 우리가 좀더 자주 조용히 묵상하는 시간을 갖고, 예배 시간에도 더 자주 "셀라"의 시간을 갖는다면 유익할 것이다.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영접하다"라는 말은 앞서가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께서는 많은 복을 가지고 아들보다 앞서가신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는 사람들은 그분의 죽음으로 얻을 축복을 바라보고 기대함으로 구원을 받았다. 그분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사람들은 그분이 오실 것을 바라보고 기뻐했으며, 그분도 이런 사람들에 대해 기뻐하셨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셔서, 아들보다 앞서 가셔서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셨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요 16:26, 27). 예수께서 부르시기 전에 아버지는 응답하시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아버지는 들으신다. 하나님의 자비는 아들의 피를 통해 주어진 것이지만, 또한 값없이 주신 것이다. 구세주의 희생이 원인이 되어 아버지의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이 아들의 희생보다 먼저 있었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성도들이여, 여호와께서 당신 앞서 가시며 섭리와 은혜를 베푸시고, 당신의 필요를 채우시며 당신이 갈 길을 준비하시는 것을 당신이 볼 수 있다면, 이는 복된 일이다. 많은 경우에 우리가 소원을 기도로 알리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자비를 베푸시고, 우리의 노력이나 기대하는 바, 심지어 우리의 소망과 꿈보다도 더 좋은 것을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서 은혜를 베푸신다면 우리는 당연히 노래를 불러야 한다. 이 시편에 나오는 노래로 우리의 노래를 삼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는 모두 "아름다운 복"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은 우리로 복된 사람을 만드시기 위한 것이다. 이 "아름다운 복"은 선물이며 우리의 노력이나 선행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그리고 이런 선물들은 우리 앞에서 가시는 하나님께서 주셨다. 그분이 우리의 앞날을 먼저 바라보셨기 때문이다. 우리 앞을 먼저 보시고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이다. 이 구절은 참으로 아름다운 시이다.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예수께서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만, 이제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계신다. 그분이 "면류관"을 쓰셨다는 것은 그분이 왕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분은 왕의 능력을 가지시고, 사람들의 영광을 받으셔야 하며, 원수들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실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면류관은 "금"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가장 호화스럽고, 귀한 것이며, 빛이 나고,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이 "금"은 다른 모든 금보다도 더 순수하고 가장 귀한 가치가 있는 "정금"이다. 이 "정금 면류관"은 그분의 통치가 참으로 탁월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면류관을 아들의 머리에 씌우셨다. 세상의 다른 왕들은 머리에 헐겁고 느슨한 면류관을 쓰고 있지만, 아들의 면류관은 여호와께서 씌워 주신 것이기에 꼭 맞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세상의 권세자들도 이 면류관을 벗길 수 없다. 나폴레옹은 스스로 면류관을 썼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손수 주 예수께 면류관을 씌워 주셨다. 세상 왕들의 제국은 한 순간에 녹아 버릴 수 있지만, 아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어떤 역본에는 "보석 면류관"으로 되어 있다. 이 표현은 면류관에 박힌 보석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들을 귀하게 보신다는 말라기의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내가 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말 3:17, 이 구절의 KJV에서는 "소유"를 "보석"으로 번역했다-역자 주). 우리가 정금처럼, 보석처럼 구세주의 영광을 장식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영원히 그분의 머리를 장식하는 자들이 되었으면! 


4절.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다는 첫번째 구절은 다윗 왕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영영한 장수"라는 표현은 오직 왕 되신 메시아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되시고 죽음을 앞에 두셨을 때에 부활을 위해 기도하셨으며, 기도하신 대로 응답을 받아 이제는 영생을 가지셨다. 그분은 한 번 죽으셨으나, 죽음에서 부활하신 이후에는 결코 다시 죽지 않으신다.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 14:19)는 말씀은 구세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다. 우리는 그분의 영생에 참여하는 자가 될 것이다. 그분이 무덤의 돌을 굴리지 않으셨다면, 이 보석을 결코 찾지 못했을 것이다. 


5절.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임마누엘께서 사람의 손바닥으로 매를 맞으시고, 한때는 십자가를 지기도 하셨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셨다. 그분이 받으신 영광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그분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가? 바다에서 바다까지 펼쳐 있는 그분의 나라를 보라. 타는 불꽃 중에 나타나는 그분의 광채를 보라. 주여, 주와 같은 자가 누구입니까? 나사렛 사람이라고 멸시받던 당신이었으나,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당신을 따를 수 없나이다. 성도들이여, 이것을 기억하라.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구세주이신 아들도 아버지를 높이신다. 그러나 아들의 영광이 이렇게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기 때문이다.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파크허스트(Parkhurst)는 "현란함과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다. 세상의 군주들과 왕들에게 존귀함을 나타내려고 금사슬이나 별을 주듯이, 하나님은 이것들을 예수께 주셨다. 장막의 나무가 순금으로 싸이듯이, 예수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덮이신 것이다. 그분을 따르는 자들도 놀라운 영광을 받는다면, 그분 자신은 어떤 영광을 받으셔야 하겠는가? 그분은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지셨다. 그러므로 그분이 이에 상당한 영광을 거두시는 것은 합당한 일이다. 그분이 받은 수치에 필적하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끝없이 예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 행하시는 그것을 우리도 당연히 힘을 다해서 해야 할 것이다. 한때는 가시로 상처를 남겼으나, 이제는 영광스러운 면류관을 쓰셨다! 


그분께 영광의 면류관을 드리세

죽음을 당하신 그분께

그분의 존귀를 노래하세

세상에서 호흡하는 모든 것들아.


6절.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예수께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다. 그리하여 지극한 복을 상으로 받으셨다. KJV의 난외에는 "저로 복이 되게 하시고"라고 되어 있다. 그분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넘치게 부어 주는 샘과 같고, 온 우주를 빛으로 채우는 태양과도 같으시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씨는 이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영원한 복의 근원이 되셨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들에게 축복을 주실 분으로 예정되셨고, 이 일을 사명으로 받으셨으며, 이 일을 위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아, 죄인들이 구세주가 누구신 줄 알기만 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분이 죄를 지어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구세주이심을 안다면!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그분은 기쁠 수밖에 없다. 예수께서는 무한히 선한 일을 행하시기에 그분은 또한 무한한 즐거움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사랑하는 아버지, 그분의 얼굴은 예수께 넘치는 기쁨이 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기쁨의 강과 같아서, 예수께서는 이 물을 마시며 기쁨을 누리시는 것이다. 그분은 기쁨이 충만하시다. 이 기쁨의 근원은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이 기쁨은 영원한 기쁨이며, 한이 없는 기쁨이다. 하나님의 얼굴이 아들을 기쁘게 한다. 우리도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우리의 죄가 그분을 노엽게 하거나 그분이 우리에게서 얼굴을 돌리시지 않게 해야 한다. 우리 주님의 기쁨이 모든 성도들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얼굴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그날을 바라보자. 그리하여 우리 주님의 기쁨에 참여하자. 


지금까지 이 시편에는 승리자들의 외침과 노래가 나타났다. 그들과 함께 외치고 노래하자. 예수는 우리의 왕이시고, 그분이 얻은 승리는 곧 우리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7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8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9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10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

11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12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13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7절. "왕이 여호와를 의지하오니." 우리 주님은 참된 왕이요 지도자이시다. 그분은 전쟁 무기들을 사용하는 전문가이시고, 믿음의 방패를 잘 활용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본을 보여주셨다. 마지막 시간이 이르기까지, 그분은 아버지의 돌보심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느끼셨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기도를 항상 들으신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다. 그분은 이 땅에 살아 계신 동안, 공의로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고, 마지막 순간에도 그분의 영혼을 이 하나님께 의탁하셨던 것이다. 앞의 구절에서 표현되었던 기쁨은 믿음의 기쁨이고, 그분이 얻은 승리도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이 진정한 승리의 어머니와도 같다. 이 승리의 시는 우리 주님의 싸움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시간의 벽을 넘으며, 전쟁을 하는 동안에도 승리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자의 인자함으로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모든 면에 온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다스리시는 보좌를 요동치 않게 하신다. 그분은 하고자 하시는 목적을 흔들림이 없이 이루셨으며, 이 일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원수들이 그분을 공격했지만 그분의 일을 다 이루시기까지 요동치 않으셨다. 세상의 다른 나라들은 세월이 흐르면 무너지고 붕괴하지만, 영원한 자비가 그분의 나라를 지키신다. 세상의 왕들은 이 세상의 군대를 의존하기에 멸망하지만, 우리의 왕께서는 여호와를 의뢰하시기에 영원히 통치하신다. 왕 되신 예수의 보좌가 지금도 엄존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를 증언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만이 그리스도의 보좌를 지킬 수 있다. 이것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보좌를 곧 넘어뜨리려 했을 것이다. 

우리는 구세주의 왕국을 확장시키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왕 되신 주님도 하나님을 의지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상의 어떤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모든 불신의 행동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왕께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 가운데 행하는 본을 보여주셨다. 


8절.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의롭게 살아가는 자들은 악인의 멸망을 보고서 즐거워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리고 성경에 있는 다른 노래에서도 악인의 멸망을 노래하며 하나님께 감사를 돌린다. 교만한 자를 끌어내리는 것은 곧 겸손한 자를 높이는 것이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그리스도의 원수까지도 동정해서는 안 된다. 왕의 진노를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주님께서 원수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 돌아다니시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손"이 모든 원수를 발견한다. 어느 곳이나 그분이 존재하시기 때문이다. 그분을 피해 도망하려는 것은 헛된 짓이다. 그분은 곧 이들을 찾아내고 벌하실 것이다. 이 일은 주님의 오른손으로 하시는 일이기에 어렵지 않고 속히 이 일을 이루실 것이다. 

주님께서 원수들을 "발견"한다는 말은 그들이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곳에서 찾아낸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숨기는 가장 민감한 부분을 찾아내어 극한 고통을 가하는 것도 포함한다. 그분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에는 마음이 강퍅하게 굳은 자들은 고통을 느끼고, 교만한 영혼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사람을 만드신 그분은 그분의 뜻대로 사람에게 공포와 혼란을 일으키실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그분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고통과 공포를 주실 것이다. 


9절.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저희들은 풀무와 같아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자신을 괴롭게 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진노의 불은 죄의 불을 따라온다. 소돔과 고모라를 태우던 불의 연기가 하늘로 오르듯이, 주 예수의 원수들은 철저하고 끔찍하게 불에 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당신은 그들을 용광로에 넣는 것처럼 던져 넣으실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아궁이에 던져진 장작이 타오르듯이, 그들은 여호와의 진노 아래 맹렬한 불에 탈 것이다. 주님은 세상 끝에 일어날 일을 이렇게 예언하셨다:"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 13:49, 50). 이것은 무서운 말이다. 이상한 논리로 이 무서운 말씀의 뜻을 약화시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성도들이여, 지옥을 가벼이 생각하지 말라. 그렇게 되면 죄를 짓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죄인들이 가는 지옥은 무서운 곳이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주님께서 이런 말로 표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철저하게 파멸에 이를 것을 안다면, 누가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겠는가? 

"네가 노할 때"라는 표현은 지금은 은혜의 때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만, 곧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때가 이른다. 재판관은 그의 때가 이르면 순회하면서 재판을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하나님은 진노의 날이 이르면 심판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들을 멸시하는 자들은 이 진노의 날을 기억하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여호와 그분이 아들의 원수들을 진노 가운데 방문하실 것이다. 우리 주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위임을 받아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엄한 심판을 내리실 것이다. 이 구절은 심판의 때가 이르면, 영혼과 육체가 극심한 고통으로 삼킨 바 될 것을 나타내고 있다. 아, 임박한 진노는 어찌 그리 무서운 것인지! 누가 그것을 견딜 수 있겠는가?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을 기억하시고, 우리를 여호와의 진노에서 구원하소서. 


10절. "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그들이 이 세상에서 온 힘을 다해 하는 일들은 결국 실패로 돌아갈 것이며, 그들이 땀 흘려 일한 결과에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사람들은 망각하고 말 것이다. 그들의 이름도 사라질 것이다. 그의 후손은 어떻게 될 것인가?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 그들의 뒤를 따르던 후손들도 이와 비슷한 파멸을 당할 것이고, 마침내 인류의 종말이 임할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복을 후손에게 유산으로 남기고, 죽어 가는 죄인들은 저주를 남겨 준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대적하고 미워한다면, 그들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1절. "대저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하나님은 사람들의 의도를 살피신다. 무엇인가 악한 일을 하려고 했으나 하지 못한 자들은 이것을 행한 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알지 못하고 무지한 자들만이 그리스도의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빛을 받은 자들 중에도 교회를 미워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의도적인 죄에는 부지중에 지은 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해악이 있다. 경건치 못한 자들이 악의를 품고 미리 계획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공격한다면, 이 죄는 큰 죄이며 여기에 합당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너를" 해하려 한다는 표현에서, 성도들을 해하려 하는 자들은 바로 왕이신 그분을 해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말해 준다. 악을 행하는 자들아, 이것을 알라.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 주 예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는 능력이 없다. 그들은 사악한 것을 상상하고, 교활하게 계획을 세우고, 악한 마음으로 재난을 끼칠 것을 계획하지만, 그들에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이 점에 대해 우리는 하나님께 찬송을 돌려야 한다. 그러나 비록 그들이 악한 계교를 이루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마음에 품은 계획에 대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그들이 악한 뜻을 품었던 것은 그들이 행동으로 옮긴 것과 같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오늘날 복음의 원수들이 악하게 위협을 할 때에 우리는 "계교를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도다"라는 말을 하며 기뻐할 수 있다. 뱀이 "솨-" 하는 소리를 낼 수는 있으나, 뱀의 머리는 이미 깨어진 것이다. 사자가 돌아다닐 수는 있어도, 삼키지는 못한다. 폭풍 중에 천둥이 칠 수는 있어도, 때리지는 못한다. 늙은 교황이 순례자를 보고서 못을 깨물 수는 있어도, 이전처럼 못을 박지는 못한다. 마귀와 그 동맹자들이 끔찍하게 울부짖을 수는 있어도, 시온의 벽을 보고서 실망하여 물러갈 수밖에는 없다.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기 때문이다. 


12절. "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잠시 동안 하나님의 원수들이 용감하게 진군하며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처럼 위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잠시 잠깐 후면 모든 상황이 뒤바뀌게 될 것이다. 그들이 처음에는 교만하게 나아온다 해도, 여호와께서 그들을 막으시고 하나님의 심판을 조금만 맛보게 해도, 그들은 꽁무니를 빼고 도망갈 것이다. 히브리 원어의 뜻에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쏘시는 과녁, 곧 진노의 표적이 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일인가! 이러한 일이 역사 속에서 일어난 예로서, 예루살렘의 포위를 생각해 보라. 한 개인의 예를 보고자 한다면, 프란시스 스피라(Francis Spira)의 죽음에 대한 글을 읽어 보라. 하나님은 과녁을 놓치지 않으신다. 누가 그분의 과녁이 되려는가? 그분의 화살은 날카로워 심장을 꿰뚫는다. 누가 이 화살을 맞겠는가? 아! 너희 하나님의 원수들아, 그분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 날기 시작한다면, 너의 교만도 끝장이 날 것이다!


13절.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이 시는 감미로운 구절로 끝을 맺는다. 우리도 마음을 다하여 이 노래를 부르자. 하늘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선을 베푸신 것과 그분의 원수들을 무너뜨리신 것을 기억할 때마다 우리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이 합당하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연약하여 그분을 마땅히 경외해야 할 대로 경외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도우시도록 기도해야겠다. 오, 하나님이여! 높임을 받으소서. 당신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어떤 능력으로도 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 잠시 동안 성도들은 탄식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 그들의 기쁨을 새롭게 한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은 항상 즐거움을 누린다. 우리는 마땅히 마음과 목소리를 합하여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노래해야겠다. 그분의 능력을 목도할 때면, 우리는 하나님을 높여야겠다. 그분이 구원을 베푸셨으므로,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찬양을 받으셔야 한다. 


주해


시 21편 전체. 시 20편의 결론으로 교회가 드리던 기도가, 이제 21편에서는 찬양으로 연결된다. 메시아께서 받으시는 고난에 이어서 이제 영광이 시작된다. 교회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동안, 주님의 재림과 함께 누릴 기쁨에 대한 소망과 기대를 깨우치기 위해 성령께서 준비하신 시편으로서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중의 하나이다. 이 시의 주제는 '메시아의 영광'이다. 메시아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시간은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 버리는 때이다. 성경에는 대조적인 표현이 많이 나타난다. 한 가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다른 극단적인 상황으로 옮겨 가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듯하다. 사람들은 어떤 변화도 인내하며 참을 수 있다. 그 변화가 난폭하고 모순이 가득해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이나 슬픔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사람을 지루하게 하고 쇠약하게 만든다. -라일랜드. 


시 21편 전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계 4:1, 2). 시 21편은  요한계시록의 이러한 장면을 노래하고 있는 듯하다. 제롬(Jerome)은 이렇게 말했다:"앞의 시에서는 종의 모습을 하고 있던 자가 이 시에서는 왕 중 왕이요, 모든 주의 주와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아이작 윌리엄스. 


시 21편 전체. 시 20편이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동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시 21편에서는 그리스도의 승리하는 모습을 본다고 생각한다. 앞의 시에서 그리스도는 아골 골짜기와도 같이 어두운 골짜기에 계셨으나, 이 시에서는 시온의 산 위에 계신다. 앞의 시에서는 슬픔과 고난을 겪으셨으나, 이제 그분은 이런 고통을 잊으시고 즐거움을 누리신다. 앞의 시에서는 지독한 원수들에게 둘러싸여 계셨으나, 여기서는 시 78편에 묘사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때에 주께서 자다 깬 자같이, 포도주로 인하여 외치는 용사같이 일어나사 그 대적을 쳐 물리쳐서 길이 욕되게 하시고"(시 78:65, 66). -해밀턴 버쇼일. 


시 21편 전체. 이 시의 머리말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시는 다윗이 지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는 자신을 제3자인 "왕"의 위치에서 이 시를 기록했다. 그는 이 시를 자신을 위해서 기록했다기보다는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기록했다. 이 시는 사실상 다윗의 영광과 위엄을 노래하는 애국가와도 같은 노래이나, 이것을 모두 하나님께 돌린다. 즉 다윗의 미래가 영광스러울 것을 확신하면서도, 이 영광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사무엘 마틴(Samuel Martin, Westminster Chapel Pulpit, 1860). 


1절. "주의 힘······주의 구원." 여기에서 우리는 "힘"과 "구원"이라는 두 단어를 볼 수 있다. 이 두 단어를 잘 살펴보라. 구원이 없는 힘도 없고, 힘이 없는 구원도 없다. 어느 한 가지만 있다면 완전하지 못하다. 힘만 있다면 그것이 기쁨이 되지 못한다. 구원이 따르는 힘이 우리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 힘은 우리를 심판하는 힘이 아니라 구원하는 힘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이다. 이제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 보라. 구원이 따르는 힘이 기쁨의 근원이었던 것처럼, 구원도 힘과 함께 있으면 즐거움이 더하는 것이다. 이 구원은 강력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랜슬롯 앤드루즈(Lancelot Andrewes, Con- spiracie of the Gowries, 1555-1626). 


1절. "주의 구원을 인하여 크게 즐거워하리이다." 아! 쇠하지 않는 강한 팔, 그리고 항상 그늘을 주는 날개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분은 어제와 오늘, 다른 분이 아니라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다. 그분이 영원하신 것처럼, 그분으로 인해 누리는 즐거움도 영원할 것이다. -랜슬롯 앤드루즈. 


2절.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분은 유월절 음식을 제자들과 함께 잡수시고, 그분의 생명을 주시며, 또 그 생명을 다시 취하기를 소원하셨다. 하나님은 그 소원을 이루어 주셨다.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 그분은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대로 이루어졌다. -어거스틴(Augustine).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심을 축복으로 간구하기 전에 아버지께서는 이 선물을 주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자녀로 삼으신 모든 자들에게 이와 같으시다. 왕과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영광의 면류관을 쓰고 계시는데, 이는 가장 순수하고 화려한 금속인 정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분은 성도들이 각각 다른 덕을 가진 것을 인정하시고, 이 면류관을 장식할 루비나 사파이어나 에머럴드처럼 존귀하게 여기신다. 이 면류관을 장식할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는가? -조지 혼(George Horne).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시편 기자는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여호와여, 나는 왕국을 주실 것을 구하지도 않았고 생각하지도 않았나이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당신의 선하신 축복을 먼저 주셨나이다."······하나님의 선하신 축복을 우리가 구하기 전에 먼저 받았다면, 우리는 전심을 다해 감사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하나님은 항상 사람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먼저 베풀어 주셨고, 앞으로도 그렇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또한 이 세상과 세상의 나라들, 나라 안의 큰 도시들과 지역들, 가족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대하셨다······개개인에게 선을 베푸신 예를 보고 싶다면 세리 마태를 보라. 그리스도는 그에게 먼저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바울에게도 은혜를 먼저 베푸셨다:"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딤전 1:13). 그가 어떻게 긍휼을 입었는가? 그가 먼저 이것을 구했는가? 바울은 그렇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주의 제자들을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그를 만나 주시자 그는 땅에 엎드러졌고, 하나님은 그에게 은혜와 자비를 먼저 베풀어 주셨던 것이다(행 9:1-19). 누가복음 15장은 바로 이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세 가지 비유-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양 그리고 잃어버린 아들의 비유-가 나타난다. 여인은 드라크마를 잃어버리고서 온 방을 쓸며 이것을 찾았다. 드라크마가 여인에게 소리를 질러서 여인이 찾은 것이 아니라 여인이 먼저 찾아 나섰다. 목자는 양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양이 목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찾아 나선 것이다. 잃어버린 아들은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라고 말하며 결심했다. 그러나 그가 집으로 돌아오고자 아직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서 그에게 달려가 그를 껴안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왜 그랬는가?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를 먼저 베푸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윌리엄 브리지(William Bridge).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그분은 먼저 하나님의 감미로운 축복을 흠뻑 받으셨기에, 우리의 쓴 죄악이 그분을 해치지 못했다. -어거스틴. 


3절. "저를 영접하시고." "영접하다"라는 말은 '앞서가다'라는 뜻이다. 여호와여, 당신은 선하신 축복을 가지고 주의 앞에 가서 굽은 길을 바르게 하며 거친 길을 닦으셨나이다. 이것은 길에 꽃을 뿌려서 아름답게 보이게 하고, 또한 걷는 자를 편안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무엘 마틴.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이 구절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무엇을 필요로 할 것인가를 알고 계셨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셨다고 했는데, 이는 그분이 아름다운 복을 가지고 먼저 가셨다는 말이다. "아름다운 복"이란 표현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시는 선물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는 복은 그처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 복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이 가득히 들어 있다. -사무엘 마틴. 


3절.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우리가 받은 선물 중에서 많은 것들이 우리가 간구하기 전에 주어진 것들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이성, 지성, 그리스도를 자유롭게 믿을 수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 우리 백성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다는 사실, 우리가 믿는 그리스도 우리 주, 그 외에도 많은 것들이 우리가 구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다. 어느 누구도 구세주를 보내 주실 것을 구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스스로 "여자의 씨"를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윌리엄 플러머. 


3절.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그리스도는 4중 영광, 또는 4중 면류관을 가지셨다고 할 수 있다. (1)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동등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히 1:3)고 했다. (2) 그분은 중보자로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에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셨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시온에서 기름 부음을 받으신 자로서 능력과 권세와 영광을 받으셨고, 원수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철장과 능력을 받으셨다. (3) 그리스도는 중보자로서 그 임무를 행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셨다. 그분은 중보자의 임무를 수행하시는 동안 중보자로서의 능력과 권세를 나타내신다. 그래서 그분은 흰 말을 탄 자가 "면류관을 받고"(계 6:2) 승리했다고 했다. 이 영광은 마침내 마지막 심판날에 나타날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받은 능력을 행사하시는 것이 그분의 면류관이다. (4)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분께 돌리는 영광과 면류관이 있다. 성도들이 드리는 면류관이란 성도들이 그분의 무한한 영광에 무엇을 더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무한한 영광을 가지셨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제임스 더럼(James Durham, 1622-1658). 


3절. "정금 면류관." 이 면류관은 그분이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광을 얻으신 것과 관계가 있다. 하나님의 우편에서 그분은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셨으며, 이 "면류관"이 "정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그분의 나라가 순결하고 영광스럽고 견고하고 영원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존 길. 


4절.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곧 영영한 장수로소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사시는 것과 관련이 있다. (1)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영광. 임마누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한 상급으로 영생과 축복이 약속되었다(시 110:1-4; 사 9:6, 7 등). 그리스도도 이것을 바라보고 소망하셨기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지셨다(히 12:2; 시 16:8-11). (2) 하나님의 공의의 영광. 공의의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온전히 만족함을 얻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그 이후의 삶은 의로운 요구를 만족시키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다. 그분이 영원히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에 하나님의 의가 영원히 만족하신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제는 사망이 그분을 주장할 수 없다. 그분에게 또 다시 형벌을 가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행사가 아니다. (3)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도 이 은혜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신다(요 17:2). 하나님의 우편에서 "영원히" 살아 계신 그분은, 그리스도를 중보자와 속죄 제물로 삼으시고 우리를 죄와 진노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사랑을 증거하신다. 그분이 하나님의 우편에 영원히 계신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자비와 주권을 보여준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한 것이다. 앞으로도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의 선물과 기쁨이 죄인들에게 흘러나갈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과 그분의 선하심 때문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생을 얻으신 것이다. -랠프 워들로(Ralph Wardlaw, D.D.). 


4절. "저가 생명을 구하매 주께서 주셨으니." 그분은 "아버지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1)라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부활을 구했다.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으시고 그분께 "영영한 장수"를 주셨다. 영영한 시간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그 후 지금까지 지속된 시간, 그리고 이후 영원까지, 끝이 없는 시간을 말한다. -어거스틴. 


4절. "저가 생명을 구하매." 하나님은 백성들이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신다. 백성들이 한 가지 축복을 구하면, 그분은 두 가지를 주신다. 히스기야가 병에서 나을 것을 구하자 하나님께서는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다. 알렉산더는 가난한 거지에게 한 성을 주었고, 그의 선생님께 유향을 한 배 가득 선물로 드리며 자유롭게 제사를 드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이보다 더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다. -존 트랩. 


4-8절. 다윗이 이전에 왕의 위엄을 나타내는 왕관이 없이 지냈다면, 이제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는 것이 더욱 당연한 일이다. 이 왕관은 원수들의 머리에서 그의 머리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톨룩. 


5절. "주의 구원으로 그 영광을 크게 하시고." 나는 어떤 사람이 죽어 가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것을 기억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오! 이것을 더 말해 주세요. 더 알고 싶어요.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그분이 이렇게 보고 싶은데, 어찌 더 듣고 싶지 않겠어요?" 이것은 진정 사실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아무리 말을 한다고 해도 그분에 대한 것을 모두 말할 수는 없다. 그분이 주신 축복을 누구도 온전히 다 말할 수 없다. 사람들과 천사들의 혀를 모두 가졌다고 해도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할 수는 없다. 피조물이 조물주를 다 안다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변의 모든 모래, 이 땅에 있는 모든 꽃과 풀, 나뭇잎, 숲과 삼림에 있는 모든 나뭇가지들, 하늘의 별들이 모두 이성을 가진 피조물이라고 하자. 그들에게 지혜가 있고, 또 천사의 혀를 가져서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과 영광과 훌륭함을 노래한다고 하자. 그래도 아버지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에 대해 다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 그분의 얼굴에 나타난 사랑스러움과 아름다움과 영광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우리가 진정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있는 것일까? 아! 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빠져들지 못하는 것일까? 왜 예루살렘의 딸들에게 이렇게 말하지 못하는가? "예루살렘 여자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 5:8). -아이작 암브로스. 


5절.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시고 영광과 존귀로 들어가신 것이 그분의 신성인가 아니면 인성인가에 대해 답을 해야 한다면, 나는 신성과 인성 모두가 영광에 들어갔다고 대답하겠다. 그분은 이 땅에 탄생하시고 죽기까지는 그분의 신성을 모두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으나, 부활 후에 이것이 확실히 드러났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말했다:"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롬 1:4). 이전에는 사람들이 그분을 사람으로만 생각했으나, 부활 후에 하나님으로 나타나셨던 것이다. 그분의 인성으로 말하자면 하늘의 영광에 들어가시면서 사람의 모든 연약한 것을 떨쳐 버리고 그분의 영과 육이 모두 영광스럽게 단장되고 아름답게 되셨다. 지금도 영광스럽게 변화된 육체를 가지시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셨으며, 마침내 모든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그분의 발 아래에 굴복시키시고 다스리실 것이다. 이 모든 말을 종합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며 사람이시고, 부활 후에는 영광과 존귀의 면류관을 쓰사 분명히 하나님으로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기까지 왕으로서 다스리신다. 이것은 경건한 자에게는 안위와 위로가 되며, 악한 자에게는 두려움과 놀람이 된다. -헨리 아이레이(Henry Airay, 1560-1616). 


5절. "존귀와 위엄으로 저에게 입히시나이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슬픔의 사람'이셨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동안에는 기쁨이 충만하시다. 그의 백성의 눈에서 흐르는 모든 눈물을 씻기시는 분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신다. 그분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 앞으로 누릴 기쁨을 바라보셨다. 이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신 지금은 당연히 이 기쁨을 누리실 것이다. 그분이 고난을 당하실 때에 바라보던 기쁨, 이제 보좌에 오르신 분이 그 기쁨을 누리신다. 그리스도는 하늘의 모든 존재 앞에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셨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지극히 값진 것으로 보고 또 즐거워했던 그리스도께 이것은 더할 수 없는 큰 즐거움이다. -존 후리온(1675-1731). 


5절. "영광······존귀와 위엄." 하나님은 가장 높으신 우리의 왕에게 면류관을 씌우셨다. 이것은 그분의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가장 높은 하늘 위에 수백억의 하늘을 짓고, 그 위에, 또 그 위에 다시 수백억의 하늘을 지어서 천사들이 그 수를 셀 수 없기까지 하늘을 짓는다고 하자. 그곳도 그리스도의 보좌를 세우기에는 너무 낮다. -사무엘 러더퍼드(Samuel Rutherford). 


6절.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기쁘고 즐겁게" 한다는 말은 '밝게' 한다는 말이다. 이것은 모세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를 언급한 것일 수도 있다. -댈먼 햅스톤(Dalman Hapstone, M.A., The Ancient Psalms······A Literal Translation and Notes, 1867). 


6절. "주의 앞에서 기쁘고 즐겁게 하시나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지만, 반드시 은유적인 말만은 아니다. 이것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자카리 보간(Zachary Bogan, The Mirth of a Christian Life, 1653). 


6절. "저로 영영토록 지극한 복을 받게 하시며." 땅의 모든 나라들이 왕이신 그리스도로 인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구절은 이 왕에 대해 표현한 지극히 합당한 말이다. -리처드 맨트. 


8절.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이 구절은 점진적 표현으로서 "손"에서 "오른손"으로 표현이 바뀌어 더 강한 힘을 나타낸다. "발견하다"라는 말은 '조사해서 찾아낸다'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조셉 애디슨 알렉산더(Joseph Addison Alexander). 


8절.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네 오른손이 너를 미워하는 자를 발견하리로다." 사울은 자신이 원수들의 손에 붙잡힐 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 죽고 말았다. 그는 원수들의 손에 붙잡혀 수치를 당하는 것보다 죽음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진노하신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들어 가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히 10:31)! 그 하나님은 진노를 베푸실 하나님이시다. 나훔 선지자는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 진노를 감당하랴"(나 1:6)라고 했다. 누가 감히 그분을 쳐다보겠는가? 누가 그분 앞에 자신을 드러내 보이겠는가?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말 3:2). 그분이 오시는 날 두려움에 떨지 않을 자는 아무도 없다. 요셉이 그를 팔아 버렸던 형제들에게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창 45:4)라고 했을 때에 요셉의 형들은 놀라서 그 앞에서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께서 원수들에게 승리를 거두시고 죄인들을 향해 말씀하시며, 너희들이 멸시하던 자, "내가 그로다"라고 하실 때에 죄인들이 무엇을 말할 수 있겠는가? 너희들이 핍박하던 자, "내가 그로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박은 자, "내가 그로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내로다"라고 하실 때에 많은 군인들이 엎드러졌다(요 18:6). 그분이 지극히 온유한 음성으로 말씀하셨어도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그분이 진노하시며 천둥 같은 목소리로 분을 발하시고, 그들을 먼지처럼 만들어 버리실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때에는 사람들이 놀람에 부르짖으며 산을 향해 이렇게 외칠 것이다:"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계 6:16). -제임스 누엣(James Nouet). 


8절.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 이것은 단순히 어디 있는지를 찾아낸다는 뜻만은 아니다. "네 손이 네 모든 원수를 발견함이여"라는 표현은 그 손으로 붙잡고 움켜쥐고 체포한다는 말이다. 원수들이 숨어 있다고 해도 주님은 찾아내신다.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원수들, 주님을 멸시하던 자들과 그분을 공격하던 자들을 모두 발견하실 것이다. -조셉 캐릴. 


9절.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성경에서 그렇게 자주 언급했던 불이 실제로 나올 때에 죄인들이 어찌 견딜 것인가? 하늘에서 불이 내리거나, 지옥에서 불이 솟구치거나, 또는 알베르투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가 말한 것처럼 양쪽에서 모두 나와서 모든 것을 태우고 삼켜 버릴 때에 죄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이 홍수처럼 범람하여 죄인들을 둘러쌀 때에 그들이 어디로 날아갈 수 있겠는가?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이 불타고 황폐해질 것이며, 죄인들이 피할 곳은 아무 데도 없을 것이다. 로마가 칠 일 동안 불에 탔을 때에 그 애곡하는 소리는 얼마나 처참했는가! 트로이가 불에 탔을 때에 그 비명 소리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펜타폴리스를 불태웠을 때, 그 놀람과 사람들의 곡하는 소리를 상상이나 하겠는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집, 왕국의 영광, 이 세상의 경이로운 것들이 불에 타고 연기를 뿜어 낼 때에 사람들이 슬피 우는 소리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을 것인지 상상해 보라. 그들은 자신들의 집과 모든 재산이 불에 타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건질 방도가 도무지 없었다. 남편은 아내가 죽어 가면서 지르는 비명 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그 어린 자녀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는 어느 누구도 구할 수 없었고, 그 자신마저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때에 이 세상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세상의 금과 은, 아름다운 장식품, 값비싼 벽걸이, 아름다운 정원, 호사스런 궁전,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그처럼 추구하는 것들, 이런 것들이 모두 불에 타고, 그들이 이것을 건질 수가 없을 때가 이를 것이다. 모든 것이 불타고, 이 세상마저 불에 탈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다시는 기억하는 자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영원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들은 종막을 고하고 멸망할 것이다. -제레미 테일러(Jeremy Taylor). 


9절.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그들이 풀무불에 던져질 뿐만 아니라(마 13:42), 그들 자신이 풀무처럼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신을 스스로 괴롭게 할 것이고, 그들의 양심을 바라보는 것은 그들에게 지옥의 고통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으나, 그분을 배척하고 그분과 싸움을 벌였던 자들, 그들은 이것을 기억만 해도 자신들이 풀무로 변하는 것처럼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 -매튜 헨리. 


9절.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주께서 다시 나타나시는 날, 그들은 자신들의 불경건한 것들을 알게 되고, 그들 속에 불이 붙는 듯한 고통을 당할 것이다. -어거스틴. 


9절. "풀무 같게." 이 풀무는 지극히 뜨거운 풀무이다. 그 안에 있는 것이나, 위에 있는 것이나, 그 아래나 주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뜨겁게 할 것이다. 이 풀무에는 나가는 곳도 없고, 차거운 바람이 들어오는 곳도 없다. -데이비드 딕슨. 


9절. "풀무 같게." 호슬리(Horsley) 주교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이것은 메시아의 원수들이 불에 멸망당하고 용광로의 연기처럼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의 연기는 영영토록 공중으로 날아갈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던 날 아침, 아브라함은 두 도시가 폐허로 바뀌는 모습을 보았다. 그 광경은 얼마나 끔찍했을까!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창 19:27, 28). 밀턴은 이 구절을 이렇게 묘사했다. 


위에서는 음산하게 "쉿쉿" 하는 소리

불붙은 화살이 어지럽게 쏟아지고

불의 군대가 하늘을 뒤덮었네.

-리처드 맨트. 


9절. 갈대아 역본에서는 "지옥의 불"이라고 표현했다. -존 모리슨. 


9절. "네가 노할 때." 만일 하나님께서 그분을 노엽게 하는 자들에게 무서운 진노를 쏟아붓기로 작정하셨다면, 무엇이 그분의 능한 팔을 막아설 수 있겠는가? 피조물들은 화가 나겠지만, 마치 침이 없는 수펄처럼 해할 수 없다. 그들의 분노는 포탄은 없고 장약만 있는 대포 소리처럼 그저 요란한 소리만 낼 뿐이고, 교황이 내리는 교서처럼 많은 사람을 두렵게는 하겠지만 양심이 노예로 잡힌 자들을 제하고는 어느 누구도 해할 수 없다. 분노한 사울은 다윗을 찾을 수 없었으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서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사탄은 욥을 죽이기를 원했으나 죽이지 못했고, 요나는 니느웨가 보존되는 것을 죽기까지 싫어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면, 이 진노에서 피할 자는 아무도 없다. 세상의 군왕들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후 다시 그들을 놓아 주기도 한다. 롯은 소돔의 왕에게서 구출받았고, 요셉은 이스마엘 사람에게서 돈을 지불하고 구원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 낼 자는 아무도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구속할 뿐이다. 하나님의 뜻을 거역할 자는 아무도 없고, 그분은 원하는 것을 그대로 이루신다. 그분이 진노하시면, 그분의 눈이 진노의 대상을 찾아낸다. 그분의 지혜와 능력을 대항할 자는 아무도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날이 반드시 임할 것이다. -존 크래그. 


9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여호와의 진노를 당하는 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영원한 불이 그들을 삼킬 것이다. -어거스틴. 


9절.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엘리자베스 여왕이 진노하자 영국의 재무장관인 크리스토퍼 해턴(Christopher Hatton) 경이 죽음을 당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렇다면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 진노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분의 진노에 바위가 갈라지고, 산이 녹을 것이며, 땅의 기초가 흔들릴 것이다. 영광스러운 복음에 순종치 않던 자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에게 진노하기 위해 그분이 모든 영광으로 이 땅에 오실 때에, 경건치 못한 죄인들이 어떻게 견디겠는가? -찰스 브래드버리. 


10절. "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 죄인들이 말이나 글이나 행동으로 지은 죄의 "열매들"이 멸망을 당하는 날이 올 것이다. 이러한 열매를 맺었던 나무 자체가 뿌리째 파헤쳐지고 불에 던져질 것이다. 악인의 후손들도 그들의 조상들처럼 행동한다면 이처럼 멸망을 당할 것이다. 부모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의 행동과 그들이 따르는 삶의 원칙에 그들 뒤에 따르는 수많은 후손들의 구원과 멸망이 달려 있다. 그들이 날마다 바라보는 유대인들의 운명을 보고서 그들은 두려워 떨어야 한다. -조지 혼. 


11절. "저희는 너를 해하려 하여." "하려 하여"라는 말은 히브리 표현으로 '구부리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활을 쏘는 사람이 화살을 먹이고 목표물을 쏘기 전에 활을 당겨 구부리는 행동에서 가져온 비유이다. -조반니 디오다티. 


12절. "네가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 그 얼굴을 향하여 활시위를 당기리로다." "저희로 돌아서게 함이여"라는 말은 그들을 과녁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화살로 비유하는데, 이것은 날카롭고 빠르고 이것을 맞으면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화살을 겨누시는 과녁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예루살렘 성을 생각해 보라. 성은 로마의 군대가 둘러싸 포위를 당했고, 사람들은 서로 적대감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이 구절을 해석하는 데 다른 주석이 필요가 없다. -조지 혼. 


힌트


1절.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들의 기쁨. 


1, 2절. 이 구절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교리를 다음의 세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 기도의 응답. (2) 부활에 대한 그분의 즐거움. (3) 그분의 즐거움과 그분이 받는 영광에 대한 우리의 관심. -해밀턴 버쇼일. 


2절. 훌륭한 대변자. 


3절 상반절. 영접하는 자비. 


3절 상반절. 우리 앞서 가시는 하나님. 우리의 필요를 미리 아시고 자비롭게 공급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그분의 선하신 축복으로 우리를 영접하신다. (1)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2)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3) 우리가 결혼하여 서로 돌아보는 의무를 지게 되었을 때. (4) 살아가면서 우리가 새로운 길에 접어들 때. (5)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섰을 때. (6)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자비를 베푸시고, 새로운 상황을 허락하셔서 간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을 돌리게 하실 때. (7) 우리를 위해 하늘문을 여시고, 우리의 복을 위해 하늘에 많은 것을 쌓아 두실 때. -사무엘 마틴. 


3절 하반절. 예수께서 면류관을 쓰셨다. (1) 그분이 행하셨던 노고. (2) 그분이 받으신 통치권. (3) 면류관의 특성. (4) 하나님께서 주신 영광스러운 면류관. 


4절. 영원히 사시는 그리스도. 


5절. 중보자의 영광. 


6절. 복을 받으신 그리스도. 


7절. 주님의 믿음은 우리가 따를 본이며, 그분이 받으신 영광은 우리가 바라고 소망해야 할 것이다. 


8절. 은밀하게 숨은 죄인도 피할 곳이 없다. 


8, 9절. 악인에 대한 심판, 그 필연성과 두려움. 


11, 12절. 악한 의도에 대한 심판. 


12절. 지옥 군사들의 퇴각. 


13절. 경건한 자의 송영. (1)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으심. (2)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심. (3)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심. (4)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분을 찬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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