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수 목사] 교회를 사랑합니다
전남수 목사 알칸사 제자들교회 담임(2003-현) 경북대학교 철학과 및 동대학원 졸(B.A/M.A) 고려신학대학원 졸(M.Div) Missionary Baptist Theological Seminary(Th.M)Houston Graduate School of Theology(D.Min)
Central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겸임교수
AI 시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살아가면서 인간의 문명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이 죄 많은 인간이 죄를 씻고 하나님의 거룩에 참여할 기회를 빼앗아 간다면, 그것은 발전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저주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이 설교를 하고 인생의 잠언을 제공하는 이른바 “AI 목사”가 등장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그것을 두고 지나치게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다. 그것은 결국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없는 기계 뭉치일 뿐이기 때문이다.
기계가 아무리 성경을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분석하고 설명한다 하여도, 그것이 사람을 거룩하게 만들 수 없다. 말씀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살아있는 영으로 역사하시는 생명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참된 성도는 주님 오시는 날까지 한결같이 몸을 움직여 교회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 새벽을 깨우고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씀 앞에 겸손히 서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예배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을 경험하고 그의 영광을 정오의 빛과 같이 보게 되는 것이다.
참 신앙의 사람들은, 몸을 움직여 교회로 나아가고,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한 절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간절히 사모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사모함은 설교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판단도 넘어섰다. 오직, 설교를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사실에 집중하였으며, 어린아이의 입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면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려고 했던 것이다.
교회를 사랑하고 예배를 사랑하며, 말씀을 사랑했던 그들에게 설교는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살아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말씀을 듣는 순간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고, 하나님의 거룩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회개하였다. 그리고 그 은혜 앞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불같은 헌신도 감당했던 것이다. 이것이 간증의 역사로 남아 믿음의 가정과 가문, 섬기는 교회를 빛나게 했던 것이다.
이러한 은혜의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 같다. 그 시작점에 몸을 움직여 교회로 가기를 즐겨하지 않는 영적 게으름과 악함이 존재한다, 다시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 교회에서 다시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볼 수 있는 곳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셨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바울이 박해했던 것은 교회였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자신을 박해한 것으로 말씀하셨다. 교회가 곧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다. 교회에 나아오면 예수님을 만나고 생명이 회복되고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예배가 있다. 그래서 교회는 이 땅에서 가장 거룩한 곳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회들이 인터넷 교회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코로나 시대에는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영상 예배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이 신앙의 새로운 표준이 되는 것은 매우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신앙은 가상의 공간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래서 몸을 움직여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이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히10:25) 라는 말씀은 신앙 공동체가 왜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정한 시간과 정한 장소에서 드리는 예배 속에서 영혼의 회복이 일어남을 믿어야 한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본질이다. 이 본질을 잃어버리는 순간 신앙의 뿌리도 흔들리게 된다. 어디서나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신앙 태도는 자칫 본질을 가볍게 만드는 위험이 있다.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은 어디나 계신 분이시지만, 몸을 입은 우리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다. 몸으로 인해, 시간과 장소에 제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생이 복되고 아름다워지는 특별한 길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길과 진리와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신앙을 살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시대에 성도에게 주어진 구원의 도피성은 교회이다. 교회에서 드려지는 예배 속에 하늘로 향한 거룩한 길이 열려 있다. 그러므로 교회를 붙드는 것이 곧 신앙이다.
하나님을 시시하게 여기면 인생도 시시해진다. 그러나 하나님을 존귀하면 섬기면, 인생도 존귀해짐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하나님을 존귀히 대하는 그 기준의 시작이 예배이다. 예배가 가벼워지면 인생도 가벼워진다. 성경의 역사를 보아도 예배에 실패한 사람들은 결국 인생에 실패하였다. 열왕기의 역사는 예배가 한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한 나라의 운명까지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아름답고 영광스런 예배를 위해 주님의 교회로 모여야 한다. 교회를 사랑해야 한다. 교회 밖에는 우리의 신앙과 삶을 지켜줄 안전한 곳이 없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은혜를 경험하며 삶이 새로워진다.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교회를 붙들 때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풍성히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